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가치

성 경 / 시편 79:1-9

오늘 우리는 민족해방 49주년을 맞게 되습니다.우리는 해방절이란 이름으로 해마다 이 날을 경축하여 오지만 많은 의식있는 사람들은 과연 해방은 완전히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족해방은 진정한 해방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이념전쟁으로 연결되고 따라서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지금까지도 휴전의 상태이니 말이 해방이지 진정한 해방이 이루어졌느냐 하는 그런 의문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5년 일본제국주의로부터 나라가 해방된 그 감격은 아직도 우리 가슴에 진하게 남아있습니다.이 해방의 감동은 우리 민족이 역사를 살아가는 동안 항상 회상하면서 그 자유와 독립의 의미를 되씹어야 할 귀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일제에 식민지화 되어가던 바로 그 시대에 우리 한국과 기독교가 만난 사실에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었다고 고백합니다.당시 우리 사회는 제국주의의 침탈이 나라의 목을 죄어오던 어두운 현실속에서 출애굽의 종교, 애굽의 억압에 시달리던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고 로마제국의 식민지하에서 자유와 사랑과 존엄성을 외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한 일치가 아니라 강한 자에게 침탈당하는 약한 자를 하늘에서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는 하나님의 정찰에 우리의 억울함이 포착된 것이고 하나님은 이 억압속에 사는 민족에게 해방의 복음을 들고 이 땅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또한 출애급의 하나님이나 로마제국 치하의 예수님은 특정한 시기의 특정한 사건속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제국주의 통치하에 자기의 권리를 빼앗긴 나라들과 민족들의 권리를 찾아주시는 보편적인 자유의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고대근동 지방에서 강대국의 확장경쟁의 희생이 되어 그 국권과 문화와 민족의 존엄성을 침탈당하는 이야기는 이스라엘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오늘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로 계속되는 이야기입니다.조금만 의식을 가지고 세계사를 살펴보면 세계사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작은 나라를 식민지로 만드려는 확장주의 대 이에 대항하여 자기 나라의 자주권을 지키려는 작은 국가의 저항운동의 역사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서의 역사만 하더라도 애굽제국주의가 지나간 후 고대근동은 앗수르제국주의가 등장하였고 이스라엘민족은 늘 이 앗수르제국의 위협속에 시달려야 했습니다.이 앗수르에 의해 북쪽왕국 이스라엘이 망했습니다.앗수르가 망하고 그 다음에는 바벨론 제국이 등장했습니다.이 바벨론제국은 바로 유다를 망하게 한 나라입니다.오늘 시편79편은 바로 이 침략자 바벨론을 향한 분노의 시편인 것입니다.바벨론 제국이 사라지자 페르샤제국이 등장했고 페르샤 제국이 사라지자 알렉산더대왕이 헬라문화를 전파하는 전도자로서 등장하여 지역을 제패하고 그 뒤를 이어 예수님 당시의 배경이 되는 로마제국이 등장합니다.이렇듯 강대국이 제국주의를 표방하면서 일어날 때마다 소수민족은 그 희생물이 되었더랬습니다.
 
고대만이 아니라 근대도 마찬가지입니다.프랑스는 나폴레옹의 영웅주의를 빌어서 유럽제패의 꿈을 꾸면서 러시아까지 그 제국주의적 확장을 시도했고 독일은 힛틀러의 제3의 통치 (The Third Reich)이념아래 구라파제패를 시도했습니다.이탈리야의 파시즘 또한 이와 편승해서 유럽제패를 시도했고 이런 제국주의적 침탈이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의해 자행되어 우리 민족이 희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흔히 중학교에서 서양사를 배울 때 영국은 모든 지구상에 식민지를 다 갖고 있기 때문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배웠습니다.그 때 우리는 영국이 훌륭한 나라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사를 제대로 알고난 뒤에는 영국은 무서운 식민주의 사관위에 서 있는 나라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영국 런던(London)에 가면 트라팔가 광장과 영국 국립박물관 앞과 스위스센터 사이에 조그만 공간이 있는데 여기에 기이한 표식이 하나 있습니다.그 작은 공간의 바닥에 직경 약 8m 정도의 원형판을 만들어놓고 중간에 작은 가로등 크기의 대를 세워놓고 그 꼭대기에는 런던(LONDON)이라고 써 놓았습니다.그리고서는 그 곳을 깃점으로 우산살처럼 줄을 그어놓고는 그 위치하는 방향으로 과거에 영국이 식민지로 먹었던 모든 나라들과 그 수도 이름이 적혀있습니다.그 식민지 수도 이름밑에는 영국으로부터 몇 마일(Miles)이라고 적혀 있습니다.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 인도 홍콩을 포함한 아시아의 나라들이 거기에 적혀 있는데 말하자면 이 모든 나라들이 영국을 깃점으로 해서 거리가 표시되어 있는 것입니다.그 옛날의 식민주의가 오늘날도 그대로 자리잡고 현장입니다.
 
제국주의란 무엇인가? 오늘날 유럽아니 세계 어느 지역을 둘러보아도 마치 순결한 처녀가 치한에게 유린당하듯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작은 나라들이 강대국의 우직한 발굽아래 짓밟혀 그 존엄성이 파괴되는 사건을 역사속에서 늘 봅니다.
 
90년초에 발생한 이락크 전쟁이 바로 이 식민지의 결과이고 지금 금세기 최대의 비극의 나라 아프리카 르완다의 비극도 바로 식민지의 결과입니다.경제대국, 군사대국, 정치대국, 이 대국들이 역사속에서 무슨 일을 해 왔나 하면 모두 부정적인 기록밖에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어떻게 보면 침략과 정복, 수탈과 위협의 대명사로만 존재해 왔습니다.
 
