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회원교회의 주요문서 9-1 - 카이로스팔레스타인 해설문

진리의 순간
팔레스티나의 고통 속에서 보내는 믿음·소망·사랑의 한마디
팔레스티나 카이로스 2009

(R e v. D r. M itri R ah e b )

1. 무엇보다 먼저, 문서는 에큐메니칼한 문서이다. 겉으로 보기에 금방 드러나지는 않지만, 카이로스 문서를 만든 집단의 구성원들은 그리스 정교회에서 침례교, 카톨릭에서 루터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모였다. 이처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을 곳에 가둬놓고 결과물이 무엇이라도 나오길 기도한다고 상상해보라. 그런데 놀랍게도 연기가 피어올랐다. 일년 넘게 함께 작업을 결과, 지금의 카이로스 문서가 만들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문서의 에큐메니칼한 측면을 가볍게 봐서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의 문건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팔레스티나의 기독교의 다양한 구성을 대변하고 있다. 카이로스 문서는 온전한 문건이다. 사실, 이만큼 온전한 문서가 팔레스티나에서 발표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이전의 성명들에서는 예컨대 침례교가 빠져 있었는데, 이번엔 침례교에서도 참여해주었다.그리고 역시 매우 중요한 사실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여성들도 참여했다. 이전엔 그저 사내들끼리 모였을 뿐이었다. 이걸로 충분한가? 물론 충분하진 않았다. 15 중에 여성은 겨우 3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초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것만은 기억할 만할 것이다.


2.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절충적 문건이다. 단어 하나하나에 만족하냐고 물으면, 개인으로서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그렇지만 다양하게 구성된 집단과 일을 하다보면 절충하지 않으면 결과를 볼 수 없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일을 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오히려 문건의 장점이 되고 있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문건이 너무 극단적일 수도 있고, 어쩌면 나에게는 너무 극단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절충안이란 그런 것이다.

3. 세번째 말하고 싶은 것은, 문건의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성령에 의한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장담해줄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그것은성경의 모든 언어가 성령의 힘으로 써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조금은 농담처럼 들릴 있어도 중요한 이야기다. 글을 작성한 저자들은 절대로 이것이 하나님이 인류에게 보내는 절대종결의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우리 모두 겸허한 마음으로 아주 특정한 시간과 장소의 맥락에서 우리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를 다할 뿐이며,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믿고있다. 나는 사실 역시 문건이 가진 힘을 약화시킨다기보다는 오히려 강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4.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것은 팔레스티나에서 만들어진 문건이며, 그런 의미에서 일차적으로 팔레스티나의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주 잊고 있어서 재차 언급하지만, 그래서 문건에 대한 의문이나 오해가 생겼을 바탕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문건의 아랍어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 역시 문건의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우리는 그저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을 뿐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와 대화를 하고 싶었고, 그것을 우리의 언어로 하고 싶었다. 어쩌면 이것은 처음으로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종국에 가서 우리는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기독교 공동체를 향하 말을 하고 있으며, 무슬림과 유태인들에게도 말을 하고 있고, 팔레스티나와 이스라엘의 사람 전체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렇지만 가장 먼저 우리는 우리가 속한 기독교의 지역 공동체에게 말을 하고 있고, 이들이 우리의 대화의 상대이다.

