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 (사 42:1-4)

박성원 (영남신학대학교 교수, WCC 중앙위원)

2013년 10월 30일부터 11월 8일까지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립니다. 세계교회에 비해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한국교회가 세계교회를 한 자리에 모으는 것은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크나큰 은총이고 축복입니다. 이것은 마치 올림픽이 한국을 세계무대에 올려놓은 계기가 되었듯이 한국교회를 세계교회무대에 올려놓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세계교회의 신앙축제를 초청해 놓고 한국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WCC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WCC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도모하고 WCC 부산총회가 어떤 신앙적, 선교적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WCC는 무엇이고 에큐메니칼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WCC를 중요시 여기는데 사실 중요한 것은 WCC가 아니고 WCC가 추구하는 목표입니다. WCC는 하나의 기구입니다. WCC는 있다가도 없어질 수 있는 기구에 지나기 않습니다. 그러나 WCC가 추구하는 비전은 ‘하나님의 비전’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그 비전은 없어지거나 부정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그 비전은 구체적으로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오이쿠메네”, 즉 에큐메니즘이란 비전입니다.

“에큐메니칼” 하면 교회연합운동 정도로 생각하는데 사실 이 말은 그 보다 훨씬 더 넓은 개념입니다. ‘에큐메니칼’이란 말은 “오이쿠메네”란 희랍어에서 왔고 그 어원은 '오이코스'란 말입니다. 이 말은 “집”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신학에서 쓸 때는 아주 심오한 의미를 지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집'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바로 창세기 1장에 서술되어 있는 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한 가족으로 사는 하나님의 집’, 바로 그것을 의미합니다.

에큐메니즘은 바로 이 비전을 이루는 것이고 WCC는 바로 이 비전을 이루기 위해 세계교회가 함께 힘을 합하는 운동입니다. 보통 “에큐메니칼”이란 말을 “에반젤리칼”이란 말의 반대 개념으로 쓰는데 사실 에큐메니칼란 말과 에반젤리칼이란 말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동일한 목표를 지닌 개념입니다. 진실은 이것입니다. 진실로 ‘에큐메니칼’ 하면 ‘에반젠리칼’ 하고 진실로 ‘에반젤리칼’ 하면 ‘에큐메니칼’ 합니다.
WCC는 이런 비전을 가지고 있는데 문제는 하나님 안에서 만물의 일치를 위해서 일해야 할 교회가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먼저 분열된 교회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가 바로 WCC입니다.

세계의 모든 교회가 하나였다면 WCC는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교회는 역사적으로 다섯 번의 큰 분열을 겪었습니다. 그 첫 번째 분열은 초대교회에서 이미 나타났고 둘째로 큰 분열은 5세기 동방교회 안에서, 세 번째 분열은 11세기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사이에, 네 번째 분열은 16세기 종교개혁 때, 그리고 다섯째 분열은 19세기 선교운동의 결과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교회가 분열될 때 마다 교회는 하나 되기 위한 노력을 해 왔습니다. 첫 번째 교회일치의 노력이 바로 이미 성경 속에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바람직했던 교회는 사도행전 2장에 묘사된 초대교회였는데 불행하게도 이 초대교회는 사도행전 3장을 넘기지 못하고 분열하기 시작합니다. 문제가 된 것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 될 때 반드시 할례를 받고 유대교의 율법을 준수해야한다고 유대인들이 주장했고 이방인들은 왜 그래야 하느냐고 반박하는 견해의 분열이었습니다. 이 문제로 교회가 분열하려고 하자 사도들이 모든 지도자들을 모아서 의견을 조율했습니다. 사도들은 이 회의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데는 굳이 인간의 조건인 유대인이 될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이를 계기로 초대교회가 온 힘을 합해서 이방인선교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이 회의가 바로 사도행전 15장에 나타나는 예루살렘 회의입니다. 이것이 최초의 에큐메니칼공의회였습니다.

역사 속에서 교회는 이처럼 신학적 분열이 있을 때 마다 에큐메니칼 공의회를 소집하고 신학적 의견을 모으고 그것을 계기로 새로운 선교적 여정에 나서왔습니다. WCC총회는 바로 이 전통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교회간의 신학적 차이를 협의를 통해 극복하고 온 세계교회의 힘을 결집해 그 시대 앞에 가장 시급하게 증언해야 할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 바로 WCC총회입니다. 역대 WCC총회가 늘 그래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세계가 이념으로 동서로 양분되었을 때 열렸던 창립총회는 복음은 어떤 인간의 이념도 넘어선다는 입장에 합의하고 이 원칙하에 세계는 동서로 분열되었으나 교회는 이념을 넘어 하나가 되기를 노력했습니다. 제2차 총회가 1954년 미국, 에반스톤에서 열렸을 때는 당시 인종차별로 몸살을 앓고 있던 세계현실을 직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이도 헬라인이도 종도 자유인도 남자도 여자도 다 하나’라는(갈 3:28) 복음의 원칙에 입각하여 인종차별척결을 교회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인종차별을 세상에서 없애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70년대에는 케냐 나이로비에서 총회를 개최하고 당시 세계의 최대의 과제인 개발(development)문제를 복음의 원칙에 의해 진행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이 문제에 대해 전 세계교회가 함께 힘을 모았습니다.

