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감사, 한국인의 감사


신명기 26:1-11
  
          성경에 의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해마다 유월절과 오순절, 그리고 장막절 등 3대 절기를 지켰고 이 외에도 온 민족이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를 다 하나님께 고백하는 속죄일을 성대하게 지켰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킨 절기를 보면 사실 대부분 그들이 몸붙여 살던 가나안 땅의 농경문화를 그들이 하나님께 구원받은 역사적 사실과 결합하여 재해석하고 자기들의 축제로 만들어 지켰습니다. 


          이를테면 유월절은 원래 양떼를 보호하기 위해 지낸 가나안 민속 절기인데 이것을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을 구원해 주신 사건을 기념하여 유월절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또 오순절은 보리를 거두는 추수절인데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여 지켰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추수감사절에 해당하는 장막절은 다른 말로는 초막절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원래 포도밭에 초막을 지어 놓고 포도를 수확하는 절기였습니다. 이 초막을 그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 장막을 짓고 지내온 것을 생각하면서 광야생활 동안에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것을 감사하는 추수감사절로 지켰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 의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추수감사절이 되면 자기가 거둔 모든 소산물 중에 첫 열매를 광주리에 담아서 여호와께서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즉 성전에 가지고 와서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께 신앙고백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 신앙고백이란 아주 소상한 역사의 회상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에 의하면 첫열매를 담은 광주리를 제단에 놓고 난 뒤에 이렇게 고백하라고 일렀습니다.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소수의 사람을 거느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하여 필경은 거기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더니 애굽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중역을 시키므로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여기에 보면 속된 말로 오늘 우리가 밥술이나 먹고살게 된 모든 것은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유리방황하는 우리 조상에게 복주시고 또 중간에는 애굽의 종살이까지 하는 아픔도 겪었지만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기셔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 땅으로 인도하여 주셨기에 오늘 내가 이 땅에서 농사를 짓고 밥을 먹고살게 되었습니다 라고 아주 긴 역사적인 회상을 하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 서두에서도 이 신명기의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 교우 대표들의 손을 통해 광주리에 오곡백과를 담아 하나님께 드리면서 우리 민족의 역사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역사 하셨다는 사실을 공적 예배를 통해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독교가 전래된 이후의 시기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보이지 않게  역사 하셨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주주이시고 역사의 주인이심을 우리가 오늘의 삶을 바탕으로 고백하는 이것은 중요한 신앙고백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우리는 단순히 추수감사의 의미만을 담아서 이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시며 그것도 바로 우리 민족과 우리 조상과 우리 땅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대 민족이 가나안 농경 절기를 적극 수용하여 자기 민족의 역사의 맥락에서 해석하고 자기 민족화 하였듯이, 우리  기독교도 적극적으로 추석을 수용하고 이 기회를 통해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심을 고백하고 천명하는 일은 상당히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   계절에 관한 예식 이란 소책자로 여러분께 인쇄해서 나누어 드렸습니다 만,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낸 예식서에도 이제 복음을 받은지 100년이 넘은 우리 한국 교회가 추석을 우리의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면서 몇몇 교회가 실험적으로 이렇게 하는 교회가 있으나 속히 모든 한국교회가 수용하여야 하는 역사적 시점에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교회는 선진적인 그야말로 복음이 한국땅에 뿌리내리게 하는 2세기의 선교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추수감사절을 추석에 지내면서 이 두 절기 사이에 몇가지 공통점이 있음을 보고 동시에 추석에 세례를 주는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첫째 이 두 절기는 오늘 우리가 받은 은혜에 대해 추석은 하늘에 대하여, 기독교는 하나님에 대하여 그 은혜에 감사의 보답을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추석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에서 펴낸 한국민속대관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중추(仲秋, 혹은 월석(月夕)이라 부르는 명절이고 우리말에는 신라시대 때 가을의 중간이란 뜻인 가배(嘉俳)란 절기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가배란 말에서 한가위란 우리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여기에 