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에큐메니칼공동체주요문서 - 오이코트리 지구카이로스신앙선언

지구 카이로스 신앙 선언
GLOBAL KAIROS FAITH STANCE
 
오이코트리 글로벌 포럼, 2013년 3월

<신재식 번역; 박성원 감수>
서문
 
2013년 2월 9일, 인도의 오리싸 Orissa 주에 있는 고빈푸르 Govindpur 마을에서 사제 폭탄의 강력한 폭발로 인해 세 사람이 죽고 여러 사람이 중상을 입었다. 그 마을 사람들은 한국의 거대 철강 기업 포스코 POSCO가 연간 1천 2백만 톤의 철강을 생산하려는 계획을 위한 토지 수용에 반대해왔다. 그 과정에서 라크만 파르마닠 Lakhman Parmanik (46)은 심각한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 중인데, 정부와 포스코가 후원하는 용역들이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방식에 대해 매우 가슴 아파했다. 그는 환경적인 근거에서 국가녹색재판소National Green Tribunal가 그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판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수년 동안 그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투쟁을 해온 마을사람들을 불법으로 쫓아내기 위해 무자비한 폭력을 뻔뻔스럽게 사용하는 것을 비난했다. 2006년과 2012년 사이에 포스코에 반대해온 1500명 이상의 마을 사람들이 연루된 230건의 조작된 형사 사건이 고발되어 있다. 반() 포스코 투쟁 위윈회 의장인 압바이 사후 Abhay Sahoo는 두 건의 사건으로 감옥에 갇혀있는데, 그가 마을에 있지 않던 날에 벌어진 범죄라고 주장된 사건을 포함해서 50건 이상의 고소 사건에 걸려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투쟁이 정부에 주어진 이해관계를 폭로하게 할 것이며, 포스코를 다시 한국으로 돌려보내게 될 것이라고 여전히 낙관하고 있다.
 

에콰도르에 가까운 카우카 Cauca 의 남서 콜롬비아 지역에서, 원주민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거룩한 땅에서 미군 기지를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우연하게도 그 군사기지는 광물 자원이 아주 많은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지역 주민들은 무장한 반군 “지지자들”이라는 전제 아래, 공동체는 온갖 방법으로 군사 공격과 포격을 받고 시달리고 탄압을 받아왔다. 그 동안 콜롬비아 정부는 교육과 공공서비스와 의료제도를 민영화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 군사화 militarization이면의 진짜 이유는, 그 땅을 강제적으로 수용하고, 그 공동체의 저항을 해체하고, 자연자원을 강탈하는 것이다. 이 모든 사태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일어나고 있다. 존중 받는 삶을 원하는 것은 범죄로 몰리고, 자본의 이익이라는 제단에서 희생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콜롬비아의 비극이다. 이 나라의 통치자들은 자국민은 미워하며 “제국”Empire을 섬기고 있다. 이런 이유로 콜롬비아는 '남미의 이스라엘'이라고 불린다.
 
좀 더 나은 급여를 요구했던 많은 광부들을 거의 40명이나 죽인 2012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발생한 마리카나 광부들의 비극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킴벌리 Kimberly에서 잠비아의 키트웨Kitwe까지 이어진 백 년에 걸친 이주 노동 시스템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아직도 끝나지 않는 전쟁은 콩고강 유역의 땅이 지닌 천연 자원과 생태학적 자산과 직접 관련이 있다. 아프리카를 분할통치하고, 서구 강대국들이 정권교체라는 자신들의 의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목도한 리비아Libya의 전쟁과 가장 최근의 말리Mali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지금 바로 21세기까지 이어진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끝없는 탐욕과 강제 약탈의 모든 진원지들이다. 아프리카 지배에 대한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들은 거짓 민주주의와 패권적인 신자유주의경제체제에 반대하면서 아프리카 대륙의 해방을 위한 투쟁들을 고무시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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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은 단지 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 민중들은 패권적 국제 경제, 정치, 군사적 시스템이 어떻게 민중들과 전 지구를 상대로 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이런 류의 이야기들은 수도 없이 할 수 있다. 이것이 전 세계에 있는 관심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로서, 신앙공동체로서 이런 지구의 구조적 위기에 긴급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확신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지구와 그 속에 있는 모든 존재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우리는 회개를 촉구하는, 특히 이 체제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과 자신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 체제에 협력하는 사람들의 회개를 촉구하시는 그리스도를 믿는다. 우리는 모두를 위한 생명의 길을 찾을 것을 요구하면서, 우리의 능력을 새롭게 하여 정의를 행하게 하시는 성령을 믿는다. 우리의 신앙이 우리로 하여금 이 ‘지구 카이로스 신앙 선언’Global Kairos Faith Stance을 전 세계의 교회와 신앙공동체를 향해 제시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I. 왜 신앙 선언Faith Stance인가?
 
