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떡

성 경 / 출애급기 16:1-3

인간에게 역사는 배의 방향타(Key)에 해당한다고 보겠습니다. 배의 방향타(Key)는 배가 진행하는 방향을 잡아줍니다. 그처럼 역사는 삶의 방향을 잡아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늘 역사의 교훈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께서 어떻게 역사속에서 이스라엘민족을 보살펴 오셨는가’를 늘 기억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신명기 6:12-13에 분명히 명령했습니다.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신명기 6:12-13)"

신명기의 설교에서 중요한 당부중의 하나는 하나님이 애급에서 너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성만찬을 행하시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를 기념하여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주님의 구원의 역사를 고귀하게 기억하라는 의미입니다. 그 이유는 그 과거의 역사가 미래의 올바른 삶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3.1운동의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3.1운동 75주년을 맞아 이 운동이 주는 교훈을 출애급사건을 통해 다시 조명해 보려고 합니다. 출애급사건을 통해 3.1운동을 조명해 보려는데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측면에서 볼 때 이 3.1운동과 출애급사건사이에는 놀라운 일치점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기독교인들이 3.1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인데 이들은 3.1운동에 참여할 때에 물론 나라의 독립이라는 정치적 투쟁의 목적도 있었겠지만 그 정치적 투쟁의 목적 저변에는 강력한 신앙적 동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3.1운동은 출애급사건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3.1운동에 참여하면서 이 운동을 성서의 출애급사건과 나란히 놓고 보았습니다.

출애급기의 사건은 3.1운동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애급은 일본으로, 이스라엘민족은 조선민족으로, 바로왕은 일본의 천황으로, 애급의 압제는 일체의 식민통치로 해석했습니다. 그리고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민족을 애급의 압제에서부터 해방시켜주셨듯이 우리 민족을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해방시켜 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참여했습니다. 3.1운동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한국판 출애급이었습니다.

그러면 3.1운동과 출애굽사건사이에는 과연 어떤 유사점이 있었으며 그 유사점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3.1운동이나 출애급사건은 자유와 자존을 위한 원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3.1운동과 출애급사건은 두 나라의 역사에 항상 하나의 축(軸)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함석헌 선생이 3.1운동은 “시대의 획을 가르는 사건”이었다고 말했습니다만 출애급사건이나 3.1운동은 역사의 머리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은 출애급사건을 통해 민족이 무엇인지, 자유가 무엇인지, 독립이 무엇인지, 자존이 무엇인지를 배웠고 더 크게 나아가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자기 민족에게 무엇을 해 주시는지를 배웠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은 이 사건이 너무나 감격적이고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하지 않고 유월절 예식에 담아 해마다 기념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 가치를 늘 되새기곤 했습니다. 그들은 이 출애급사건이 주는 자유의 정신으로 후일 바벨론포로가 되어가서 이방민족에게 굽힐 것을 강요받았을 때에 결코 굽히지 않고 하나님앞에 반성하면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희망을 불태우는 기름으로 사용했습니다. 후일 오랫동안의 바벨론포로에서 해방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귀국할 때 그들은 그 기쁨을 시편 126편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이 시편에 보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을 동안에도 그들에게 출애급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굴복하지 않고 견딜 수 있었고 그 정신으로 끝까지 견딘 결과 그들은 다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인 시편이 표현한대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고 울며 씨를 뿌린 댓가였습니다. 출애급사건은 이스라엘민족의 영성에 자유와 해방의 정신을 주사한 사건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3.1운동도 우리 민족에게 자유와 해방과 독립의 정신을 뼈속깊이 새겨주는 사건이었습니다. 3.1운동이 우리나라의 헌법정신으로 채택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실제 3.1운동뒤에 우리 민족은 자유와 독립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이를테면 3.1운동전 독립협회가 새로운 정치체제를 소개하려고 했는데 애당초는 공화제를 소개하려고 했으나 이 제도는 당시 구한말의 왕정하에 있던 조선으로서는 왕정을 부정하는 체제전복으로까지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독립협회는 한 단계 낮추어서 입헌군주제를 제시하였습니다. 입헌군주제는 군주제와 공화제를 적당히 섞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독립협회에 의해 좌절되었던 공화정의 꿈은 3.1운동이후에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된 것입니다.

