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문서 3 - 정의 - 모두의 생명, 정의, 평화를 위한 경제: 행동촉구의 부름

모두의 생명, 정의, 평화를 위한 경제: 행동촉구의 부름
 
Economy of Life, Justice, and Peace for All: A Call to Action
 
 
(번역: 박성원, 영남신학대학교 교수, WCC 중앙위원)
 
 
세계교회협의회(WCC)는 2006년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제9차 총회에 보고된 아가페 부름(AGAPE Call)으로 마무리된 “인간과 생태를 중시하는 대안적 지구화(Alternative Globalization Addressing People and Earth” 즉, 아가페 과정(AGAPE process)의 후속으로 빈곤과 부와 생태 (Poverty, Wealth and Ecology)가 서로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하에 빈곤을 극복하고 부의 축재에 도전하여 생태적 온전성을 지키는데 초점을 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빈곤, 부, 생태 (PWE) 프로그램은 종교, 경제, 정치 지도자들 및 관계 기관과 지속적인 대화를 추진해 왔다. 전 세계의 에큐메니칼 지도자들, 교회 대표와 지도자들, 그리고 이웃종교 지도자들, 정부지도자들, 사회단체 등 세계의 여러 대륙과 나라들의 대표들이 이 대회과정에 참여해 왔다. 대륙별 연구모임과 협의회가 연이어 열렸는데 2007년에는 다르 에 살람 (Dar es Salaam)에서 아프리카 협의회, 2008년에는 과테말라시 (Guatemala city)에서 남미와 카리브해 협의회, 2009년에는 치앙마이 (Chiang Mai)에서 아시아 태평양 협의회, 2010년에는 부다페스트 (Budapest)에서 유럽협의회, 2011년에는 칼가리(Calgary)에서 북미협의회가 열렸다. 이 프로그램은 2012년 인도네시아 보고르(Bogor)에서 글로벌 포럼과 아가페 축연을 개최함으로써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여기 이제 제안하는 행동촉구의 부름 (Call to Action)은 빈곤과 부, 그리고 생태를 연결하는 6년간의 지역 협의회와 연구회의 결과물이다.

 
서언
 
1. 이 행동촉구의 부름은 이런 부름의 필요가 절박한 때에 이루어지고 있다. 소수의 사람들의 낭비적 부의 축재에 반해 다수의 사람들은 구조적으로 가난해 지는 데서 분명히 나타나듯이 경제적 불평등은 점점 심화되고, 세계적 금융위기, 사회경제적 위기, 생태위기, 기후위기 등이 중첩되면서 인간과 생태는 심각한 위험상태로 들어가고 있다. 대륙 별로 개최된 협의회에 참가해 온 우리는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 때로는 서로 상반된, 어떤 때는 서로 대립적 시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만약 이기주의, 민감하지 못한 외면, 이 모든 위기의 뿌리에 자리잡고 있는 탐욕의 죄악을 우리가 차단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이 지구공동체의 삶은 그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라는 인식의 공감대가 우리 안에 서서히 형성되었다. 우리는 이런 긴박감속에서 그 동안 서로 나누어 온 의견들을 종합해 교회 앞에 행동촉구의 부름으로 제안하는 것이다. 이 긴급성은 우리의 깊은 희망과 확신에서 나온다. 생명의 경제는 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금 형성되고 있다. – 그리고 바로 그 기반에 하나님의 정의가 자리하고 있다.
 
생명의 신학적, 영적 확언
 
2. 우리의 성경적 신앙의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넓은 생명 망의 일부분으로 창조하셨고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 (창 1장)고 선언하셨다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온 생명 공동체는 하나님의 생명의지의 표현이며 땅에서 생명을 가져오고 다시 땅으로 생명을 가져가기 위해 서로 협력하며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고 하나님의 집 (Oikos)의 풍성함과 다양함을 지속시킨다. 하나님의 집의 경제는 모두 를 위해 풍성한 생명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인간과 자연의 생명은 상호의존적으로 서로 함께 짜여져 있다고 인식하는 “땅은 생명이다” (Macliing Dulag)라는 원주민들의 생각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온 피조물의 생명과 하나님의 생명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세계선교와 전도협회)는 것과 하나님은 만유 안에 계신다 (고전 15:28)는 우리의 믿음을 천명하는 것이다.
 
