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되게 하는 성령

성 경 / 사도행전 2:1-13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성령강림절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난 뒤 지상에 남은 제자들과 신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할 때 하늘에서 혀 모양으로 불이 내려오고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신비한 경험을 한 사건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교회사가들은 교회의 기원을 바로 이 사건으로 잡습니다. 여기에서 신도들이 모여 성령을 받고 유대교에서 명실공히 기독교로 전환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성령의 강림인데 이 성령에 관해서는 한국교회가 세계의 크리스챤들중에서 아주 독특한 경험을 하고 있는 교회중에 하나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한국교회만큼 성령을 좋아하는 교인이 없습니다.

12세기에 요아킴 플로리스(Joachim Floris)란 신학자는 예언하기를 앞으로는 기독교의 제3세대가 오며 이 세대는 성령의 시대라고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기독교는 로마제국과 맞서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독교도 조직을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래서 이 때를 조직교회라고 합니다. 조직교회에서는 성직자가 중요하기 때문에 성직을 중심으로 교회가 운영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이후에는 성서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성서적 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성령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한국의 신학자는 이 성령의 시대는 한국교회에서 발원되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럴 정도로 한국교회는 성령을 좋아합니다. 조금 은혜스럽다고 생각되는 목회자나 크리스챤은 입만 벙긋하면 성령 이야기입니다.

한 때 1970년대 한국교회를 휩쓴 부흥회의 유일한 주제 중에 하나가 성령입니다. 성령은 1907년 대부흥운동때에 처음 역사 하여서 1930년대 이용도 목사가 인도한 신비적 부흥회, 그리고 1970년대 오순절계통의 교회가 인도한 성령운동에서 아주 강력하게 강조되었습니다.

사실 예배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임재 (Presense of Christ)입니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이 그리스도가 임재하는 자리는 바로 미사에서 나누어지는 축사된 빵과 포도주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종교개혁자들은 선포되는 말씀 속에 그리스도가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예배 속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보다도 성령의 임재를 더 열망하고 강조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면 한국교회는 어떤 성령을 강조했느냐? 이 말은 한국교회는 성령을 어떻게 이해해 왔느냐 하는 물음입니다. 한국교회는 성령하면 주로 방언하고 입신하고 병이 고쳐지는 신유의 역사를 일으키고 그리고 신비한 체험을 하게 하는 그런 역할을 성령이 한다고 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목회자나 교인이 방언을 못하면 성령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성령을 받은 표로서 방언을 한다거나 입신을 한다거나 병고침을 받는 역사가 있다거나 하는 그런 구분을 많이 합니다. 성령의 역사가운데 이런 면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성령이 강림한 바로 그 원인적인 사건인 오순절 다락방의 경험은 그 이상 어떤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다시 한번 주의 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오순절날 제자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그들이 한 곳에 같이 모여 있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급하고 강한 바람이 부는 것 같은 소리가 사람들이 모인 온 집안에 가득히 들리고 불의 혀 같은 것이 사람들 위에 임해 있었는데 이 순간 사람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의 말씀은 아마 성령이 임하는 광경에 대한 묘사인 것 같습니다.

