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사람

성 경 / 마가복음 2:1-12

늘 본문은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고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장애인주일을 맞아 이 본문을 중심으로 장애인과 나누어야 할 연대(Solidarity)에 대해 생각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과 병자를 포함한 장애인, 이 관계는 정말 실과 바늘처럼 가까웠던 사이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많이 필요로 했던 사람들이 장애인들이고 또 예수님이 가장 많이 치유를 베푼 사람들이 바로 병자들과 장애인들이었습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제일먼저 착수하는 일이 나병환자를 고치시고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의 경우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시험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을 선포하시고, 제자 넷을 부르시고, 그 다음에 바로 착수한 첫번째 일이 귀신들린 자를 고치신 일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시몬의 장모를 고치신 사건이 나오고 전도여행을 떠나시면서 여러동네에서 병자들을 고치시고 나병환자를 고치시는 이야기가 연속되어 나오다가 오늘 읽은 중풍병자를 고치신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이 때는 이미 예수님이 워낙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기 때문에 그 소문이 온 동네에 자자하게 나서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하면 예수님이 거처하시는 곳은 이미 병자들과 장애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집에 머무는데 그 온 집안이 사람들로 가득차서 용신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병자의 친구요, 장애인의 친구였습니다. 예수님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은 주로 엄청나게 오래된 병자, 도저히 희망이 없는 병자들과 장애자들이 찾아왔습니다. 오늘 예수님에게 들것에 실려온 중풍병자도 이런 장기환자중의 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에서 물론 들것에 실려온 중풍병자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는 일도 감동적이지만 정말 감동적인 부분은 자기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그 지체장애자를 네 사람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필사적으로 고쳐주는 상황입니다.

이야기를 다시 한번 보십시다. 중풍병자가 몸조차 가눌 수 없기 때문에 네 사람이 들것을 만들어 그를 싣고 예수님에게로 데려 가려고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예수님의 숙소에 도착했는데 더 난감한 상황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환자들이 예수님의 집에 꽉 차서 도저히 들것을 들고 예수님께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거기에서 기다리든지 포기를 하든지 할터인데, 이 네사람은 예수님 계신 곳의 지붕으로 올라가서 그 지붕을 걷어내고 구멍을 뚫어서 들것을 밧줄에 달아 예수님 앞으로 달아 내렸습니다. 이것이 글로 쓰여진 이야기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생각하지만 한번 그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요. 마치 무슨 빌딩에 불이 났을 때의 구명작업과 같은 그런 광경이 아닙니까? 이렇게 내려온 그 중풍병자를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오늘 우리가 촛점을 두고 살펴보고 싶은 부분은 “네 사람”의 도움입니다. 한 지체장애자, 자기의 몸도 가눌 수 없는 장애자를 네 사람이 도와주었다는 사실에 아주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 지체장애자를 도우는데 네 사람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 이 넷이란 숫자는 꼭 넷이 아니라 한 지체장애자를 도우는데는 다수의 힘이 필요하고 다수의 힘이 모아졌을 때 그 지체장애자는 장애를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가친 박석규 목사님에 관한 이야기를 드리는 것을 용서하시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저의 아버님은 평소에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많으신 분인데 6.25전쟁직후에 많은 상이군인들이 발생했는데 자진해서 그런 상이군인 한 사람 저의 집에 데려와서 돌보겠다고 경주 육군병원에 의뢰한 적이 있습니다. 결국 상이군인은 오지 않았습니다만, 대신 이북에서 혈혈단신으로 내려온 분이 저희집에 오셔서 살았는데 후일 그가 목사가 되어 서울에서 큰 개척교회를 하고 이제 조기은퇴한 김제건 목사입니다.