5. 다섯째로 밝혀두고 싶은 것은, 문건이 팔레스티나의 기독교 공동체가 발표하는 문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이번 문건은 세번째에 해당하는데, 셋이라는 숫자의 특별한 의미를 감안한다면 어쩌면 서번째가 중요할지도 모른다. 최초의 신학적 문서는 1967년의 6일전쟁이 있은 닷새 후에 써졌다. 팔레스티나와 레바논의 신학자 무리가 모여 이스라엘과 팔레스티나의 분쟁에 대한 신학적 소견을 쓰려고 했었다. 혹사는 이것을 두고 팔레스티나를 다루는 신학적 문서의 마그나 카르타 대헌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하필이면 그때였을까? 전쟁의 경험이 너무나 강력해서 사람들은 무엇이라도 말을 하고 싶었고, 특히 신학적인 뭔가를 말하고 싶었다. 당시의 시대적 맥락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때 많은 교회, 어쩌면 당신의 교회조차,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안겨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골리앗으로 그려지는 아랍의 국가들에 맞서는 불쌍한 어린 다윗에게. 이때 팔레스티나와 아랍권의 신학자들이 대면하고 있었던 가장 신학적 난관이었다. 개인적으로 인도네시아의 기독교인을 만나서 "우리는 그때 이스라엘이 전쟁을 이길 있게 해달라고 밤낮으로 기도를 했었다" 전해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웃음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이것이 당시의 분위기였다. 그리고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1967년이 국제적 규모의 종교적 극단주의의 원년이었다는 것이다. 시작은 기독교의 극단주의로 출발해서 극단적 유태교와 영토점령으로 이어졌고, 이윽고 훗날의 극단적 이슬람주의를 이끌었다. 이때의 성명은 그렇게 보면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야할 만큼의 관심을 얻지 못했다고 있다. 두번째의 중요한 문건은 1988년에 만들어졌다. 이때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는데, 그곳의 알리카(Al-Liqqa)라는 센터에서 여러 교회들을 대표하는 신학자들이 모여 문서를 만들고 있었다. 이때 우리가 작성한 문건이 "신학과 지역 교회"였는데, 이것이 어찌보면 팔레스티나의 실천실학의 시초가 되었다고 있다. 1988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모여서 글을 썼어야 했을까. 1987 12 9일에 1 반란(First Intifada) 시작되었고, 문서가 써진 것은 개월 후이다. 이전과 변한 것은 다윗과 골리앗의 그림이 거꾸로 뒤집어졌다는 것이다. 갑자기 세상의 모든 TV 통해 보여지는 것은 팔레스티나라는 다윗이 돌맹이를 든채, 첨단 군사장비를 갖추고 있는 골리앗 이스라엘에 맞서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때 역시 충격이 커서 문서의 발표를 비롯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제 와서 세번째 문서가 필요한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67년에 이미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1988년에 인티파다가 있어서 국제적으로 관심이 높아졌는데, 2009년에 무슨 일이 있어서 사람들의 눈을 끌기 위해서 새로운 문서가 필요했던 것일까? 우리는 이유를 문서의 서론에서 밝히려고했다. 우리는 때가 됐기 때문에 입을 밖에 없다고 보았는데, 이유는 이상 어떤 변화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 갇혀 옴짝달싹 않는 교착상태가 새로운맥락이고, 그래서 이상 함구하면 안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6. 지금껏 전술한 문건 셋을 비교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최초의 문건은 좋은 문건이었지만, 사실 관심을 받지 못했다. 역사를 공부한다고 서고를 뒤지지 않는다면 어디에 있는지 찾기조차 찾기 힘든 실정이다. 1988 문서는 나름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팔레스티나에 한정된 지협적 관심에 그치고 말았다. 세번째인 카이로스 문서에 이르러서야 발표된 일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매주 꾸준히 반응이 들려오고 있다. 팔레스티나를 다루면서 기독교인과 유태인, 이슬람의 신자들로부터 이만큼의 관심을 받은 문서는 전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들 반응은 매우 긍정적인 반응에서부터 매우 부정적인 반응까지 그 범위가 굉장히 넓다.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유태인들이 있는가 하면, 매우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기독교인 집단들도 있다.