3. 기독교를 비롯한 여러 영적 교훈들은 “좋은 삶”이란 결코 소유를 위해 경쟁한다든가, 재산을 축적한다든가, 우리 자신만의 안전을 위한 시설이나 아성을 구축한다든가, 우리의 힘을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데 사용하는 것 (약 3:13‐18)에 있지 않다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좋은 삶” (키추아(Kichua)어로 수막 카우사이( Sumak Kausay), 서 파푸아 (West Papu)어로 와니암비 아 토바티 엥그로스 (Waniambi a Tobati Engro) 라는개념)이란 삼위일체의 공동체성에서 그 전형이 잘 나타나듯이 상호성, 서로 나누는 동반자정신, 호혜성, 정의, 사랑의 친절임을 천명한다.
 
4. 피조물의 탄식과 가난한 자들의 애통함 (렘 14:2‐7)은 현재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생태적 긴급상황이 풍성한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비전과는 얼마나 적대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경고해 주고 있다.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욕구가 하나님의 우주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고 너무나 쉽게 생각해 버린다. 공동체는 해체되고 관계는 깨어지고 있다. 우리의 탐욕과 자기중심적 사고는 인간과 지구를 모두 위험하게 한다.
 
5. 우리는 이제 죽음을 야기시키는 일에서 떠나 새로운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일 (metanoia)로 우리를 헌신하도록 부름 받고 있다. 예수께서는 인간을 탐욕과 이기주의의 죄악으로부터 떠나 이웃과 온 피조물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생명 선교의 동반자로 새로운 생명의 길을 시작하도록 인간들을 부르신다. 예언자들의 부름은 우리의 현재의 경제구조 에 의해 가난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가고 기후변화로부터 가장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로부터 혹은 그들을 통하여 오늘에 새롭게 들리고 있다: 정의를 행하고 새 땅을 존재하게 하라!
 
6. 정의를 향한 우리의 비전은 성전에서 돈 바꾸는 자들을 내쫓아 내고 (마 21:12), 약한 자는 강하게 하고 강한 자는 약하게 하시는 (고전 1:25‐28), 가난과 부에 대한 관점을 재 규정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수는 주변부로 내 몰리고 제외된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화 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자비로부터 제외되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비참한 삶이 구조 악을 그대로 증거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믿음은 정의를 추구하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언하고 여성이나 어린이, 도시와 농촌 어느 곳에서든지 가난속에 사는 사람들, 원주민들, 인종차별로 억압당하는 사람들, 장애우들, 불가촉천민(dalits), 강제이민노동자들, 난민들, 종교적 소수자들 처럼 구조와 문화로 피폐되고 상처받은 민중들의 삶과 투쟁에 우리가 함께 하도록 부르고 있다. 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마 25:40)
 
7. 우리는 우리를 이웃과 다시 연결하고 (우분투상생) 우리에게 공동선을 위해 봉사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모든 형태의 주변화에 저항해 궐기하도록 용기를 부여하고, 전 지구를 구하기 위한 길을 추구하고, 생명죽임의 가치에 저항하고 혁신적인 대안을 찾는 “변혁적 영성” (세계선교전도위원회) 을 구현해야 한다. 이 영성은 필요에 따라 (행 4:35) 나누면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만족하게 생각하는 은총을 발견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8. 교회는 오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고 부르시는 그리스도의 부름을 기억하고, 경청하고,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변혁되도록 부름 받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치유와 화해의 사역을 계속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 보냄 받은 바, 즉 하나님의 백성이며 세상의 공동체가 되도록 부름 받고 있다. (아프리카의 가난, 부, 생태) 그러므로 교회는 변혁을 위한 하나님의 대행자이다. 교회는 어떤 생명부정에도 항거하며 모두를 위한 풍성한 생명을 선언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공동체이다.
 
중첩되고 긴박한 위기
 
9.현재의 삭막한 지구현실은 죽음과 파괴로 너무나도 무거워 현재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개발패러다임이 급진적으로 변혁되고 정의와 지속성이 경제와 사회 그리고 생태를 위한 견인차가 되지 않으면 우리가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제 시간이 없다.
 
