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문서 4 - 평화 - 정의로운 평화를 향한 교회의 소명

정의로운 평화를 향한 교회의 소명
An Ecumenical Call to Just Peace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눅1:79).
(번역 : 안종희)
 
서문 :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것은 전세계 모든 그리스도교 형제자매들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진 그리스도교회의 일치된 요청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나사렛 예수께서 보여주신 본을 따라 정의로운 평화를 위한 각자의 실천의 자리로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모든 신앙 전통의 핵심 가치가 평화라는 것을 인식할 때, 이러한 요청은 각자의 신앙 전통과 헌신에 따라 평화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회는 이러한 요청을 보다 깊이 연구하고, 반응과 협력을 모색하도록 주문하였습니다. 이 요청은 2006년,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의의 결의에 대한 응답으로 이루어졌고,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의 폭력을 극복하기 위한, 화해와 평화를 향한 교회의 모색”(Decade to Overcome Violence, 2001-2010: Churches Seeking Reconciliation and Peace)을 통하여 드러난 평화에 대한 입장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정의로운 평화는 여러 민족의 현실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는 현실적인 분석과 기준이 전혀 다른 틀을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요청은 변화의 신호가 되고, 교회의 생활과 증언에서 몇 가지 중대한 의미를 보여주었습니다. 『정의로운 평화의 동반자』(Just Peace Companion) 문서는 성서적이고, 신학적이고, 인종적인 차원에서 보다 발전된 실천적 범례들과 제안들을 담고 있습니다. 2011년 5월,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하나님께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주제로 열리는 국제 에큐메니칼 평화회의를 기점으로 새롭게 솟아오를 평화를 위한 헌신적인 노력들과 함께 앞으로 세계교회협의회 총회가 정의와 평화에 대한 새로운 일치에 도달하는데 이 문서들이 일조하기를 소망합니다.
 
1. 평화를 담지한 정의. 평화 없는 정의가 가능합니까? 정의 없는 평화가 가능합니까? 우리는 너무나 자주 평화를 희생하여 정의를 세우고, 정의를 대가로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평화를 정의와 별개의 문제로 다루는 것은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시 85:10) 하신 말씀을 변형시키는 것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결핍되거나 서로 상반된 문제로 여겨진다면,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함께 일어나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함께 일해야 합니다.

2.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가 전해야 하는 않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심각한 폭력과 인권유린, 그리고 창조질서의 파괴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만일 모든 곳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면 이 세계 안에 고요한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전쟁의 소문으로 동요하고 있으며, 민족적 종교적 적개심과 인종과 계급의 차별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으며, 아직도 아물지 상처들이 남아 있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추방당하고, 집과 재산을 잃고, 자기 나라 안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인들과 아이들은 이러한 갈등의 가장 큰 피해자들입니다. 많은 여인들이 성폭행과 인신매매를 당하고, 심지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고, 군인으로 끌려가 학대당하고 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국민들은 군대와 민병대, 게릴라들, 범죄조직 혹은 정부군에 의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국가안보와 군사력 증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부에 의하여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정부는 해가 갈수록 진정한 국가안보를 이루는 일을 멀리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권력을 가진 소수의 이익을 위한 정치적, 경제적 결정을 내리는 한편에서 매일 수천 명의 어린이들이 영양실조로 사망하고 있습니다.
 
