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2-2 / 창 2:2~3):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는?

성경: 2:2-3


오늘 우리가 공부할 성경은 방금 읽은 대로 창세기 2:2-3인데 이 본문은 안식일에 관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기독교신앙 가운에 안식일은 상당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공부한대로 안식일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는 동안에 이스라엘 민족의 영성생활에서 강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포로생활을 하면서 깨달았던 것은 하나님때문에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민족이 해방이 되고, 하나님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되었는데 조금 살 만하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타락하고 부패해서 나라가 망하고 결국 포로로 잡혀오게 되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원칙에서 벗어났던 잘못을 철저하게 반성하는 의미에서 하나의 구체적인 회개운동으로 안식일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창세기의 안식일은 철저한 회개운동, 즉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서는 안된다는 강조를 배경으로 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안식일제도가 그만 포로후기, 특히 예수님 오실 때 쯤에 와서는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기 위한 제도로서가 아니라 지키기 위한 율법으로서의 의미가 더 강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 바리새인들은 아주 깐깐하게 안식일 준수에 대한 규정을 강화하였고 그러다가 보니 안식일 본연의 의미는 사라지고 지키는 의무로서의 개념만 남아있는 셈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헌금을 바치기로 하여 준비했다가 그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었는데도, 한정된 돈을 안식일 규정을 지켜 헌금을 하기로 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은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충고하신 경우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사역하시면서 가장 많이 바리새인들과 부딪친 것이 바로 안식일을 규정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타성화된 개념을 바꾸기 위해 안식일에 병도 고치고 사람들과도 어울리고 하면서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혁명적인 발상으로 안식일 본래의 의미를 다시 찾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가 우리 기독교 교회사 속에도 있습니다. 17세기에 영국의 청교도들이 안식일의 의미를 다시 강조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삶을 살자는 의도에서 시작했습니다. 너무 세속화되고 너무 인간중심적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살기 위해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의 운동이 그렇듯이 얼마 지나면 타성이 붙게 됩니다. 17세기 청교도들의 안식일 강조도 같은 길을 걸어 점점 율법화되어서 안식일에는 일을 해서는 안되고, 돈을 주고 무엇을 사도 안되고, 카드놀이나 춤을 춰도 안되고 하면서 안되는 면만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교회의 선교를 바로 이 청교도 후예들이 했습니다.그래서 자연히 엄격한 안식일제도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선교초기의 기록들을 보면 안식일에 얽힌 이야기가 여러가지 많이 나옵니다. 선교사들은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에 대한 생각조차도 해서 안되고, 친구를 만나서도 안되고, 외출해서도 안되고, 성경이외에 다른 책을 - 그것이 아무리 좋다해도 - 읽어서도 안된다고 했습니다.심지어 안식일에 직장에서 나오라하면 그 직장 때려치우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한국은 농촌이 태반인데 농사는 계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이런 엄격함은 농사에 많은 지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교인들이 천주교에서는 오전에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들에 나가서 일을 해도 좋다고 하는데 우리 개신교는 안됩니까 하고 물으니까 선교사들이 안된다고 했습니다.그래서 이 대답을 들은 교인들이 안된다니까 안하기는 했지만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계속 가물다가 주일날 비가 오면 논에 물을 대야하는데 그런 경우에도 규칙을 지키는게 더 중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안식일은 상당히 엄격한 날로 인식된 것이 사실이고 오늘까지도 주일성수의 의미를 이와 유사하게 가르치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철저히 기억하는 면에서는 참으로 좋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존의 문제와 관련되지 않는 의무감에 짓눌리게 되면 억지로 하게 되고, 습관화가 되니까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가 안식일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하기 위해 오늘 이 창세기의 하나님의 안식일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질을 이해하게 되면 형식을 지키는 일은 자동적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안식일에 대한 개념과 관련해서 그 본질을 4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안식일의 신앙적 의미인데 그것은 이 세계와 그 안에 거하는 피조물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장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6일을 열심히 일하고 제7일에 우리의 모든 하던 일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열심히 일을 하지만 결국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섭리속에 있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흩어진 파편과 같은 우리의 일들이 하나님 안에서 매듭이 지어진다는 고백입니다. 잠언 16:1, 3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서로서 나느니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또 ‘사람이 그 길을 계획할지라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불의한 사람의 계획은 결국 실패로 끝나는 것이나, 진실된 사람의 계획은 고난 속에서도 반드시 승리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보여주는 인도하심입니다. 우리가 6일동안 우리의 삶을 살다가 안식일에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가지 일을 계획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치면서 살지만 그 모든 계획의 승인과 인도하심은 하나님께 있으니 당신의 자비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소서 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일하는 날은 6일이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날은 하루이지만 이 완전한 하루가 불완전한 6일을 결재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둘째 안식일에는 하나님의 인도주의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만을 생각하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항상 이웃을 생각하라는 말씀이 함께 나옵니다. 이 이웃에 대한 생각이 바르게 되려면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도 얼른 생각하면 하나님만을 생각하라는 것처럼 들리지만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면 자연히 이웃도 생각하게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경제학적 개념도 되겠는데, 안식일은 착취를 제도적으로 막는 개념입니다. 이 안식일에 대한 인도주의적 개념이 십계명 중의 4계명에 상세히 나타나 있습니다.십계명 중 4계명은 이렇게 말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저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7일에 쉬었음이라. 그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여기에 보면 하나님이 쉬셨은즉 반드시 모든 다른 일하는 사람들도 쉬게 하라는 것입니다.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남종과 여종 심지어 짐승까지도 쉬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참 지키기가 힘듭니다. 현대사회구조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하나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쉴틈도 없이 계속 부리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쉬셨으니 피조물은 마땅히 쉴 권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쉼, 피고용자의 쉼은 신적인 권한으로 부여된 인도주의적인 쉼입니다. 

