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적 예배

성 경 / 사도행전 2:42-47

우리교회는 지난 해 “새로워지는 교회”라는 표어아래 교회를 새롭게 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왜 예배를 새롭게 하여야 하느냐? 그 이유는, 예배는 곧 교회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의 대부분이 예배이며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행위가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는 그 자체가 복음의 증언이며 신앙의 내용을 좌우하고 신학적 생각과 신앙적 윤리를 형성하는 도가니입니다. 따라서 예배를 바르게 드린다는 것은 바른 신앙과 바른 생활을 한다는 것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생활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성경공부도 중요하지만 이것은 예배속에 포함되는 것이므로 예배는 성경공부보다 더 중요하며 교회의 기관조직보다 더 중요합니다. 온 세계 모든 만물이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고백하고, 그가 우리 삶의 주관자이심을 인식하고 경배하며, 그를 찬양하는 예배가 가능할 때 선교도 그 임무가 끝이 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요성때문에 지난 해 우리 교회는 예배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여 우선 오후찬양예배를 더 찬양예배답게 드리는 것에 촛점을 맟추고 노력해 왔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우리가 종래에는 “헌신예배” 하면 으례히 외부강사를 초청해서 말씀을 듣었습니다. 강사를 초청해서 설교 듣는 것 이외에는 기껏하면 특송 하나를 하고 헌신예배를 다 드린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헌신은 문자 그대로 몸을 바치는 것인데 그렇게 예배를 드려서는 아무것도 바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옛날에는 헌신예배를 드릴 때 모든 회원이 이름을 부르면 일어서서 성경요절이라도 한 절 외우고 헌신을 표시했는데, 이제는 회원자체마저도 참석하지 못하는 헌신예배가 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지난 해 헌신예배를 맡은 부서는 미리부터 무엇을 헌신할 것인지를 묵상하고, 성경공부를 하고, 그래서 예배를 준비하여 모든 회원이 예배를 드리는 주체가 되었고 명실공히 헌신예배가 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올해는 예배를 좀 더 온전하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려고 합니다. 이 노력은 오로지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위해서가 아님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제는 눈을 크게 뜨고 한국의 기독교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속의 기독교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 사도 바울과 제자들을 통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로 퍼져나갔고 소아시아로 퍼져나갔습니다. 그 이후에 세기를 거치면서 전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이렇게 복음이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기독교는 그 지역의 정치, 사회, 문화적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되었습니다. 예배도 자연히 나라마다 민족마다 문화마다 각기 다르게 발전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다양성을 추구한 결과 서로 공통점이 점점 결여되고 예배의 기독교적 원칙이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나라 교회의 경우는 미국선교사들이 기독교를 전해 주었기 때문에 거의 미국교회의 예배와 비슷한 형태를 띠게 되었고, 그 미국교회의 예배도 아주 일부분의 예배전통을 우리 한국교회가 배우게 된 것이어서 상당히 편협한 부분이 많습니다.

지금 세계교회는, 특별히 우리보다 앞서서 복음을 받아들였던 나라의 교회들은 예배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에게 복음을 전파해주었던 미국교회도 신앙고백도 새로 쓰고 예배형식도 상당히 많이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예배를 새롭게 하는 이유는 그동안 우리가 드려온 예배가 성서적으로 기독교예배의 원형에 비추어볼 때 상당한 부분 너무 외길로 자랐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예배는 반드시 말씀의 예배와 성찬의 예배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한 예배속에 말씀의 예배가 있고 뒤에는 반드시 성찬의 예배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개신교는 카톨릭교회가 성찬예배만 드린다고 비판하면서 우리는 그만 성찬의 예배가 없는 말씀의 예배만을 드리는 결과를 빚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스스로 자각한 세계의 개신교회들은 성찬의 예배를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올 해 우리 교회는 예배를 성서적 원칙에 가까이 가도록 새롭게 구성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자들이 종교개혁을 할 때 결국 성서적 원칙에 따라 개혁을 하는 것이 가장 옳다고 생각했고 이 원칙은 지금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몇가지 중요한 것만을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예배를 설교가 중심이 되는 말씀의 예배와 주님의 만찬이 중심이 되는 성찬의 예배로 연결되도록 하였습니다. 원래 초대교회는 토요일에 성찬을 나누고 주일에 모여서 말씀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교인이 많아지고 번거로워지므로 주일아침에 말씀의 예배를 드리고 그 뒤에 성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예배와 성찬의 예배는 모든 예배에 같이 있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칼빈도 성찬은 매주일에 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올해 주일낮예배는 설교를 중심한 “말씀의 예배”로 드리고 주일 오후예배는 “성찬의 예배”로 드리되 찬양예배와 번갈아서 드리도록 구성하였습니다. 주보에 보시는대로 이름도 주일낮예배라고 하지 않고 “말씀의 예배”라고 하고 오후찬양예배라고 하지 않고 “성찬과 찬양의 예배”라고 하였습니다. 이 원칙에 따라 우리 강단도 재배치가 된 것입니다. 말씀의 예배를 상징하는 강단과 그리고 성찬의 예배를 상징하는 성찬상으로만 양옆에 배치가 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때문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예배를 말씀의 예배와 성찬의 예배로 함께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배의 기본요소를 성서에 따라 회복하려고 합니다. 사실 성서에는 예배를 이런 순서로 드리라는 특정한 제안은 없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드린 예배의 요소가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곳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여기에 말씀을 보면, 그대로 예배순서는 아니지만 예배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사도의 가르침을 받으며, 떡을 떼며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복음을 증거해 구원받는 사람을 더 하게 하는 모든 요소가 그대로 예배의 기본요소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의 예배학자들은 이 본문이 초대교회의 예배원칙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의 예배는 바로 이런 원칙에 따라서 구성하였습니다. 여러분께서 주보를 보시면 예배순서 위에 “한 마음이 되어 성전에 모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에 힘쓰며, 하나님께 영광 사람에게 기쁨되어, 복음이 온 누리에 퍼지도록 ”하는 굵은 글씨로 인쇄된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이 바로 오늘 사도행전에 나타는 예배의 요소를 현대적 말로 고쳐쓴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성서적 예배의 원칙을 늘 마음속에 기억할 수가 있습니다.

