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


총회유치한 지 3년이 되었고 올해는 총회가 열리는 바로 그해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교회 안에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지 못하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한창 어려울 때 하도 마음이 어수선해서 9순이 넘으신 아버지께 제가 책임을 좀 벗어놓았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만 아버님이 이렇게 일갈하셨습니다. “어허이,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데 그 일을 맡은 사람이 한다, 안한다 하면 되나?!”

그렇습니다. WCC 총회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하나님께서 온갖 풍파를 넘어서 원하시는 곳을 가리라 생각합니다. WCC 로고를 보면 십자가를 담은 에큐메니칼 보트가 험한 풍파를 헤쳐 나가는 상징인데 부산총회도 결국 하나님께서 모든 파도를 헤치고 가고자 하시는 곳으로 가시리라 믿습니다.

 
WCC 총회의 성공여부는 얼마나 편안한 장소에서 얼마나 잘 먹고 얼마나 깔끔하게 회의진행을 했느냐는 물리적 부분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WCC 총회의 성공여부를 평가하는데는 두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배이고 다른 하나는 총회가 선포하는 메시지입니다.
 
WCC 총회의 예배는 정말 은혜스럽습니다.
 
같은 하나님, 같은 그리스도, 같은 성령을 고백하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신앙을 함께 고백하고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는 예배는 정말 감격적입니다. 특히 이번 부산총회는 새벽기도, 통성기도 등 한국교회의 예배 특징을 반영하여 언어도 “새벽기도”, “통성기도” 그대로 쓰고 통성기도를 하되 개인의 기복이 아닌 세계의 문제를 놓고 함께 기도하는 에큐메니칼 의미도 담아서 시행하기 때문에 세계교회의 예배영성과 한국교회의 예배영성이 어우러져 승화되는 그런 경험도 하게 됩니다. 이번 통성기도는 특별히 재미있습니다. 한국교회의 통성기도는 한국어만 사용하지만 WCC총회에서 할 통성기도는 그야말로 만국어로 통성기도하는, 사도행전 오순절 경험의 재현 그대로입니다. 꼭 참여하여 경험하시면 좋겠습니다.
 
예배에 이어 정말 중요한 성공의 열쇠는 총회의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부분이 곧 이 시대를 향한 WCC 총회의 복음증거이고 그 복음증거는 바로 주제성찰에서 나옵니다.
 
WCC 총회는 창립총회 때부터 세계역사변혁에 중요한 방점들을 찍어왔습니다.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모인 창립총회의 주제는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계획” (Man’s disorder and God’s Design)이었는데 이 주제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완전히 무질서로 폐허화시킨 인간의 역사적 과오에 대해 참회하고 폐허가 된 세계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재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또한 사회주의, 자본주의 이념의 논쟁으로 창설은커녕 다시 한번 세계교회가 갈라질 상황이었는데 총회에서는 복음은 인간의 이념에 우선하는 상위의 개념임을 천명했습니다. 교회는 사회주의, 자본주의를 넘어서 그리스도안에서 하나임을 천명하고 확인하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거하고자 한다. (We indend to stay together.)
 
1954년 미국, 에반스톤에서 열린 제2차 총회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 – 세상의 희망” (Jesus Christ – Hope of the World)이었는데 두 번의 세계대전 후에도 인간은 동서냉전, 인종차별 등으로 계속 절망의 역사로 이어지므로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다는 고백을 하고 이 에반스톤 총회 이후에 인종차별철폐를 이 시대에 가장 급박한 복음의 증언과제로 삼게 되었습니다.
 
1961년 인도, 뉴델리에 열린 제3차 총회 이후에는 사회의 건강한 발전은 교회의 책임임을 성찰했고 이 후에 세계의 거의 모든 교회안에 사회부가 창설되게 했습니다. 우리 총회의 사회봉사부가 창설된 것도 바로 이 흐름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제한되어 모든 총회를 다 열거할 수 없지만 이렇듯 이후에도 WCC 총회는 정의롭고 주민참여적인 사회개발, 여성의 권익문제, 난민에 대한 관심, 인권신장, 민주화에 대한 교회의 참여,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 등 시대적 상황에 대한 복음의 증언과제를 계속 발굴해 왔습니다.
 
동서냉전체제가 무너진 90년대 이후에는 세계와 사회의 갈등이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경제정의와 생태문제에 대해 계속 신학적 입장에서 생명경제에 대한 촉구를 계속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제10차 부산총회에서 기대되는, 아니 부산총회가 인식해야 할 21세기의 세계상황에 대한 부산총회의 메시지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 이 기도는 무슨 메시지로 연결되어야 하는가?
 
