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문서 1 - 일치 - 하나님의 선물과 일치로의 부르심, 그리고 우리의 헌신

하나님의 선물과 일치로의 부르심, 그리고 우리의 헌신

GOD'S GIFT AND CALL TO UNITY- AND OUR COMMITMENT
 
(번역 :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1. 창조세계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우리는 창조세계의 다양성 안에 깃든 그 생명력을 찬미하며, 창조세계의 선함(창세기 1장)으로 인해 감사드린다. 따라서 변혁시키시는 성령을 힘입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화해하게 된 온 창조세계가 일치와 평화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에베소서 1장)

우리의 경험
 
2. 오늘날, 온 창조세계, 즉 이 세상과 거기 거하는 사람들은 저 깊은 곳에서 나오는 희망과 극도의 절망, 그 사이의 긴장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인간 문화의 다채로움으로 인해, 지식과 발견으로 말미암은 경이로움으로 인해, 공동체들이 재건되고 적대적 관계에 있던 자들이 화해함으로 인해, 그리고 사람들이 치유 받고 배를 치울 수 있게 됨으로 인해 감사드린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정의와 평화를 위해 함께 일하면서 기쁨을 느낀다. 이 모든 것들은 희망과 새로운 시작의 징조이다. 한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울부짖고 있는 자리가 있음에 또한 애통함을 느낀다. 사회적 · 경제적 불의, 가난과 기근, 탐욕과 전쟁으로 우리 사는 세상은 황폐하게 되었다. 폭력과 테러리즘과 전쟁, 특히 핵전쟁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실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HIV/AIDS와 그 밖의 다른 전염병들로 인해 고통 받고 있으며, 고향에서 쫓겨나고 땅을 박탈당하기도 한다. 숱한 여성들이 폭력과 불평등 및 인신매매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남성들 중에서도 학대당하는 이들이 있다. 사회 주변부로 쫓겨나고 배제된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우리의 문화로부터 소외되고 이 땅과 단절될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 창조세계는 오용되어 왔으며, 따라서 우리는 생명의 균형에 대한 위협과 점증하는 생태적 위기 그리고 기후변화로 말미암은 결과에 직면해 있다. 이것들은 우리와 하나님, 우리와 이웃, 그리고 우리와 창조세계와의 관계가 뒤틀려 버렸다는 징조들이며, 생명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3. 우리는 교회 안에서도 축제와 슬픔 사이에서 그 비슷한 긴장을 경험하고 있다. 세계 도처의 기독교 공동체들이 새롭고도 전에 없던 다양성을 갖추며 성장해 나감에 있어 활력 넘치는 생명력과 창조적인 에너지를 보여주고 있다. 교회들 가운데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임은 물론 그리스도께서 하나 되라 부르셨음에 대한 자각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교회가 고통과 계속되는 박해에 대한 공포를 경험하는 곳에서, 서로 다른 전통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정의와 평화를 위해 봉사하며 연대함은 하나님 주신 은총의 또 하나의 표지라 할 수 있다. 그간 에큐메니칼 운동은 일치가 증대될 수 있는 모판을 만들어 줌으로써 새로운 사귐을 장려해 왔다. 어떤 곳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속한 현지 공동체 안에서, 또 지역적 차원에서 새로이 합의된 약속 및 보다 긴밀한 협조 안에서 더불어 일하면서 증인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서로 나누고 배움으로써 정의와 평화를 위해, 그리고 아름답지만 한편 상처 받고 있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온전성을 보존하기 위해 함께 일하도록 부르심 받았음을 점점 더 깨달아 가고 있다. 이렇게 심화되는 관계들은 새로운 도전을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이해의 지평을 넓혀준다. 
 
4. 그러나 다양성이 분열로 변질되고, 우리가 서로에게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시종일관 인지하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상황도 경험하고 있음을 우리는 슬프게 생각한다. 우리는 성찬의 교제 식탁 주위에 다 함께 모일 수도 없는 형편이다. 분열을 일으키는 문제들이 남아 있는가 하면, 새로운 문제들이 날카로운 도전을 불러일으키며 교회 안과 교회 사이에서 새로운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쉽사리 각자의 전통과 공동체 안으로 움츠러 들어감으로써 다른 이들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선물에 의해 도전받지도, 풍성해지지도 못하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신앙이라는 창조적이고도 새로운 삶 안에 일치에의 열정, 혹은 다른 이들과의 친교에 대한 갈망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이로 인해 우리는 교회 안에, 그리고 교회와 교회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의와 심지어 갈등마저 보다 쉽게 묵인하게 된다. 사람들이 에큐메니칼 운동의 여정에서 조금씩 지치고 실망함에 따라 우리는 주춤하고 있다.
 
