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선교


성 경 / 로마서 15:1-7
  
          우리 부산진교회는 교회설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동구라파선교를 추진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이것은 95주년을 기념하여 인도네시아에 선교사를 파송한 것과 더불어 이제 부산진교회 2세기에는 세계선교에 헌신하려는 우리의 결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선교의 열기가 뜨겁게 오르던 19세기에는 주로 선교사를 파송하여 교회를 개척하는 선교를 주로 했습니다. 이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는 오늘날에도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지역을 대상으로 계속되고 있는데 우리 교회가 인도네시아에 선교사를 파송한 것은 이런 차원에서 전개된 것입니다. 그러나 동구권의 경우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즉 동구권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에는 기독교의 역사가 근 천년을 기록할 정도로 기독교의 전통이 강한 나라들이고 우리와는 달리 종교라고는 기독교밖에 없을 정도로 기독교가 정신적 바탕으로 자리잡아 왔으며 심지어 공산 치하에서도 주일예배는 중단 없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속에 선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방법이 동구권 교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교회지도자를 초청하여 우리 한국교회의 신앙과 증언의 삶을 직접 체험하고 그 체험한 바를 가지고 돌아가서 그곳의 교회부흥과 신앙성장에 교훈으로 삼는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쪽 사람들만이 우리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선교방법을 에큐메니칼 선교 (Ecumenical Mission)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바로 이런 선교의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의 믿음이 약한 사람의 약점을 돌보아주고 저마다 자기 이웃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면서, 유익을 주고 덕을 세우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받아들이라 는 이 말씀은 바로 에큐메니칼 선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에큐메니칼선교는 한쪽이 다른 쪽에게 일방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아닌 서로 서로 배우며 격려하며 서로의 믿음을 촉진시키며 그래서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선교의 방법입니다.

          이와 같은 신학적 바탕에서 이번에 동구권의 선교는 세계개혁교회연맹(WARC) 총무 밀란 오포첸스키(Milan Opocensky)박사의 소개로 체코 프라하에 있는 촬스대학교(Charles University) 개신교신학부 학장 야콥 트로얀 (Jacob Trojan)박사 내외분을 초청하게 되었습니다. 트로얀 박사님은 지난 수요일 김포공항을 떠나 프라하로 돌아가면서 아직도 부산진교회에서 얻은 그 감동과 기쁨이 생생하게 남아 있으며 이제 돌아가면 체코 교회 지도자들, 목회자들, 신학교 교수들, 학생들, 평신도들 모두에게 언론과 강의 설교와 대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우리 교회에서 얻은 경험을 전하겠다. 고 하고 자기 생각에는 체코의 모든 목회자가 한국교회에 와서 목회를 배우고 가야 한다. 고 강조하고서 상기된 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우리 당회에서 트로얀 박사의 프로그램에 대해 함께 평가회를 했습니다만 오늘은 우리 모든 교우들과 그리고 특별히 이 해외선교사업에 기도와 선교비를 내면서 구체적으로 참여해 주신 여러분과 함께 트로얀 박사와 나눈 경험을 같이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이 정리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하고 싶은데 첫째는 트로얀 박사가 우리교회에서 배워간 점이고 둘째는 우리가 배운 점이고 셋째는 우리 교회가 공헌한 새로운 선교방법입니다.

          먼저 트로얀 박사가 배워간 점을 정리해 보십시다. 트로얀 박사는 한국교회를 돌아보고 느낀 점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일 먼저 말하는 것이 우리 교회 예배에서 느낀 감동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렁차고 영감에 찬 찬송소리를 들을 때마다 깊은 감동을 받았고 여러 성가대의 찬양은 전문가의 경지에 오른 것이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고 우리 예배의 마지막에 부르는 주기도송을 들을 때는 온 몸에 전율을 느끼고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감동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평가를 들으면서 예배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며 예배는 우리 신앙의 표현중에 가장 깊은 영향력 있고 깊은 뿌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특히 찬송은 언어와 문화를 넘어서서 온 지구상의 모든 크리스챤을 하나로 묶는 거대한 힘을 지닌 예배의 한 방법임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 예배를 더 영감있고 감동적으로 드리는 전통을 가꾸어 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트로얀 박사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리 찬송가가 너무 미국찬송 위주이고 부흥성가 위주라고 지적하면서 종교개혁의 전통을 담은 찬송과 한국가락으로 만든 찬송가의 토착화가 필요하다고 충고하였습니다.

          트로얀 박사가 예배에서 느낀 또 다른 점은 한국교회가 성경에 깊이 뿌리를 내린 교회라는 것입니다. 구라파 신자들이 빈손으로 교회에 오는 것과는 달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개인이 성경을 직접 들고 예배에 나오며 성경봉독 때나 수요강해 때 일일이 성경을 찾아가면서 말씀을 듣는 것이 아주 인상깊었다고 하였습니다.

