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선악과

성경본문 : 창세기 3:1-3
 
  20세기 끝자락에 우리 인류는 21세기가 되면 어떤 세상이 올 지에 대해 많이 궁금해 했습니다. 21세기, 새 천년은 “정보화시대가 될 것이다”, “감성의 시대가 될 것이다”, “지식사회가 될 것이다” 는 등 많은 예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만 이 모든 예견들을 종합해 보면 대체로 두 가지의 상반된 예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21세기에는 획기적인 과학기술의 발달로 아주 살기 좋고 편리한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더 많은 재앙과 혼란이 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21세기는 10여년 채 지나지 못하고 세계는 테러, 전쟁, 자연재해 등 온갖 재앙으로 얼룩지고 있습니다.요즘 심심찮게 2020년이 되면 생태적 종말이 올 수 있다고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과연 인류는 21세기에 제대로 생존할 수 있을까?
 
  개혁교회는 신앙생활을 할 때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다른 손에는 신문을 들어라!”고 강조합니다. 한 손에 신문을 들라는 것은 “때의 징조를 분별하라”는 성경 말씀대로 항상 시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살피라는 의미이고 다른 손에 성경을 들라는 것은 그 시대에 향해서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지 분별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럼 먼저 신문을 들어보십니다. 오늘 세계 현실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저는 오늘의 세상을 총체적 위기의 시대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20세기 끝자락에 시작한 경제위기는 해결은커녕 점점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1983년 멕시코 경제위기로 시작된 세계경제위기는 1990년대 말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경제위기로 이어졌고 2000년대 초엽에는 남미와 동구권의 경제위기로, 2000년대 후반에는 미국의 경제위기로, 2010년대 초엽에 들어와서는 유럽의 경제위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일본은 이미 깊은 경제위기로 들어갔고 세계경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만약 중국에 경제위기가 오면 그것은 지금까지 겪었던 경제위기의 1000배에 달하는 세계 경제의 파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위기는 경제위기만이 아닙니다. 기후변화 등 생태위기는 이미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후변화나 생태위기를 말하면 그것은 환경공학 등 과학적 데이터로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있습니다.
 
  올해 한국의 추위, 기후변화의 결과입니다. 얼마 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연락할 일이 있어서 전화했더니 거기에서는 예년보다 훨씬 심각한 더위로 고생한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일본에 닥친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끔찍한 경험을 했습니다만 지금 바다 속에서는 엄청난 지형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땅위에는 한 시간에 한 종류의 생명이 멸종해 나가고 있습니다. 꿀벌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저는 근대산업문명이 이제 부메랑처럼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위기가 오는 원인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원인분석이 있겠지만 신학자로서, 목회자로 보는 원인은 근대문명을 이끄는 배후에 ‘이 세상과 인간의 개발은 무한하다’는 사상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다고 믿는 인간의 오만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 생명도 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인간은 우리의 지식과 기술이 무한하게 발전하면 인간의 모든 문제를 인간이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저는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실제 생명공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 예를 들어볼까요? 생명공학을 발전시키면 인간의 본성도 기술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신경약물학에서 연구하고 있는 리탈린(Ritalin)이나 프로작(Prozac) 같은 정신순화약을 투입하면 인간의 거친 본성도 순한 본성으로 개조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인간본성이 개조되면 인간은 인간의 영역에서 신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되고 인간에게는 불행의 역사가 더 이상 없는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프란시스 후꾸야마 같은 학자는 인간이 이제 후기 인간시대, 즉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는 시대로 진입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다는 생각으로 미래를 낙관론적으로 보는 이견에 반해 제기되고 있는 또 다른 하나의 견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개발에는 한계가 있고,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지구의 자원은 한계가 있고 인간의 기술과 과학은 무제한으로 오만방자하게 발전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개발하면 제한된 지구 자원이 얼마 안가서 거덜 나며 우리 후손들은 사막화된 지구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기후가 자꾸 올라가는 지구온난화는 인간이 생산해 내는 가스가 한계치를 넘어 오존층을 파괴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앞으로 이 가스의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인간의 생명 자체가 위협 당할 수 있다고 유엔 세계기후회의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1950년부터 2000년까지 50년 동안 우리가 생산하고 소비한 양이 인간이 땅에 출현해서 1950년까지 수백만년 동안 생산하고 소비한 양과 맞먹을 정도로 지금 인간은 지구자원을 마구잡이로 쓰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지구자원이 거덜 나고 생태계의 질서는 완전히 교란되고 그로써 지구의 종말이 앞당겨질 수도 있다고 많은 과학자들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구 자원과 인간기술의 발전, 부의 축적에는 한계가 있어야 하며 그 개발도 세계가 지속 가능한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인간과 세계는 무한정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와 인간의 기술 개발에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이 두 논리가 바로 오늘 신문에 실리고 있는 시대의 징조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세계 현실에 대해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번에는 다른 한 손에 성경을 들어보십시다.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성경은 바로 창세기 3장입니다. 
 