3. 성서의 가르침. 성서는 정의와 평화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사32:17; 약3:18). 이 두 가지는 인간 사회에 있어서 바르고 지속되어야 할 관계성과 우리가 지구와 맺고 있는 생생한 연결성, 그리고 창조세계의 “조화”와 보존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에 계실 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14:27)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지만 상처입은 오늘의 세계에 주시는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는 약속과 선물-내일의 소망이며 지금 여기에서 선물이 되는- 평화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4.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박해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무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산상수훈의 팔복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마5:3-11). 박해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끝까지 비폭력을 실천하셨고, 끝내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정의를 위하여 생명까지 바친 헌신은 고문과 처형의 틀이었던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예수의 부활과 함께 하나님은 그 진실한 사랑과 순종, 믿음을 확인하고 생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5. 사람들의 삶 가운데 용서와 인권에 대한 존중, 자비와 약자에 대한 돌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우리는, 정도의 차이를 불문하고, 평화의 선물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력충돌과 폭력, 전쟁과 함께 불의와 빈곤, 질병이 인간 사회와 지구 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과 영혼을 상하게 하는 곳에서는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6. 그러나 성서에는 하나님의 뜻이 폭력을 정당화하는 구절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구절들을 근거로 우리의 그리스도교 형제들 가운데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의 폭력사용을 정당화했고, 아직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평화를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바르게 응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외면하면서 이 본문들을 읽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폭력과 증오, 편견을 말하거나 이방인들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본문들에 대하여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성서의 사람들과 같이, 우리의 목적과 계획과 증오, 열정과 습관이 하나님의 뜻보다 우리들의 욕망을 더 충실할 때, 이 구절들을 통하여 주시는 가르침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7. 교회의 증언.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평화를 이루는 자리가 되는 소명을 갖고 있습니다. 특별히 다양한 방식의 성례전을 통하여 우리의 예전적인 전통들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세상과 함께 하나님의 평화를 나누는 방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그들의 사명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회의 분열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평화를 만드는 자로서의 교회에 대한 믿음을 손상시키는 동시에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끊임없이 새롭게 되어야 함을 알려줍니다. 오직 하나님의 평화를 기초로 삼을 때 모든 믿음의 공동체들은 “지구적 차원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구조 속에서만 아니라 각자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화해와 평화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1998년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평화를 살아내는 교회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스스로를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산 위에 세워진 동네(마5:14)로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맡기신 화해의 사역을 실천하는 신앙인들은 교회의 경계를 넘어 이 세상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보여줍니다(참조. 고후5:18).

정의로운 평화의 길

8. 폭력에 맞서 평화를 실천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습니다. 평화의 상징이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교회의 일원으로, 우리는 폭력과 갈등이 일시적으로 지배하는 현장에 하나님의 평화의 선물을 전해야 하는 책임을 받았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향하여 계속 전진하고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는 “정의로운 평화로 가는 길”에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여정의 목적을 바로 알고 공유하기 위하여 다양한 세계관과 신앙 전통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정의로운 평화는 우리 모두에게 삶으로 증언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성취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인종과 계급, 성별과 문화, 종교적 차이에서 기인하는 폭력을 포함한 개인적이고 구조적이며 대중적인 폭력들을 방지하고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선조들의 지혜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간 성인들의 증언을 존중하는 삶을 통하여 앞서간 사람들의 삶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미래를 살아갈 “내일의 주인공들”인 우리의 아이들에게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보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계를 물려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9. 정의로운 평화의 길에서 비폭력 저항은 중심적인 요소입니다. 잘 조직된 평화적인 저항은 정부의 억압과 학대, 혹은 취약한 사람들과 자연을 착취하는 경제활동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합니다. 권력의 힘이 국민과 군대, 그리고 소비자들의 복종과 협조에 달려있다는 것을 인식하면, 시민 불복종과 비타협 운동은 비폭력 저항의 전략적인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10. 정의로운 평화의 길에서 무력 갈등과 전쟁을 정당화하는 것은 점점 더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문제를 둘러싼 이견을 조정하기 위하여 노력해왔지만, 정의로운 평화의 길은 이제 우리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전쟁을 비난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나라와 사람들 사이에서 정의와 평화로운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해야 합니다. 정의로운 평화는 “정의로운 전쟁”과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이며, 불의한 무력사용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욱 적극적인 실천입니다. 침묵의 무기에 더하여 사회정의와 법치주의, 인권존중과 사회안전망의 확대를 적극적으로 포함합니다.
 
11. 언어와 지적인 능력의 한계 안에서, 우리는 인간 존재를 공포와 욕망에서 자유롭게 하고, 적대감과 차별, 억압을 해소하며, 가장 연약한 삶을 경험하고 창조세계의 온전성을 존중하는 정의로운 관계성을 이룩해가는 집단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으로서 정의로운 평화를 이해해주기를 제안합니다.

정의로운 평화의 여정을 살아가기
 
12. 정의로운 평화는 하나님께서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실”(눅1:79) 것을 믿으며 인류와 모든 창조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으로 들어가는 여정입니다.

