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직분

성 경 / 사도행전 6:1-6

오늘 우리는 선교 2세기의 부산진교회를 위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안수집사와 권사를 선출하려고 합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지는 직책은 무수히 많습니다. 모든 직책이 나름대로 성스럽고 사회나 인류에게 공헌하는 직책이겠으나 어떤 의미에서 보면 모두 개인적인 희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떤 단체의 장이 된다거나 심지어 대통령이 되는 것도 국가의 중임을 맡는 의미가 있지만 개인의 영예와 관계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이 직분은 개인의 영예와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들이 피하려고 하는 십자가가 메워지는 것이고 나의 많은 자유를 제한하고 헌신해야 하는 직책이기 때문에 욕심이 생기는 그런 자리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 직책만큼 영광스런 직책도 없습니다.
 
독일말에 사회를 나타내는 두 가지 말이 있는데 하나는 “게셸샤프트”(Geschelshaft)이고 다른 하나는 “게마인샤프트”(Gemeinshaft)입니다. 이 두 말이 다 사회 혹은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현저한 차이가 있읍니다. 쉽게 말하면 “게셸샤프트”(Geshelshaft)는 자기가 투자한 만큼 이익을 가져오는 사회를 말합니다. 그러나 “게마인샤프트”(Gemeinshaft)는 자기의 것을 투자하고서도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바치는 사회를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독일말로는 게마인데(Gemeinde)라고 부르는데 이말은 자기의 것을 투자하고서도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헌신하는 공동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릅니다.
 
교회의 직분이란 나의 것을 바치고 그리고선 아무것도 내게 돌아오는 것이 아닌, 바치는 것으로, 수고한 것으로, 그것이 그대로 영광이 되고 의미가 되는 직책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해 하는 이 일이 무슨 일이냐 하는 것은 거듭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긴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대교회의 배경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본문 말씀은 오늘 우리 교회처럼 초대교회가 사도들의 일곱보조자를 선택하는 행사입니다. 이 일곱집사를 택하게 된 배경은 아주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것이었습니다. 6장 1절에 따르면 예루살렘교회의 신도수가 점점 불어나게 되었는데 교회가 커지니까 작을 때처럼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는 고아나 과부들 그리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이 말씀을 배우고 예배드리는 일 이외에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는데 신도수가 많아지고 교회가 커지니까 그만 구제하는 일에 말썽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교회는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소위 터줏대감들이고 헬라파 유대인들은 유다를 떠나서 흩어져서 살던 유대인들입니다. 그런데 구제물자를 나누는데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은 소외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문제는 처음에는 간단한 것 같았으나 나중에는 점점 문제가 커져 갔습니다. 말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급기야는 예루살렘 교회를 목회하고 있던 사도들까지 구설수에 말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열두사도들이 신자들을 다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사는 것인데 그것은 제쳐놓고 맨날 구제에 부당함 같은 논쟁만을 하는 것은 옳지 않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들이 이런 일에 말려 말씀을 전하는 일도 방해를 받으니 이 일을 위해 신도들가운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듣는 일곱을 택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도들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전하는 일에 전념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도들의 제안을 듣고 온 회중이 찬성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교회의 덕이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교회에 집사가 등장하는데 아마 이것이 교회가 조직화되는 시초가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교회는 즉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을 비롯하여 일곱명의 집사를 택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앞에 그들을 세웠습니다. 그 때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도들로부터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공식적으로 위임받는 절차였습니다. 그러니까 집사의 선택은 사도들이 담당해야 할 구제의 업무를 분할받아서 일을 하는 것이니까 사도들의 보조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교회의 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집사를 택한 이유중에 하나가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이 자꾸 매일 구호에서 빠지게 되니 이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결국 선택된 일곱 집사는 전부 헬라파 유대인 출신이었습니다. 이 말은 교회의 평화를 위해서는 권력을 과감하게 나눈다는 정신이 그 속에 있었고 동시에 그 일곱 집사가 헬라파 유대인들이었지만 그 이후에도 그것 때문에 교회에 어려움이 없었으니까 그로부터 교회가 균형있게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 말씀이 7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한데서 증명이 됩니다.
 
이 집사의 선택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이 작은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오늘 2000년을 거쳐 전 세계에 퍼지기까지 집사들의 헌신적인 수고가 없었든들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종교개혁자 칼빈은 교회를 더 민주적인 공동체로 만들고 하나님의 일을 더 조직적으로 하기 위해 교회의 직분을 넷으로 구분했는데 첫째는 목사, 둘째는 장로, 셋째는 교사 그리고 넷째는 집사로 구분하였습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교회를 인도하는 목자로서의 역할을 전담하고 장로는 신도들의 생활이 복음에 합당한가를 살피고 지도하며 교사는 신학을 가르치고 집사는 병원이나 양로원 고아원등을 돌아보며 교우들의 아픔을 위해 돌보아주는 일을 했습니다.
 
이 집사의 제도가 구라파교회에서는 잘 정착되어서 아주 활발하게 교회의 봉사활동에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독일교회의 경우에는 봉사가 교회의 선교에 앞설 정도로 강조되어 있는데 이 교회의 봉사는 교회에서 떨어져서 사회 깊숙히 들어가서 교회가 사 회를 위해 봉사하는 그런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보통 봉사관이 사회속에 지어져서 노인들, 장애자, 고아와 과부, 나그네 등 성경에 나오는 그대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는 일을 하고 여기에 가면 이제 전부 집사들이 봉사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독일교회의 집사들은 특히 세계 2차대전 때 남편을 여읜 많은 여성들이 집사가 되어 평생을 그 봉사관에 살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라파교회의 전통에 비추어 볼 때 우리 나라 교회의 집사는 너무 교회안의 일에 매몰되어 있는 것 같고 때로는 봉사직이라는 개념보다는 신앙의 년조가 올라가면 마치 승진하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봉사하기 위해 자기를 바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도 교회안의 일에서 점점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차원에서 집사의 직분이 주어지고 그런 차원에서 일이 진행되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권사제도의 경우 이 제도는 우리나라에서 특이하게 생겼는데 이 권사제도는 사실 성경이나 다른 교회전통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권사제도가 생긴 최초의 이유는 이북 교회에서 제일 처음에 시작이 되었는데 목회자 사모가 교회에서는 아무런 직분이 주어지지 않고 또 여전도사가 직무를 다 마치고는 아무런 직분이 없으니 목사 사모와 여전도사를 교회의 직제안에 두기 위해 그들에게 주려고 창안한 직분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여신도에게로 넘어가게 되어 이제 교회의 한 직제로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임무를 우리 총회 헌법에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권사는 교회의 택함을 받고 제직회의 회원이 되며 교역자를 도와 궁핍한 자와 환난당한 교우를 심방하고 위로하며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 힘쓴다.
 
어쨋든 모든 교회의 직분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공동체를 든든히 세워가고 그 목회적, 선교적, 봉사적 사명을 수행해 나가기 위해 목회자를 도우는 직책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는 안수집사 열 명, 권사 열 명을 선택하여 부산진교회 선교 2세기를 힘차게 봉사할 일꾼을 선택하게 됩니다. 성경에 나온대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 듣는 사람을 택해 이들의 봉사를 통해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로 부터 부여받은 모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십시다. 아멘.
 
<박성원 목사, 부산진교회 1994. 11.13 권사,안수집사 선거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