21세기 전반부에 참으로 세계적인 제국이 세워지고 있다. 이 제국은 지구상의 생명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자본의 절대적인 지배를 유지하는 전쟁과 패권주의의 복합체제이다. 여러 대륙에서의 경험들을 융합해 볼 때 서로 연결된 요소들을 지닌 이 체제의 공통 경향이 드러난다. 아크라 신앙고백(2004)에서 세계개혁교회연맹WCRC은 제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현재 세계의 (무)질서는 제국에 의해 옹호되고 있는, 극도로 복잡하고 비도덕적인 경제 체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제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우리는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지키고 옹호하기 위해서 그들이 이끌고 있는 지배체제를 구성하는 경제적문화적정치적군사적 권력이 함께 결합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체제를 추종하는 권력들은 경제적문화적정치적군사적 차원을 포함하는 제국주의적 권력으로 밝혀졌다. 이 체제에 주어진 이름은 “지구적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또는 줄여서 말하면 “신자유주의”이다.

자본주의 시장과 제국은 “마성적으로 돌연변이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그에 속한 많은 기구들과 그들의 협력관계에서 지구적 경제를 지배하는 데서 보다 거대한 문명 자체를 통제하고 변혁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평화는 정의로부터 분리되고 있다. 평화가 무엇이며, 정의가 무엇이며, 생명이 사실상 무엇인지를 제국이 결정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적 약탈은 국제적인 지배계층과 군사력의 집중화의 등장과 합병을 반영한다. 이런 약탈은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로 이루어진 범죄를 포함한다: 제국주의적인 전쟁을 벌이는 위법적이고 탈법적인 특성이 바로 자본의 축적 과정의 핵심적 성분이다.
 
국내의 협력 계급과 정치 엘리트들은 미국과 유럽연합 제국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들은 자국 내에서 준() 군사적인 행동들을 촉진시키며, 다른 국민들의 투쟁에 맞서 싸울 용병들을 제국에게 제공한다. 동시에 테러에 대한 공포가 군사행동을 제한하는 도덕적이며 종교적이며 다른 정당한 전쟁에 대한 제한을 폐지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데서 보듯이, 군사주의militarism의 역할도 변하고 있다. 서구 제국주의는 국제 테러를 계속 조장하는데, 이를 표본으로 하여 국내 테러도 만들어내고 있다.
 
민주주의는 점점 해체되고 있다. 이로써 국민과 국가는 기득권 권력자 power elites들의 협상을 통해 이루어지는 국제간이나 쌍무적 무역과 투자협정이나 유럽연합과 같은 국가들의 지역연합의 규약, 혹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 세계무역기구WTO의 정책 등을 통해서 그 주권 자체를 결국 상실하게 된다. 이런 지역기구 또는 국제기구들은 국가 대표들에 의해 조직되지만, 그들의 충성의 의무는 세계의 민중들이 아닌 다국적 기업에 집중되어 있다. ‘경제발전’에 대한 결정은 민중들과 협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그들의 이해관계와 관심에 따라 이루어진다.
 
게다가 부패가 모든 차원에서 ‐ 정부, 투자자, 재정지원자, 수혜자, 그 밖의 관계자들 사이 – 만연하고 있다. 자본주의 기업이 통제하는 언론 매체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공적 정보를 왜곡하여 국민들을 전혀 무지한 상태에 묶어둔다.
 
자본의 힘 ‐ 탐욕, 물질주의, 자아중심주의, 냉담함, 권력의 남용, 우분투(ubuntu, 역주: 세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아프리카의 관계적 개념)의 상실을 조장하는 ‐ 은 우리 모두의 영혼과 사상에 침투하게 되었다. 그것은 시장이나 교회와 교회 구조 안과 같은 곳에 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점거함으로써 어디에나 산재해 있다! 제국과 다국적 기업들은 스포츠와 성sexuality마저도 상품화함으로써 이들을 왜곡시키고 소비품으로 바꾸어 버렸다.
 