평소에 장애자에 대한 관심이 많으셔서 그런지 몰라도 70년대 중반에 일본에 있는 한 지채장애자의 시집을 우연히 접하면서 그 시집의 저자인 뇌성마비장애자인 미즈노 겐죠 (水野源三)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미즈노 겐죠 씨의 삶에 너무나 많은 감명을 받고 그의 신앙시집 세 권을 번역했는데 이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 인간애가 하나님의 사랑과 교향곡을 이루는 한 장관을 보는 듯 합니다.
미즈노 겐죠씨는 국민학교 4학년 때 이질에 걸려 앓던 중 너무나 심한 고열(高熱)로 그만 뇌성소아마비에 걸렸습니다. 그는 듣는 기능, 보는 기능, 깨닫는 기능 그리고 내장기능외에는 모든 기능이 마비되는 전신불구가 되었습니다. 손가락 발가락 한 개도 움직이지 못하는 채로 완전히 누워서 누가 일으켜주지 않으면 영원히 일어날 수 없는 몸으로 그 때부터 지루하고 기나 긴 불구의 한 평생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사람곁에 두 사람을 두게 하셨습니다. 한 사람은 그의 어머니 우메지여사이고 다른 한 사람은 미야오(宮尾)목사였습니다. 미즈노 겐죠씨가 불구가 된 지 약 5년이 되었을 때 미야오 목사님이 겐죠씨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읽어야 할터인데 한자(漢字)가 너무많아 읽지 못하겠기에 라디오를 통해 한자공부를 하게 하면서 열심히 성경을 읽고 자신의 삶의 장애속에서 생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인도하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일어나 앉을 수 없는 몸이기 때문에 그의 몸을 일으켜 주고 또 무엇을 받쳐서 지탱해주고 또 손가락도 까딱할 수 없으므로 성경을 읽는다 하더라도 누가 책장을 넘겨주기 전에는 하루종일 같은 페이지만을 읽을 수 밖에 없으니까 누가 성경 읽는 것을 보조해 주어야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어머니가 했는데 어머니는 열심히 몸을 받쳐주고 겐죠씨는 성서를 읽는데, 혹 어머니가 잊어버리고 그 페이지를 넘겨주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는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니까 같은 페이지를 수십번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너무 피곤해 지면 미야오 목사님이 성서를 녹음해와서 자리에 눕게 하고 들려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성경을 읽는 동안 그의 심중에는 점점 신앙이 자리잡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자비와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해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을 읽는동안 그토록 은혜를 받은 바울도 육체에 가시찔린 질병에 걸려서 그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하나님께 3번이나 고쳐달라고 간구하였는데도 하나님이 이르시기를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하시며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는 말씀으로 이어지는 바울의 간구와 하나님의 답변이 오가는 장면에서 그는 일생 일대의 변혁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불치의 병에 걸렸어도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자기에게 족한 은혜로 깨닫게 되었고 이 난치의 병이 자기를 하나님에게로 인도하고 영원한 생명을 하나님께 약속받는데로 인도하였다는 것을 알고는 그는 오히려 이 뇌성소아마비가 자기를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은혜가 되었다고 찬란하게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이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지체의 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진리를 후일 이렇게 시(詩)에 표현했습니다.

만일 내가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을
만일 모든 형제자매들도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을
만일 우리 주님이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을

비록 몸은 움직이지 못하나 그의 마음에 부활의 영광이 찾아온 이후 그의 뇌리에는 무서운 시상(詩想)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보고 듣고 깨닫는 기능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구였기 때문에 시를 쓰고 싶어도 손으로 쓰지도 못하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어머니의 피눈물나는 도움으로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겐죠씨가 시(詩)를 쓰는 방법은 기이한 것이었습니다. 일본어 알파벳인 ‘아이우에오’ 50글자를 마치 시력측정표처럼 앞에다 설치해놓고 어머니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자씩 막대기로 짚어가면서 겐죠씨의 눈치를 살피면 자기가 의도하는 글자에 왔을 때 눈을 깜빡 거립니다. 그 다음 말도 또 처음부터 그대로 반복하면서 그 다음 글자를 완성시킵니다. 이렇게 하여 한 글자씩 한 글자씩 옮겨서 10년만에 시집 한권을 처음으로 엮게 되었습니다.