보면 신라시대때 6부의 여자들을 반으로 나누어서 7월 보름부터 한 달 동안 베를 짜는 놀이를 하였는데 이 마지막 날이 8월 보름이었고 이 날에까지 성적을 계산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송편을 해서 대접하고 노래하며 춤추며 놀았다는데서 연유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보면 아직 종교적인 뜻은 그리 나타나지 않는데 아마 이것이 후에 유교의 제사와 연결되고 하면서 아마도 종교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인간적인 놀이와 축제도 서서히 하늘에 대한 감사로 해석해 나간 그런 흔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추석은 하늘에 대한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그런 명절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유교에서는 하늘과 조상은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조상을 섬기는 것은 곧 하늘에 대한 경모의 사상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 밑바닥에 흐르는 정서는 하늘에 대한 경외와 감사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출애굽의 경험을 한 뒤에 모든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곧 우주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를 표현하는 일은 마땅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농경축제와 역사적 구원의 경험을 결합하여 3대절기를 지키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창조신앙과 구속신앙이 완전히 하나로 결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무엇이든지 처음 것은 다 하나님께 드리면서 하나님이 모든 축복의 근원임을 고백했습니다. 오늘 읽은 신명기 26장의 말씀을 비롯하여 출애굽기 23:16에도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고 했고 또 출애굽기 23:19에서도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물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느헤미야 10:35에도 해마다 우리 토지 소산의 맏물과 각 종 과목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라. 고 하였고 에스겔 44:30에도 각종 처음 익은 열매와 너희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너희가 또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 그들로 네 집에 복이 임하도록 하게 하라.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우주를 보고 역사를 보는 중요한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모든 성취가 다 자기의 노력의 결과라고 믿는 세속화된 세상에서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얼마나 경건한 신앙의 행위입니까? 이 전통이 우리에게 철저하게 지켜진다면 인간의 교만이 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의미가 깊은 것은 추수감사절은 인간의 화합이 이루어지는 교제의 자리입니다. 우리 전통적인 추석의 풍습에는 이런 풍습이 하나 있었습니다. 소위 반보기(中路相逢)이란 풍습인데 이것은 시집간 딸이 시집과 친정 중간 지점을 골라 그리운 친정 부모를 만나는 풍습입니다. 옛날에는 시집을 가면 시집살이에 눈코뜰사이가 없습니다. 대가족의 밥을 다 해야 하고 농사철 내내 밭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시집간 딸은 친정 부모님이 보고 싶고 친정 부모님은 시집간 딸이 잘 사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도저히 바쁜 일로 짬을 낼 수가 없는데 이 추석은 바로 농사일이 끝나고 이제 추수를 앞두고 기다리는 시기임으로 조금 여유가 있으므로 이 날에 시집과 친정 중간 지점을 골라 서로 만나서 그리운 정의 회포를 푸는 것입니다. 나중에 조금 발전해서 친정에까지 갔는데 이 때는 시집의 겨울옷을 가지고 친정식구의 도움을 받아 손질하고 다듬어 오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달픈 시집살이에 다소나마 친정식구가 그 힘듦에 연대하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곧 고난받는 자에 대한 위로와 연대가 아니겠습니까?

          오늘 읽은 말씀 신명기에도 보면 11절에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난 다음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을 인하여 너는 레위 인과 너의 중에 우거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했습니다. 또 그 다음 12절에는 제 삼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감사는 홀로 즐기는 것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감사는 이웃과 나누어 즐기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성경의 전통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과 아주 밀접하게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거둔 오곡백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아간다는 인식입니다. 이 인식은 우리 모든 삶을 의미있고 복되게 하는 자세입니다. 둘째는 우리는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서 이 정신을 단련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산다는 의지의 단련입니다. 셋째는 감사는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고 특히 고난받는 자와 함께 나누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의 강령이 감사에 적용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이 뜻있고 진정한 감사가 오늘 우리들의 마음에서 솟아 올라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웃을 흐뭇하게 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박성원 목사, 부산진교회 1994. 9. 25 추수감사주일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