생명, 정의, 평화, 이렇게 세 가지로 말씀드리려 했는데 세 가지 모두를 말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첫 번째만 이야기하고 ‘정의’는 첨부한 제 글, “기독교의 정의”를 참고하시고 ‘평화’에 대해선 다음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생명의 하나님’에 집중하겠습니다.
 
기도문 형식의 주제는 이렇게 ‘생명의 하나님’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물론 생명, 정의, 평화가 서로 분리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 주제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편의상 한 가지씩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가 하나님을 생명의 하나님을 구체화하여 부른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의 교회가 부르는 생명의 하나님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집중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첫째는 영성의 문제입니다.
 
인류역사가 21세기에 진입하는 당시에 불란서의 정치철학자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는 21세기의 과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21세기는 영적인 세기가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Le Vingt-et-unieme siecle sera spirituel ou il ne sera pas!)
21세기가 영성의 세기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절박감은 여러 세계 지성들에 의해서 계속 표현되어 왔습니다.
 
체코 대통령 바츠라브 하벨(Vaclav Havel)은 현대문명의 딜렘마와 관련하여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1) 현대문명의 영적 상태에 직접 관련이 있다. 2) 그 영적 상태는 한 마디로 상실(loss)이다. 3) 상실은 바로 가치의 상실이다. 하벨은 종교인이 아니었는데도 가치상실의 원인으로 “형이상학적 확실성에 대한 상실, 초월적 존재에 대한 경험의 상실, 초인간적인 도덕적 권위에 대한 상실, 보다 지고한 가치의 상실” 등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인간은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최고 의미 있는 존재이며 모든 것의 척도라고 생각하는 순간 세계는 그 인간적 차원을 상실하며 인간은 자기를 통제할 힘을 잃어버린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유럽이 주도한 근대문명이 이 때문에 세계를 문명의 딜렘마로 몰아넣고 있다고 보고 그 대안으로 그는 인간이 ‘초세상적인 권위(extramundane authority)에 근거하여 우리 자신을 자연이나 우주의 질서, 도덕적 질서와 그 초인간적인 근원, 절대적 존재에게 우리 자신을 향할 때에만이 이 땅의 삶이 '거대집단자살'(megasuicide)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것을 견딜 수 있는, 다른 말로 하자면, 진정으로 인간적 차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벨은 이 시대는 영적 갱신이 필요한 시대라고 단정했습니다. 자신은 그것을 ‘실존혁명'(Existential Revolution)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전형적인 복음주의 설교자의 내용 같은 이 분석은 바로 ‘인간이 역사와 창조의 주체’라는 유럽주도의 근대문명의 핵심적 딜렘마를 지적한 것입니다. 유럽이 냉전체제 이후에 유럽을 재편할 때 이런 정신사적 인식을 하고 유럽의 정신(Soul of Europe)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유럽연합형성 과정에서 잠깐 보였지만 동시에 거대하게 세계를 몰아붙인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라는 쓰나미에 의해 이 인식은 휩쓸려가 버리고 21세기를 영성실종의 시대로 계속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10여년이 지난 후 2008-2009년 제63회기 유엔총회 의장을 지낸 니카라과 외교관 미구엘 브로크만(Miguel d'Escoto Brockmann)은 WCC에 보낸 영상메시지에서 "오늘 이 시대는 온갖 종류의 위기를 맞고 있는데 그 핵심에는 영적 위기가 있다."고 같은 상황을 지적했습니다. 같은 지적들이 35년간을 네델란드 외교관으로 지낸 한스 요나스(Hans Jonas)와 같은 세속지도자들에 의해 계속 제기되어 왔습니다. 여기에 교회가 제대로 응답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 사례만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2001년에 미국과학재단과 상무부는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에 착수했습니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21세기 초반을 이끌던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시대가 마감되고 2020년에는 융합기술(Convergence Technology)이 이끄는 새로운 르네쌍스가 도래 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이 융합기술을 선점해서 미국이 2020년 이후에도 계속 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획을 하는 것입니다.
 
융합기술(CT)이란 서로 다른 학제적 이론을 하나의 목적을 위해 융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경영학 마케팅에 신경학을 융합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사물을 지각하고 결정하는 것은 이성이라고 보았으나 이제는 이성이 아닌 감성, 특히 신경이 결정한다고 보고 이를 경영학마케팅에 융합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현재의 컴퓨터공학의 기술, 정보기술, 뇌 과학의 발달, 나노기술, 인공지능, 합성생물학기술 등 모든 기술을 다 융합하면 사람과 기계가 상호작용(interface)하게 되는 시대가 2020년 이후에 열리게 될 것이고 이는 이미 실현단계에 돌입했습니다.
 