생태문제는 생태학살이라는 절박한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창조세계의 생산과 재생의 한계를 이미 넘어서게 했다. 경제성장을 지탱할 수 있는 창조세계의 역량의 외부적 한계치에 이미 이르렀다. 모든 사회 정의와 평등을 위한 행동들이 이런 절박한 생태적 요인들을 고려하면서 재고되지 않으면 안 된다. 녹색자본주의Green capitalism는 단지 겉치레일 뿐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자본이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성장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들은 지금 자기 국민을 걸핏하면 적대시하고 위협하고 있다. 국민들의 운동과 조직이 종종 국가나 세계화의 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제국은 저항과 사회운동을 범죄시하고, 진보적인 지도자를 독재자라고 몰아세운다.
 
여성에 대한 집단학살이 전 세계에서 증가하고 있다. 매년 수백만 명의 여성이 태어나지도 못하고 사라진다. 북한과 이란에 대한 제국의 제재 조치로 인해 수백만의 어린이가 희생당하고 죽어간다. 우리는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이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생태적으로 대규모 강제 이주 당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오늘날 전 지구적 이익을 강화시키는 메커니즘은 시장과 천연자원과 노동자에 대한 수탈보다 훨씬 더 확장되었다: 이제 그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미뿐만 아니라, 아일랜드와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사이프러스, 아이슬란드와 같은 소위 유럽의 ‘채무국들’까지, 전 국가와 국민, 공적 기금까지 삼켜 버렸다.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희생의 대가로 팔레스타인 사회를 파괴하고 1948년에 세워진 이스라엘 건국은 팔레스타인의 강제 추방Nakba과 그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강제 점령을 불러왔는데, 이것은 전 세계에, 신앙 공동체들에게, 특히 그리스도교 신앙공동체에게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인종청소와 집단종족학살, 정치적 집단학살에서 나타나는 대로) 이스라엘 식민주의적, 인종차별적인 반 인간적 범죄에 대한 정당화와 이에 대한 명시적이고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전 지구적 정치, 경제, 군사, 신학적 지원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무슬림과 다른 사람들이 이전에 팔레스타인에서 평등하게 서로를 존중하면서 살았었고 다시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현재의 지구 자본주의는 세계적 약탈의 틀이다. 자본주의 권력은 의도적으로 지역이나 국가나 전 지구적으로 경제적 혼란을 유발하고 있는데, 그 목적은 이런 – 법도 없고 규칙도 없는 – 혼란을 이용해 이전보다 더 많이 착취하고 통제하는 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다. 자본주의는 점점 익명화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지역투쟁이나 투쟁과 사회운동에서 누가 정말 비난 받아야 하고 책임져야 하는지를 우리는 알지 못하며, 그래서 책임을 묻고 반대하고 싸워야 할 상대를 알지 못한다. 신학적으로 우리는 불의와 착취에 대한 책임과 책임자를 밝혀야 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적 존재와 행동의 특징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우리는 이 자본주의에 직면해서 우리의 취약점이 무엇인지 보다 더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이러한 국제적인 패권에 대항해서 민중운동과 민중조직들이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남미의 민중들은 자신들의 정부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싸워오고 있다. 예를 들면 에콰도르,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브라질, 페루, 니카라과, 쿠바, 우루과이가 그런 나라들이다. 이런 국가와 민중이 변화하게 되면서, 그들은 부분적으로 “테러리즘의 동맹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특히 콜롬비아의 사회평화운동이 이런 경우다. 콜롬비아는 미국에게 이 지역에서 자신들의 경제적 정치적지정학적 이해관계를 보장하기 위한 중요한 중심축으로 간주된다. 온두라스와 같은 나라들은 미국정부가 후원하는 쿠데타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아랍민주화운동Arab Spring과, 지난 2년 동안 스페인의 인디그나다스 운동Indignadas (역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스페인의 청년저항운동) 역시 시대의 징조이자 희망의 징조로서, 어두움의 한 가운데서 민중의 용기와 힘과 빛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모순을 이용하여 변화를 위한 새로운 정치적 공간을 민중들이 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 운동과 대중 조직들은 많은 전선에서 대안을 제시하고 예언적 목소리를 높이며 역동적으로 활동하면서 변혁적인 행동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아프리카 여성운동, 정부에 저항하는 인도의 거리운동, 남미의 대안경제와 관리조직들,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의 용기와 생존들, 이 모든 것은 변혁을 위해 투쟁하는 운동들의 힘과 결의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교회들
 