3.1운동은 우리 민족이 자유와 정의가 위협을 받을 때는 저항하며 그 자유와 정의를 수호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슴깊이 간직하게 했습니다. 물론 우리 한민족은 과거에도 폭압적 상황에서도 자유를 얻기 위해 용감하게 투쟁해 온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억압적인 왕조시대에도 양반들과 관리들의 가렴주구에 시달리던 농민과 천민계급이 자유를 얻기 위해 일어난 수많은 민중의 난(亂)들이 있습니다. 근대에서 자유를 향한 정신은 4.19혁명,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 광주5.18저항, 87년 6월항쟁으로 자유와 정의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그 저항정신은 우리 민족을 구원하는 정신으로 그리고 구체적인 투쟁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출애급사건은 하나님이 이스라엘민족에게 자유를 가르친 사건이었습니다. 3.1운동은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자유를 가르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과 우리 민족은 때때로 이 자유의 가치를 잊어버리고 방황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이 자유의 가치를 잊고 방황하는 이스라엘민족의 모습을 기록한 것입니다.

출애급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홍해를 건너 추격하는 애급군대의 추격을 따돌리고 안전하게 탈출하였읍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의 영도아래 애급을 탈출했지만 나중에 이 모든 출애급사건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개입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고 출애급사건은 이스라엘민족을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임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출애급기 15장에 기록되어 있는대로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했읍니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그 택한 장관이 홍해에 잠겼고 큰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에 내렸도다.여호와여 주의 오른 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한 지 불과 3일도 되지 않아서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었읍니다. 홍해를 건너 수르광야에 들어갔을 때 3일을 헤매어도 마실 물을 찾지 못했을 때 그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고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하여 그 물을 마실 수 있는 물로 변화시켜 시원하게 마시게 했읍니다. 자유를 주었지만 그 자유에 대한 감사보다는 물을 먹지 못하는 일로 인하여 불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물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있은 지 채 얼마가 되지 못하여 이스라엘은 그 허기와 피로를 견디지 못해 또 다시 하나님께 대한 원망을 모세와 아론에게 신랄하게 퍼붓게 된 것입니다.그들의 원망을 보면 참으로 한심한 것이었읍니다.

"우리가 애급땅에서 고기 가마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굶어 죽게 하는도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빵이 대조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살이하면서 먹는 기름진 고기와 배불리 먹던 빵과 광야에서 비록 모래가 섞여 버석버석하지만 자유와 해방속에서 먹는 빵의 대조가 나옵니다. 인간은 항상 이 두 가지의 빵사이에서 유혹을 받고 있읍니다. 종살이가 되었든, 노예가 되었든 기름진 고기를 배불리만 먹을 수 있으면 만족하는 삶과 자유가 없는 기름진 빵을 과감히 거부하고 비록 모래섞인 빵을 먹더라도 고귀한 진리와 자유, 정의와 억압없는 평화를 추구하는 삶입니다.

어떤 역사가는 인간의 역사는 자유를 위한 투쟁사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인간의 역사는 “나에게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는 절규에 의해 이루어져 온 역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이 자유의 역사를 지키기 보다는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빵만 준다면 자주권도 생존권도 포기하고 스스로 종살이를 하려는 태도를 보일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은 자주 애급에서 해방시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출애급의 의미를 잊었을 때는 다시 종살이를 하게 된다는 경고를 잊어버리고 애급이나 앗수르에게 의지하려고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역사를 잊어버린 후손들의 계산착오인 것입니다. 그 계산착오때문에 피눈물나는 역사를 다시 되풀이해야 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벨론 포로사건입니다.

오늘 우리 민족도 이와 같은 과오를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3.1운동의 그 눈물로 얻은 자유의 빵, 아니 피로, 목숨으로 얻은 자유의 빵을 버리고 기름진 빵을 먹기 위해 우리는 자유와 자존을 버린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박대통령시대 때 행한 한일국교정상화는 조금 잘 살아보자는 욕망으로 굴욕적 외교를 벌이고 일본이 주는 경제적 차관을 받기 위해 과거의 역사를 묻지 않는 제2의 국치의 일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3.1운동이 발발한 지 3년뒤인 1922년에 지금 세계교회협의회 ( World Council of Churches)의 전신인 국제선교협의회 (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 가 발행하는 선교보고서에 보면 한국교회선교 10년을 회고하는 글이 실려 있읍니다. 이 글은 헐버트 웰치 (Herbert Welch) 감리교 감독이 일제에 침탈당한 한국과 한국교회에 관해 보고서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그는 이 보고서에서 일본이 한국을 병합한 이래의 발전을 장황하게 기록하고 있읍니다.