그 시집이 바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란 책입니다 겐죠씨의 시집은 시를 좀처럼 잘 읽지 않는 일본사람들에게조차 베스트셀러가 되어 1년만에 제6판이 나오게 될 정도로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특히 복음의 진리에 대해 가장 선명하게 증거한 시로 사람들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사람에게도 전도자를 보내시어 한 인간을 죽음과 절망의 질곡에서 부활의 영광으로 인도하시는 섭리를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미야오 목사님과 그의 어머니 우메지여사를 겐죠씨의 옆에 보내시어 겐죠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 그에게서 구원을 얻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 어머니는 겐죠의 삶이 다시 살아나는데 눈물겨운 도움이 되었는데, 너무나 힘들어서 겐죠씨의 시집 첫권이 인쇄되고 있는 도중에 몸져 눕고 책이 출판되자 그 책을 가슴에 부둥켜 안고 한 없이 울다가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겐죠씨를 이 세상에 남겨놓고 먼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시집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도 계속 출판되었는데 그 어머니의 역할을 이번에는 제수씨가 맡아서 하면서 겐죠씨를 위한 도움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 겐죠씨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지만 그를 그리스도의 복음에로 인도한 미야오 목사님, 그의 어머니 우메지 여사, 어머니의 뒤를 이어서 도와준 제수씨, 그리고 이 시집을 일본문단에 등장하게 한 그 유명한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 여사등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길은 영원히 그에게 닫혔을 것입니다. 특히 그의 어머니 우메지 여사의 공헌은 단순히 모성애로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기쁨으로 전환시키는 역류의 한 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여기에서 우리는 겐죠씨의 삶에 새로운 생명과 희망을 주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미야오 목사님과 어머니, 겐죠의 제수씨, 그리고 작가 미우라 아야꼬, 이 네 사람과 오늘 본문에서 중풍병자를 들것에 실어서 지붕을 뜯고 달아내려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게 하는 이 네 사람의 모습에 어떤 일치점이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겐죠씨를 도운 네 사람, 그리고 이 중풍병자를 도운 네 사람은 곧 장애자를 도와서 그들의 삶에 새로운 빛을 주려는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한 장애인을 위한 네 사람의 연대(Solidarity)는 한 인간의 삶을 죽음과 절망의 골짜기에서 희망과 영생의 길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니엘 12:3절에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하셨는데 장애인을 희망으로 돌아오게 한 자는 해와 같이 영원토록 비취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한 사람을 위한 네 사람의 도움이 너무 소모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의 장애인문제 운동가 후꾸이 다쯔우씨가 한번은 스위스를 방문했습니다. 정상인과 지체장애자가 함께 일하는 공장에 견학을 하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정상인과 지체장애자가 함께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정상인과 장애인 사이에는 분명 일의 속도에 차이가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임금을 꼭 같이 주고 있었습니다. 저생산자는 저임금을 받는 것이 당연한데 꼭 같이 받으니 정상인들이 불만을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질문을 해 보았는데 정상인들은 전혀 다른 대답을 했습니다.

생산성으로 본다면 정상인인 내가 다섯의 일을 하였을 때 장애인은 하나의 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함께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내가 하나의 일을 할 때 장애인은 다섯배의 노력으로 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생산성과 노력은 같은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급여가 같은 것을 당연한 것입니다.

이 사고방식이 장애인에게 엄청난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장애인을 네 사람이 도우는 것, 그러나 그 네 사람이 도운 장애인은 네 사람보다 훨씬 많은 사람에게 네 사람이 도움을 준 양 못지 않게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공헌을 하는 것입니다.

미즈노 겐죠씨의 시는 수많은 일본의 지체장애자에게 용기를 주고 정상인에게는 회개의 눈물을 뿌리게 했습니다. 겐죠씨와 비슷한 지체장애자인 한국의 송명희씨의 신앙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까?

작년에 소개했던 스위스의 지체장애자로서 세계적인 판 플루트 주자 미쉘도 그의 어머니의 극진한 도움으로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었고 그의 연주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혼을 일깨우는 것으로 보상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한 장애인에게 들것을 만들어 그리스도인에게로 인도하여 새 희망을 갖게 하는 네 사람이 됩시다. 올해 우리 교회는 우리 교회에 작년 추수감사절 때부터 참석하여 수요일도 빠지지 않고 출석하는 지체부자유자 정도영씨와 더불어 소박한 장애인의 들것을 만드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멀리, 무슨 대대적인 일은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이 분과 함께 장애인이 함께 모여사는 모라주공아파트에 장애인신문을 만들어 배포하고 그와 동시에 지체부자유자의 보조기구를 수집하는 일을 전개하려고 합니다. 목발이나 휠체어, 운동기구 등 기구들이 의외로 비싸서 가난한 장애인들로서는 이것조차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올 해 우리교회는 봉사부가 주축이 되어 앞으로 장애인들을 위한 보조기구를 지속적으로 수집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네 사람이 들것을 만드는 일에 해당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 이 땅에서 슬픔을 당하고 다시 재생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신체가 불편해진 형제자들에게 네 사람의 들것을 준비한 사람이 되어 이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여 광명을 얻게 하는 바로 그 네사람이 됩시다. 아멘.

<박성원 목사, 1994. 4. 17. 부산진교회, 장애인 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