일부 교회들과 지 교회, 교회 기관들, 다른 신앙공동체들이 전반적 차원에서 불의의 문제를 제기하고 기독교신학에 대해 자기 비판을 하면서, 변방화된 민중들의 입장에 서는 등의 행동을 하면서 생명문화를 위해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교회들, 회중들, 에큐메니칼 기관들이 생명을 파괴하는 지배 체제를 지지하거나 함께 하고 있다.
 
제국과 지구적 자본주의는 많은 교회들을 분리시키고 하수인으로 만들어 정의와 평화에 대한 생각들과 실천들을 자주 교란시켜 왔다. 이러한 규범과 가치는 대체로 명료성과 일관성, 전체적인 특징을 결여하고 있다. 우리는 계속 서로 갈라진 이야기를 하고 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가 아닌 제국이 정의와 평화의 정의를 내리도록 우리가 허용한다는 점이다. 개인주의와 번영주의 복음이라는 이념이 많은 교회들에게 스며들었으며, 그 사이에 다른 교회들은 자신들의 예언자적 입장을 잃어버렸다. 우리 가운데 절대 다수가 일종의 “상상적 무기력”에 사로잡혀 있다. 근본주의 모습들이 교회 안에서 증가하고 있다. 여성과 청년들의 목소리는 침묵하고 있다. 이것이 에큐메니칼 운동이 재정적으로, 구조적으로, 신학적으로 제국에 항복하는 하나의 현상인 것이다.
 
이것이 왜 우리가 지구적 공동 신앙의 입장을 밝히기 위한 작업을 시급하게 해야만 한다고 확신하는 바로 그 이유다. 이런 일은 오직 신앙의 뿌리로부터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하는 능력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이 문서를 작성하는 것은 바로 이 정신에서이다. 이 정신은 카이로스 팔레스타인 Kairos Palestine문서인 “진리의 순간 A Moment of Truth”에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되어 있다:
 
“사랑은 우리를 향한 우리 주 그리스도의 명령이며, 이것은 친구와 적 모두를 포함한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악에라도 저항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 우리가 처해 있을 때 더욱 분명해져야만 한다.” 4.2
 
“인간은 증오하기 위해 창조되지 않았다. 증오하게 허락되어 있지도 않으며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는 것 역시 허용되어 있지 않다. 사랑의 문화는 다른 사람을 받아들임의 문화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완성하며 사회의 기초들이 세워지게 되는 것도 바로 이를 통해서이다.” 5.4.3
 
“사랑은 모든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나의 형제나 나의 자매이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은 그들이 지닌 악이나 침략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사랑은 그 악을 교정하도록 하고 침략을 중지하게 한다.” 4.2.1.
 
II. 성경적 신학적 도전들
성경의 핵심은 창조적 정의의 하나님과 죄의 권세와 구조에 의해 위험에 처한 피조물들과 더불어 고통 받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며, 이로써 모든 존재가 풍성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나님의 해방의 역사에 함께 참여하는 일꾼이 되도록 하나님의 영이 인간을 감화하고 능력을 받게 하는 것이다. 억압적 권력들로부터 자유라는 선물을 확보하는 정의가 곧 예언서와 율법서와 예수의 메시지이다.
 
성경의 이야기에서 비판 받는 핵심적인 사회구조는 우상숭배와 돈과 사유재산과 제국이다. 돈과 사유재산은 기원전 8세기 초에 시작된 새로운 경제구조를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돈 자체를 교환을 위한 유용한 수단에서 새로운 이윤창출의 구조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더 많은 돈을 탐내도록 하는 적으로 바뀌어 졌다. “보화”를 축적하는 것은 예수께서 소위 맘몬(재물의 신)이라고 하신 우상이다. 사유재산권과 동시에 만들어진 ‘탐욕의 돈’은 인간의 영혼과 마음과 정신을 공동체의 가치에서 더 많은 부에 대한 이기적인 욕망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 새로운 경제와 사유와 이념은 성경 시대에는 제국과 가부장제도와 연결되었으며, 결국에는 로마 제국으로 이어졌다. 예언자들로부터 예수까지 탐욕스러운 부에 대해 선포한 대안 메시지는 정의와 사랑이었다.
 
