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을 거둘 때 생각나는 일들

성 경 / 시편 126:5-6, 갈라디아서 6:6-9
 
창세기 8장22절에 보면 노아의 홍수가 끝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시고서 땅이 존재하는 한 심음과 거둠이 있고 추위와 더위가 있고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의 자연계 혹은 생태계적 차원에서 이해한다면 규칙적인 자연 주기를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낮과 밤, 이 모든 계절과 시간이 모두 다 의미 있겠으나 여기에서도 특히 사색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계절이 따로 있습니다. 시간으로 보아서는 밤이고 계절로 보아서는 가을일 것입니다. 낮보다 밤은 사람으로 하여금 조용히 사색하면서 자기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잠못이루는 밤”이란 에세이 제목 같은 것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계절로 보아서는 아마 가을이 사색하는 계절이 될 것입니다.
 
푸르렀던 나뭇잎들이 단풍이 되어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왠지 거리는 쓸쓸해지는 것 같고 따뜻한 차 한잔이 생각나는 계절, 가을은 분명히 사색에 잠기게 합니다. 이것은 아마 낭만적인 사색일 것입니다. 또한 가을은 거두는 때이기 때문에 사색하게 합니다. 농부는 일년 동안 땀흘려 지은 것을 거두면서 그 결실을 생각하게 되고 여러 가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년초에 결심하고 목표했던 것을 정산해 보는 때이기 때문에 사색하게 됩니다. 이 심은 것에 대해 거두는 사색은 자연히 인생에 대한 사색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 가을이 깊어 가는 순간에 함께 삶을 사색해 보고자 합니다
 
특별히 추수의 단을 거두면서 생각나는 일들을 사색해 보고자 합니다. 이 사색을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십시다.
 
먼저, 단을 거두게 될 때 과거와 관련해서 생각나는 일은 울며 씨를 뿌린 자 만이 거둔다는 이치입니다. 오늘의 본문 시편 126:5-6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복음서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씨를 뿌려 가꾸는 일에 비유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씨를 뿌리는 책임은 우리에게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씨를 뿌림이 없이 거둠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일 이전에는 반드시 울며 씨를 뿌리는 삶의 성실이 있어야 하고 풍성한 추수를 위하여 눈물과 땀의 수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이 보편적 이치를 더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신앙 때문에 울며 씨를 뿌리는 노력을 게을리 하기 쉽습니다.
 
이 가을에는 공교롭게도 대학 입학 예비고사, 입사시험 같은 것들을 치르게 되는데 시험에 맞닥뜨려서 좌절하고 불안할 것이 아니라 내가 오늘을 위해 정말 눈물을 흘리며 울며 씨를 뿌렸느냐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남들이 유쾌한 나들이를 하는 봄에도, 더운 여름철에도 쉬지 않고 꾸준히 씨를 뿌리며 공부한 학생에겐 그 만큼의 결실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생각해야 할 점은 씨를 뿌리며 눈물을 흘리고 울면서 씨를 뿌릴 때는 정말 괴롭고 힘들었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거쳐서 단을 거두게 될 때, 자기가 심은 것을 거두게 될 때는 우리가 흘린 땀과 눈물을 후회나 아쉬움으로 여기지 않게 됩니다. 이 모두는 값진 땀이요, 값진 눈물입니다. 이 이치는 인생의 결실을 거두게 될 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의 삶의 풍파와 고통들은 값진 땀이요 값진 눈물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생각나는 일은 중도에 농사를 포기하지 않음으로단을 거둔다는 일입니다. 병충해가 심할 때, 태풍이 불어 벼가 쓰러졌을 때, 한단 이라도 쌀 한 톨이라도 건지려고 폭풍우 속에서 한발 속에서 낙심하지 않고 애쓴 사람이 단을 한단 이라도 더 거두고 그 단을 더욱 보람있는 단이 될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선(善)을 행하는 일에, 아름다운 인생의 결실을 위해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 갈라디아 6장 6-9절의 말씀이 귀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삶에 대한 성실과 선을 위해 포기하지 않는 끈기! 이것은 인생의 결실을 풍성하게 할 것입니다. 벼가 결실되기까지 온갖 재해를 당하듯이 선을 행할 때에는 핍박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을 행하는 일에 낙심하지 많아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 어려움이 오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선을 행한 자만이 때가 되어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먼저 사색할 수 있겠습니다.
 