지난 15년동안 일본 점령 이래의 결과를 어림잡아 보더라도 일본이 한 일은 엄청나다. 인구가 증가하고, 불모지가 개간되고 농경기술이 진보되고 삼림화가 이루어지고 광산과 어업 및 산업이 발전되고 도로와 철도가 확충되고 강, 항구, 토지측량, 위생과 공중보건 등의 합리적 관리는 일본행정부의 지혜와 노력과 기술의 신뢰도를 증명한다.... 근검 절약 정신이 고양되고 저축이 증대되고 균등과세가 이루어지고 법제화가 착실히 진행중이며 생명과 재산의 보호가 안정되는 등 그동안의 성취도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보고서의 요지는 일본이 한국을 합병한 것은 잘 한 것이며 한국이 일본에 합병이 된 후에 엄청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발전이 있었고 한국인이 톡톡히 그 혜택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다음 이 보고서는 이러한 일제의 시혜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얻고자 하는 한국민족의 저항을 감동적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좋은 성취에도 불구하고 한국민족은 만족할 수 없었다. 한국민족을 비민족화시키는 동화정책 (Policy of assimilation denationalizing the people )은 한국민족의 거대한 저항을 촉발시켰다.....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군사경찰정치,교육과 취업의 차별정치, 일본어 사용강요, 한국인을 위한 정부를 일본인이 운영하는 아이러니, 이러한 교묘한 정치도 자기들이 가져야 마땅한 것을 가지려고 하는 한국민족의 요구와 집념을 격리시키지 못했다...그 어떠한 위협이나 회유도 한국민족의 심중에 있는 생각과 열망을 빼았지 못했고 그 어떤 물질적인 수단으로도 그들이 정신적인 가치로 가지려고 하는 것을 채울 수는 없었다.... 3.1 운동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측면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것은 일본의 주권을 물리치기 위한 한국민족의 노력이었다.

일본의 그 어떤 시혜성 제스츄어도 한국인들이 자기들이 가져야 할 마땅한 것, 즉 그들의 자유와 권리를 가지려고 하는 한국민족의 요구와 집념을 잠재울 수 없었습니다. 일본의 어떤 회유와 위협도 한국민족의 심중에 있는 자유와 열망을 빼앗지 못하고 어떤 물질적 수단으로도 그들의 정신적 가치로 가지려고 하는 것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억압과 식민지상황하에서 먹는 고기와 기름진 빵을 거절하고 자유와 독립이라는 광야에서 모래섞인 빵을 먹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대조적인 모습입니까? 일본에 경제차관을 얻기 위해 굴종적 외교를 하는 근대사의 모습과 일본의 온갖 시혜와 회유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어떤 물질적인 회유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존엄과 정의와 생존권을 가지려는 정신적인 가치를 지키기 위해 굳건하게 선 우리 조상들의 모습은 얼마나 장합니까? 오늘도 미국의 경제적 압력에 굴복하고 민족의 자주성을 포기하는 외교정책은 이 조상들의 기개에 비추어 볼 때 얼마나 비굴한 것입니까? 미국이 그러고 서구 선진국이 그러면 지레 겁을 집어먹고 아직도 결말이 나지 않는 협상인데도 마치 국제협상에 있어서 모범생처럼 협상이행서를 작성해서 보내는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 속에 과연 3.1운동 정신의 피가 흐르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3.1운동이 민족의 생존권과 정의를 위한 정신적 양식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독립선언서 공약 3장의 그 첫째 공약에 이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이 거사는 정의-인도-생존-번영을 찾는 겨레의 요구이니...” 이 정의, 인도주의, 생존권, 번영권은 오늘 거의 모든 나라의 헌법의 기초가 되어 있습니다. 이 정의, 인도주의, 생존권, 번영권의 투쟁은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남아프리카는 수백년동안 흑인들이 백인들로 부터 이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해왔고 수많은 목숨을 제물로 바친뒤에 드디어 백인과 나란히 흑인들이 이 권리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구 유고슬라비아에서는 한 종족의 생존권을 빼앗으려고 하는 종족에 대해 목숨을 걸고 최후의 일인까지 그 종족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려고 오늘도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3.1운동이 세계사에 기록될 만한 자유의 운동이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불란서혁명이 자유와 평등을 인류에게 선물했다면 정의, 인도주의, 생존권, 번영권은 3.1운동이 인류에게 기여한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의 5.4운동도 바로 이 3.1운동에 힘을 얻어 일어난 운동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이 선조들의 이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시인 괴테(Goethe)는 “눈물로 얼룩진 빵을 먹어보지 않는 자는 박물관을 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선조들이 그들의 피와 목숨을 던져 준 이 고귀한 자유의 가치를 소중하게 지킵시다. 아울러 이 자유와 더불어 영원한 자유를 주시며 그 자유를 지키라고 권면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기억하십시다.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 5:1) 아멘.

<박성원 목사, 1994. 2. 27. 부산진교회, 사순절 둘째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