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잠언


성 경 / 잠언 1:1-9

스라엘의 역대왕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두 왕이 잘 아시는대로 다윗왕과 솔로몬왕입니다. 다윗왕은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통일시키고 국가조직을 든든하게 잡아서 나라의 기틀을 잡은 왕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왕은 다윗이 이룩해 놓은 정치적 통일의 기반위에 이스라엘을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성장시킨 왕입니다. 


이 두 왕은 그 어느 역대왕보다도 탁월한 정치적인 지도력을 발휘한 왕들이지만 그들의 지도력이 정치적인 차원에서만 머물지 않았다는데서 그들이 받는 국민적 존경이 더욱 깊습니다. 그 공헌이 무어냐 하면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통일시키고 경제적으로 부흥시키는 일을 함과 동시에 이스라엘 민족정신을 종교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확실히 잡아준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참으로 지도자 복이 지지리도 없었습니다. 이승만정권이 해방이후 독립국가 건설의 책임을 졌지만 민족보다는 자기 정권욕에 불타고 그나마도 독재로 마무리하고 말았습니다. 또 그 이후에 나타난 박정희정권은 경제적으로 나라를 부강시킨 공헌을 했지만 건전한 국민정신은 오히려 파괴해버린 결과를 빚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에 맥을 같이 한 전두환정권과 노태우정권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완전히 거꾸로 돌리고 인간성을 고양시키기 보다는 탈인간화의 길로 국민정신을 인도하였습니다.

이에 비해 볼 때 다윗과 솔로몬은 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부강을 위해 노력한 동시에 국민정신을 제대로 잡아주기 위해서도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다윗은 성전제도를 강화하고 성전건축을 준비하였고, 솔로몬은 성전을 완공하고 그 때까지 사람들의 입으로만 전해오던 모든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역사를 집대성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구약성서에 보면 중간쯤에 시편이 있고 이어서 잠언, 전도서, 욥기등의 책이 있습니다. 시편을 시가서(Psalmody)라고 하고 잠언, 전도서, 욥기등의 책을 소위 지혜문서(Wisdom Literature)라고 합니다. 전승은 이 중에서 다윗이 이 시편을 만들었고 솔로몬이 이 지혜문서를 만들었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학자들간에는 이 두 왕이 직접 시편이나 잠언등 지혜문서를 쓴 것은 아니고 모든 시편과 지혜문서를 그들의 이름으로 편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치 세종대왕이 한글을 직접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의 뜻을 받들어 만든 것이으므로 세종대왕이 만든 것으로 된 것처럼, 시편과 지혜문서도 이 두 왕의 이름을 붙여서 다윗의 시편이라 솔로몬의 잠언이라 일컫는 자체가 그들이 이 글의 주체라고 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실제 솔로몬은 세종대왕이 집현전을 통해 한글을 만들었듯이, 지혜학교를 만들어 이스라엘의 모든 지혜를 수집하게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두 왕은 국가의 기틀을 잡고 난 다음에 국가의 정신적 기반을 닦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입니다. 한 국가는 절대로 정치적으로만 세워질 수 없습니다. 한 국가는 절대로 경제적으로만 부하면 제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국가는 사회보장제도가 든든하면 잘 되는 국가가 결코 아닙니다. 역사는 정치와 경제 이런 것들이 다 필요하지만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외적인 구조이고 실제 내적인 구조는 국민정신이요 국민도덕이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국민정신, 민족정신, 사람이 사는 삶의 자세가 잘못되면 정치적 달성도 경제적 성취도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얼마전에 다시 거론하기조차 쑥스러운 부모살해방화사건이 주는 허망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모두 성공한 집안이었고 자녀를 누구보다도 사랑했고 그래서 미국유학까지 시켰습니다. 모든 것을 다 이룩했지만 아들의 정신적 사고가 뒤틀리니까 일생동안 쌓아올린 모든 노력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에게 역사가 주는 교훈은 인간은 늘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부해지면 부패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칼한 것은 인간이 그토록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 경제적 부를 쌓기 위해서 피땀 흘려 노력하는데, 정치적 안정을 이룩하고 경제적 부를 성취하면 그 때부터 인간은 부패하는 것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은 국가가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부해질 때 인간이 지속적으로 자유를 누리고 정의를 누리고 삶의 부요를 누리기 위해 가져야 할 도덕적 가치관을 분명히 세우기 위해 세심한 그 도덕적 가치관은 무엇인가? 한 왕은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가져야 할 마음을 시로 표현했고, 다른 한 왕은 인간이 자기 자신과 이웃을 향해 가져야 할 마음에 대해 지혜형식으로 표현해 놓은 것입니다. 국가의 정신적 기반이 바로 이 두 가지, 즉 하나님을 향해 가지는 마음과 인간이 자기 자신과 이웃에 대해 가지는 마음자세로 보았다는 증거입니다.

이 중에서 오늘 우리는 지혜문서에 대해 촛점을 두고 좀 생각하겠습니다. 시편이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찬양의 양식이라고 할 것 같으면 지혜는 인간이 사회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라고 했습니다.

우선 지혜란 무엇인가? 또 지혜자란 무엇인가?

