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하는 교육

성 경 / 신명기 6:4-7, 마태복음 28:18-20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로마에 멸망했습니다.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가운데 내일이면 예루살렘 함락작전이 개시되는 위급한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로마군대 사령관은 다음과 같은 통보를 예루살렘에 했습니다.


내일이면 이제 너희 도성 예루살렘성은 함락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은혜를 베풀고 싶다. 지금 예루살렘도성에서 꼭 하나만 남겨두어야 할 것 한 가지를 말하면 그것만은 파괴하지 않겠다. 내일 새벽까지 그 한 가지를 로마진영으로 통보하라.

예루살렘성 안에서는 로마군으로부터 이런 통보를 받고 지도자들이 모여서 그 마지막 밤이 맞도록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그 논의의 결과는 이것이었습니다.

학교를 남기자!

그들이 한 가지만을 남기도록 요구받았을 때 독립된 국가를 상징하는 왕궁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행정부 건물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성전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학교였습니다.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바로 교육의 힘 때문이었습니다. 교육은 미래의 보장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제2차 대전 때 프랑스군이 독일을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공군기가 독일도시를 사정없이 폭격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당대 독일의 최고 저명한 교육학자인 피이테는 프랑스군의 공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많은 독일애국자들이 피히테를 비난했습니다. 그 때 피히테의 대답이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내일 독일이 공습당하지 않을 준비를 지금 하고 있다.  교육은 내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는 교육, 특히 성서가 말하는 교육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날 교육이란 것이 국가나 사회체제 속에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흔히 교육은 체제를 유지시키는 방법이라고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교육은 어떤 의미에서 체제를 유지시키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19세기 일본이 명치유신을 했을 때 당시 일본의 국수적 제국주의자들이 신도(神道)를 부활시켜서 국가종교로 삼고 천황이 곧 신도의 최고신인 태양여신, 아마데라스 오미가미(Amatarasu Omikami)의 지상현시라고 하여 아시아를 제패하려고 했던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먼저 이 사상을 일본국민과 모든 식민지 신민에게 주입시켜야 하니까 이것을 그 유명한 교육칙어 로 만들어서 일본의 모든 학생들에게 정신적으로 심어주었고 그 정책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강요되어서 학교 때 소위 항국신민서사등을 제창했던 경험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교육을 통해 국가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것입니다.

박대통령이 유신을 하고 소위 국민교육헌장을 만들어서 학생들로 하여금 외우게 했던 적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명치유신의 교육칙어를 본따서 그렇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여기에도 교육은 국가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던 것입니다.

지난 80년대 말 무너진 사회주의 국가들도 사회주의 이념을 주입시키기 위해 모든 학교의 종교교육을 다 금지하고 계속 사회주의 이념을 교육하는 체제를 유지해 왔습니다. 교육은 인간에게 이렇게 일정한 사상을 주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교육이 생존수단이 되어 있습니다.

대학을 가야지만 출세도 하고 여자의 경우에는 시집도 잘 갈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해서 교육이 하나의 출세수단이며 생존수단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마다 더 많이 공부시키려고 노력하는데 그 교육을 통해 인격이 성장하고 역사가 계승되고 하는 그런 생각보다는 남보다 더 많이 배워서 남에게 뒤지지 말고 살라는 하는 간절한 부모의 열망을 담아서 자기 아이에게만 교육을 하려는 일념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좀 더 다른 차원에서 교육을 이야기합니다. 성서는 교육을 어떻게 보는지 그 교육의 방법론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다.

일단 교육에 관계된 오늘의 말씀을 보십시다. 먼저 이스라엘의 교육칙어라고 할 수 있는 쉐마 로 알려진 신명기 6:4-7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 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로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  했습니다. 또 신명기 31:11-13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지니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 와 네 성 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 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여기에서 교육의 목적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신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여기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은 인간의 죄로 얼룩지고 인간의 횡포에 의해 인간 자신이 스스로 고통받고 있을 때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에게 연결됨으로 우주의 질서와 진리를 기준으로 설정하고 그 기준에 인간의 역사를 비추어 봄으로서 스스로 정의로운 역사를 이어간다고 하는 그런 뜻이 숨어 있습니다.