7. 문서작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동지들에게 " 미트리 라헵은 문서 알레르기가 있다. 먼지에 대한 알레르기도, 종이에 대한 알레르기도 있다" 밝히고 들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팔레스티나에는 세계 council 비롯해서 UN총회 이런저런 문건이 많기 때문이다. 팔레스티나에 관한 문건만으로도 하나를 족히 채울 있을 것이다. 그런데, UN 쿠웨이트에 대한 이라크의 점령을 끝내는 데에 결의 하나로 됐으니 문단 하나면 족할 것을, 팔레스티나는 이만큼 문건이 쌓여가고 있는데 점령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작업이 그저 하나의 문서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라면 관심이 없고, 팔레스티나에서 새로운 운동을 태동시키는 것이라면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했었다. 결국 이것이 내가 보기에 문서의 관건인 같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도전 과제다: 과연 팔레스티나의 기독교인들 속에서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낼 있고, 그것이 팔레스티나의 기독교인들이라는 범주를 넘어서까지 확산될 있는가. 그것이 나의 바램이었고, 너무나 절실히 요구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내가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8.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지금부터 것들이다. 지난 20년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티나의 분쟁을 분석해보면, 지금 교착상태에 도달해 있다는 사실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상 비밀이 아니다. 오늘날 뉴스만 봐도 있고, 20 1991년에 마드리드에서 시작된 평화협상 이후 지금까지의 결과들을 봐도 있다. 팔레스티나 사람으로서 지난 20년간의 결실은 큼지막한 빵점이다. 지금 팔레스티나의 상황은 20 전보다 오히려 나쁘고, 내가 그 협상에 참여한 사람이었다면 이미 옛날에 사표를 제출했을 것이다. 지난 20년간 의미도 없고 끝도 없는 평화협정이 이어졌고, 결국엔 평화를 이루기 위한 협상이라기보다는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한 협상들이었던 셈이 된다. 예레미아 이후부터 우리는 알고 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화를 이야기할 , 지금 우리에겐 평화가 없다는 것을 과감히 인정했고, 문건이 이야기하는것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속이지 말자. 지금 우리에게 평화는 없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관대해야 하고 그래서 지금은 평화를 이야기할 "라고 하는 것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이 문서가 특별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예언자로서의 역할은 예레미아와 같은 것이어서 지금 우리에게 평화가 없다고 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20년의 평화협상을 거친 지금, 우리에게 평화는 없다. 그리고 지난 20년간 팔레스티나의 궤적을 살펴보면 폭력적 저항의 연속이었고, 그것도 평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20년간의 평화협정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20 전에 사람들은 팔레스타인들에게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나머지 는 순리대로 따를 것이라고 했었다. 부쉬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동안에 팔레스티나의 국가형성을 이룩해내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지금 오바마 대통령 역시 같은 약속을 하고 있고, 영국의 토니 블레어도 미션에 끊임없이 정진한다고 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신을 하지고 있다.우리를 구원한 메시아는 2000 전에 이미 왔었고, 그가 우리 동네에 왔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의심을 갖지 않는다. 이미 그가 왔는데, 다른 구원자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인가. 그는 와서 말을 했고, 일을 했다. 이제 공은 우리에게 굴러왔고, 우리는 이걸 받거나 말거나 하는 기로에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우리가 카이로스 문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가지 사실이 제대로 전달되기를 바라고 있다. 여기에 "정신 나간" 팔레스티나의 기독교인 일군이 모여서 지역사회와 세계에 제공할 3 대안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끝도 없고 성과도 없는 평화협상, 그리고 역시 아무런 성과없이 이어지고 있는 점령에 대한 끝없는 무력 저항, 가지 말고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세계의 기독교인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들은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처음에는 문서의 단어 단어에 대해 따지는 이들이 많았었다.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문서의 배경이 되고 있는 힘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다. 3
안을 세계와 지역사회에 있다고 문서는 실로 믿고 있다. 그것은 문서의 뒤에서 작업을 했던 이들이 그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 팔레스티나의 지도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평화협상 전략을 바꿀 때가 것이라고. 그리고 하마스에도 이야기하고 있다. 폭탄테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어쩌면 다른 대안이 유일한 대안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다른 메시아를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차례가 되었고, 우리는 차례에 뭔가 행동을 해야 것이다. 누군가를 기다릴 때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은 이미 분명하다. 그것은 "믿음·소망·사랑"이다.

