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잃어버린 양

성 경 / 누가복음 15:3-7

오늘 우리 교회에 아주 귀한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제일교회 주일학교에 소속한 러시아청소년, 발레라, 싸샤, 씨마, 이라, 율라, 아이다 등 6명의 학생과 다마라, 아미, 유보티슬라바,- 이 중 슬라바 선생님은 앞으로 한국말과 주일학교 운영을 배우기 위해 우리교회에 앞으로 6개월간 체류하게 되겠습니다만 - 두 교사들과 그리고 제일교회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일하시는 윤미경 목사님의 사모님과 두 자녀 진아와 우현이가 이번 저희 교회의 초청으로 우리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은 지난 목요일 저녁에 도착하여 우리교회 둥지에서 숙식을 하고 금요일에는 경주로 가서 한국문화를 둘러보고 토요일에는 해운대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는 우리 교회 학교 학생들과 함께 서로의 삶과 신앙에 대해 토론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함께 어린이대공원에 가서 놀고 오늘 아침에는 8시30분에 교회에 와서 이미 유년주일학교와 중등부 고등부 예배에 함께 참석하고 이 시간에는 우리와 함께 말씀의 예배에 참여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오늘 예배가 끝나면 오후에는 서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이번 이분들의 방문을 위해 해외선교위원회와 숙소, 민박, 식사등 여러 면에서 물심양면으로 여러 성도들이 협조해 주셔서 참으로 이들과 우리에게 모두 좋은 믿음의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이 프로그램에는 두 가지 뜻이 들어 있습니다. 블라디보스톡은 우리 민족이 일제치하에 있을 때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활용되어 이미 우리의 고난의 역사의 한 부분이 되었고 45년 이상 우리 남한과는 이념적으로 대치되어 있던 소련의 한 땅으로서 이제는 그 냉전의 시대가 지나가고 어제의 적이었던 우리의 관계가 서로 협력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역사적 관계가 우리 사이에 특별한 의미를 던져줍니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관계보다도 더 큰 의미는 우리의 만남이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 사회주의 나라의 이 어린 생명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늘 그 이념의 장벽을 순식간에 넘어서 한 형제자매가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특별한 감사는 이번에 우리를 방문한 분들이 주일학교 학생들이란 사실입니다.
 
소련은 아시는 대로 70년동안 신앙교육을 전혀 할 수 없었던 그 상황에 있었는데 이제 12세 13세 14세 아이들에게 신앙이 전수되어 이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어 우리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은 내일의 교회의 주인공들이 국제적 차원에서 서로 만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눈다는 차원에서 특별한 선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이들의 방문과 다음 주일에 열릴 여름수련회에 즈음하여 미래세대의 선교에 대한 문제를 차제에 한번 깊이 생각할 수 있으면 합니다.
 
선교는 교회의 지상명령입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인 동시에 선교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선교라고 생각하면 상당히 거대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선교” 하면 보통 저 아프리카 같은 오지에 선교사를 보내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보통 머리에 떠올립니다. 그러나 이런 선교는 오히려 땅끝까지 나아가는 선교이고 선교의 시작은 교회가 생성한 바로 그 자리, 즉 예루살렘의 선교가 선교의 기초이며 시작인 것입니다.
 
예루살렘 선교라고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선교입니다. 우리 교회가 복음을 증거하고 복음을 모르는 분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보다도 더 기본적인 선교가 있는데 그것이 뭐냐하면 바로 복음을 우리 다음 세대, 즉 자녀에게 잘 전해주는 것이 가장 가깝고 중요한 선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자녀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그 자녀를 그리스도인으로 삼는 이것은 모든 교인에게 부여되는 선교의 사명입니다. 원래 교회의 성장은 믿는 자의 자녀들이 대를 이어 교회의 신자가 되어 가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발판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만 해도 몇 대식 내려가면서 믿음을 계승한 가문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래세대에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차원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대해서 일종의 선교사의 자격과 임무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런 의식으로 그들이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머물도록 독려하십니까? 우리는 흔히 예수 믿고 구원받고 천국에 간다고 하는데, 우리의 자녀가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대학에 입학하는 것에는 엄청나게 집착하면서 지금 자녀에게 복음을 증거하지 않고 나중에 여러분만 구원받고 천국에 가시려는 겁니까? 저는 우리의 자녀세대에게 복음을 전하는것, 즉 신앙교육을 한다는 것이 가장 급선무적인 선교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서구의 교회의 최대의 고민이 뭐냐하면 교회에 젊은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큰 교회 안에 주일예배를 드릴 때 노인들 30여명만 뎅그러니 앉아 있고 어린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노인들만 교회에 있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이어나갈 세대, 내일의 그 교회의 자리를 차지해야 할 미래세대가 주일날 그 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구에는 교회가 문을 닫는 경우가 허다합니다.이것이 교회가 당면한 가장 큰 위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블라디보스톡 제일교회에서 과거의 신자가 아닌 10대의 청소년 신자들이 블라디보스톡 제일교회를 대표해서 우리 교회의 주일학교를 돌아보기 위해 방문했다는 사실이 이런 상황에서 보면 얼마나 돋보이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서구교회는 모두 쇠퇴하고 있습니다만 서구 사회주의권의 교회들에는 매주일 세례받는 장년과 청소년으로 교회가 가득차고 있습니다. 이번에 제네바에서 같이 회의에 참여한 헝가리의 제2대도시 데브레첸(Debrecen) 교회 - 이 교회는 한 천여명이 모이는 큰 교회인데 - 의 목사님이 회의 말미에 저에게 우리 교회와 자매관계를 맺고 싶다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 왕성한 교회가 함께 협력하고 이 세상에 교회를 다시 부흥케 해 가는 사명이 피차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오늘 우리 한국교회의 상황은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70년대 80년대 경이적인 성장을 거두었습니다만 지금 도시교회는 성장이 멈추려고 하고 특히 그렇게 왕성하던 교회학교가 이제는 날로 쇠퇴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구성원의 안정적 모습은 피라미드형으로서 어린이 층이 가장 많고 어른이 적은 상태가 되어도 어려운데 이제는 역삼각형 형태로 어른들은 오히려 많은데 미래의 교회를 받칠 어린이들이 줄고 있다는데서 선교의 가장 큰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늘 읽은 말씀은 아주 절박하고 다르게 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는 이야기는 과거에는 하나님의 품을 떠난 방탕한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이야기로나 혹은 믿지 않는 한 마리의 양을 전도하는 이야기로 우리가 많이 읽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산술적인 생각을 좀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이 본문의 이해에 따르면 전도해야 할 대상은 한 마리이고 우리 안에 남아있는 숫자는 아흔아홉마리입니다. 즉 다수는 교회 안에, 신앙 안에 있고 간혹 한 마리의 양이 우리를 떠난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서구교회를 보거나 이제 성장이 둔화되고 교회학교의 어린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이 본문을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 하면 잃어버린 양이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 남아있는 양이 아흔 아홉 마리가 아니라 서구교회의 경우는 30마리 정도 남아있고 70마리의 양이 잃어버린 숫자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서서히 우리에 남아있는 양의 숫자가 줄어들고 잃어버린 양의 숫자가 많아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또 다른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는데 교회의 우리에서만 그들을 잃은 것이 아니라 가정의 우리에서도 그들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과거에 자녀는 가정에 존재했으나 이제는 가정에서 자녀의 얼굴조차 보기 힘들고, 대화조차도 공부하는 시간을 빼앗기 때문에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녀들의 시간, 그들의 정신, 그들의 영혼, 그들의 믿음 모든 것을 우리는 잃어가고 있고 잃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안타까운 것 중의 하나는 이 잃어가는 양들 중에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부분이 바로 하나님의 품을 자의적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숫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품에 나아올 수 없는 사정에 처한 우리 청소년들입니다.
 