그 다음이 중요한데 이렇게 성령이 임하고 난 뒤에 뚜렷한 결과가 한 가지 나왔는데 거기에 모인 제자들이 이렇게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뒤에 성령이 시키는 대로 각각 여러 나라 말로 말하기를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 때 예루살렘에는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였다고 했는데 이 사람들은 외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이 사람들이 갑자기 마가의 다락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니까 몰려 와 보았는데 거기에는 희한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전부 갈릴리 출신인데 각각 자기들이 살다가 온 나라의 말로 말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흩어져 살다가 온 지방들을 보면 바대, 매대, 엘람, 메소포타미아, 가바도기아, 본다, 아시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애굽, 리비야, 로마, 그레데, 아라비아 등 지중해 연한의 여러 나라들입니다. 분명히 갈릴리 사람들인데 각각 자기들이 살다온 나라의 방언으로 하나님이 이루신 큰 일을 말하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이루신 큰 일, 즉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하나님의 일이 여러 나라 방언으로 선포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일이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 전 우주적인 차원의 일로 승화되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의 메시야, 그리스도안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세계적이고 우주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 제자들과 세계의 거민 사이가 성령의 개입을 통해 의사소통(Communication)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의사소통이란 한 마음, 한 뜻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사가들이 이 순간을 교회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는 바로 이들이 서로 다른 배경을 갖고 있었는데 이 성령의 중계를 통해 많은 세계 거민이 한 가족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공유하게 되었고 그 뜻으로 하나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이 불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광경은 물론 신비스럽고 마술과 같은 광경이지만 그것이 성령의 역사의 본질은 아닐 것입니다. 성령이 임한 다음에 사람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놀린 것과 같이 그들이 정말 신비하고 이상한 경험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어떤 현상에 불과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분명히 한 결과를 남겼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이루신 일이 세계화, 우주화되었다는 것이고 온 세계가 이 일로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되게 하십니다. 미워했던 사이를 사랑하게 하고, 시기했던 사이를 이해하게 하고 반목과 질시를 했던 사이를 서로 용납하게 하고 갈라졌던 마음이 다시 하나로 합치게 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907년 한국교회가 경험한 대부흥운동은 70년대에 신비한 경험위주의 성령운동과는 다른 독특한 면이 있었습니다.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1907년 1월 13일에 열린 부흥회에서는 당시 서로 사이가 나빴던 목사와 장로가 서로를 미워한 것을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회개하는 장면이 일어났고 이 불꽃은 또 사이가 나빴던 선교사와 한국교회지도자를 회개시켜서 하나가 되게 했고 이 불꽃은 거기에서 계속 타올라서 참여했던 교인들 중에 며느리를 미워했던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가서 용서를 빌고 시어머니를 미워했던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가서 용서를 빌고 돈을 빌려가서 갚아주지 않고 있던 사람이 당장 돈을 마련하여 빌린 돈을 돌려주며 용서를 빌고 심지어 과거에 닭을 훔쳐간 것을 고백하고 갚아주고 십수년전에 지은 잘못을 고백하는 등, 온통 응어리가 풀리고 완전히 하나되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성령의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하고 교회가 분열되거나 교인들 간에 미워하거나 하면 그것은 성령 받은 증거가 아닙니다. 분열하고 싸움하는 곳에서는 성령이 역사할 수가 없습니다. 그 어떤 명목을 앞세우고도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의 한 가족으로 만들어놓은 교회를 가르고 분열시키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는 죄입니다. 교회는 하나되어 있고 한 마음이 되어 있을 때 성령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고 분열되고 흩어질 때 성령이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너무나 똑똑히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사랑의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이해와 관용의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섬김과 봉사의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신비이고 이것이 진정한 입신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성령을 많이 언급하지만 너무나 성령의 역사와는 역행하는 모습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오늘 교회마다 얼마나 문제가 많습니까?  목회자와 교인의 갈등, 교인과 교인들끼리의 파벌의 갈등, 교회의 분열, 재산시비문제, 주도권의 문제, 이것들은 속히 청산되어야 할 더러운 죄의 모습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복음을 선포하는 일보다도 이런 일에 더욱 열심입니다. 분열이 있는 곳에 성령의 역사의 자리는 없습니다.

성령강림절에 이것을 회개하지 않고서는 성령강림절을 지키는 의미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과거의 역사를 보면 이런 모습들이 100년의 역사 속에 가끔 나타나곤 했습니다. 인간의 역사인지라 완전히 깨끗할 수 없지만 우리가 깊이 인식할 것은 이것은 분명히 부끄러운 역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평온할 때 이 사실을 다시 한번 가슴깊이 새기십시다. 성령이 충만한 교회가 되자는 것입니다. 온 교우가 하나님이 이루신 위대하신 일에 하나가 되고 한 마음이 되어 이 일을 세계에 선포하는 일에만 전념하는 교회가 되자는 것입니다. 사랑의 공동체, 하나가 되는 공동체, 용서하는 공동체, 서로 관용하는 공동체, 여기에 성령이 거할 귀한 곳이므로 우리 교회는 선교2세기를 온통 이런 공동체를 형성하고 기쁨이 충만한 공동체를 형성하여 오늘의 교회가 당면한 아픔을 치유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아멘.

<박성원 목사 1994. 5. 22 부산진교회 성령강림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