10.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중들의 고통과 그들의 삶을 위한 투쟁을 양산하고 있는 세계금융위기, 사회경제적 위기, 기후위기, 생태위기들의 치명적으로 뒤얽히고 있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엄청난 시장 자유화, 탈규제화, 상품과 서비스업의 고삐 풀린 민영화들이 전 생태계를 착취하며, 사회프로그램과 서비스를 해체하고, 경제의 국경을 열어 생산을 외형적으로 무제한 성장시키게 될 것이다. 규제되지 않는 금융자본의 유동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들의 경제를 불안정하게 할 것이다. 기후위기, 생태위기, 금융위기, 외채위기 등의 다양한 면들이 서로 결합되어 이 위기들을 더욱 위태롭게 할 것이다. 이 위기들은 더 이상 따로 떼어서 다룰 수 없다.
 
11.기후변화와 온 창조세계의 보전에 대한 위협은 우리가 직면해야 할 여러 가지 위협에 중대한 도전이 되었다. 기후변화는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며 작은 도서 국가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깨끗한 물의 이용성을 감소시키며 지구의 생태다양성을 격감시킬 것이다. 이것은 식량안보, 사람들의 건강, 점점 증가하는 인구가 살 주거에 영향을 끼친다. 기후변화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생명은 불과 수십 년이란 짧은 기간 내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하게 될 것이다. 미증유의 기후변화의 도전은 자연자원의 무제한적 착취와 함께 진행되게 되어 있고 이는 지구의 파괴로 이어지며 생태환경의 근본적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지구온난화와 생태파괴는 점점 생사의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12. 우리의 세계는 오늘날 보다 더 번영한 때가 없었으며 동시에 오늘날 보다 더 불평등한 때도 없었다. 불평등은 우리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정도에 도달해 있다. 사람들은 빈곤 속으로 몰리고 감당할 수 없는 채무에 시달리도록 내 몰리고 변방화되고 삶의 터전을 빼앗기며 이전보다 훨씬 더 긴급하며 분명한 어조로 탄식한다. 지구공동체는 부의 분배에 있어 전대미문의 치명적인 불평등에 대하여 우리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정의를 행할 필요를 인식해야 한다.
 
13.탐욕과 불의, 불로소득의 추구, 불의한 기득권,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목적을 희생시키며 얻는 단기수익의 혜택들이 중첩된 위기의 원인이며 이제 이것들은 더 이상 간과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생명죽임의 가치들이 슬며시 우리 속으로 스며들어와 오늘의 구조를 지배하게 되고 지구의 재생 가능한 한계와 인간과 모든 피조물의 생명권을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삶의 양식으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위기들은 아주 심오한 도덕적, 실존적 차원을 가지고 있다. 우리 앞에 닥쳐진 도전은 더 이상 기술적이고 금융적 위기가 아닌, 윤리적 영적 위기인 셈이다.
 
14. 시장근본주의는 단순한 경제유형을 넘어선 어떤 것으로 사회적 도덕적 철학의 문제이다. 지난 삼십여 년 동안 고삐 풀린 경쟁과 삶의 모든 면들을 계산화하고 가격화하는 데서 나타난 대로 거의 신앙에 가까운 시장에 대한 믿음은 우리의 지식과 과학과 기술과 공적 의견과 언론과 심지어 교육까지도 압도하게 되었다. 이 패권적 양태가 먼저 부를 이미 부유한 계층에게로 집중하게 하도록 했고 그들의 재산증식을 위하여 자연으로부터 자원을 엄청나게 약탈하도록 허용하였다. 신자유주의 경제유형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어서 그것이 특히 이미 가난해 지고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파장을 미치도록 양산하는 혼돈을 다룰 수 없다.
 
15. 이 이념은 모든 삶의 측면에 침투하여 가족의 삶이나 지역공동체의 삶 속으로 확산되어 외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내적인 면을 파괴하면서 자연환경과 전통적인 삶의 형태와 문화를 황폐화시키고 지구의 미래를 망쳐놓는다. 이 패권적 지구 경제 구조는 우리가 알듯이 이런 방식으로 생명과 그들의 평화적 공존의 조건 양쪽 모두에 종말을 고하도록 위협한다.
 
16. 사회적 공익은 국민총성장( GDP)을 시키면 자동적으로 따라온다는 일방적 신념은 오해이다. 통제 없는 경제성장은 기후변화, 벌목, 대양산성화, 생태다양성실종 등 우리의 생태환경의 흐름을 교살한다. 생태계의 공적할당은 군사목적의 사용이나 정치, 경제 엘리트들의 (독점적) 사용으로 퇴화하고 도용되었다. 무방비상태의 채무를 대가로 자행되는 과소비는 대량의 사회적, 생태적 채무를 양산시키는데 자연에게 지는 생태채무가 미래 세대에게 엄청난 부담을 양산시키듯이 이 채무는 대부분 지구 북반부에 의해 지구남반부로 부과된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다 주의 것 (시 24:1; 고전 10:26)이라는 관념은 이제 사라지게 되었다.
 