  창세기 3장에 따르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다음에 동산 한 가운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들어 놓고 ‘동산에 있는 다른 나무의 실과는 다 먹을 수 있으나 이 나무의 실과만은 먹지 말라, 이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가 죽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뱀이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하나님처럼 되고 선악을 알게 될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하고 하와를 유혹합니다. 하와가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것도 같아서 자기가 먹고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반대였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기보다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 죽 모든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 안에서 늘 논쟁거리가 되었던 말씀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죄를 지을 것을 아셨을 텐데도 왜 선악과를 만들어서 인간이 죄를 짓게 하셨는가?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함정을 만들어서 인간을 시험하셨는가? 선악과를 만들지만 않았어도 일이 이렇게 꼬이지 않았을 것 아닌가?’ 등 수많은 의문을 제시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런 의문도 중요하겠습니다만 이 선악과의 이야기를 오늘 끝없는 부의 추구, 끝없는 기술의 추구, 끝없는 개발의 추구가 이제는 부매랑이 되어 생태계를 위협하고 우리의 존재자체를 위협하는 오늘의 상황에서 읽어보면 너무나도 정확하고 심오한 하나님의 섭리가 이 속에 스며들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럼 이 말씀은 오늘 21세기 문턱을 들어서는 인간문명에 과연 무슨 계시를 하고 있습니까? 이 선악과의 말씀이 딜레마에 빠진 21세기 인간문명에 대해 하는 말씀은 바로 ‘인간의 욕심과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질주에는 한계가 있고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발전은 무한하며 인간은 한없이 부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논리를 들어보면 뱀의 유혹처럼 정말 달콤하게 들립니다. 그 논리를 듣고 있으면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느꼈던 것처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기루입니다. 
 
  세계 경제는 투기에 집중하는 금융경제로 생활과 삶을 위한 경제가 아니라 재산축적을 목적으로 달리고 있기 때문에 경제의 근본적인 목적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경제는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게 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만드는 경제이며 그래서 범죄율과 자살율이 30% 이상 증가합니다. 현재 한국에는 매일 43명이 자살을 하는데 그 이유는 앞으로 살아갈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경제는 금융파생상품등에 의존하는 극도로 휘발성이 강한 경제입니다. 세계경제가 극도로 위태로운 것이 바로 이 이유입니다. 
 