          두번째 받은 강력한 인상은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의 자기 희생적인 헌신이라고 하였습니다. 흔히들 한국교회의 성장은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자기가 돌아보고 느낀 바는 기적이 아니라 목회자와 모든 성도의 자기 희생적인 헌신이 없었다면 이런 성장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시간과 물질과 정성과 교회 일이라면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는 이 모습이 오늘 한국교회의 저력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보기에는 한국교회 목회자는 마치 신들린 사람들처럼 목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정성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서 목회를 하는 것을 보고 앞으로 체코의 목회자들이 배워야 할 점이 바로 이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이 목회자와 함께 혼연일체가 되어 자기 맡은 바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 한국교회의 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한국교회의 재정적 자립도를 보고 감탄하였습니다. 십일조와 감사헌금, 특히 추수감사헌금의 결과를 보고서 그는 이것은 인간이 기뻐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라고 했고 이 재정적 자립이 곧 한국교회를 어떤 국가나 사회의 간섭으로부터도 자유하게 하는 힘이라고 했습니다. 이외에도 교우의 장례식에 친구교우들이 모여 끝까지 위로하는 일, 구역예배에까지 함께 모여 서로의 신앙을 격려하는 일, 남전도회, 여전도회, 성가대, 주일학교, 각 위원회, 청년회 등 각 분야에서 받은 바 사명을 감당하는 일, 모두가 다 감동적이었다고 합니다.

          토로얀 박사는 돌아가면 이렇게 자기 교인들을 설득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체코신자들 중에 가장 경건한 신자도 교회에 헌금은 하지만 자기의 직업생활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하는데 한국에 와서 보니 자기 직업생활에도 충실하고 교회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헌신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증언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강력한 전통을 체코교회가 배운다면 단시간내에 체코교회는 부흥하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말씀 1절에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 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약한 자를 잘 보살피면서 믿음의 용기를 얻도록 도와주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한국교회가 믿음이 다른 나라의 신자들보다 월등하게 좋다는 교만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되겠습니다 만 그래도 왕성하고 진지한 우리의 믿음이 체코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의 용기를 북돋우어 줄 수 있다는 이것이 바로 성경이 권면하는 말씀 그대로를 우리가 행하게 되는 셈입니다.

          이번에는 트로얀 박사가 우리교회에 끼친 공로를 한번 정리해 보십시다. 우리는 이 분을 통해 어쩌면 영원히 우리에게는 생소하게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체코라는 나라와 그곳의 교회에 대해 충분치는 않지만 상당히 알게 되었습니다. 체코의 역사, 특히 과거 42년동안의 공산치하의 체코상황과 교회상황에 대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이 이념적 갈등을 겪어왔고 지금도 겪고 있으며 앞으로 통일을 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더없는 값진 정보였고 지혜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첫번째 얻은 교훈은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입니다. 트로얀 박사는 여러 강연을 통해 사회주의의 이상자체를 나쁘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회주의가 내 건 환상은 요한계시록 21장에 나타나 있는 것과 비슷할 정도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매력을 끌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사회주의가 실패했느냐? 두 가지 이유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는 이 이념을 인간의 자유와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이루려 하지 않고 강압과 독재와 폭력과 감시와 위협으로 이룩하려고 했다는데서 첫번째 실패의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이상도 비밀경찰과 통제와 감시와 강압으로는 이룩될 수 없습니다. 만약에 복음을 전파는 것이 강압에 의해서 되었다면 오늘날 복음은 결코 이토록 오랫동안 넓게 퍼져나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중국공산당이 깨달은 바이기도 합니다. 문화혁명으로 교회를 10년이상 박해했는데도 모택동 사후 교회에 자유를 주었을 때 교회가 불일듯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을 보고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자기들은 정치적 통제력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 교회는 아무런 통제력도 없는데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느냐 하면서 교회로부터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폭력과 강압은 커녕 오히려 박해받고 외면 당하면서도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자유의 힘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우리 교회로서는 더욱 중요하게 들어야 할 이유인데 사회주의가 인간 중심적이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1980년대말에 사회주의권이 변화를 가져오게 된 직접적 원인은 사실 고르바쵸프의 사회주의에 대한 개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고르바쵸프가 그 때 내건 사회주의 개혁안이 뭐냐하면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 였습니다. 그런데 이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 는 트로얀 박사가 자주 언급한 소위 1968년 프라하의 봄 (Praha's spring)때 나온 아이디어입니다. 그러나 이 개혁의지가 실패하고 난 뒤에 사회주의의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진리를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운영하고 인간이 조작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조작된 진리는 영원히 승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강압적으로는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체코의 종교개혁자 존 후쓰(John Huss)의 말대로 사랑과 진리 그대로만이 힘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트로얀박사의 이런 평가를 들으면서 만약에 사회주의가 성공하려면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 가 아니라 신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 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비젼이 바로 이런 비젼입니다.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는 내 아들이 되리라.