그러길래 요한계시록을 쓴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거기에서 하나님의 신비를 체험하고 계시록을 쓸 때 그는 모든 약소민족을 정복하고 파괴하는 강대국들을 짐승(Beast)이라고 불렀습니다.
 
바벨론도 유다민족을 향해 짐승과 같은 일을 자행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모든 건물, 그 웅장하던 성벽이 파괴되어 짐승들의 놀이터가 되고 성전까지도 이방인의 군화발에 짓밟히고 자신의 형상마져도 원치 않으시는 성전에 온갖 이방신상들이 진열되게 되었습니다. 모든 먹을 것을 다 빼앗기고 굶주림에 허덕이다 못해 자식까지 잡아먹는 기현상이 생겼으며 (애가2:20, 4:10) 시드기야왕은 자기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눈으로 지켜본 것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세상을 볼 수 없도록 눈알이 뽑힌 장님이 된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열방이 주의 기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으로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저희가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며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 짐승에게 주며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면에 물 같이 흘렸으며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를 알지 아니하는 열방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열국에
주의 노를 쏟으소서
 
절규하는듯 외치는 이 시편은 침탈당하는 예루살렘의 잔혹상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많은 고관과 군인, 기술자들, 학자들, 사제들, 남자들이 포로로 끌려가서 강제노역에 종사하고 부녀자들은 성(性)적 희롱물이 되었고 농민들은 뼈빠지게 농사지어 조공을 바치게 했습니다. 모든 자기 땅과 집은 다 빼앗기고 나중에는 심지어 물도 돈을 주고 사먹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느냐 하면 예레미야 52:28-30에 의하면 유다민족이 세 차례에 걸쳐 포로로 잡혀갔고 그 수가 4,600명에 달하였습니다.포로로 잡혀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스겔 1:1에 따르면 그발 강가에 막사를 짓고 집단수용이 되었고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강제노역에 동원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일제에게 당한 괴로움이 이에 못지 않을 것입니다.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고 일제말기 황국신민화 정책이 시행되던 시기의 수탈과 억압만 보더라고 그 잔항상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제는 1938년 5월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고 식량과 자원을 약탈해 갔습니다.침략전쟁의 확대로 일본내의 식량과 군량미 공급에 부족이 생기자 1939년부터 이른바 “공출제도”라는 것을 실시하였습니다.공출제도는 조선 농민으로 하여금 자가 소비용과 종자를 제외한 모든 쌀, 보리, 잡곡등을 의무적으로 바치게 한 전형적인 식민지 착취였습니다.지하자원의 경우 일제는 1938년 5월 “조선중요광물증산령”을 제정하여 군수사업에 필요한 25종의 광물을 지정하고 강제채광작업을 시켜 가져갔습니다. 심지어 전쟁말기에는 각 가정의 솥, 놋그릇, 수저, 제기까지 탄피 제조를 위해 공출해 갔습니다. 오늘 해방당시 물품으로 교회에 전시한 박송자 집사님의 양푼이는 이런 무자비한 공출 때 마지막까지 빼앗기지 않으려고 다락에까지 숨겨서 지금까지 간직해 온 소중한 역사적 물건입니다. 이미 아시는대로 일제는 전투기를 만든다는 미명하게 교회종을 모조리 수거해 갔고 우리 교회에 달린 저 종도 빼앗겼다가 해방후 바닷가에 버려진 것을 다시 찾아 온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제의 수탈은 물적 수탈에 그치지 않고 성경의 경우처럼 수많은 인적 수탈로 이어졌습니다.수많은 조선 청년들이 총알받이 대포밥으로 끌려가고 1939년에 공포한 “국민징용령”에 의해 수많은 조선노동력을 강제동원해 갔습니다.1939년부터 1945년까지 징용, 근로 보국대, 근로동원, 정신대 등 갖가지 이름으로 끌려간 사람의 수는 실로 480만명에 달하였고 그 중에서도 일본, 남양군도, 버마, 사할린 등지로 끌려간 80만이상의 사람들의 처지는 그야말로 기막힌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탄광, 금속광산, 군수공장, 토목공사장, 그리고 군항, 비행장을 닦기 위해 ‘죽음같은 노동’을 강요당해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 벽에 전시된 한 사진에 보면 한 조선노동자가 벽에다가 “어머니 보고싶어, 고향에 가고 싶어!”라고 새겨놓은 것을 찍은 기록사진이 있는데 이것을 보는 순간 가슴이 쓰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1944년 8월 ”여자 정신대 근무령“을 공포하고 끌고간 조선여성 20만명이 일본군의 노리갯감으로 전락당한 비극입니다.이 모든 비극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입니까? 자유를 빼앗기고 주권을 빼앗긴 나라이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자비로우셔도 이 작은 자의 삶의 권리를 빼앗는 강대국, 제국주의는 영원히 허락하지 않으십니다.이 땅위의 제국주의가 종말을 가져오지 않은 법이 없고 그 종말은 어김없이 비참한 종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오늘 이 해방을 맞은 우리는 두 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제국주의에 대한 심판이 없었던들 해방의 은총이 이 민족위에 내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둘째는 그러므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않기 위해 자주의식을 뚜렷이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서두에서 말씀드렸지만 아직도 우리는 완전한 해방을 이루지 못했습니다.그러므로 앞으로 우리가 기도하며 완전한 해방을 이루어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영광돌릴 수 있을 때까지 이 해방의 행진을 계속하여야 하리라고 굳게 믿는 것입니다. 아멘.

<박성원 목사, 부산진교회 1994. 8. 14 해방기념주일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