13. 여정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길을 따라 진리를 대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스스로를 기만하며 폭력에 대하여 방관적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행한 일을 정당화하지 않고 정의를 실천하는 가운데 우리 자신을 단련시키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잘못된 행동을 고백하고, 서로 용서하며, 서로 화해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14. 폭력과 전쟁의 죄는 공동체 안에 깊은 분열을 가져옵니다. 자신의 적을 정형화하고 악마시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생활 속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일하고 치유되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지원과 돌봄이 필요합니다. 대적들과 화해하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긴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면서 동시에 반드시 도달해야 할 목표입니다. 화해의 과정에 더 이상 기득권자와 무능력자, 우월한 이들과 열등한 이들, 그리고 권력자들과 천한 자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들 모두 변화되었습니다.
 
15. 평화 협정들은 종종 깨지기 쉽고, 임시적이며, 불분명할 때가 있습니다. 평화가 선포된 곳에도 여전이 증오가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쟁과 폭력의 피해를 회복하는 데에는 갈등이 발생하는데 걸린 것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불완전할 찌라도 이 여정에서 나타나는 평화는 장차 우리가 누릴 보다 큰 평화를 약속해줍니다.
 
16. 함께 가는 여정. 평화에 대하여 다른 의견을 주장하거나, 혹은 갈등으로 분열되어 있는 교회들이 평화를 위하여 일하거나 증언하는 것은 큰 신뢰를 주지 못합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고 증언하는 교회의 능력은 민족적, 국가적 정체성의 차이와 심지어 교리와 교회 직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위하여 헌신하려는 공동의 목적을 발견하는 데서 오기 때문입니다.

17. 우리는 원수에 대한 용서와 사랑, 적극적인 비폭력과 타인에 대한 존중, 온유함과 자비를 포함하는 평화의 윤리와 실천을 공유하며 여행하는 동반자들입니다. 우리는 이웃과 하나되어 공동선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의 삶을 바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나갈 길을 분별할 수 있기를 구하며, 그 길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기도하는 가운데 평화를 추구합니다.
 
18. 이 여정을 함께 가는 사랑이 넘치는 믿음의 공동체들 안에는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는 많은 손길들이 있습니다. 절망의 얼굴 속에서 소망을 증언하는 사람이 있으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인자한 사랑을 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큰 고통을 당한 사람들은 그들의 비극과 상실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살아갈 용기를 찾아야 합니다. 복음의 능력이 전쟁과 폭력으로 인하한, 상상할 수 없이 무거운 개인과 집단의 죄와 분노, 아픔과 증오의 무게를 이겨내게 합니다. 용서가 과거를 지울 수는 없지만, 지난날을 돌아볼 때 우리는 고통스러운 기억이 치유되고,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들이 마음의 상처를 나눠 진 것을 분명하게 볼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여행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19. 이 여정으로 초대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만드는 일꾼이 되라는 소명을 듣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 있는 여러 영역과 다른 신앙 전통들 안에서, 그리고 더 크게는 세상의 영역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종과 종교, 국가와 계급의 분열을 치유하기 위하여 일하고,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는 법을 배우고 있으며, 혹은 화해의 고된 사역에 자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창조세계에 대한 돌봄과 하나님의 놀라우신 작품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없이는 평화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은 깨닫고 있습니다.
 
20. 이웃들과 함께 가는 길에서, 우리는 우리의 소유를 움켜쥐고 사는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큰 관용과 개방의 삶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있는 약함을 보고, 공통의 인성을 확인하면서 힘을 얻습니다. 이웃은 더 이상 수상한 사람이나 적이 아니라 우리의 여정과 길을 함께 해야 할 인간 동료입니다.

정의로운 평화의 길에 선 이정표들
 
21. 정의로운 평화와 갈등의 변화. 갈등의 변화는 평화를 만드는 여정에서 근본적인 부분입니다. 변화의 과정은 가시적인 희생자들과 공동체들을 만들어내는 폭력의 정체를 드러내고 숨겨진 갈등을 폭로하는 일에서 출발합니다. 갈등의 변화는 대적하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갈등의 증폭으로 향하는 관심을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식적인 평화를 거부하거나, 구조적인 폭력을 폭로하거나, 아니면 보복이 없는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와 신앙 공동체들은 폭력의 희생자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의 대신하여 증언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또한 갈등을 다루는 시민사회적인 방식을 강화하고, 공공기관과 다른 가해자들, 심지어 교회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범죄자들을 억제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법치주의”는 이러한 모든 노력들을 효과적이게 하는 중심적인 요소입니다.
 