우리가 우리의 경제 체제를 변혁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려면 자본주의적 탐욕이 충동적으로 몰아가는 돈에 대한 열망에 관해 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또한 제국이 어떻게 자본의 팽창을 향한 충동drive을 폭력적으로 가능케 하는 주체인지, “주인이며 소유자”라는 남성의식이 어떻게 제국에 본질적으로 연결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과 나” 의 신학 (역주: 하나님과 나 사이의 개인적 관계에만 관심하는 신학)과 “재물의 복음”의 신학과는 반대로 우리에게는 관계적인 삶과 자족sufficiency의 신학이 필요하다.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언어와 과정과 논리는 탈() 식민지화되어야 한다. 신학이 토대하고 있는 서구 인식론은 인종차별적이다. 그것은 거의 2000년 동안 서구의 제국주의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 백인 우월주의 이론 위에 세워져 있다. 최근의 사례 하나를 들면 기독교 ‘선교’는 사실 제국주의적 언어 사용인데, 이것은 그리스도인들만이 유일한 진리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의 ‘무지하고 불결하고 정령을 숭배하는 이교도’에게 자신들의 신앙을 강요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역주: 제국적인 선교 개념에 대한) 비() 제국주의적인 대안은 초청invitation이라는 환영의 내용을 담은 개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 우리로 하여금 다른 목소리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가지고 그 목소리들을 경청하게 하는 것인데, 특별히 인간과 지구의 역사에서 생명과 하나님의 현존을 다양한 방식으로 축연하는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지역의 종교들과 토착전통들의 많은 다른 목소리들을 경청하고 받아들이게 한다. 우리는 또한 최근 대화에서 다시 한번 드러난 대로 동일한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는 불교도들과 무슬림들에게도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이런 토대 위에서 우리는 종교들과 지혜들의 공동의 비전을 만들기 위해서 다른 신앙을 거부하고 억압했던 것들을 회개해야만 한다.
 
성경이 거부하는 것은 다른 문화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아닌 우상들이다. 모든 주요 종교들에 있는 공통분모는 ‐ 물론 서로 다른 특징적인 표현으로 하긴 하지만 ‐ 서로 부의 독점과 맘몬에 반대하면서 정의로운 관계성 속에서의 삶을 추구하는 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상인 맘몬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진정한 종교간 협력을 도모할 수 있다.
 
최근의 현상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이 우상은 모든 인간의 제도와 사유와 행위에 자본주의적 정신과 논리와 실천으로 스며들면서 죽음과 밀접하게 연관된 자본주의적 문명의 형태로 전체주의적 통치를 하고 있다. 만약 교회가 이런 상황에 대해 성경적인 진지함을 가지고 이 문제를 신앙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음으로 인간과 전 세계가 이 혼돈의 심연에 빠지게 한다면, 그때는 교회의 바로 그 진실성과 신뢰성이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III. 신앙적 입장의 선례들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 예수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다. 과거와 현재의 세대는 긴급한 도전에 대해 신앙적으로 응답해왔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나치의 인종차별적 국가주의에 반대하는 독일 고백교회의 바르멘 신학선언 Barmen Theological Declaration (1934)
인종분리정책에 대한 기독교 신학의 정당화에 반대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카이로스 문서 Kairos Document (1985)
중앙아메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민중이 경험한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하는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 The Road to Damascus (1989)
자본주의와 결탁한 제국을 반대하는 아크라 신앙고백 The Accra Confession (2004)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정치적경제적종교적 분리정책에 반대하는 카이로스 팔레스타인 문서 Kairos Palestine Document (2009)

우리는 삶이 극단적으로 위협받는 위기의 시대에 기독교 신앙 전통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들 사이에서 저항에 대한 역사적인 신앙적 입장들 faith stances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오늘의 패권적 지구 문명이 모든 생명을 위협하는 데 대해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IV. 우리의 신앙고백과 행동을 위한 부름1. 모두를 위한 생명을 위한 새로운 문명을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며 모든 피조물을 정의로운 공동체의 삶으로 부르고 계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국주의적이며 군사주의적이며 사회적생태적으로 불의한 오늘의 문명의 우상성을 거부한다. 이것은 구조적으로 가부장적이며 전체주의적이며 인종차별적이다. 우리는 겉으로만 생태적인 척하는 녹색자본주의까지 포함해서 이렇게 상호 연결된 악의 구조를 거부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존재를 위해 생명을 부여하며 일해 오셨으며 우리에게 능력을 베푸셔서 우리가 하나님과 협력하도록 원하심을 고백한다.
 