지혜자의 보편적 의미는 인격과 사회의 원만한 구성원이 되게하는 양육의 제요소를 모두 갗춘 사람을 뜻하였습니다. 고대사회가 생각한 지혜자는 먼저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을 일컬어 지혜자라고 일컫는데서부터 시작하여 하여 심지어 정치적 수완과 국제관계에서의 외교적 기술, 더 나아가서 동식물에 대한 조예, 그리고 시작(詩作)과 법률적 소송을 해결하는 감각까지의 모든 면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완전한 인격을 갗춘 사람을 지혜자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 전 국민을 상대로 심으려고 했던 것은 이렇게 완벽한 인격을 갖추고 모든 교양을 골고루 갖춘 인간상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먼저 이런 지혜가 필요하다고 보고 지혜의 교육이 필요한 곳을 세 곳으로 정했습니다. 첫째는 가정이고 둘째는 동네이고 셋째는 왕궁으로 지정했습니다. 여러분이 잠언을 잘 읽어보시면 여기에서 가르치고 있는 지혜의 상당한 부분이 “아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을찌어다...”하고 시작합니다. 지혜교육의 가장 기초적인 장(場)은 바로 가정이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많이 나타나는 자리가 동네입니다. 동네는 바로 가정에서 배운 지혜를 실제 사회에서 실행하는 장소이고 검증하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동네의 지혜를 강조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 모든 지혜의 모범은 바로 왕궁에서 이룩되어야 한다고 보고 왕궁의 지혜가 곧 지혜의 정의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가정에서부터 동네 왕궁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가 일체성을 가지고 온 국민을 지혜자로 만든 노력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지혜교육에서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그 지혜가 전 세대로부터 후 세대로 전승된다는 사실입니다. 전세대에서 후세대로 전승된다는 것은 곧 요즈음말로하여 세대간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 아주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일방적인 의사전달이 아닙니다. 또한 말만 전달하고 알아듣는 것이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습니다. 전달하는 자와 전달받는 자가 그 내용에 있어서 동의하고 합의해야 제대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요즈음 한창 언급이 많이 되고 있는 개념이 신세대, 혹은 X-세대입니다. 요즈음 기성세대가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세대들이 바로 이 세대입니다. 신문에서 정의하는 신(新)세대, 혹은 X세대는 지금 나이로 18세에서 26세까지의 청년들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미국의 어느학자가 그의 소설에서 쓰기 시작했다는 이 개념은 아직 분명히 정리되지 않은 개념이고 그래서 보수적인 사람들은 왜 자꾸 존재도 하지 않는 세대를 억지로 만들려고 하느냐 하고 반발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이 세대가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사고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과거의 세대는 회사에서 아무런 남은 일이 없어도 윗분이 퇴근하지 않으면 예의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윗분이 나가면 퇴근하지만, 신세대는 자기 책임의 일이 다 끝나면 전혀 개의치 않고 퇴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작은 예이지만 여기에는 신 세대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신세대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기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고 또 책임의식도 강합니다. 신세대를 자꾸 비판하지만 좋은 면은 남의 눈치를 보고 위선적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대로 행동하는 투명성이 있고 또 맡겨놓은 일은 책임있게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이기적이고 차갑고 비인간적인 그런 면도 있습니다.

문제의 고민은 구세대와 신세대가 완전히 독립적으로 살 수 있으면 좋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박한상 군의 경우, 자기가 타락을 하든지 어떻게 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으로 끝나면 될터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살해하는 관계가 형성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도사린 가장 큰 문제는 필요한 것 이외에는 신세대는 구세대와 전혀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끼지만 통하는 의사소통을 하고 구세대와는 완전히 의사를 단절하고 삽니다. 이번에도 문제가 발생하니까 결국은 대화의 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였습니다만 정말 가장 큰 문제는 커뮤니케이션블록 (Communication block)입니다. 전세대와 후세대의 사고가 물흐르듯이 흐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몰이해도 안통하고 방관도 통하지 않습니다. 이 세대별 의사소통의, 특히 가치관의 소통이 없으면 우리는 미래세대를 포기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잠언과 같은 기성세대의 지혜가 후 세대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그것을 후 세대가 귀하게 여기고 그 지혜의 원칙속에서 양육되는 시스템(System)이 구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과 동네, 그리고 나라등 온 나라의 구조가 이런 세대간의 지혜의 흐름이 가능하도록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시각은 다소 달라도 같은 문제를 같이 생각해 보는 접촉점은 최소한 이루어져야 합니다. 솔로몬 왕은 나라가 앞으로 제대로 정체성을 분명히 가지고 나아가려면 이 지혜학교를 통한 지혜자를 만드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전통이 오늘에까지 이르러서 유태인의 수준을 높여주었습니다.

오늘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후세대에 대한 속수무책식의 대처를 할 것이 아니라 그들과 마음이 통하고 고민이 통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통로가 이루어져야 하고 열린 마음으로 마주 다가 가야 합니다. 풍부한 삶의 지혜를 집대성해야 하고 국가와 정부는 이를 위한 도덕적 기틀을 마련하는 것을 국제화나 세계화보다 더 진지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일을 기약할 수 있고 오늘도 평안하게 될 것입니다. 잠언은 이 딜렘마에 젖어든 오늘의 시대가 깊이 숙고하고 세워야 할 문화전통인 것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솔로몬의 잠언이 이스라엘에게 바른 삶을 살게하는 지혜를 주었던 것처럼 이 시대에도 바른 삶을 살게 하는 지혜의 가르침을 가정과 공동체와 국가가 준비하여 지혜로운 미래세대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하십시다. 아멘.

<박성원 목사, 1994. 6. 12. 부산진교회 주일설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