5. 우리는 인간의 약점을 지닌 자들로서,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항상 영광을 돌리지는 않는다. 사람들을 배제시키거나 주변화시키고, 정의를 추구하기를 거부하며, 평화롭게 살기를 꺼리고, 일치를 추구하지 않으며, 창조세계를 착취함으로써 생명을 학대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는 선물을 거부하는 셈이다.
 
우리가 공유하는 성서적 비전
 
6. 우리가 함께 성서를 읽을 때, 창조세계 안에 있는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의 자리, 즉 교회를 이해하는 눈이 열린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 및 모상으로 창조되었으며, 생명을 돌보는 책임을 부여받았다.(창세기 1:27-28)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전개함에 있어 결정적인 하나의 순간을 나타내고 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백성들이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고, 가난한 자들과 버려진 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돌보며, 뭇 민족의 빛이 되라고 불렀다.(미가 6:8, 이사야 49:6)
 
7.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통해,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통해 분리와 증오의 장벽을 허무시고, 새로운 언약을 세우셨으며, 자신의 몸 안에서 참다운 일치와 화해를 이루셨다.(에베소서 1:9-10, 2:14-16)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셨고, 무리들을 긍휼히 여기셨으며,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마태복음 9:35-36, 누가복음 4:14-24) 자신의 삶과 죽으심과 부활에 의해, 그리고 성령의 힘을 통해, 예수께서는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생명의 교제를 밝히 드러내셨고,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 교제하는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셨다.(요한1서 1:1-3) 예수께서는 세상을 위해 그의 제자들이 하나 되기를 기도하셨다.(요한 17:20-24) 예수께서는 일치와 화해라는 자신의 메시지와 사역을 그의 제자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통해 교회에 위임하심으로써, 맡은 바 그 분의 사명이 계속 이어지도록 교회를 부르셨다.(고린도후서 5:18-20) 믿는 자들의 공동체는 시작부터 더불어 살았으며, 함께 빵을 떼고 기도하면서, 가난한 자들을 돌보면서, 복음을 선포하되 다른 한편으로는 불화나 분열과 맞서 싸우면서 사도적 가르침과 친교에 전념했다.(사도행전 2:42, 사도행전 15장)

8.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보여 주신 하나 되게 하시고, 화해시키시며, 세상에 대해 자신을 희생한 그 사랑을 체현하고 있다. 친히 연합하시는 하나님의 삶, 그 중심에는 십자가도 영원하며 부활도 영원하다. 그것은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를 통해 드러난 하나의 실재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온 창조세계를 새롭게 하실 것을 기도하며 간절히 기다린다.(로마서 8:19-21)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보다 앞서 계시며, 언제나 우리를 놀라게 하시며, 우리의 허다한 잘못을 용서하시고, 새 생명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신다.
 
오늘날 일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
 
9. 에큐메니칼의 여정에 선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불러 온 창조세계의 일치를 위해 섬기게 하신 것을 더욱 깊이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교회의 소명은 다음과 같은데, 그것은 새 창조의 전조(前兆)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모든 만물에게 주고자 하시는 생명을 전 세계에 알리는 예언자적 표지가 되는 것이며, 정의와 평화와 사랑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봉사자가 되는 것이다.
 
10. 새 창조의 전조로서의 교회에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은혜가 넘치는 선물을 주신다. 그것은 성서에 기초한 신앙(faith)이고, 성령의 권능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되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는 세례(baptism)이며, 하나님과 우리 서로 간의 교제를 가장 완벽하게 표현해 주는 것이자, 사귐을 증대시켜 이를 통해 우리를 선교로 파송하게 하는 성찬(Eucharist)이고, 모든 믿는 자들의 은사를 찾아내 키우고 또한 교회의 선교를 이끄는 사도적 목회(apostolic ministry)이다. 회합적이고 협의체적 모임들 역시도 친교를 가능하게 하는 선물이다. 성령의 인도 아래서 이 모임들은 서로의 필요와 세상의 필요를 채우면서 무엇을 합의할 것인지 분별하고, 함께 가르치며, 희생적으로 살 수 있게 한다. 교회의 일치는 획일성과 다르다. 다양성 역시 창조적이고 활력을 불어넣는 선물이다. 그러나 세례 받은 사람들이 서로 이방인이나 적이 되고,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하나 되게 하시는 실체에 해를 가해도 좋을 만큼 다양성이 그 정도로 대단한 것은 결코 아니다.
 