우리는 이런 패권주의적인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자본주의 문명을 거부하는 가운데 모든 생명을 위한 새로운 생명 문명을 위해 일하기로 헌신한다.행동: 교회로서 우리들이, 특별히 북반구 교회들이, 그리고 에큐메니칼 운동으로서 우리들이 ‐ 모든 생명들이 겪는 치명적 위기가 점점 가속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여전히 자본주의적 문명의 정신spirit과 논리와 실천을 매우 분명하게 거부하지 못했던 곳에서 말과 행동으로 고백하고 회개하는 행동하기.
 
2. 지구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며 모든 피조물을 정의로운 공동체의 삶으로 부르고 계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구 기후와 전 피조세계에 폭력적이며 회복 불가능한 변화를 초래할 경쟁적이며 오염의 주범인 자본주의와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관료주의적 자연정복 논리를 거부한다.우리는 피조세계가 하나의 대상이나 하나의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주체로서 돌보고 보존하기 위한 그 자신의 권리를 지니고 있는 선물이라고 고백한다.
 
우리는 인간의 생태 발자국을 생태계가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까지 줄이고 제국주의적인 경제적 군사적 프로젝트에 저항하고 지구의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와 올바른 관계를 만들기 위한 협력체를 만드는 데 헌신한다.행동: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생태 발자국의 긍정적인 사례들과 더불어 변혁가가 되기; 상생(相生)을 위하여 모든 종교와 문화 속에 있는 그리고 전 지구의 생명체 속에 있는 생명의 지혜를 발굴해 나가기.
 
3. 의미 있는 노동을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며 모든 피조물을 정의로운 공동체의 삶으로 부르고 계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동자들, 특히 여성노동자들을 계속 감원시키면서 이들을 자본의 축적과 초국가적인 산업의 제단에 근대의 노예로 갖다 바치는 구조적인 실업과 비정규직의 생산품을 거부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일터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의 의미를 높이는 데 헌신하는 민중들의 투쟁을 통해서 항상 일하신다는 것을 고백한다.
 
우리는 자본의 생산품을 인간의 노동 위에 군림하게 하고 노동을 종교화하는 신자유주의 이념에 가면을 씌우면서 노동에 대한 거짓된 가르침을 행하는 교회가 도전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일에 헌신한다.
 
행동: 실업률은 계속 양산시킨 채 증가된 노동 생산성의 이익은 자본의 주머니로 빨려 들어가게 하는 대신에, 노동시간의 단축에 대한 약속을 포함해서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복지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게 될 노동에 대한 후기 자본주의적 의미를 발전시키기 위한 민중들의 사회운동, 신앙운동과 연대하기.
 
4. 공동의 선으로서의 돈과 금융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며 모든 피조물을 정의로운 공동체의 삶으로 부르고 계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과 자본을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고 이익 증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그 자체의 목적으로 만들어가는 자본주의적 통화와 금융 질서를 거부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돈의 폭력적인 횡포를 극복하기 위해 일하고 계심을 고백한다.
 
우리는 돈을 실제적인 경제를 위한 도구가 되도록 공적 재화로 변혁시키는 일에 헌신한다.
 
행동: 돈이 교환을 위한 유용한 수단이 되고 돈의 축재를 위한 상품 대신 신용이 되도록 돈을 공적 자산으로 전환시키는 후기 자본주의적 금융 질서를 발전시키고; 민주주의적으로 조직되고 통제되는 은행과 투자를 발굴하고, 자본주의적 관행에서 탈피하여 대안적인 은행과 거래하도록 교회의 재정 구조를 주의 깊게 탐색하는 민중들의 사회운동, 종교적 운동들과 연대하기.