22. 정의로운 평화와 무력사용. 정의로운 평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위기에 처하는 경우가 자주 있지만 원래 평화는 폭력이 난무하고 난폭한 갈등의 위협이 큰 곳에서 더욱 간절해집니다.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긴급하고 노골적인 위협에 노출된 연약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최후의 수단이나 차악의 방법으로 무력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심지어 그러한 경우에도, 우리는 갈등의 상황에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심각한 실패의 신호이며 정의로운 평화의 길에 나타난 새로운 장애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23. 우리는 국제연합이 설립 정신과 헌장에 따라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움직임에 대하여 국제법의 한계 안에서 군사력의 사용까지 포함하여 대처할 수 있는 권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군사력 사용에 대한 신학적이거나 다른 차원의 정당화에 대하여 물음을 던지고, “정당한 전쟁”의 개념과 심사숙고 없이 관습적으로 무력을 사용하는 경우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24. 우리는 이러한 확신들 속에 있는 본래적인 도덕적 딜레마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 딜레마는 정당전쟁론을 발전시켜온 기준이 무력의 합법적 사용을 윤리적으로 뒷받침할 때 일정 부분 해결됩니다. 예를 들어, 이러한 윤리는 “정의로운 경찰론”의 인정과 “자위권의 발동”을 둘러싼 국제법의 새로운 규범의 출현, 그리고 국제연합 헌장에 중요하게 담긴 평화를 이루는 방식들에 대한 신뢰를 가능하게 합니다. 양심적인 병역 거부는 인권의 문제로 인식해야 합니다. 대량살상 무기의 구입과 사용을 시작으로 하는 평화에 반하고 국제법의 적용이 필요한 그 외의 부분들은 반드시 범주를 구분하고, 최종적으로 반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평화를 만들고 세워가는 사고와 행동, 그리고 법적인 연합의 자리로 함께 나오라는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비폭력적인 갈등의 변화를 실천하며 평화의 과정으로 공동체를 인도하는 새로운 윤리적 담론을 수용해야 합니다.

25. 정의로운 평화와 인간의 존엄성. 성경은 우리에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으며, 존엄성과 권리를 은혜로 받았다고 가르쳐 줍니다. 이러한 존엄성과 권리를 인식하는 것은 정의로운 평화를 이해하는 중심적인 요소입니다. 우리는 법치주의의 목적이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인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나라에서 전시나 평시에 자행되는 극심한 인권유린 사례들과 신변보장이 필요한 사람들을 진지하게 관찰하고 있습니다. 인권을 옹호하고 무사안일을 거부하는 것은 보편적인 요청입니다. 우리는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포함하여 인권을 수호하고 국제적인 법치주의의 강화를 추구하는 모든 시민 사회의 동지들과 우호와 협력 속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26. 정의로운 평화와 창조세계의 돌봄. 하나님은 만물을 선하게 창조하셨고, 인류에게 피조물들을 돌보는 책임을 위임하셨습니다(창2:4b~9). 자연에 대한 착취와 유한한 천연자원의 남용은 소수의 유익을 위하여 다수를 희생시키는 폭력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들이 자유를 갈망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사람들의 남용으로 인하여 탄식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롬8:22).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창조세계와 모든 생태계에 대하여 직간접적으로 입힌 상처에 대하여 죄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의로운 평화가 바라는 것은 공동체 안에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이 지구를 우리의 집처럼 보살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지구의 자원들이 바르고 정의로운 방식으로 공유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27. 평화의 문화 만들기. 우리는 다른 신앙 전통과 신념, 그리고 세계관을 가진 이웃들과 협력하여 평화의 문화를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러한 헌신 속에서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고, 폭력을 거부하고, 가난하고 눌린 자들을 위하여 정의를 세우라 하신 복음의 명령에 응답하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마5:1-11; 눅4:18). 남자와 여자, 젊은이들과 노인들, 지도자들과 노동자들의 재능이 합력하여 이 일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만드는 여인들의 은사를 인정하며 높이 평가합니다. 우리는 종교 지도자들이 가진 특별한 역할과 그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그리고 평화와 인간의 존엄성을 고양하는 신앙적인 지혜와 통찰이 가지는 해방의 능력을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종교 지도자들이 이기적인 목적으로 자신들의 능력을 사용하거나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방식으로 폭력과 억압에 기여한 일들에 대하여 비통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특별히 종교의 외피를 입고 대중매체의 위력을 통하여 증폭되는 호전적인 신앙적 표현과 가르침들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에 편견에 가담하고 적대감을 확대시키는 태도에 편승했던 그리스도교회의 공모를 인식하면서, 우리의 공동체들을 화해와 수용, 사랑의 공동체로 세우는 일에 헌신합니다.