이 융합기술에 의하면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해 과거에는 철학이나 종교나 인문학이 정의를 내렸으나 앞으로는 과학기술이 인간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그런 시각에서 이해하는 인간에 대한 접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대한 접근도 그 차원에서 할 것이고 이런 접근이 결국 생명 자체에 대해서도, 더 나아가서 사랑, 삶의 의미와 같은 철학적, 종교적 문제도 이런 차원에서 접근하는 후기 인간시대(post human era)를 넘은 초월적 인간 시대 (trans human era)에 진입하게 될 것입니다.
 
학제간의 융합은 필요합니다. 구분하는 것이 불합리하지만 생각을 위해 구분해서 생각해 보자면 물질세계는 정신세계를, 정신세계는 물질세계와 교감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융합적 사고가 통전적 인식의 차원으로 승화되는 것이 아니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철저히 정신세계, 심지어 영적세계 조차도 결국은 물질세계, 특히 자본주의에 종속화되는 것입니다. 소위 모든 것이 마케팅에 종속됩니다. 음악도, 미술도, 종교도, 예배도, 인간의 감성도, 심지어 영혼도 마케팅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8:에 보면 바벨론패망의 증상들이 죽 열거되는데 12절에 가면 제국이 팔고 사고 하는 무역품목이 나오는데 13절에 보면 이렇게 열거되어 있습니다.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말하자면 사람의 영혼도 상품화된 상황입니다. 바로 오늘의 신자유주의가 인간의 영혼도 상품화하는 시대입니다. 요즈음 마케팅이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놀랍게도 인문학이나 종교적 언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하비 콕스(Harvey Cox)는 ‘세속도시’(The Secular City)를 쓰면서 미래 사회가 탈영성적 세속화 문명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는데 오늘의 사회가 오히려 영성으로 몰입하고 있다고 보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영성 문제에 다시 집중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오늘 이 시대 사람들의 영성추구는 영적 공허감을 메우려는 가치관의 정립이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젼 같은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경쟁주의, 이익창출지상주의, 효휼성지상주의 등으로 인간을 압박하는 자본주의로 인한 극도의 피로감 때문에 도피하려는 도피성 영성추구 현상이 더욱 많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많이 등장하는 힐링(Healing)이란 현상도 바로 이 선상에서 나타난다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의 영성갈망의 현상이 어쩐지 우리가 기대하는 하나님의 가치관과의 융합이란 긍정적인 길의 추구가 아닐 것이라는 불안함이 있습니다. 물론 극단적으로 구석으로 내어 몰린 인간의 영성추구가 하벨이 말하는 대로 가치관 추구로 연결되는 실존혁명이라는 인간영혼의 진보로 발전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가 그렇게 희망적으로 진화하지 않아 왔기 때문에 일말의 우려의 자락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인간문명이 영성마저도 마케팅전략에 융합시키는 있는 인류문명의 꼼수를 보고 있노라면 21세기는 영성의 세기가 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앙드레 말로나 인간이 초월적 가치로 향하지 않으면 진정한 인간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며 실존혁명의 필요를 제안했던 하벨의 탄식을 교회가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문명을 과연 하나님의 가치와 제대로 융합시키는 새로운 문명의 길을 모색하는데 우리의 기도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학적 인식하에 이번에는 좀 더 생명의 하나님과 관련된 구체적인 문제를 간략하게 언급해 보고자 합니다. 바로 생태위기의 문제입니다.
 
생태위기의 문제는 우리의 신앙고백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우리는 매 주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으로 부르고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드신 천지를 우리는 지금 인간의 모든 능력과 탐욕을 동원하여 파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죄라고 정의했는데 인간에 의한 생태파괴는 하나님을 떠난 정도가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 생명창조를 파괴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문학가 아룬다티 로이는 만약 신앙인이 자연파괴를 한다면 이는 신성모독이라고 했습니다. 황금의 혀란 별명을 가진 교부 성 크리스소톰은 자연은 하나님의 얼굴(face of God)이라고 했습니다. 자연훼손은 결국 하나님의 얼굴에 상처를 내는 것인 셈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죄, 영혼의 죄 보다도 더 심각한 죄인데 교회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그 죄가 심각하냐 하면 이제 교회가 아닌 세속사회가 지구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국 국립실험연구소(National Laboratory)의 로렌스 리버모어 칼데이라(Lawrence Livermore Caldeira)에 의할 것 같으면 지금 세대의 생태계파괴가 과거 3억년 동안의 생태계 파괴와 맞먹고 있다고 합니다. 이라크 무기사찰단장을 지냈던 한스 브릭스 (Hans Blix)는 앞으로 지구에 가장 무서운 것은 3차 대전도 4차 대전도 아닌 바로 지구온난화현상이라고 했습니다.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도 기후 변화가 테러보다 인류에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하고 이대로 인류문명이 진행하면 지구는 종말을 향해 간다고 경고했습니다.
 