5. 이윤이 아닌, 인간을 위한 재산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며 모든 피조물을 정의로운 공동체의 삶으로 부르고 계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유 재산의 사유화를 통해서 대부분 남성인 자본 소유자들에게만 부를 가져 올 뿐 세계 인구의 절대 다수에게는, 특히 여성과 소녀들에게 가난과 결핍을 초래시키는 자본주의적 재산권 질서를 거부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미래 세대를 포함해서 모두가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삶을 위한 경제를 위해 일하고 계심을 고백한다.
우리는 모든 형태의 재산이 공동선(共同善)을 위해 사용되어 모두의 삶이 지구와 모든 생명체들과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사용되게 하는 질서를 위해 일하기를 헌신한다.
행동: 생산수단을 노동자가 통제할 수 있고 공동선과 연결하는 것을 포함하는 후기 자본주의적 재산권 질서를 개발하며; 사회가 투자와 생산과 생산주체들의 기술적 조직의 목표까지 규정할 수 있는 것을 가능케 하는 민주적 기획과; 가족이나 공동체 안의 모든 사람들이 생명농업을 함에 있어 자립하는 데 필요한 만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토지를 공공의 재산으로 확보하기 위한 민중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것과; 물과 음식 에너지, 집, 건강, 교육, 교통 등과 같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공공 재산과 공공 서비스를 위한 민중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것을 포함해서 후기 자본주의적 자산 질서를 발전시키기 위한 민중들의 사회적 종교적 운동과 연대하기.

6.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참여 민주주의를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며, 모든 피조물을 정의로운 공동체의 삶으로 부르고 계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공적 삶을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초국적 기업의 통제에 맡겨 해체시킴으로 지구상의 수많은 민중들이 민주주의를 비극적으로 상실하게 하는 것을 거부한다. 우리는 진정한 주권자인 민중을 무력하게 만드는 모든 경제적ㆍ정치적 문화적 권력을 거부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통치하실 수 있도록 그가 부여하신 권리가 지배 권력에 의해 계속 사라져버린, 희생자 공동체 안에서 항상 일하고 계신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소통을 왜곡하는 권력의 지배와 허구를 계속해서 폭로하고 운영과 경제 생산에 직접 참여하기 위해 함께 일하려고 투쟁하는 공동체들을 집결시키는 일에 헌신한다.
 
행동: 모든 약하고 희생당한 생명공동체와 따뜻한 동반자가 되어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정의와 화해를 회복함으로써 생명공동체가 그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생명의 주체가 되게 하기. 
 
7. 정의가 함께 하는 평화를 위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며 모든 피조물을 정의로운 공동체의 삶으로 부르고 계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보호하고 보존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안보와 정의와 평화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전쟁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우리는 예수께서는 우리가 모든 불의에 맞서고 기꺼이 갈등과 고통을 받아들이며 화해의 과정에서 협력하기를 원하고 계신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모든 인류와 국가 사이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과 생명공동체 사이에 평화를 창출하는 자가 될 것을 헌신한다.

행동: 평화 교육과 비폭력을 실천하고 전쟁과 폭력 권력에 저항하면서 모든 생명공동체 사이의 관계에 정의와 평화의 계약 공동체를 지역과 세계 모든 차원에서 형성해 나가기

8. 핵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며 모든 피조물을 정의로운 공동체의 삶으로 부르고 계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군사적으로, 산업적으로, 기술적으로, 정치적으로 공생하고 있는 핵 복합체가 하나님과 대립되는 것이므로 거부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핵 에너지의 군사적 이용과 민간 이용 모두를 근절하기 위해 일하기를 원하고 계신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경제적정치적군사적기술적인 핵 통치에 저항하면서 핵무기와 핵에너지가 없는 세상을 위해 헌신한다.

행동: 우리는 탐욕과 소비주의에 근거한 핵 문화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켜야만 하기 때문에, 핵무장 국가의 오만을 폭로하고 핵 산업의 기술지배적인 복합체를 해제시키며 무기의 형태와 에너지 형태 모두의 핵 권력에 저항할 것이다.
 
9. 가부장제 없는 인간관계를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며 모든 피조물을 정의로운 공동체의 삶으로 부르고 계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성의 평가절하를 정당화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완전히 평등한 인간으로 창조된 존재의 선물임을 무시하고 경시하고 거부하는 권력과 이념에 결탁한 어떤 권력이나 논리나 이념도 거부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의미와 목적을 실현하고, 모든 공간을 폭력에서 자유롭고 성 정의가 실현되고 해방된 공간으로 만들도록 노력하기를 원하신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인간이 하나님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핵심적 진리가 기록된 창세기 1장 26‐28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인도받기로 헌신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부장제도에 뿌리를 두고 교회 안팎에 존재하는 어떤 권력이나 영향력, 권위, 관습을 거부하고 성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우리의 입장을 천명한다. 우리는 또한 어떤 사람도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하는 권리를 신분계급이나 인종, 사회적 성 정체성, 생물학적 성 정체성을 이유로 거부하는 모든 형태의 가부장주의를 반대하는 입장에 설 것을 다짐한다.