저도 지금 중고등부에 다니는 아이의 아버지로서 가만히 보니까 아이들이 교회를 멀리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교회에 가까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정을 우리 사회와 가정과 국가가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우리 교회가 여름 수련회를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엽니다. 이번 수련회를 온 교역자들과 교회학교 교사들이 매어 달려서 지금 몇 달째 준비해 오고 있습니다. 날짜도 일상적인 학교력을 고려해서 이렇게 잡아놓았는데 불과 1주일 전까지만 해도 보충수업을 하는지 안하는지가 정해지지 않다가 거의 임박해서 학교마다 보충수업을 한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수련회에 오고 싶어도 다시 학교로 가야합니다.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방학은 방학이 되어야 할 테인데 23일에 방학하고 25일에 보충수업을 다시 한다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 와있는 외국사람들에게서 종종 듣는 이야기입니다만 한국사람들의 얼굴은 무표정과 피로로 찌들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상입니다.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고 보거나 길을 걸어다니는 한국인들의 표정을 보면 피로에 지쳐있고 얼굴은 거의 무표정합니다.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멍한 얼굴로 바라만 볼 뿐 제대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무표정과 피로가 우리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의 얼굴의 일상적인 표정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앞에는 대학이란 무서운 관문이 도사리고 있고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은 공부하라고 성화입니다. 수련회 기간에 보충수업이 겹쳐서 우리 교회가 학교 선생님 앞으로 협조공문을 내려고 어떤 학생에게 물어보았더니 그 학생이 하는 말이 학교 선생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교회고 여름수련회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갔다오고 여름수련회를 갔다오면 공부하는 긴장이 풀려서 다시 공부할 준비를 하는데 상당히 지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수련회 가면 놀게 되니까 시간이 아까우므로 집에서 공부하기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나무라지 못합니다. 학생들이 실패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니까 그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더 더욱이 학생들도 나무라지 못합니다. 학생들은 대학이란 관문 앞에서 주일날에도 성경대신 교과서를 잡고 교회대신 학교나 도서관을 향하게 되는 것이 그들의 선택이 아니라,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이 기막힌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저는 교회가 앞으로 선교를 위한 투쟁을 한다면 우리 학생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지식만을 집어넣는 기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의 근본을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을 이 사회와 국가와 상대하여 투쟁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번 수련회는 여러분들의 다양한 요구들이 있읍니다만 어떤 의미에서 학교교육에 시달리고 패기를 잃어버리고 친구를 오로지 적으로만 대하는 그런 풍토를 낳게 한 오늘의 교육현실을 정면으로 대항하면서 불쌍한 우리 학생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 그리고 친구들을 진정한 친구로 맞아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학교교육에서 받은 그 찌든 때와 같은 억압에서 잠시나마 휴식하게 하고 건전한 놀이문화 하나도 없고 청소년 문화를 꽃피울 수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 우리 교회가 그들에게 나름대로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그런 푸른 초장을 마련한다는 심정으로 정말 정성으로 기도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복음이 70년동안 막혀있던 러시아에서 이제 10대들의 청소년이 교회를 배우기 위해 오는 이런 모습속에서 우리가 깊이 생각하십시다.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축복속에 머물게 하는 것, 한 마리의 양이 아니라 점점 많아지는 이 양들을 다시 하나님의 우리에 찾아오는 이 거룩하고도 절실한 미래세대의 선교에 우리의 마음과 관심과 기도를 모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래서 하늘의 잔치가 성대하게 베풀어지게 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
 
<박성원 목사, 부산진교회 1994. 7. 17 블라디보스톡 청소년 방문, 여름 연합수련회를 앞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