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성 경 / 마가복음 4:35-41

이번 여름은 정말 유난히 더웠습니다. 이 범상치 않는 무더위는 우리나라 만의 현상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었습니다. 구라파의 어떤 나라는 280년 만에 처음 맞는 무더위였다고 하니 가히 기록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그 살인적인 더위가 물러가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불과 며칠 전만해도 돗자리 위에 몸을 누이지 않으면 무더위를 이길 수 없을 정도였는데 이제 새벽녘에는 벌써 이부자리 자락을 끌어당길 정도로 시원해졌고, 어떤 때는 춥다라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춥다란 말을 입에 올리면서 문득 이 형용사가 새삼스럽게 들리고 며칠전까지 더워죽겠다던 말을 입에 달고 있던 것을 생각하면 인간이 참으로 간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여름의 날씨변화를 체험하면서 인간이 간사하다는 생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은 역시 자연의 섭리앞에서 작은 존재이며 자연앞에서 겸손해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진하게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날씨앞에 너무 변덕적이라는 사실입니다.
 
한 동안 사상최악의 가뭄으로 논바닥이 타들어 가고 저수지가 말라들어가고 계곡에 물마져 말라들어가는, 마치 물의 원천이 말라버린 듯한 위기감이 팽배했을 때는 올해는 가뭄으로 완전히 망하는구나 하고 모두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수지가 바닥까지 드러내는 상황이 되니까 지하수를 파기 시작하고 어떤 마을들은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고,많은 사람이 이것은 하늘이 내리는 재난이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논바닥과 함께 인간의 가슴도 같이 타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않게 태풍으로 영남 동해안지역에 비가 내렸습니다.그 때는 마침 저희 교회 교회학교가 정관 적십자수련원에서 연합으로 수련회를 할 때였는데, 밤에 쏟아지는 폭우로 텐트에 물이 들어와 잠을 설쳐야 했고 수련회 기간내내 쏟아지는 빗물에 젖은 채로 프로그램을 해야 했습니다. 수련회를 떠날 때까지만 해도 물걱정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물이 너무 많아서 반대로 걱정을 해야 했습니다. 보통 우리는 태풍을 두려워했었지만 이번에 온 태풍은 오히려 반가운 손님을 맞듯이 고마운 태풍으로 여겨졌습니다.
 
그 첫 태풍이 지나간지 얼마되지 않아 기상대가 A급 태풍 더그의 접근을 예고했을 때는 내심 비를 기다리면서도 사라호 같은 엄청난 피해를 회상하면서 온 국민이 태풍의 진로에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도 무서워하며 대비했던 태풍 더그호는 태풍의 피해는 거의 입히지 않은채 가장 가뭄이 심했던 호남권에 흡족하게 비를 내려주고는 돌아갔습니다. 그 후에 북상하던 태풍 엘리도 마치 온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여름을 비키게 하고 이제 결실의 계절 가을을 우리에게 불러다 주고 갔습니다.
 
이제 들리는 소문은 대풍이 온다는 소문입니다. 밭작물은 말라버려서 흉작이 예상되지만 논농사는 잘 되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타들어가던 논바닥을 생각하면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인데 굶어죽지 않고 오히려 수확의 기쁨을 예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인간의 간사함과 하나님의 신비를 동시에 봅니다. 극심한 가뭄에서 비에 대한 사모로, 비에 대한 사모에서 태풍의 공포로, 태풍의 공포에서 비에 대한 감사로, 태풍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안도로 인간의 감정이 시시각각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어오던 것을 보면서 정말 욥기 12:15 말씀에 “그가 물을 그치게 하신즉 곧 마르고 물을 내신즉 곧 땅을 뒤집나니..”하는 말씀이 실감나며 “이방이 떠들고 나라들 모여서 진동하나 우리 주 목소리 한번 발하시면 천하에 모든 것 망하겠네”라는 찬송가 79장이 생각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거대하고 여유있는 계획을 모르고 안절부절하며 아우성치는 모습을 보는 듯하며 하나님은 인간의 안절부절과는 상관없이 당신의 계획대로 일을 이끌어가신다 하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는 체험적 계절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번 여름의 체험이 우리가 한번 특수하게 겪은 체험만은 아니란 것입니다. 인간은 늘 이렇게 간사하고 하나님은 늘 여유가 있으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지배하고 계시는데 인간은 그 거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고 이렇게 안절부절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신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 날인지 모르지만 한 날이 저물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갈릴리바다를 건너서 가자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에 모시고 바다를 가로질러 갔습니다. 다른 배들도 함께 갔는데 바다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물결이 부딪히며 배에 들어와서 순식간에 물이 배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배가 곧 가라앉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난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황급히 예수님을 깨우며 소리질렀습니다.
 