교회학교(Sunday School)가 시작된 동기에서도 이와 같은 필요가 나타납니다.  교회학교는 17세기에 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 그 배경을 보면 영국 그랜세스터(Glancester)에 한 주민이 아주 난폭한 아이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었는데 이 아이를 선도할 길이 없어서 고민고민하다가 로버트 레이크스(Robert Raikes)란 사람이 그 아이의 부모를 찾아가 비난하거나 경찰에 고발하지 않고 빈민가에 들어가 불우한 어린이들을 모아 세상학문과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일은 후에 윌리암 폭스(William Fox)라는 런던의 중심가에서 큰 장사를 하는 사업가가 대영제국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줄 안다면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대 개혁이 일어 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레이크스를 도와서 성서를 배포하며 마침내 1785년 9월 7일에 주일학교협회가 결성되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든 성서를 반포하고 읽게 하고 배우게 하고 깨닫게 하는 이 방법은 인류역사의 어두움을 여는 교육의 방법이 되어 왔습니다.

우리 나라 개신교선교의 역사를 볼 때도 동일한데 최초에 성서를 반포하는 일과 그 성서를 가르치는 일에 주력하였는데 이것이 우리 나라의 개화기를 열게 되고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사회적 계급의 평등이 이루어지고 문맹에 퇴치되고 문학이 발전하고 민주적 정치이념과 독립정신등이 모두 여기에서 배양된 것을 우리는 역사적으로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3.1운동사건을 기록한 도큐멘터리,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 (Korea's Struggle for Freedom)이란 책을 쓴 맥켄지는 성서가 어느 사회에 들어가면 그 사회가 변하든지 성서가 박해를 받든지 두 가지 중에 하나가 일어난다.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인류역사의 문명을 형성해오고 인간의 마음을 교육해온 가장 강력한 교육서인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흑인노예해방에 공헌했던 아브라함 링컨 (Abraham Lincoln)은 나의 학교도, 나의 스승도, 나의 도서관도 성서였다. 고 하면서 성서는 자기를 교육시킨 책이자 스승이자 도서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즉, 진정한 교육의 목적은 출세도 아니고 생존도 아니고 정치이데올로기의 주입도 아닙니다. 본래 교육의 목적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경외함으로써 이 우주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정도를 배우며, 그것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모순과 불의를 낳는 죄성을 이겨서 바르게 살아가게 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 교육의 방법으로 주신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연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냐 하면 곧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는 삶의 내용과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는 삶의 내용과 방법, 이것보다 더 중요하고 완벽한 교육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육은 무엇이냐 하면 이 하나님의 가르쳐주시는 삶의 내용과 방법을 이 땅위에 오셔서 그래도 몸소 살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삶의 우선인지 어떻게 사는 것인지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삶의 일체의 모습이 그리스도의 삶에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분부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바로 성경귀절이 아니라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신 삶입니다.

인도에는 아주 유명한 교육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제자가 스승에게 찾아가서 그 문하에서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선생은 아무런 질문도 없이 아무날 아무시에 보따리를 사서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을 찾아갔더니만 짐을 풀어놓고 선생님이 하는 대로 따라 하면서 그저 자기와 함께 살자고 했습니다. 제자는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 단계거니 생각하고 선생님이 청소를 하면 청소를 하고 산보를 하시면 산보를 하고 선생님과 함께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글 한 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책도 한권도 없었습니다. 그러기를 1년이 지났습니다. 제자가 조급증이 나서 선생님, 교육은 언제 받습니까?  했더니 아무 대꾸도 없었습니다. 또 1년을 지내고 이번에 화가 나서 선생님, 가르쳐주시지 않으면 여기서 허송세월하고 있을 수 없으니까 돌아가겠습니다. 하고 역정을 내었습니다. 선생님은 돌아가려면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 자도 글을 배우지 않고는 차마 그냥 돌아갈 수가 없어서 또 버티었습니다. 그렇게 3년을 버티었는데 어느날 선생님이 제자를 불러놓고 교육이 끝났으니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제자는 기가 막혀서 선생님, 글자 한 자도, 책 한권도 읽지 않았는데 교육이 끝났다니요? 하며 항변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와 함께 사는 것이 곧 교육이다. 했습니다.