네델란드 그로밍엔(Gromingen) 대학교의 존 판 클리네큰(John Van Klinekn)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850년부터 1950년까지 1세기 동안에는 1년에 한 종의 생물이 사라졌는데 1989년에는 하루에 한 종이 2000년에 들어와서는 1시간에 한 종의 생물이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50년안에 지구 생물의 25%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유엔 기후변화위원회는 2050년까지 지구 생물의 약 5분의 1 이상이 멸종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미국국립대기연구센터(National Centre for Atmospheric Research(NCAR) 선임연구원 클라라 데저(Clara Deser) 박사는 2008년 3월 한국의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07년 한 해 동안에 향후 10년 내지 20년 녹아내릴 북극의 빙하가 앞당겨 녹아내렸다고 하면서 빙하해빙의 속도가 10년 내지 20년 앞당겨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2013년의 통계는 이것 보다 훨씬 더 심해졌을 것 같습니다.
 
올해 우리 한국은 기후변화로 엄청난 추위로 시달렸는데 얼마 전에 남아공 친구와 전화하니까 거기에는 예전보다 훨씬 더워서 견딜 수 없다고 했습니다. 통계에 보니까 48개의 인접한 나라들이 107년 만에 최고로 더운 여름을 지냈다고 합니다. 추운 데는 극도로 춥고 더운 데는 훨씬 더 더운 현상이 나타납니다.
 
생태위기는 이제 생태혼돈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한 예로 꿀벌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국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인도 농부들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벌은 생명의 연계를 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벌이 사라지면 생명의 연계가 어려워질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생태위기는 지상에 미치는 영향보다 바다 속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큽니다. 기후변화로 땅위의 사막화가 심각해지고 있는데 지금 바다 밑의 사막화현상은 훨씬 더 심각합니다. 과거 우리 나라 바다에서 잡히는 고기는 전부 북쪽으로 이동하고 지금 우리나라의 바다에는 최근 해수욕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해파리처럼 동남아시아의 고기떼가 밀려오고 있고 이것은 생태갈등을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에 의한 인간의 무제한적 개발과 소비에서 기인되는 것입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00년까지 최근 50년 인간이 생산하고 소비한 양이 인간이 땅에 출현하여 1950년까지 생산하고 소비한 양과 맞먹는다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세속학자들이 물리적 차원에서 지구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국사회는 아랑곳하지 않고 4대강을 파헤쳐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교란하고 일본 후쿠시마의 엄청난 경험에도 불구하고 수명이 다한 원전을 계속 가동시키는 일이나 원전의 세계 수출을 주도하는 반생명적 정책을 펴고 있고 교회는 이에 대해 신앙고백적 차원의 성찰을 하기 보다는 지지하고 축복하는 일까지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산업화, 도시화, 근대화로 이어져오고 오늘의 첨단기술문명, 생명공학, 융합공학으로 치닫는 후기산업사회의 문명이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의 지혜의 영역으로 치닫는 오늘의 선악과 상황이며, 인간문명이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달하자는 오늘의 바벨탑 건설의 상황이라고 신학적으로 진단합니다. 지금 인간은 인류역사상 최대의 죄악을 범하고 있는 상황이며 인간과 우주의 생명에 가장 가혹한 죽음과 불의, 그리고 폭력을 행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WCC 부산총회가 이 문제를 이 시대의 최대의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WCC 총회가 8년 만에 한 번씩 열리므로 다음 총회는 2021년에 열리게 됩니다. 아까 말씀드렸지만 다음 총회 열리는 바로 그 앞 해인 2020년은 세속적으로 이미 회자되고 있는 생태위기의 해입니다. 그렇다면 부산총회 이후 다음 총회 기간 동안은 인류역사뿐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인간의 탐욕과 교만으로 파괴될 수도 있는 그런 정도의 심각성이 오늘의 상황입니다.
 
부산총회는 에코총회가 되어야 하고 생태정의, 생태평화의 총회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부산총회의 주제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란 부산총회의 주제는 이런 차원에서 성찰하고 기도하고 고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의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인간중심의 근대문명을 창조주중심의 생명문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영성혁명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박성원, 백주년기념관, 2013 총회 에큐메니칼정책세미나, 2013년 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