28. 평화 교육. 평화의 비전을 가진 교육은 평화를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가정과 교회, 사회에서 개인들의 영적인 성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평화교육은 우리 안에 평화의 정신을 고양하고, 인권에 대한 존중을 함양하며, 폭력을 대치하는 길을 생각하고 받아들이게 합니다. 평화교육은 상이한 여러 전통과 문화들 속에 있는 관습과 가치들을 변화시키는 특별한 동력으로서 적극적인 비폭력 운동을 전개합니다. 인성과 양심에 대한 교육은 사람들이 평화를 추구하고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합니다.

정의로운 평화의 공동적 추구와 성취

29. 평화를 향한 그리스도인들의 순례는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공동체들을 세우는 많은 기회들을 제시합니다. 어떤 교회가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사회를 위하여 봉사하며, 재물을 윤리적으로 사용하고, 환경을 돌보며,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이루고 있다면, 그 교회는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교회들이 연합하여 평화를 위하여 일할 때, 그들의 증언은 세상에서 보다 많은 믿음을 얻을 것입니다(요17:21).
 
• 공동체의 평화를 위하여 - 그러므로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미4:4)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 는 것이 아니냐?”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미6:8; 눅10:27; 마5:44)
 
30. 지구적 도전들. 너무나 많은 공동체들이 경제적 계급과 인종, 피부색과 신분, 종교와 성별로 인하여 분열되어 있습니다. 가정과 학교는 폭력과 학대로 얼룩져 있습니다. 여인들과 아이들은 신체적, 심리적, 문화적 학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마약과 알콜의 남용과 자살은 넓은 의미에서 자기파괴입니다. 직장과 교회에서 일어나는 공동체의 갈등으로 인하여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편견과 인종차별은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노동자들은 착취당하고, 산업은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소수의 사람들만 그 혜택을 누릴 여유가 있습니다. 곳곳에서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하나로 연결하던 전통들이 상업주의와 외국의 영향을 받은 생활양식에 의하여 약화되었습니다. 대중매체와 게임, 연예 산업은 공동체의 가치를 왜곡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폭력과 음란물을 계속하여 전하고 있습니다. 폭력이 사용될 때, 젊은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가해자면서 피해자가 되고, 여인들과 아이들은 커다란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31. 주요 지침. 교회는 자신들이 약속하고, 협력하며, 서로에게 배운 평화의 문화를 만드는 주체가 되고 있습니다. 교인들과 가정들, 교구와 공동체가 모두 합력하게 될 것입니다. 갈등을 방지하고 변화시키는 방식을 배우는 것을 포함하여 다음과 같은 과제들이 있습니다. 즉, 소외된 이들을 보호하고 변호하는 것, 갈등을 해결하고 평화를 세우는 여인들의 역할과 모든 분야에서 그들이 주도적인 능력을 인식하는 것, 정의와 인권을 위한 비폭력 운동을 지원하고 참여하는 것, 그리고 평화교육을 위하여 교회와 학교 안에 적절한 장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평화의 문화는 현대를 휩쓸고 있는 대중매체와 게임, 음악 등을 통하여 폭력적인 메시지가 전달되는 모든 곳에서 교회와 다른 신앙인들과 공동체들과 함께 저항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모든 여인들과 어린이들이 성폭력과 무력 갈등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대량살상무기들이 금지되고 제거되고, 가정폭력이 이슈가 되고 사라질 때 평화의 문화가 인식됩니다.
 
