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주 하나님 지으신 세계.." 찬송할 수 있는가?

창세기강해 2 8-17

바로 어제인 6월 5일은 세계환경의 날이었습니다. 이 날은 그저 연중기념일 중의 하나로 생각되지만, 사실 현 세대속에서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기념일중의 하나입니다. 지금 세계에서는 환경문제가 경제문제와 더불어서 가장 심각한 문제중의 하나로 취급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지금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개혁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데, 세계의 선진국에서는 경제문제와 환경문제가 가장 큰 이슈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경제문제도 단순히 경제활성화 차원만이 아니라 환경을 생각하는 경제, 그래서 환경을 보호하는 경제구조개편의 차원에서 생각되고 있슬 정도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그런 상품이 나오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서구에서는 수퍼마켓에 진열해 놓은 물건중에서 이 제품은 환경을 고려하고 만든 제품이란 설명이 부착된 물건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인간역사 속에서 근대과학이 발달한 이후 인간은 과학의 혜택을 톡톡히 보게 되었습니다. 과학은 분명 인간의 삶을 더 풍부하고 더 편리하고 더 멋지게 연출하는데 공헌하였습니다. 그러나 후진국이 이 과학의 혜택을 맛보기도 전에 개발에만 전념해온 인간의 역사진행의 길을 크게 가로막고 나선 것이 바로 환경문제입니다. 환경문제는 불과 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극소수의 과학자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관심조차 갖지 않던 문제입니다. 이를테면 1957년에 로저 레블리란 기상학자가 지구의 온도가 앞으로 점점 올라가 기상이변이 생길 것이라는 지구온난화이론을 발표하였는데, 이를 정치가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으로 인식하고 정치적 문제로 채택하는데는 30년이 걸렸습니다. 인간이 환경문제를 이 정도로 외면해 왔다는 증거입니다. 환경문제가 이렇게 심각하게 대두된 지금도 환경운동을 하는 그린 피스(Green Peace)같은 단체는 아직도 과격단체로 인식이 되고 있지만, 60년대에는 환경운동이 좌익운동의 하나로 분류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환경문제를 도저히 외면하거나 부인할 수 없는 단계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고서야 환경문제를 정치적 차원에서 풀지 않을 수 없어서 92년엔가 리오데 자네이로에서 세계환경대회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환경문제가 어느정도 심각하냐? 어느 환경전문가의 다름과 같은 설명은 그 심각성을 극명하게 알려준다고 생각됩니다. 그는 말하기를 “지금 우리가 환경을 이야기하는 것은, 옛날 인간의 삶을 더 아름답고 쾌적하게 가꾸는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환경은 불행하게도 더 아름답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자는 말이 아니라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와 연관된 문제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지적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지적이라고 하겠습니다. 지구온실효과에 따른 기후변화, 오존층의 파괴와 그에 따른 인간 질병의 증가, 유해폐기물로 인한 땅의 피폐화현상, 산성비와 그것이 식물에 미치는 영향, 사막화현상과 토양침식, 생물종류의 감소와 숲의 감소...수 많은 환경문제가 어느 사이에 우리 바로 코 앞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로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미국환경보호청이 추정한 바에 따르면 서기 2100년이 되면 해수면이 0.5-2 미터가량 높아져서 호주 시드니를 위시한 많은 해변가 도시가 물에 잠기도 지금도 수면아래에 있는 네델란드 같은 나라는 수몰되어 버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0억에 달하는 인구가 고산지대로 이사를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볼 때 지금의 환경문제는 낭만적인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또 지구의 재앙이 문턱이 와 있다고 미국의 월드 워치( World Watch) 연구소가 보고한지도 이미 5년이 넘었다는 사실에서 이 문제의 시급성과 긴급성이 얼마나 심각하냐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교회는 그동안 무관심해 왔습니다. 보통 “신앙” 하면 그것은 영혼의 구원에만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 사회문제나 더군다나 이런 환경문제같은 것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리스도의 심판보다 먼저 올 이 환경의 심판, 제2의 노아의 홍수의 심판과 같은 이 심판 앞에서 우리 교회도 곰곰히 이 문제를 생각해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제네바에서 그동안 몸담고 일해왔던 세계개혁교회연맹은 1982년에 카나다에서 가진 총회에서 금세기에 교회가 세상을 향해 가장 긴급하게 복음을 증거해야 할 문제로 두가지를 들었는데, 하나는 “정의”이고 다른 하나는 “평화” 문제였습니다. 그 다음해에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총회는 정의, 평화문제에다가 환경문제도 함께 증언해야 할 긴급과제로 추가시켰습니다.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 이 세 가지가 이 시대속에 교회가 세상을 향해 외쳐야 할 증언의 과제로 인식하고 그 세계대회를 1991년 서울에서 개최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바는 환경문제가 단순히 환경문제로 채택된 것이 아니라 창조의 문제, 즉 신앙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채택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인식이 대단히 중요한 인식입니다. 신앙은 영혼의 구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구원의 문제보다도, 아니 구원의 문제도 여기에 포함되는 것으로 인식할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출애굽기가 있기 전에 창세기가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 속에 있는 인간의 문제가 애굽에서 박해받던 이스라엘민족이 구원받는 문제 앞에 언급된 것은, 창조의 문제가 구원의 문제에 우선한다는 말과도 상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질서, 즉 환경을 지키는 일은 우리 피조물의 구원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9장을 보면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하신 다음에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시면서 노아와 새로운 계약을 맺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계약선언의 내용이 창세기 9:9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여기에서 보면 하나님이 멸망치 않고 구원하시기로 한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우리의 후손과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까지도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에 포함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남은 자를 택하실 때도 노아가족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의 암수 한 쌍씩을 이미 방주에 태우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구원에는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신약성경에서 구원의 신학을 가장 극명하게 담은 로마서 8장에서도 인간만이 아니라 온 피조물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난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 8:19-22)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대상은 인간만이 아니라 피조물 전체임을 분명히 한 귀절입니다. 이 말씀들에 의하면 환경의 오염, 생태계의 파괴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일인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을 방해하는 행위가 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환경문제는 사회적 이슈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를 찬양하는 예배의 문제이며, 더 나아가서 모든 피조물의 구원의 문제이므로 심각한 영적인 문제의 하나로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지키는 청지기로 비유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오늘 말씀을 자세히 보면 이런 그림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실 때는 이 세계는 하나님의 거대한 하나의 정원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을 창조하시고 그 위에 동물과 식물을 만드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돌보게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정원의 청지기로 인간을 부르신 것입니다. 인간이 청지기로서 그 직무를 잘 수행할 때 하나님이 일궈놓으신 아름다운 정원인 이 세계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에게는 낙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청지기의 직무를 잘못 하였을 때는 정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 사는 피조물들까지도 멸망의 위기를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 풀기 어려운 선악과의 문제를 또 다른 차원에서 이렇게 풀어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동산을 만드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돌보게 하셨는데, 모든 것은 다 인간 마음대로 하되 선악을 알게하는 실과 선악과는 먹지 못하게 하시고 그것을 먹는 날에는 틀림없이 죽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환경문제와 연관시켜 보았을 때 이 선악과를 먹지말라는, 즉 하나님의 지식을 침범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기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 인류는 하나님의 지혜를 침범하여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기고 있는 것이고, 그로인해 인류는 정녕 죽음에 이르는 길을 걷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통찰이라고 생각됩니다. 선악과와 환경문제의 관계입니다.
 