정의의 원천
 
17. 우리는 교회와 교인들이 지속 가능하지 않는 삶의 양식과 소비적 삶에 참여하고 탐욕의 경제에 얽히게 되면 결국 불의한 구조에 관련된 공범자가 된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교회들이 번영의 신학, 자기 의, 지배, 개인주의, 편의성에 대해 계속 가르치고 있다. 어떤 교회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의의 신학보다는 자선신학을 지지한다. 또 다른 교회는 무한성장이나 무한축재에 대한 제도나 이념에 대해 문제를 삼지 못하거나 심지어 이를 정당화하기도 하고 생태파괴의 현실이나 세계화의 희생자들의 곤경을 외면하기도 한다. 어떤 교회나 교인은 근본적이고 질적인 변화를 희생시키고 단기적이고 양적인 결과에 집중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교회들과 교인들이 자기 자신의 생산, 소비, 투기행위들을 돌아보고 변화시키는데 실패하는 반면 변혁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를 위한 그들의 노력을 경주하는 교회와 교인들의 수도 세계 곳곳에서 점점 불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18.궁극적으로 우리의 소망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모두를 위한 생명의 약속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 만들기에 헌신하는 교회들과 운동들에서 이런 부활소망의 증거들을 본다. 그들은 세상의 빛이며 소금이다. 우리는 교회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변혁의 예들을 보면서 영감을 얻고 생명경제를 건설하고 생태를 꽃피우는 일을 촉진하는 여성운동, 가난 속에서 사는 민중들, 청년들, 장애우들의 운동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감명을 받고 있다.
 
19.그리스도인이든, 무슬림이든, 필리핀의 토착부족 지도자 등 수많은 신앙인들이 자신의 삶을 바쳐 자신들이 속한 땅과 지속적으로 관련 짓고 그 땅을 지속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교회들은 외채에 대한 감사를 수행하며 광산업과 지하자원 채취 회사들에게 인권침해와 환경손실에 대해 책임지라고 도전하고 있다. 남미와 유럽의 교회들은 세계화의 서로 다른 경험들을 나누며 함께 공동의 책임이면서도 또 각각의 책임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연대감을 높이고 전략적 동맹을 맺으며 함께 일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탐욕지표를 설정하고 대 탐욕 투쟁에 공동전선을 구축할 수 있는 불교인들이나 무슬림들과 국제적 대화를 진행하기도 한다. 시민사회와 함께 일하는 교회들은 생명농업을 촉진하고 연대경제를 이룩하면서 새로운 국제 금융, 경제 기구의 기준에 대해 토론하는 일에 참여하기도 한다.
 
20.여성들은 경제를 사회와, 사회를 경제와 깊이 관련시키는 여성경제와 더불어 가부장적 지배제도에 도전하는 여성신학을 발전시켜 왔다. 청년들은 검소한 생활과 대안적 삶의 양식을 위한 캠페인의 선두에 서 있다. 원주민들은 사회, 생태 채무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지구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통전적 채무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헌신과 부름
 
21.세계교회협의회 제10차 총회는 하나님의 전 창조세계의 역동적 생명력이 부의 창조를 위한 인간의 수단에 의해 소멸될 수도 있는 때에 열리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철저한 변혁을 하도록 부르시고 계신다. 변혁은 희생과 위험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변혁적 교회가 되고 변혁적 교인이 되도록 헌신하도록 요구한다. 우리는 정의와 지속성의 영성을 증언하는데 필요한 도덕적 용기를 계발해야 하며 모두를 위한 생명경제를 위한 예언운동을 일으켜나가야 한다. 이것은 사람들과 공동체를 동원하고 필요한 재원의 (기금, 시간, 능력 등)을 제공, 경제구조와 생산, 분배, 소비형태, 문화, 그리고 가치 등을 변혁하기 위해 한 단계 발전된 더욱 조직적이고 잘 조정된 프로그램의 개발 등을 필요로 한다.
 