교육은 삶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교육은 일체가 삶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3년동안 함께 살며 그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삶의 내용과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원수를 용서하는 방법을, 소외된 자를 사랑하는 방법을, 의를 위해 투쟁하는 방법을,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여기에 기독교교육의 원리가 있습니다. 기독교교육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삶의 내용과 방법을 인간이 배우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교육가운데 이것보다 더 중요하고 완벽한 교육이 없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말씀이나 신약의 말씀에서 공히  주의 깊게 볼 점이 하나 있습니다. 구약의 말씀은 하나님의 법을 이스라엘자손 대대로 지켜나가도록 가르치는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로 하여금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고 그리스도께서 분부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교육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그 진리를 자손 대대로 계승하게 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거시적인 차원에서 볼 때 교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기성세대는 후세대에 대해서 스승의 책임을 맡고 있는 것입니다.

교육에 있어서 가장 효과가 크고 영향력이 큰 것이 전 세대가 살아가는 모습을 후 세대가 보고 배우고 본받는 것입니다. 오늘 기성세대는 자기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후 세대에게 교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기성세대의 삶의 모습이 얼마나 중요하냐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에서 신앙교육을 할 때 성경을 가르치고, 외우고, 강론하는 것도 해야 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믿음의 어른들이 살아가고 있는 신앙의 삶의 모습 그 자체가 참 중요합니다.

학습 세례 문답을 하면 중고등부 학생들이 학습이나 세례를 받겠다고 오는데 상당히 많은 수의 학생들이 어떻게 세례를 받으려고 결심했느냐고 물어보면 요즈음 아버지의 신앙이 너무 좋고 또 신앙을 가지시면서 교회를 봉사하시면서 너무나 즐거워하시고 보람있어 하시니까 나도 아버지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해서 세례를 받기로 결심했다고 대답합니다. 아버지가 교회에 나가라, 믿음을 가져라, 백번 이야기하는 것 보다도 훨씬 더 효과적인 기독교 교육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복음으로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가 곧 가장 큰 교육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일학교 교사의 가장 효율적인 교육방법은 무엇입니까? 요즈음 학생들이 교회학교교사나 학교선생님들을 존경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왜 그러냐 하면 선생님의 삶이 가르치는 내용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혼란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승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교육에는 교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성세대 전체가 교사입니다. 정치적인 차원에서 볼 때 대통령이 가장 영향력 있는 교사입니다. 대통령이 거짓말하고 대통령이 자기가 한 약속을 깨트리고 대통령이 바른말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하면 자라나는 세대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대통령이 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것입니다. 장관이 잘 해야 하고 정치인이 잘해야 하고 기성세대 실업인이 잘해야 하고 종교인이 잘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사회는 이런 면에서 교육적으로 제로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후 세대가 보고 배울 것이 없고 오히려 눈을 감고 모른 척하는 것이 배우는 것이 됩니다.

우리 똑똑히 기억하십시다. 우리 부모들이 기성세대가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가 지금 우리의 후 세대에게 매일매일 엄청난 영향으로 교육되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두가 교사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교회는 우리 부모들이 기성세대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가 곧 신앙교육인 것을 알고 우리 스스로 하나님에게서 배운 삶을 성실하게 사십시다.  진실하고 사랑하며 이해하고 양보하며 섬기고 봉사하며 가난한 사람을 도우고 자기를 스스로 낮추며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 그 삶을 우리가 충실하게 살아갈 때 여기에 기독교교육이 아름답게 이루어 질 것입니다.

주일학교 교사여러분은 어떻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데 골몰하기 보다는 여러분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아이들이 보고 본받도록 하는 삶의 교육을 하는 교사의 모습을 지니시기를 권면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교육하며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 자녀 손손에게로 영원히 계승되는 역사를 이룩합시다. 아멘.

<박성원 목사 1994. 5. 15. 부산진교회 교사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