32. 교회가 평화를 만드는 일꾼이 되려면,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평화를 위한 실천 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신자들은 반드시 교회 생활 속에 있는 폭력에 대한 침묵의 문화를 깨트리는 일에 참여하고, 우리의 공동체들 안에 있는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는 습관화된 분열을 극복하는 일에 연합해야 합니다.
 
• 지구의 평화를 위하여 - 그러므로 생명이 유지되었더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온전케 하셨으며, 인류의 자손들에게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창조 질서와 인간 사이의 관계가 깨졌습니다. 피조물들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생명과 정의와 사랑의 청지기로 일하는 것입니다. (창2:1-3; 요10:10; 롬8:20-22)
 
33. 지구적 도전들. 인간은 피조물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층적인 욕망과 자기중심주의, 그리고 무한한 성장에 대한 신념이 지구와 그 안에 있는 피조물들의 착취와 파괴를 불러왔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약자들의 울음소리가 지구의 신음으로 울리고 있습니다. 유한한 화석 연료와 다른 자원들을 과잉으로 소비하는 것은 지구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활방식의 결과로 나타난 기후 변화는 정의로운 평화에 대한 지구적인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 빈번해지는 극심한 가뭄과 홍수로 인하여 특별히 이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이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산호섬과 해안가의 가난한 마을에서 친환경적으로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이 가장 전형적입니다. 그들은 지구온난화에 가장 적게 기여하지만 가장 많은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입니다.

34. 주요 지침. 하나님의 귀중한 선물인 창조세계를 돌보고 생태계 정의를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정의로운 평화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또한 창조세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천연자원의 낭비를 회개하고 날마다 회심하라는 복음의 명령을 보여줍니다. 교회와 교인들은 반드시 지구의 자원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특별히 물의 소중함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약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권리를 안전하게 보호해야 합니다.

35. 교회와 세계를 교구로 살아가는 교인들은 반드시 자기비판적인 입장에서 환경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전체로서 지구의 올바른 지속을 지원하는 삶의 방식을 배워야 합니다. 보다 많은 “환경을 생각하는 교인들”과 “녹색” 교회들이 각자의 지역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세대만이 아니라 모든 창조세계와 다음 세대를 위한 보다 살만한 지구 환경을 위하여 정부들과 산업체들 사이에 맺어진 국제적인 협정들과 조약들을 원만하게 이행할 것을 교회들은 지구적인 차원에서 연합하여 촉구해야 합니다.
 
• 시장의 평화를 위하여 - 그러므로 모두가 존엄성을 가지고 살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와 다른 생물들이 끝없이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자원을 허락하신 놀랍게 창조하시고, 그 안에서 모든 인간이 계급과 성별, 종교와 인종 혹은 국적에 관계없이 각자에게 주어진 존엄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의 풍성함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시24:1; 145:15; 사65:17-23).
 
36. 지구적 도전들. 얼마 안 되는 세계적 부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부를 소유하고 있는 반면에 14억 명 이상의 인구는 극심한 빈곤에 빠져 겨우 생존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부가 48개의 세계 최빈국들의 국민총생산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현실에서 작동하는 규정과 혁신적이지만 비도덕적인 금융수단들, 기형적인 보수체계와 다른 구조적인 요소들이 부유한 사람들의 욕망에 의하여 강화되면서 지구적인 금융위기를 불러왔고, 이로 인하여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빈곤층으로 추락하였습니다. 국가 내적으로, 그리고 국가 간의 사회 경제적인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모든 나라들이 추진하는 빈곤 퇴치와 성장지상주의를 추구하는 시장중심적 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과잉소비와 빈곤은 폭력의 다른 모습들입니다. 냉전시대보가 더 높아진 지구적 차원의 군사비 지출은 국제적인 평화와 안전의 증대에 기여하는 바가 적으며 오히려 위험에 빠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무기들은 인류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방대한 자원을 사용하고 있으며 본래의 목적에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불균형은 지구촌이 한 가족이 된 오늘 날 국제적인 정의와 사회통합력, 그리고 공동선의 추구에 근본적인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37. 주요 지침. 시장의 평화는 “생명의 경제”를 창조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적절한 경제사회적 관계들,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존중, 자원의 공정한 분배와 지속가능한 사용, 모든 사람들을 위한 건강하고 충분한 식량, 그리고 경제정책 결정 과정에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이 기본적인 토대입니다.