22.변혁의 과정은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하나님의 온 창조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증진시켜야 한다. 우리는 개인과 국가이익을 넘는 미래 세대가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 어떤 책임을 가지고 있다. 변혁은 가난 속에 있는 민중이나 여성, 원주민들, 장애우들과 같이 구조적 소외로 인해 가장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포용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도전하고 생명의 사회적 생태적 구조를 파괴시키는 지배 구조와 문화를 극복하여야 한다. 변혁은 전 피조물을 치유하고 갱신하는 선교의 일환으로 시도되어야 한다.
 
23.그러므로 우리는 부산에서 열리는 제10차 총회로 하여금 모두를 위한 생명경제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공동의 목소리를 내며 에큐메니칼 협력을 강화하며 더 큰 응집을 위해 교회를 불러모으는 일에 WCC가 역할을 하는데 헌신하기를 촉구한다. 특별히 신 국제 금융경제기구 (정의로운 금융과 생명을 위한 경제에 관한WCC 성명서) 창설과 부의 축적과 조직적 탐욕에 대해 도전하고 ( 탐욕선 연구회 보고서), 생태채무를 교정하고 생태정의를 발전시키는 (생태정의와 생태채무에 관한 WCC 성명서) 아주 중요한 일들이 우선과제가 되어야 하고 향후 더 심화되도록 해야 한다.
 
24.우리는 더 나아가서 제10차 부산총회가 지금부터 차기 총회까지의 기간을 따로 정하여 교회가 “ <모두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창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의 삶을 사는 ‐ 생명경제” (Economy of Life – Living for God’s Justice in Creation)에 신앙적 헌신을 하는데 집중하도록 독려하기를 요청한다. 이 과정은 교회들로 하여금 서로 서로에게서 용기와 희망을 끌어내게 하고 일치를 강화하고 우리의 믿음의 바로 핵심에 놓여있는 아주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공동증언을 하게 할 것이다.
 
25.정의로운 금융과 생명경제”에 대한 성명서는 정직, 사회정의, 인간의 존엄성, 상호책임, 생태의 지속성등과 같은 공동 가치의 구조 속에 기초를 둔 윤리적이고 정의롭고 민주적인 국제 금융 기구의 창립을 요청했다 (정의로운 금융과 생명경제에 대한 WCC 성명서). 우리는 삶에 영향을 끼치고 정당한 삶과 가치를 통해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제공하고 사회적 재생산과 여성에 의해 먼저 이루어지는 돌봄의 일을 지원하고 생명을 지속시키는데 필요한 공기, 물, 땅, 그리고 에너지자원을 보존하는 모든 결정과정에 모두의 참여를 증진시키는 생명경제를 빚어낼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아시아 태평양에서의 빈곤, 부 그리고 생태). 생명의 경제의 실현에는 꼭 여기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비판적인 자기 성찰, 급진적인 영적 갱신, 권리에 근거한 접근 등이 필요하고. 변방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소리들이 가능한 한 많은 영역에서 들려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극대화하며, 지구북반부와 지구 남반부간, 교회와 시민사회, 국가 책임자, 각 분야와 세계 종교인간의 대화의 장을 열어 많은 사람들이 존엄성 속에 살 수 있는 삶을 부정하는 구조와 문화들에 대해 함께 힘을 모야 저항할 수 있는 협력작용을 일으키며 세무정의를 세우고 공동증언과 변호를 위한 더 넓은 장을 조직하는 일들이 필요하다.
 
26.이 과정은 어떻게 변혁적인 영성이 생명파괴의 가치들과 마주하여 저항하며 탐욕의 경제 속에 있는 공모성을 극복할 수 있는지 교회들이 서로 서로, 그리고 다른 종교전통에게서, 더 나아가서 사회운동에게서 서로 배울 수 있는 공간을 점점 키워나갈 때 그 가능성이 보이게 된다. 그것은 생명경제가 신학적으로,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함께 성찰하고 다양한 상황 속에서 어떤 구체적인 변화가 필요한지 함께 생각을 나누는 공간이 될 것이다. 그것은 빈곤 극복과 부의 재분배, 친 생태적 생산과 소비, 분배, 건강하고 공정하고 후기 화석 연료, 평화를 사랑하는 사회로 이끄는 정책과 구조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관점에서 공동 켐페인과 옹호활동을 국가적, 대륙적, 지구적 차원에서 개발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생명의 하나님이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부르신다.
하나님의 나눔의 식탁으로 오라!
하나님의 생명의 식탁으로 오라!
하나님의 사랑의 식탁으로 오라!
 
_____________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