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한국, 젊은 교회

성 경 / 이사야 62:1-5

세계를 제 2차 대전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독재자 히틀러(HITLER)를 제거하려 했다는 혐의로 사형을 당한 20세기에 가장 존경받는 신학자 본훼퍼(Dietrich Bonhoeffer)가 1942년 자유의 몸으로서는 마지막 휴가를 어느 시골에서 보내고 있었습니다. 휴가기간 중에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 아래서 어느 작은 마을의 옛도시를 걸으면서 그는 어느 젊은이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우리 조국의 이 아름다운 고장들을 죽 돌아보는 이 긴 여행에서, 저기 멀리 보이는 나움부르그(Naumburg) 밤부르그(Bamburg) 뉘렌베르그(Nuernberg)의 교회들의 희미한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이 모든 곳이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기쁨으로 일해 온 곳이란 생각이 들었네. 이곳은 이제 우리가 함께 희망을 가지고 함께 일해가야할 우리의 땅이란 생각이 드네.”
 
디히트리히 본훼퍼는 비극적인 전쟁 한 가운데서, 후일에 그의 목숨을 형장의 이슬로 빼앗아간 히틀러의 독재정권 아래서 자기의 조국 독일을 위하여 수세대동안 땀흘려 일해온 믿음의 선배들을 생각하고 이제 그 땅과 그 임무와 그 희망에 자신과 다음 세대에게로 이어지고 있는 참으로 희망적인 비젼을 이 편지에서 보여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합니다만 아마 이것은 국내에 있을때는 안에 있으니까 보이지 않던 면이 외국에 나가면 객관적으로 보이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에 전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면을 보면서 줄곳 그 생각에 잠겨서 열흘을 보냈습니다.
 
우리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 세계의 역사속에서 우리 민족이 할 일이 무엇인가 ? 하나님은 우리민족에게 무슨 기대를 가지고 계실까 ?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 아주 근본적이고 막연한 상념에 잠기면서 회의를 하는 도중에도 그 의미를 찾아보려고 애를 쓰며 골몰하였습니다.
 
그러는 도중에 읽게된 말씀이 오늘 함께 생각하는 이사야 62장의 말씀입니다. 이 이사야 62장의 말씀은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유다민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 말씀을 주시고 그 상황이 오늘 우리 민족의 상황과 아주 흡사한 상황입니다. 여기에서 유다가 받은 그 하나님의 계시에서 우리 민족도 생각해야 할 비젼과 사명과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이사야 62장에서 64장까지는 중보기도의 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언서를 읽어보면 공통적으로 전개되는 순서가 있습니다.
 
제일 처음에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부르십니다. 예언자를 부르시는 것은 그 예언자가 꼭 부름의 대상이 아니라 그 예언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있는 이사야니,예레미야니 하는 예언서들을 보면 그 예언자들을 통하여 자기의 백성인 유다와 이스라엘을 애타게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부르신 다음에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를 짓고 그래서 말못할 혼란과 방황 속에 헤매는 것을 지적하십니다. 하나님의 지적은 매우 날카로운 경우가 대부분인데 하나님이 주신 율법대로 살지 못한 유대와 이스라엘이 마지막까지 갈 정도로 부패하고, 그래서 사회도 정치도 부패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마침내 온 사회가 흔들리게 되는 상황을 지적합니다. 사회가 온통 어려울 때 자연히 국력이 쇠해지기 때문에 외적의 침략이 항상 나라의 안보와 평화를 위협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예언은 이런 상황에 대해 아주 준엄한 심판조의 말씀이고 그래서 예언서의 처음과 중간의 대부분은 아주 어두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어느 예언서를 읽어보아도 꼭 거쳐가는 하나의 형식이 있는데 그것은 마지막에 전개되는 위로와 희망의 말씀입니다.이 부분은 마치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이 잘못했을 때, 그 자식이 잘되라고 회초리를 들어 때리고 난 뒤에 그 자식을 다시 부둥켜안고 위로하며 사랑을 확인하듯이 하나님이 무서운 심판의 말씀을 하신 다음에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다시 확인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이사야 62장은 바로 뒷 부분에 다시 이제까지 혹독하게 심판한 말씀 뒤에 유다백성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주는 그런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희망은 마치 먹구름 속에 소나기가 내리붓고 난 뒤에 거짓말처럼 구름이 걷히고 찬란한 햇빛이 내리쬐는 것 처럼 찬란합니다.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않을 것인즉,
열방이 이 공의를,
열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다.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다.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칭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 즉 제사장의 관이라 칭하며
네 땅을 쁄라,
즉 내 기쁨이 그에게 있다라고 칭할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임이니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이 하나님의 위로의 메시지를 듣고 있노라면 지금까지 불을 뿜듯이 쏟아지던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이 위로와 희망의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면치 못할 유다의 모든 죄악은 다 어디로 갔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희망과 위로의 말씀은 유다민족의 모든 죄악이 다 사라지고 하나님의 심판도 사라진 뒤에 선포되는 말씀이 아니란 것입니다. 아직도 유다는 죄악 중에 있으며 혼란과 방황 속에 있고 바벨론의 위협이 늘 앞에 있는 실정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여전히 그 위에 유효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혼란과 방황이 있는 한 가운데서 하나님은 희망과 위로의 빛을 비추어 주시는 것입니다.
 