이처럼 WCC총회는 세계교회가 그리스도 안에 한 가족임을 재확인하고 이 시대 인류가 직면하는 문제에 대해 세계교회가 선교적 차원에서 공동선교에 나서는 중요한 계기입니다. 그럼 2013년 부산에서 열리는 WCC 제10차 총회는 어떤 교회간의 일치를 도모하며 어떤 세계선교에 나설 것인가요? 두 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첫 번째 목표는 교회일치의 지평을 더욱 넓히는 것입니다. 세계교회는 동방교회, 로마가톨릭교회, 개신교회로 나누어져 있는데 개신교 안에는 크게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처럼 에큐메니칼운동을 지향하는 교회와 합동측 처럼 에큐메니칼운동에 참여하기를 주저하는 복음주의권 교회와 오순절전통의 교회가 있습니다. 역사적 에큐메니칼 운동은 정교회와 개신교회, 그리고 로마가톨릭 교회의 일치와 협력에 집중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오순절 교회와 복음주의권 교회가 세계교회 안에 큰 교회군으로 자리하면서 에큐메니칼운동의 지평이 복음주의권교회와 오순절교회권까지도 넓혀져야 한다는 시대적 부름이 에큐메니칼운동 앞에 다가왔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WCC가 복음주의권 교회와 오순절 교회가 강한 한국에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 한국교회가 하나 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오히려 WCC총회를 반대하는 움직임도 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WCC에 대해서 바로 이해하고 한국교회 전체가 일치의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계기가 이번 WCC총회를 통해서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신비한 경륜과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한국교회가 이번 기회를 통해 하나 된 모습을 보이고 중첩된 위기 속에 있는 인류와 피조세계를 구원할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응답하는 모범을 보이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더 넓은 에큐메니칼 지평의 넓히기와 더불어 부산총회가 세계 앞에 긴급하게 함께 공동선교에 나서야 할 과제와 도전은 무엇입니까?

아시는 대로 WCC 제10차 총회주제는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God of Life, lead us to Justice and Peace)입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이 이사야 42:1-4 말씀이 주제의 성서적 근거입니다. 이 시대의 징조는 무엇이며 이 징조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와 구원의 징표는 무엇입니까?

지금 세계는 중첩된 위기 속에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위기는 경제위기입니다. 세계는 금융투기에 몰두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로 인하여 빈부격차가 점점 극대화되고 있습니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하며 다국적기업의 횡포에 지역경제가 죽고 극도의 소비주의가 조장되며 사회불안의 골이 점점 깊어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의 용들이 90년대 말에 경제위기를 당한바 있습니다만 세계경제는 호전되지 않고 최근에 와서 미국을 비롯하여 지금은 유럽전체가 경제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며 호전되기는커녕 더 큰 경제쓰나미가 다가올 징조가 여기저기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와서 자본주의에다가 녹색을 칠해서 녹색자본주의로 눈가림을 하고 있지만 사실 자본주의 자체가 종말을 맞이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곧 평화의 위협으로 연결됩니다. 세계 곳곳의 지역분쟁이 경제적 위기로 인한 사회불안에서 오고 있습니다. 자원확보와 세계시장 지배를 위한 지구정치적 대결이 아프카니스탄이나 이라크 전쟁같은 세계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지구적 패권다툼에 소형의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를 더욱 과학적으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세계에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생태위기입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생태위기에 대한 경고를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산업화, 도시화, 근대화란 구호아래 무자비한 소비주의와 개발에만 몰두해 온 인류 문명은 그 끝을 모르고 치닫고 있습니다. 이제 석유자원이 바닥이 나고 기후변화로 지구온난화가 심화되고 있고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생태계의 질서자체가 파괴되는 심각한 생태위기를 지금 전 지구가 맞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생태적 위기를 종교적 차원에서 종말을 보았습니다만 지금은 세속적 차원에서 생태종말을 이야기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현재 세계가 겪고 있는 총체적 위기는 그냥 파도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위기가 아닌 현대문명의 총체적 위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로마서 8장 21-22절의 말씀대로 피조물이 탄식하며 하나님의 아들들, 즉 피조물을 구원해 줄 메시야를 기다리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노아시대에는 하나님이 심판의 홍수를 주셨습니다만 오늘은 인류가 스스로 생태쓰나미를 재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됩니다. 아마존의 눈물, 최후의 바다 태평양, 북극의 눈물, 등 최근 한국 미디어도 많은 다큐멘타리를 내 보내고 있습니다만 생태위기는 이제 과학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의 삶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두려운 현실에 인류문명이 직면하고 있을 때 21세기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피조물이 탄식하며 썩어짐의 종살이에서의 해방을 갈망한다.”고 전하는 로마서 8:21의 말씀대로 온 피조물의 구원, 즉 생태계의 구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WCC부산총회가 열리는 2013년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 총회가 열리는 해가 2020여년이 될테인데 2020년은 세속사회에서 이미 생태종말을 이야기하고 있는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자신이 이 땅에 온 목적은 만물에게 생명의 풍성함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밝혔습니다. 이 땅에, 이 우주에 생명의 구원의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면 이 시대에 온 세계교회가 매진해야 할 선교적 사명은 바로 이 온 피조물의 구원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이 생태위기의 시대에 세계교회가 부산에서 모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세계 자체의 구원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함께 증언하려 할 때 이 세계교회의 복음증언의 대열에 참여하고 함께 기도하며 생명선교의 전면에 나서는 헌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 아멘
(한국장로교출판사 2013년 설교집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