셋째는 참회의 기도부분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우리가 하나님앞에 설 때 가장 먼저 인식하여야 할 것이 우리 인간의 죄인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죄를 고백하지 않고는 거룩하신 하나님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하나님앞에 예배하려고 할 때는 먼저 죄를 고백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과 교제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죄의 고백이 우리 한국교회의 예배에서는 아주 빠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예배를 조금 바꿀 때 왜 이렇게 바꾸느냐고 많이 반문하는데 그 질문 이전에 왜 예배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지금까지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이 죄의 고백을 한국교회에서 가장 먼저 회복한 교회가 서울의 소망교회입니다. 개혁교회의 전통에 따라 예배를 다시 재조정하면서 먼저 회복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우리는 이 참회의 고백을 같이 하면서 공동으로 우리의 잘못을 하나님앞에 일단 고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함받는 절차를 여기에서 거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비송이 나오고 용서의 선언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신경을 합니다. 사실 사도신경은 말씀을 듣고 난 뒤에 거기에 근거해서 설교후에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유럽의 교회는 모두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랜 관습이기 때문에 이것은 다른 것에 익숙해 지고 뒤에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아 그대로 두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되어 서두에 두었습니다. 문제는 시편교독이 없는데 이 시편교독은 원래 칼빈이 모든 찬송을 다 없애고 오로지 시편만을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지금 경배의 찬송의 자리에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편찬송가가 없기 때문에 교독을 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앞으로 한국교회의 과제로서 시편찬송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편교독문은 앞으로 참회의 기도에서 예배의 주제에 따라서 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는 봉헌중보기도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중보기도입니다. 중보기도는 영어에서 intercession 이라고 하는 기도로서 남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을 위한 기도는 늘 드리면서 참으로 남을 위한 기도를 드려오지 않았습니다. 이웃과 사회와 국가와 민족, 그리고 세계를 위해, 여러가지 고통과 환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순서를 간과해 왔는데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이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 기도는 구라파교회에서는 통상 한 줄로 기도하면 회중은 노래로서 응답하는 그런 형식으로 드립니다. 어떤 분은 이 기도가 천주교회에서 하는 기도라고 잘못 알고 있는데, 이 기도는 개신교회에서도 그런 형식으로 드려야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 예배에는 목회자가 중보기도를 하면서 중보에 앞서 봉헌을 먼저하기 때문에 봉헌기도와 중보기도를 합해서 봉헌중보기도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중보기도는 목회자가 주로 하지만 특별히 우리 모두가 함께 중보기도를 해야 할 경우에는 함께 하는 형식도 취하게 될 것입니다.

다섯째는 광고순서입니다. 종래에는 설교가 끝나고 예배가 끝나지 않았는데 여러가지 모임에 대한 광고를 하였기 때문에 예배와 광고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모든 예배는 중보기도와 찬송과 축도로 끝난 뒤에 앉아서 따로 광고를 하고 폐회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우리 예배에서 여러가지 상징이 동원된다는 사실입니다. 촛불이라든가 십자가라든가 하는 상징이 있는데, 여러사람들이 우리 교회는 십자가가 없는 것을 기이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십자가는 우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어 우리 총회에서 없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 때문에 많은 토론을 하면서 이렇게 원칙을 세웠습니다. 십자가를 영속적으로 세우는 것은 십자가를 섬길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항시적으로 세우지는 않고 십자가를 하나의 상징으로 두고 명상을 해야 할 특별한 때, 즉 사순절이라든가 하는 절기에 세우기로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은 촛불을 쓰는 것에 대해서 카톨릭교회나 불교와 같다는 인식을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기독교전통에서는 촛불은 항상 빛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유럽의 교회에서는 촛불을 반드시 켜고, 그것도 두개를 켜서 하나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의미하는 뜻에서 두개의 촛불을 켭니다. 그리고 강대상 옆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을 밝히는 빛이라는 의미에서 켜는 것입니다. 또 강단에 꽃으로 장식을 하는데 이것은 장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강대상에는 활짝 핀 만개한 꽃을 꽂으면서 하나님과 인간이 또 인간이 이웃과 함께 이 예배를 통해서 완전히 화해가 되었다는 뜻에서 꽃을 꽂아 놓습니다. 그러므로 꽃은 장식이 되어서는 안되고 아주 소박하게 그런 의미만 부여하면 되는 것입니다. 상징은 모든 것이 경배의 대상이 되었을 때 우상이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묵상하면 그것은 상징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올해 우리는 이렇게 예배를 새롭게 하는데 이것은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대로 이전까지 예배를 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완전케 하여 참으로 성서적 원칙에 의해 올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좀더 성서적으로 기독교 보편적인 원칙에 맞게 우리의 예배를 완전케하는 일이므로 이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성숙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이런 형식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아무리 형식이 좋아도 그것이 예배의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지 않으면 그 예배는 공허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하러 올 때 신령과 진정을 가지고 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잊지 맙시다. 이런 순서는 바로 예배드리기 위한 것으로 인식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박성원 목사, 1994. 1. 16. 부산진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