둘째로 단을 거두면서 현재 생각나는 일은 심은 데로 거둔다는 이치입니다. 오늘 갈라디아의 말씀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했습니다. 팥을 심어 놓고 콩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은 만홀히 여기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씨를 뿌릴 때 혹은 폭풍, 우리의 삶에 필요한 곡식, 그리고 알곡이 있는 씨를 뿌려야 합니다. 씨를 뿌릴 때 이미 죽은 쭉정이를 심어서 안되고 열매맺기를 원하는 그 씨를 정확히 뿌려야 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는 우리의 영혼도 농사처럼 심어서 거두는 열매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에 무슨 씨를 뿌리고 있느냐를 검토해야 합니다. 먼저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된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 5:19 에 “육체로 심어서 거두는 열매로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권모술수, 원수 맺는 행동, 분쟁, 시기, 분냄, 당짓는 것, 분리, 이단, 투기, 방탕 같은 것들이고 이런 열매들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성령으로 심어서 거두는 열매로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이며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열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삶의 대원칙 하나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으로 심는 것은 무엇이든지 반드시 풍성하고 정확한 열매를 거둔다는 사실”입니다.
단을 거두게 될 때, 또 하나 기억되는 것은 나의 모든 씨뿌리는 수고와 땀이 있었지만 하늘이 도우지 않았다면 안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태풍 때, 병충해 때, 가뭄 때, 홍수 때, 때를 따라 얼마나 큰 위기들이 있었습니까? 지난 여름에 극심한 가뭄이 왔을 때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하늘만을 바라보지 않았습니까? 인간이 아무리 노력할지라도 그것을 완성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마가복음 4:26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그 비유를 들었는데 여기에서 인간이 하는 일은 “씨를 뿌리는 행위”에 한정됩니다. 그 다음에 싹이 나고 이삭이 나고 곡식이 여물고 하는 일체의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이 이치를 잠언에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수확의 시기에는 반드시 하늘을 향해 은혜에 대해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풍성한 가을의 결실은 인내와 수고와 땀으로 이루어져 가는 것이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이를 철저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보리를 거둘 때, 밀을 거둘 때, 과일을 거둘 때마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기억했고 광주리에 맏물을 담아 바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사도는 고전 15:10에서 위대한 고백을 합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며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이만하게 살게 된 것도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기쁨으로 단을 들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단을 거두며 미래를 생각합시다. 단을 거두고 미래를 생각할 때 우리는 쉼을 생각하게 됩니다. 옛날 농사철에는 결실을 거둔 다음에 농한기라고 해서 모든 수고에 이은 풍성한 휴식이 있었습니다. 수고에 대한 댓가일 것입니다. 시편 126편에는 눈물로 씨를 뿌리고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둔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기쁨이 바로 눈물의 댓가요 쉼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이 쉼은 오로지 눈물을 흘리면서도 성실히 씨를 뿌린 자만이 진정한 쉼을 얻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에 성실한 씨뿌림이 없이, 또는 잘못된 씨를 뿌린 결과 쭉정이를 거두게 되었을 때는 결국 그 쉼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이 젊어서 풍성함과 늙어서 궁핍한 것만큼 초라한 것이 없습니다. 젊어서는 열심히 일하고 노후에는 여유가 있는 것이 좋지 젊어서는 꽤 살았는데 늙어서 궁핍하면 그 모양이 정말 좋지 않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삶에도 따뜻한 겨울을 준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좋습니다.
 
마태복음 26:에 보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피와 땀을 쏟으시면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세번이나 제자들을 깨우시며 기도하신 후 세번째 기도를 다 마치시고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서는 제자들에게 “이제는 자고 쉬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구속사업에 대한 완전한 준비가 되었을 때 제자들에게 이제는 자고 쉬라는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고 성실을 다한 다음에 쉬는 쉼, 그것이 참된 쉼입니다.
 
신앙도 그럴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핍박과 유혹이 있어도 하나님의 의를 위해 살고 그와 함께 눈물을 뿌리며 동행하면 그의 삶에는 하나님과 함께 누릴 영원한 평화, 영원한 안식이 주어질 것입니다. 전도자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12:1)
 
인생에도 인생의 추수를 하고 거둘 때가 있다는 의미이며 인간이 계절의 변화에 자연에 의지해야 하듯이 인간도 인생을 시작할 때 이미 영원히 의지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말씀이겠습니다. 이 깊어가는 가을, 우리는 인생의 결실도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사색이 여러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또한 귀중한 알곡을 거두고 마지막에 만족스러운 쉼을 얻게 하는 지혜로 간직하시기를 권면합니다. 아멘.
 
<박성원 목사, 1994. 11. 20. 부산진교회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