행동: 교회와 사회 안에 있는 가부장제를 구체적으로 극복하기.

10 탐욕이 없는 인간관계를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며 모든 피조물을 정의로운 공동체의 삶으로 부르고 계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탐욕의 구조를 다른 인간과 생명들의 희생 위에 기생하는 맘몬으로 간주하고 거부한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있는 생명들 사이에서 적자생존의 논리와 강자생존의 논리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이 논리는 무한의 소유를 향한 무한한 탐욕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탐욕의 이념과 실천을 포기하며 인간 사이의 참되고 진정한 협력을 위한 일로 돌아서는 것이 참된 회개의 길을 닦게 될 것이라고 고백한다.

우리는 모든 생명체간의 모든 관계에서 평화롭고 사랑이 충만한 정의의 계약을 맺기를 헌신한다.

행동: 모든 차원에서의 개인적이고 구조적인 탐욕을 극복하고 협력적이고 생명을 강화하는 태도를 계발해 나가기 위해서 세계의 다양한 신앙공동체들과 연대하기.

 
V. 교회와 신앙공동체를 향한 부름
 
우리는 모든 형태와 모든 차원의 교회‐ 지역차원, 국가차원의 교회, 그리고 국가차원과 대륙차원의 교회협의회, 세계교회협의회 등 ‐ 들을 향해 우리 자신을 자기비판적으로 정밀 검증해 보도록 요구하고 호소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르침이나 우리 자신의 조직이나 기업과 정부를 향한 우리 자신의 대() 사회선언이나 메시지에서 우리가 제국주의이며 가부장적인 자본주의 문명을 적극 지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그런 자리에 있지 않는지;
 
우리가 “탐욕스러운 은행가들”에 대한 쉽고 온건한 비판에 동의하면서 인간과 지구의 급격하고 긴박한 위기를 “사회적생태적 시장경제”와 “녹색 자본주의”와 같은 지배체제의 완곡어법으로 연막을 치면서 그 위기의 구조적인 근본 원인들에 대한 질문을 피하고 있지 않은지 혹시 그런 자리에 있지 않는지;
 
그리고 우리의 말과 행동과 기구의 차원에서 우리 자신을 자본주의적 문명 전체로부터 예언자적으로 관계를 끊는 동시에, 신앙과 인간의 지혜를 해방시키며 모든 토착 문화에서 세워지는 후기 자본주의적 문명을 위해 노력하는 운동들에 참여하면서 나타날 결과를 도출하기
 
우리는 특히 세계교회협의회가 경제적사회적생태적 정의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회피하려는 교회 권력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기를 요청한다.

이 모든 행동은 우리가 새로운 생명을 강화하는 문명을 위해 일하는 모든 세력들과 함께 지구위기에 대해 응답할 수 있도록 모든 신앙공동체와 민중운동과 함께하며 이루어져야만 한다.

우리는 세계교회협의회 부산 총회가 이러한 자기 비판적 검증을 하고 행동 계획을 시작하도록 요청한다. 우리는 정의와 평화를 위해 계획된 7년간의 에큐메니칼 순례가 이런 헌신을 실천하는 틀이 될 것으로 본다. 우리는 교회와 회중이 이 기회를 이용해서 모든 차원에서 오늘의 죽음의 사슬에 묶인 체제의 변혁을 위해 필수적인 조치들을 강구할 것을 요청한다. 2013‐2020년은 인류와 지구에 결정적인 시기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영으로 힘입게 하고 죄에 연루된 우리를 끝까지 정결케 하실 것이다. 우리는 생명의 하나님이 생명의 효소를 세상의 빵과 몸에 반죽하면서 어머니처럼 빵 굽는 하나님으로 역사하신다고 믿는다. 우리는 빵 전체가 영광스럽게 발효되는 그 때를 기다리면서도 교회가 자기 존재를 인식하고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쪼개어지고 모두에게 나누어져서 모두가 생명의 식탁을 나누어 맛보고 생명축제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생명의 하나님 영광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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