하나님을 역사에서 추방하고 인간이 진리를 조작하고 통제하는 것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그 최종적 권위가 주어져야만 된다는 것이 역사의 대법칙이라는 우리가 늘 옳다고 생각해 오던 그 평범한 진리가 맞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자기 삶의 영역에서 제외시키고는 영원한 승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굳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역사의 평가는 통일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지혜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사회주의의  비젼은, 트로얀박사가 분석한 바에 의하면 요한계시록의 그 비젼과 흡사한 그 비젼, 인간이 모두 평등하고 인간이 모두 같이 나누는 그 순수한 이상, 이미 몰락한 사회주의라는 이념보다는 사회정의(Social Justice) 그 자체는 포기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아름다운 비젼도 인간이 역사를 주장하는 것으로는 완전히 정의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김일성의 사상이 갖고 있는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김일성의 사회주의와 체코를 비롯한 동구권의 사회주의 사이에는 한 가지 분명히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민족문제입니다. 동구권의 사회주의는 민족이 말살당한 사회주의이고 북한의 사회주의는 민족을 앞세운 사회주의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체사상입니다. 동구의 사회주의가 몰락한 반면 북한의 사회주의가 몰락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민족을 끌어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유 때문에 민족문제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주체사상이 매력이 있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체사상은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그 자리에 인간이 올라가 앉아 있기 때문에 영원히 진리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진리의 소유자이시고 하나님만이 진리의 판단자이시고 공급자이시기 때문에 그 자리에 근원적인 죄를 갖고 있는 인간이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우리의 분석은 매우 예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번에 역사의 진리에 대해 터득한 셈입니다. 동구권 사람들이 40년동안 몸소 체험한 그 착오와 북한이 아직도 그 속에 매몰되어 있는 그 착각을 우리는 쉽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트로얀 박사는 통일 이후에 대해서 항상 이렇게 충고해 주었습니다. 통일 이후에 북한동포를 따뜻하게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너그럽게 받아주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좌절시키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거듭 우리에게 이 점을 권고합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 "이 권면이 역사를 바르게 보고 통일을 위한 차분한 준비를 하는데 좋은 지혜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서 얻은 수확은 우리 부산진교회가 한국교회앞에 새로운 선교의 방법, 특히 효율적인 동구라파선교의 방법을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동구권이 처음에 열렸을 때 한국교회의 선교적 열정은 너무 과도하게 표현되어서 마구 선교사를 파송하고 거기에서 자기 교파 교회를 세우려고 경쟁적 선교를 하는 바람에 많은 문제점을 나았습니다. 심지어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는 정부차원에서 한국정부에 선교사의 입국을 막겠다는 통보까지 받았습니다. 동구라파의 선교가 이처럼 혼선을 빚고 있는 중에 우리 교회가 이번에 한 선교방식은 많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이번에 한 이 프로그램을 기독공보를 비롯하여 국민일보, 새누리신문, 교회복음신문, 들소리신문, 기독교연합신문, 심지어 보수측 잡지인 두란노서원이 내는 목회와 신학에서까지 앞다투어 보도했습니다.

          이것은 약점을 가진 이웃의 입장을 잘 이해하면서 서로 존중하고 서로 배우는 선교방법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에큐메니칼 선교(Ecumenical Mission)방법입니다. 트로얀 박사는 우리 교회를 심층적으로 연구함과 동시에 부산과 전국의 다른 교회와 학교도 방문하여 같이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동래중앙교회, 초읍교회 등 우리 교단의 교회와 부전교회, 수영로교회등 합동측 교회들도 방문하고 부산신학교, 호남신학교, 전주한일신학교와 기장의 한국신학대학도 방문하고 통합측 목회자 뿐아니라 합동측 목회자 모임인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서도 강연하였습니다. 우리 부산지역의 목회자들과도 만나고 부산대학교 기독인교수들과의 만남도 가졌습니다. 함께 나누고 함께 격려하는 그런 나눔의 선교였습니다.

          이것은 오늘의 본문말씀 5절의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하신 말씀대로 나눔의 선교를 통해서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체코의 크리스챤과 한국의 크리스챤이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런 선교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교우 여러분, 저는 이번에 우리 교회가 비록 트로얀 박사 내외분을 초청하였지만 그 분들이 이제 돌아가서 할 일들을 생각하면서 우리 교회가 강사가 되어 체코에 큰 신앙부흥회를 하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복음의 씨를 뿌렸으니 하나님이 거두시게 될 것입니다. 이 복음의 농사가 좋은 결실을 맺게 될 수 있도록 같이 기도하고 협력하여 최후에는 우리 모두가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

<박성원 목사, 부산진교회 1994. 10. 2 트로얀 목사 초청후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