서두에 인용한 디히트리히 본훼퍼가 젊은 청년에게 이 조국을 위해 희망을 가지고 사명을 다하며 함께 일해 나가자고 하는 권면을 할 때 그때는 바로 평화와 자유의 시기가 아니라 참혹한 2차대전 한 가운데였고 바로 수년후에 자기의 목숨을 형장의 이슬로 앗아간 독재정권이 지배하던 때였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본 훼퍼는 바로 당시 독일의 이사야였는지 모릅니다. 어두운 조국, 혼란과 방황의 조국 한 가운데서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 이사야난 본훼퍼의 사명이요 비젼이 아니었겠습니까 ?
 
그 예언의 소리가 중요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을 유다가 들었어야 했고 본 훼퍼의 예언을 독일이 들었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 예언들을 들었더라면 두 나라는 망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란 점입니다.
 
자 ! 이제 이 의미가 우리에겐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제네바에 가니까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의 상황에 대해 염려를 하고 있었습니다. 연일 연야 방송을 통해 한반도의 긴장이 보도되고 많은 염려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회가 안정되고 그런 긴장과 대결이 없는 서구사회에서 보면 한국은 혼란과 방황 속에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 달리 보았습니다. 서구 사회는 어떤 의미에서 이제 모든 젊음이 지나가고 노쇠하는 사회와 같았습니다. 발랄함도 혈기왕성함도 없고 그저 매일 매일 같은 일들만이 조용하게 되풀이 됩니다. 반면에 한국사회를 바라보면 엎어지고 자빠지고 마치 아직도 혈기왕성한 청년같은, 그래서 문제도 많지만, 그래서 무언가 시끌시끌한 그런 매력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월드컵 (World Cup)이야기가 여러모로 재미있는 현상을 일으켰는데, 유럽에 가니까 한국팀이 연일 방송에 인용되고 있었습니다. 독일이 한국전 뒤에 어느나라하고 시합을 해서 이겼는데 독일이 이겼지만 그것은 한국한테 혼났기 때문에 이겼다는 것입니다. 독일이 구차하게 이겼지만 사실상 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스위스는 스페인한테 3:0으로 져서 초상집 분위기가 되었는데 스위스방송에서 계속하는 말이 한국이 2:2로 비긴 스페인에게 3:0으로 졌다는 것입니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이기지는 못했지만 젊음의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축구만이 아니라 실제 젊은이들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구라파 학생들이나 일본학생들을 보면 순전히 자기만 압니다. 그러나 데모를 하든, 남총련을 하든, 그래도 자기의 개인의 영달을 생각하지 않고 민족통일 생각하며 외국농산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자기 농산물을 지키자고 떠드는 젊은이들은 한국 젊은이 밖에 없습니다.
눈을 들어 세계의 모습을 이렇게 볼 때 한국은 젊습니다. 5,000년 역사에 걸맞지 않게 아직도 젊음이 솟구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중에 있고 타락속에 있는 유다를 향하여 이 희망을 주시면서 “일어나 빛을 발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시대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 민족과 교회를 향하여서도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이 하나님의 용기 주심, 기회주심을 우리가 소중히 여기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희망을 주실 때, 그 희망과 용기주심을 잡아야 합니다. 유다는 이 예언을 외면했을 때 그 황금같은 기회를 놓치고 망했고 독일도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혼란과 방황 속에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아직도 사회와 정치가 미숙한 상황속에서 하나님은 끈질기게 우리에게 희망과 비젼을 보여주시려고 합니다, 이 희망과 비젼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의 역사에 순종하고 따라가서 ‘열방이 네 공의를 열왕이 네 영광을 바라보는’ 그런 한국, 그런 한국교회를 만들어 가십시다. 아멘.
 
<박성원 1994. 7.10 부산진교회 주일설교 스위스 방문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