38. 교회는 뜻을 같이 하는 사회단체들과 함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의 완전한 성취를 위하여 반드시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친환경적인 생산과 소비, 성장의 재분배, 공정한 세금, 공정무역, 그리고 지구적 차원에서의 깨끗한 물과 공기와 기타 공공재를 공급할 수 있는 대안을 추진해야 합니다. 이러한 조직과 정책에 투입되는 재정은 단순히 경제적 생산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와 생태계 보존과 연계되어야 합니다. 군사비의 과감한 삭감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을 위한 식량과 주택, 교육과 의료혜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인간 사회와 생태계의 보전은 경제적인 관점에서 국가안보보다 훨씬 앞서는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보호되었더라.
 
우리는 생명의 주시는 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생명을 취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원수를 사랑해야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평등하게 판단하고, 나라들은 공공의 장에서 진리를 따라야 할 책임이 있으며, 무기를 쳐서 농기구를 만들고, 더 이상 전쟁하는 법을 배우지 말아야 합니다. (출20:17; 사2:1-4; 마5:44)

39. 지구적 도전들. 인류의 역사는 용감하게 평화를 추구하고, 갈등을 변화시키며, 법과 새로운 규범들과 무력사용을 통제하는 조약들을 통하여 발전해왔으며, 오늘날 한 나라의 국가원수일 찌라도 무력의 사용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법적인 장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외국인 혐오와 민족 내 폭력, 증오범죄와 전쟁범죄, 노예제와 대량학살 등의 도덕과 정치적 규제에 반하는 악으로 얼룩져 왔습니다. 비록 폭력의 의존성과 논리가 인류의 정신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지만, 최근 들어 그러한 죄악의 결과들이 급격히 확산되면서 과학과 기술, 경제 분야에서도 폭력의 형태들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40. 그러한 위험들의 성격과 범주를 생각할 때 평화를 위한 새로운 에큐메니칼 운동의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긴급하게 필요합니다. 우리는 생명과 그 기반이 되는 것들을 파괴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신장된 현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함께 감당할 수 있는 책임을 넘어선 이러한 위협의 강도는 전례없는 지구적 차원의 공동대응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강도를 지닌 두 가지 위협, 즉 핵무기에 의한 대량살상과 기후변화는 생태계의 많은 부분과 정의로운 평화 운동의 모든 발전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특별히 대량살상무기의 생산에서 군비증강은 절정에 이릅니다. 또 다른 위협은 생태계의 멸종을 가져오는 생활방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협에 맞서는 국제적인 연대투쟁은 아직 미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41. 주요 지침. 생명의 신성함을 존중하고 민족 간의 평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교회는 국제 인권법과 갈등해소를 위한 각국의 협조와 책임을 이끌어내는 조약과 법률들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일해야 합니다. 극단적인 갈등과 대략학살을 막기 위하여 반드시 치명적인 대량살상무기의 생산을 억제하고 폐기해야 합니다. 교회들은 또한 신앙 전통을 가진 공동체들과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과 신뢰와 협력을 이루고, 국가 간의 전쟁을 억제하고 인류와 지구를 전례없는 위험에 빠트리는 무기들을 제거하고 전쟁을 주장하는 세력들의 불법성을 드러내야 합니다.

42. 열망의 사람들. 우리의 나라는 이전이나 장차 올 평화로운 나라가 아닙니다. 비록 하나님의 손에 있는 생명들이 자유를 누리지만, 아직 평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구시대의 권력자들과 지배층은 여전히 승리를 즐기고 있으며, 우리는 평화의 날까지 끊임없이 상처 가운데 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평화는 선포와 세력화, 위로와 화해의 방식과 함께 비판과 고발, 주장과 저항의 형태로 전개될 필요가 있습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때로 저항하고 때로 순응하며, 때로 함께 울고 때로 격려하며, 때로 슬퍼하고 때로 기뻐하며, 때로 신음하며 때로 즐거워할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만물이 온전케 되는 가운데 우리의 열망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평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은총의 확신 가운데 계속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