오늘 우리가 환경주일을 맞으면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은 그냥 신문잡지나 공해추방운동단체가 하는 일을 우리 교회도 하자는 차원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과 죽음에 얽힌 문제이며,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그에 대한 인간의 반역의 문제차원에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환경문제도 중요한 신앙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깊이 있는 신앙의 눈이란 저 길 가에서 풀 한 포기가 싱싱하게 자라는 것을 보고도 하나님의 미소를 그려볼 수 있는 경지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환경문제를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하는 것 중에 하나가 우리가 좋아하고 즐겨부르는 찬송 40장입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볼 때
하늘의 별 울려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은혜스러운 찬송입니까? 그러나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지금 푸른 창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공기가 오염된 이 탁한 하늘을 보면서도, 아무런 가책없이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송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별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하늘의 별 울려퍼지는 뇌성을 읊을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대기는 점점 오염되고, 땅은 쓰레기 더미로 쌓여가고, 물은 마음놓고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어 가고, 식물이 멸종해가는 이 세계를 보면서 그리고 그런 상황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면서 어떻게 뻔뻔스럽게 주 하나님 의 창조를 찬양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오늘 이 주일을 기하여 환경문제를 신앙문제의 하나로 인식할 수 있는 사고의 전환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간과 모든 피조물들을 위해 주시고, 더불어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구와 우주를 아름답게 보전하는 일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리고 오염시키는 바로 그 곳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 주신 정원의 한 부분임을 늘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