선생님,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않으십니까?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하시니 거짓말처럼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그리고서는 제자들을 향해서 꾸짖으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요즈음 말로 옮겨본다면 “어찌하여 이렇게 호들갑을 떨고 야단이냐? 그렇게도 믿음이 없느냐?”하는 질책과 핀잔이 아니겠습니까?
 
제자들이 보인 모습은 바로 이번 여름에 우리가 보인 모습입니다. 자연과 역사, 그리고 더 나아가서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데 그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모르고 우리만 안절부절하면서 기우제를 지내니 하는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인간이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한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헛점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이 세계는 그의 손에 운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는 믿음의 약세를 탓하는 것입니다.
 
마크 트웨인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나 날씨에 대해서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날씨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욥기 12:15 말씀에도 “그가 물을 그치게 하신즉 곧 마르고 물을 내신즉 곧 땅을 뒤집나니..”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날씨에 대해 인간이 이러쿵 저러쿵 하고 이렇게 저렇게 염려하지만 우리 인간이 날씨를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제네바 국립박물관에 가면 아주 의미있는 그림이 한 장 있습니다.그 그림은 종교개혁이전에 스위스 바젤에서 활동하던 유명한 화가 콘라드 비츠의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같은 풍랑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그림인데 오늘 본문의 배경이 아니라 마태복음 14:22이하의 이야기를 그린 것입니다. 한 밤중에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바다를 건너가고 있었는데 저기 멀리서 바다를 건너오고 있던 물체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물체는 다름아닌 예수님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자기도 바다위를 걷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자기도 바다를 마음대로 제어하는 능력을 갖기를 원했던가 봅니다. 한번 시도해 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는 바다에 뛰어들지만 바람을 보고는 무서워 물속에 빠져들어갔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물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베드로의 손을 잡고 건져내어 주십니다. 비츠는 바로 이 장면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리고서는 칼빈이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제네바의 쌍 삐에르 성당 전면에 이미 칼빈이 개혁을 하기 전에 그 그림을 걸어놓았습니다.
 
여기의 메시지는 이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람을 보고 무서워떨며 물에 빠져들어가는 베드로를 건져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여기에서 ‘의심’이란 말은 두 곳을 동시에 본다는 뜻입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지 않고 왜 바람을 보고 물결을 보았느냐? 바람이나 물결을 보지 말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이란 것입니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의 모든 삶은 완전히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것입니다.
 
인간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달려있고 인간의 삶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달려있다.
 
인간은 자신의 힘을 믿어서도 안되고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을 보고서 두려워해서도 안된다.
 
인간은 오로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안에서 살면된다
 
는 메시지를 그 그림은 담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에 우리가 날씨앞에서 안절부절했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이 중요한 진리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이 말씀 이면에는 왜 이렇게 안절부절하느냐란 질책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질책속에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아라, 의심하지 말고 의지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기위해서 먼저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작은 자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 노예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 걱정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역사와 자연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앞에 닥치는 한 가지 사건에 우왕좌왕합니다. 마치 배가 풍랑에 흔들릴 때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상황과 같습니다. 가뭄이 오면 가뭄에 몰리고 태풍이 오면 태풍으로 몰리며, 그를 이겨내는 의연한 태도가 없습니다.
 
제자들이 풍랑에 시달릴 때 예수님은 고물에 위치하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고물은 배의 방향을 잡는 키가 있는 위치입니다. 주님은 역사의 고물에 위치하고 삶의 방향을 멀리 내다보시며 모든 것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인도하심에 따라 모든 것을 의탁하고 살아가는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가 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하는 계기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박성원 목사, 부산진교회 1994. 8. 28 여름을 보내며,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