칼빈 선생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회사의 고용자가 노동자의 월급을 조금 가로챘다면 횡령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죄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그 노동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총을 가로챘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쉴 수 있는 은총도 모든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에서는 높은 분들이 예배드리러 올 때 기사가 모시고 와서 예배를 드릴 동안 밖에 차에서 기다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천당을 혼자만 가겠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당신만 안식일을 지키고 기사는 지금 일을 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십계명의 위반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안식을 동등하게 주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또 한가지 보아야 하는 것인 이 안식일이 발전하여 안식년, 희년등으로 발전합니다. 피조물만 아니라 땅도 안식년에는 쉬어야 하고 희년이 되면 경제적인 안식, 즉 빚진 것도 탕감이 되는 대안식이 전개됩니다. 이것을 그동안 너무 이상적인 제도로만 생각해 왔었는데 지금 생태계문제, 환경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면서 인간이 이 안식일을 심각하게 다시 재고해야 한다는 소리가 세계 신학계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안식일은 이처럼 하나님의 인도주의적인 배려가 스며있는 인간을 위한 축복의 날입니다.

그 다음에 생각할 문제는 안식일은 만족의 날이요 완성의 날이란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통하여 인간에게 여유를 주시고 평화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금요일 밤에 마감뉴스를 보고 있는데 아나운서가 뉴스를 다 마치고 인사를 하면서 내일은 주말인데 남자들에게 주말에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이구동성으로 잠을 실컷 자고 싶다고 한다고 하면서 좋은 쉼이 있는 주말이 되라는 인사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현대인들이 주말에 자고 싶다는 개념은 쉬는 개념이 아니라 퍼지는 개념이지요. 6일동안 너무 일을 했기 때문에 제7일에는 녹다운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7일의 안식일을 주시는 것은 이렇게 완전히 탈진하도록 일하였으니 이제 하루 쉬어서 다시 일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의 일도 기쁨으로 하셨습니다. 만들어 놓고는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은 자신이 6일 동안 열심히 일한데 대한 만족의 개념으로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해 놓으신 그 창조의 대 역사에 대해 흡족히 만족해하시면서 쉬신 것입니다. 우리도 안식일에 쉰다는 것이 피곤해서 쉬는 개념이 아니라 자신이 6일동안 성실하게, 불의를 범하지 않고 정직하게 산 그 삶의 모습에 대해 만족스러운 상태에서 쉬어야 그것이 참 쉼이 됩니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이나 불로소득을 한 사람은 보람있게 일하지 않았으므로 안식할 의미가 사실은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깊게 보아야 할 것은 세상의 삶과 안식일의 관계입니다.우리가 가만히 보면 흔히 6일은 세상의 날이고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이다라는 구분을 6일은 세속적 날이고 안식일 하루는 종교적인 날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것은 죄악적이고 하나님의 것만 거룩하다는 이원론적 사고때문인데 사실 이것은 본래 기독교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오늘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6일동안의 창조사역에 대한 만족감을 근거로 해서 제7일에 쉬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과 안식일은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아까 6일의 결론이 제7일이라는 말씀을 드린 것도 바로 이런 의미에서입니다. 우리가 안식일에 성전에 올라온다는 의미는 6일의 삶에 대한 축하와 경축의 의미에서 오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안식일의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시켜 생각하고 결론을 내리려 합니다. 

안식일이 맞느냐 주일이 맞느냐는 논쟁을 안식교와 가끔 하는데 그 논쟁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습니다. 한가지만 말씀을 드리면 기독교가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게 된 것은 구약의 모든 예언이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는 생각에서이고, 그 성취는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인데 이 부활이 바로 주일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기독교는 약속에 대한 성취의 차원에서 주일에 안식일의 의미를 포함한 모든 하나님의 은총을 같이 경축하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주일의 의미인데 안식일은 한 일에 대한 만족이지만, 주일은 모든 세상의 죽음의 권세와 불의를 깨뜨리고 죄와 싸워서 승리하신 날이기 때문에 세상의 죄, 세상의 불의와 싸워 이기는 승리를 찬양하고 경축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주일은 우리의 불완전함을 하나님의 완전에 잇는 날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죽음의 운명을 짊어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에 이어지는 날이며, 불의에 시달리며 그 유혹에 빠지기 쉬운 우리가 불의와 싸워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그 승리에 잇대어 지는 것이며, 한계 속에 사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영원에 잇대어지는 날이 바로 주일이라는 이 웅장한 성가곡과 같은 의미를 우리는 깊이 새길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찬송가 중에서 진짜 찬송가 다운 찬송가가 몇 개 안된다고 보고 있는데 그 몇개 안되는 정말 찬송가 중에 제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찬송이 53장 찬송입니다. 이 찬송가는 예배를 시작하면서 부르는 찬송인데 거기에 보면 4절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주앞에 나올 때 우리 맘이 기쁘고
그 말씀 힘되어 희망솟아 오른다.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옵시고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자랑과 기쁨 구원의 하나님
우리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옵시고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게 하소서. 이 찬송을 우렁차게 하는 날이 바로 안식일이요 주일입니다. 기도하십시다.

<박성원 목사 1993. 3. 31.부산진교회 수요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