  경제를 이런 형태로 몰고 가는 그 이면에는 끝을 모르는 인간의 탐욕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탐욕적 경제, 잘못된 인간의 가치관이 그대로 달린다면 인류와 세계의 미래엔 더 큰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많은 지식인들은 사회주의의 몰락에 이어 만약 자본주의가 이대로 간다면 자본주의도 그 끝을 비참한 모양으로 보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약물로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다고 하지만 인간은 아직도 에이즈나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고칠 약품도 계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프리카에는 에이즈(AIDS)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죽고 있는데 짐바브웨 같은 경우에는 일주일에 700명이 죽는다고 합니다. 이 에이즈(AIDS)외에도 걸리면 2일내에 즉사하는 에볼라(Ebola)라는 병이 있습니다. 이 병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연구해 보니 이런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바이러스(Virus)는 깊은 밀림 속에 살고 있었는데 인간이 목재체취를 위해 밀림을 밀어버리니까 그 미생물이 살 곳을 잃어 원숭이 속에 들어가고 그 원숭이를 통해 인간에게 전염되었다는 것입니다. 생태계 교란으로 인류는 계속 새로운 질병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한국 TV에서도 아마존의 눈물이라고 방영했지만 브라질은 아마존 밀림은 지구가 필요로 하는 산소의 3분의 1을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 항공우주국이 해 마다 찍는 사진을 보면 인간이 개발과 자원채굴을 위해 아마존 밀림 자체를 파괴해서 아마존이 거의 대머리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심각한 생태위기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대의 인류문명은 선악과를 범하는 문명이고, 인간이 하늘에 도달하고자 하는 바벨탑을 짓고 있는 문명이며, 하나님의 심판으로 오는 홍수가 아닌, 자연재해라는 대홍수를 인간이 스스로 초래하고 있는 문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현상들은 인간개발에는 한계가 있고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전혀 개발하지 말고 살아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산에 있는 많은 나무의 실과는 마음대로 따 먹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선악과만은 따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그것은 자유가 주어져 있되 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에볼라(Ebola)와 같은 바이러스의 출현을 저는 생태계 질서를 파괴한 결과의 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에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 살도록 주어진 영역이 따로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을 마음대로 뛰어다니며 먹고 살도록 자유가 주어졌으나 그 자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먹지 말라는 그 실과까지 따먹는 오늘날 인간의 무소부위의 개발은 생태계 질서 파괴를 불러오고 이 결과로 오는 자연의 무서운 재앙 앞에서 인간은 말할 수 없는 곤욕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이는 경제에도 적용됩니다. 인간의 부(富)가 끝이 없이 추구되면 그 다음에는 마태복음 6:24 말씀대로 재물을 신으로 섬기는 소위 물신사상(物神思想: Mammonism)이 싹트고 그렇게 되면 돈이 인간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돈을 섬기는 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개발을 자제해야 할 한계가 무엇인가? 저는 이 개발에 대한 과학적인 한계는 모르겠습니다. 과학기술의 개발, 생명공학의 개발, 어디까지 가야하나, 그 한계는 과학자가 아닌 저로서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학적 원칙만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원칙은 바로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나서 나타난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고 난 뒤에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이 결과는 다름아닌 모든 관계가 깨어져 나가는 결과였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심판자와 죄인의 관계로 바뀌어져 버립니다. 그 다음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서로 사랑하며 서로 도와주도록 맺어진 사이였으나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배신의 관계로 변합니다. 셋째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원래는 사람이 수고하지 않아도 땅이 먹을 것을 제공하도록 창조되었으나 인간이 땀 흘려 경작해야만 땅은 곡식을 내고, 그것도 순순히 곡식을 내는 것이 아니라 엉겅퀴를 내면서 방해한다고 하였습니다. 뱀은 인간의 뒷 발꿈치를 물고 인간은 뱀의 머리를 밟아 죽이는 관계가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비극적인 결과에서 우리는 인간의 개발은 어디까지여야 하느냐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개발은 관계가 깨어지기 시작하기 전”까지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계가 깨어지고 있으면 ‘한계가 왔구나’하고 절감해야 합니다.
 
  오늘 세계를 보면 기계적인 관계는 점점 더 넓고 견고하게 맺어지고 있습니다. 통신은 우주까지 연결되고 인터넷, 핸드폰등 기계적 관계는 정말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까지 무한정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인격적 관계는 어떻습니까? 점점 멀어지고 있고, 약해지고, 끊어져 가고 있습니다. 순수한 인간관계는 찾아보기 힘들고 이익과 관련된 억지관계만 있는 듯합니다. 2000년 동안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눈부실 정도로 이루었지만 인간의 본성은 진보되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악적 근성이 오늘 인간에게도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 
 
  저는 21세기에 인류가 최대로 기울여야 할 노력은 바로 하나님께서 창조때부터 입력해 놓으신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깨어지지 않도록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해야 할 중대한 선교적 사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관계회복, 즉 인간의 죄악으로 사이가 깨어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하나님의 창조세계와의 관계회복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길이 곧 인간이 살고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사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21세기에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간의 능력을 무한하다는 신념에 입각한 기술개발로 인간이 덕을 입는 것도 많지만 더 많은 딜렘마를 맞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창세기는 오늘 21세기 인류의 현실에서 너무나 오래 떨어진 옛날에 쓰여진 말씀이지만 선악과의 이야기는 오늘 끝없는 오만방자한 인간의 기술개발에 중대한 경고를 주는 말씀인 것을 발견하고는 우리는 정말 경탄하게 됩니다. 
 
  선악과 이야기는 지금까지 주로 인간의 죄의 기원을 규명하는 것으로 이해했으나 오늘 말씀을 통해 볼 때 인간의 문명(Human civilization) 자체를 심각하게 비판하고 있음을 발견할 때 정말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함을 절감합니다. 창세기의 선악과는 단순히 인간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금지조항(禁止條項)이 아닙니다. 창세기의 선악과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하시기 위해 만드신 안전장치(安全裝置, Security system)임을 명심하고 21세기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만물이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풍성히 누릴 수 있도록 우리 교회가 이 창조세계를 지키는 일에 앞장설 수 있기를 간절히 권면합니다.
 
<박 성 원 목사, 2013년 2월 17일, 주닮교회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