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본다

아프리카 인사법 중에 이런 인사법이 있다. “나는 당신의 눈에서 나를 본다.” 비슷한 표현이 1년 앞으로 다가온 WCC 부산총회에서 고백될 예정이다. 역대 WCC총회는 에큐메니칼운동의 기본적 과제인 일치에 대한 신학적 성명을 발표해왔는데 부산총회도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다. WCC는 이를 위해 준비해 온 문안을 지난 9월 그리스, 크레테 섬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검토한 바 있다. 그 문서에 이런 문구가 있다. “우리는 늘 서로에게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우리가 속하지 않는 다른 교파, 다른 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좁게는 이웃 그리스도인의 존재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알아보고 관계 맺는 것이고 넓게는 온 우주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얼굴을 알아보고 함께 찬양하는 것이다.

WCC 부산총회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이를 앞두고 일치는커녕 오히려 분열과 대립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WCC의 신학적 입장에 대한 의혹 때문인 것 같다. WCC가 추구하고 있는 교회의 일치에 대한 의문도 그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이 교회의 일치문제에 대해 한번 차분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치란 인간이 추구해 가는 가치가 아니다. 일치는 하나님께서 이미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한 우주, 한 세상을 만드셨다. 한 인류를 만드셨고 만물이 하나님 안에서 풍성한 생명을 누리도록 한 생명세계를 창조하셨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 만드신 일치를 인간이 파기한 것이다. 하나님과의 일치도 파기했고 인간 사이의 일치도 파기했고 인간과 자연의 일치도 파기했다. 에큐메니칼운동은 이 파기된 일치를 회복해 가는 운동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주를 위한 하나님의 기획의 원형이며 인간이 파기한 하나님과의 계약회복을 위해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치는 하나님께서 이미 만들어 놓으신 것을 인간이 파기한데 대한 참회적 응답이자 회개운동이다. 성경에 보면 일치는 축복이고 분열은 저주이고 죄악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끊임없이 이 하나님의 계약을 파기한데 대해 참회하고 하나님의 원초적 비전에 응답할 필요와 의무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에큐메니칼운동은 하나님이 이미 주신 일치를 추구하는 영적 순례이다.

일치는 또한 선교운동이다. 이 점은 요한복음 17장 21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속에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여기에서 나타난 일치의 목적은 바로 선교목적이다. 세상이 하나님을 믿게 하기 위한 선교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치운동은 곧 선교운동이다. 혹자는 WCC가 선교를 하지 않는다 하는데 이 보다 더 큰 선교는 없는 셈이다.
 
일부 교회는 WCC가 추구하는 일치가 세계단일교회를 만드는 구조적 일치라고 오해하는데 WCC가 추구하는 일치의 모델은 삼위일체이다.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로 존재하시지만 그 삼위는 곧 한분의 하나님인 것처럼 교회도 수많은 지체들로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WCC는 거듭 고백한다.

부산의 한 교회 목사님이 WCC부산총회를 앞두고 교인들의 의견이 분분하니까 “WCC총회를 준비하면서 말한다.”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요한 웨슬리가 죽어서 천국을 방문했더니 천국에는 천주교신자도 없고 정교회신자도 없고 장로교신자도 없고 감리교 신자도 없고 오로지 그리스도인만 있었다.”는 그 설교 도입부의 예화가 참 인상적이었다. 우리 한국교회는 WCC부산총회에서 세계교회안에서 일하시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성원, 기독공보 주간논단 (2012. 10. 13.)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