11. 예언자적 표지로서의 교회에 주어진 소명은 하나님께서 온 창조세계에 뜻하고 계시는 생명을 공표하는 것이다.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의견 차이에서 비롯된 교회의 분열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좀처럼 신뢰할 수 있는 표지라 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민족성, 인종, 성, 장애, 권력, 사회적 지위, 그리고 신분에 기반한 분열이나 주변부화 역시 일치에 대한 교회의 증언을 무색케 한다. 신뢰할 수 있는 표지가 되려면, 더불어 사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인내, 겸손, 관대함, 상대방에 대한 주의 깊은 경청, 상호 책임, 포용성, 그리고 “너는 내게 쓸데가 없다”(고린도전서 12:21)라고 말하지 않고 기꺼이 함께 하려는 의지 등의 자질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정의를 세우고, 평화 속에 함께 살며, 저항과 수고를 침묵시키는 안이한 평화에 결코 안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의와 더불어 도래하는 진정한 평화를 위해 싸우는 공동체가 되도록 부르심 받았다. 오직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영에 의해 화해되고 새로워질 때라야 교회는 모든 사람들과 온 창조세계가 화해된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진정 증언할 수 있게 된다.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의 참된 표지이자 신비인 때는 다른 아닌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고난 당하신 것처럼 때론 고난 받으며 약하고 가난한 바로 그 때이다.
 
12. 봉사자로서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거룩하고 생명을 긍정하는 계획을 나타내 보이도록 부르심 받았다. 교회의 가장 기본적 본성은 선교이며,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 안에서 온 인류와 온 창조세계에 주시려 작정한 교제라는 선물을 증거하기 위해 부르심 받았고 또한 보내심 받았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섬기고 전도하며 선교하면서 하나님의 생명을 세계에 제공하는 일에 참여한다. 성령의 권능 안에서 교회는 다른 상황과 다른 언어와 다른 문화 속에서도 하나의 동일한 응답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복음을 선포해야 하며, 하나님의 정의를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의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함께 살고 있으며, 따라서 가능한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들 및 창조세계의 안녕을 위해 협력하도록 부르심 받았다.
 
13. 교회의 일치, 인간 공동체의 일치, 그리고 온 창조세계의 일치는 하나다. 그것들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교회의 일치는 정의와 평화의 삶을 요구하는데,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세계 안에서 정의와 평화를 위해 함께 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의 헌신
 
14.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교회의 자리를 확신하는 바이며, 우리의 분열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증거가 약화됨은 물론, 하나님께서 모두에게 원하시는 그 일치에 대한 증거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음을 비통한 마음으로 고백하면서 우리 교회 안에, 그리고 교회와 교회 사이의 분열을 회개한다. 우리는 정의를 행하고, 평화를 위해 일하며, 창조세계를 지탱하는 데 있어서 실패했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하지만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며 책망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계속해서 일치로 부르신다. 우리는 창조하시고 재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며, 하나님께서 세상에 공급하고 계시는 새로운 생명의 전조, 신뢰할 수 있는 표지, 그리고 유능한 봉사자로서의 교회가 되기를 갈망한다. 일치의 기쁨과 희망 그리고 열정이 새로워지는 때는 바로 우리가 생명의 모든 충만함으로 우리를 손짓하여 부르시는 하나님 안에 있을 때이다.   
 
15.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들의 친교의 기본적인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예배와 공동의 삶 안에 표현된, 또한 세상에 대한 증언과 봉사를 통해 표현된, 하나의 믿음과 하나의 성례전적 친교 안에 있는 가시적 일치로 서로 부르고, 또한 세상이 믿을 수 있도록 그 일치를 향해 나아가는 것”에 계속 헌신하기를 서로에게 촉구하는 바이다.
 
16. 이와 같은 공동의 소명에 충실하면서 우리가 주님의 한 식탁에 둘러앉아 우리의 일치를 표현할 때, 우리는 함께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그리고 사도적 교회’라는 완전한 가시적 일치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교회의 일치를 추구함에 있어 우리는 다른 전통들이 가진 선물을 받아들이도록 우리를 개방할 것이며, 아울러 우리 전통이 가진 선물 또한 그들에게 제공할 것이다. 우리는 신학적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 새로운 목소리와 다른 접근 방법론에도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우리는 정의와 평화와 창조세계의 치유를 위한 노력을 강화할 것이며, 함께 현대의 사회적 · 경제적 · 도덕적 문제들이 제기하는 복잡한 도전들을 다루어 나갈 것이다. 우리는 보다 공정하고 참여적이며 포용적으로 함께 사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다른 신앙의 공동체들과 함께 인류의 안녕과 창조세계의 안녕을 위해 협력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신 바로 그 일치(요한복음 17장)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할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역을 통해 가져다주신 믿음과 사랑과 열정의 일치, 예수께서 아버지와 서로 나누신 것과 같은 일치, 삼위일체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의 교제 안에 내포된 바로 그 일치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선교와 봉사 안에 있는 일치를 위한 교회의 소명을 부여받는다.
 
17. 우리는 우리가 의지하고 기도하는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눈을 돌린다.
 
     오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
     그리하여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희망을 발견할 수 있도록,
   상처 입은 세계가 치유 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갈라진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이 우리 눈에 드러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그 분을 통해,
     그리고 우리가 한 몸인 그 분 안에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당신과 당신의 성령과 함께,
     찬양 받으시기에 마땅하신, 한 하나님,
     이제와 그리고 영원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