9. 여태 팔레스티나라는 지역적 맥락을 살펴보았으니, 마지막으로 문서를 국제적 맥락 속에서 읽어내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그것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문서의 명칭이 아랍어로 "진리의 순간"인데도 사람들이 그것을 팔레스티나 카이로스라고 불리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우리 역시 문서가 팔레스티나를 넘어서서 정의를 위해 애쓰는 보다 넓은 맥락에서 이해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1985년에 남아프리카에서 발표된 카이로스 문서와 연결고리를 찾는다. 문서 역시 많은 관심을 유발했는데, 이것이 없었다면 아파트헤이트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그뿐 아니라 우리들이 보다 커다란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데, 예컨대 1960년대 미국에서 평등을 위해 인종차별과 맞서는 흑인들도 거기에 해당된다. 우리의 작업에 대한 반응들을 카이로스나 킹목사에 대한 반응들과 비교해보면 거의 일대일로 일치하고 있다. 미국에서 목사가 이상은 버스의 뒷좌석에만 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라는 보이콧을 부르짖고 있을 그에게 편지를 썼던 여덟명의 주교와 신학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이들은 킹목사가 감옥에 갇혀 있을 그에게 서신을 보내 당신처럼 온화한 흑인 목사가 갑자기 극단적으로 변한 이유가 뭐냐고 항소했고, 그가 어째서 보이콧을 주장하는지 다그쳤다. 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것이, 이들은 실로 분화정책이 영속하기를 바라고 있었던 같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비폭력적 무관심이었다. 그래서 카이로스에 대해 문제를 갖고 있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자신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물이라도 되는 스스로를 생각하는, 당신네들이 따르는 신학자들이, 20 후에는 제대로 평가되어 점령의 지속 원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역사의 평가는 이들을 유태인을 사랑하는 것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다. 친구가 술에 취해 차를 운전하고 있는데, " 너를 사랑해, 조금만 달려"라고한다면 그것은 그를 지옥에 보내는 것이다. 나는 팔레스티나 카이로스 문서가 우리가 갖고 있는 사랑과 소망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끼리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가장 많은 반응이 있었던 만큼, 보이콧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팔레스티나의 경제적상황은 구매되고 있는 물품의 15%만이 자급되고 있고 나머지 85% 수입되고 있는데, 이스라엘 이 경제를 통제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이스라엘로부터 수입된다. 연구에 따르면 자급 생산량을 15%에서 25% 늘리는 것만으로도 수십만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보고되고 있다. 보이콧을 문제삼는 이들은 결국 우리가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경제적 노예로 남아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그런 다음 이들은 우리들에게 백유로를 쥐어주고 자신들은 좋은 일을 했다고 만족하려고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도울 때가 됐다. 지난 주에 유럽의 전직 수장들 26명이 모여, 우리의 보이콧과 비슷한 대책을 지원하고 나섰다. 이들도 알고 있다. 이상은 안된다는 것을. 이제는 진리의 순간이 왔다는 것을. 문서의 파급효과는 겉으로 보는 것보다 훨신 크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평화협상과 폭력저항에 질려가고 있다. 이들은 점차 우리가 제시하는 방식이 유일하게 남은 대안이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움직임의 일부가 있었던 것이 기쁘다. 그리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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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문서를 계획하고 있는가? 아니다. 하나면 족하다. 우리는 문서가 하나의 운동으로 확산되기를 원한다. 그것이 진짜 관건이다.
2.  보이콧 이외의 수단은 없는가? 글쎄, 모르겠다. 당신이 한번 찾아보면 좋겠다. 나는 이스라엘의 점령이 스스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이미 옛날에 분쟁이 종식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서쪽 해안의 점령에만 300억불이 들어간다. 5천만 이스라엘 국민에게는 그럴만한 돈이 없다. 지역 사이를 갈라놓는 장벽을 세우는 데에 드는 비용만도 35억불이다. 이스라엘사람들이 자신들이 힘들게 돈을 거기에 들이겠는가? 분단과 점령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제사회가 " 이상은 당신네들이 저질러 놓은 것에 대해 지불할 없다" 하면 분쟁은 바로 끝날 것이다.
3.  팔레스티나 사람들에게 부탁하는데, 제발 우리 교인들만이라도 자신들이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무엇을 사고, 돈이 어디로 가는지 한번쯤 생각해주길 바란다. 그것이 극단적이라고 말하지 말아. 내가 독일에 있을 때를 기억하는데, 그때 스프레이가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해서 그날로 다시는 구매하지 않았다. 그게 25 전이다. 그런 식으로 나는 매일매일 선택을 하고 있다.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있다면, 한마디만 하려고 한다. 절대 괜찮지 않다.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티셔츠나 남아프리카의 서쪽 해안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사람들 스스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를 안다면,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뿐이다.
4.  지금의 카이로스 운동에서 아직도 진행되어야 하는 신학적 작업이 많이 남아 있다. 문서에서 신학을 다루고 있는 부분을 읽어보면 있겠지만,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제 우리는 신학을 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비난하고 있는 것은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신학 전체가 모양이다. 내가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싶은 것은 주류 신학이다. 왜냐하면 무의식적으로 이스라엘의 신학에 물들어 마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편에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독일과 미국 등의 가장 진보적인 신학자들도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을 옹호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작년에 미국에서 "죽음의 포옹"이라는 책이 발간됐는데, 지금 미국의 유태인 지식인에 의해서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그는 오순절 성령의 강림이 아니라, 죽음의 포옹을 말하고 있다. 그가 이야기하는 주류의 교회들은 지금도 신학을 만들어내고 있고, 결국에는 팔레스티나의 사람들이 비용을 치루고 있다. 독일의 친구들에게 늘상 이야기를 한다. 당신들이 유태인과 얼마든지 화해해도 좋지만, 비용을 내가 부담하게 하지 말아달라고. 이젠 그만하면 됐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이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이상 느끼지 않기 위해서 팔레스티나인들에게 부담을 안겨주는 것은 지난 1967 이래 계속됐으니, 이제는 그만해도 때가 됐다. 우리가 문서에서 말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진리의 순간이왔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