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와 에큐메니칼공동체의 생태정의신학과 행동

WCC와 에큐메니칼 공동체의 생태정의신학과 행동

박성원 (WCC 중앙위원,  KHC기획위원장, 오이코스생명물결 대표)

오늘의 생태위기는 카이로스적이다. 즉각적 고백신앙적 결단 status confessionis을 내려야 할 정도로 총체적이고 급박하고 치명적이다. 이 글은 넓게는 에큐메니칼 공동체가, 좁게는 세계교회협의회가 생태문제에 대한 에큐메니칼 증언을 어떻게 해 왔는지 그 역사적 여정을 살펴보고 부산총회가 어떤 예언적 헌신을 해야 하는지 성찰해 보기 위한 것이다. 이 글에는 오늘 지구가 당면하고 있는 경제불의와 생태파괴에 대한 심각한 상황 자체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별도로 다루지 않는다. 이 글은 필자 자신도 경제생태정의에 대한 에큐메니칼 여정 ecumenical journey에 대해 깊이 관여해 왔기 때문에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나레이티브 형식으로 서술한다.


WCC가 뱅쿠버 이전에 생태문제를 다루어 온 여정

WCC가 생명과 생태문제를 최초로 거론한 것은 1961년 뉴델리에서 열린 제3차 총회에서였다. 당시 기독교신앙과 생태적 사고를 연결시킨 개척자인 미국의 루터교 신학자 조셉 시틀러 Joseph Sittler가 골로세서 1 15-20절을 성서적 근거로 하여 우주적 기독론에 근거한 창조세계 보전에 대한 도전을 한데서 이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세계역사의 격변에 직면하여 WCC역사의 변혁에 집중하면서 이 관심은 밀려나 있었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이미 생태파괴의 위기를 보기 시작하는 분별이 일어나고 있었고 이탈리아 실업가 아울레리오 페체이 Aurelio Peccei가 심각한 세계문제를 인식하고 뜻을 같이 하는 유럽의 경제학자, 과학자, 실업가등 36명을 1970년 스위스에 모아 발족시킨 로마클럽 Club of Rome1972년 이후 성장의 한계Limits of Growth란 보고서를 출판하면서 유명한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담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생태에 대한 관심을 국제사회가 채택하면서 1972년 스톡홀름회의로 일컬어지는 유엔인간환경회의 UN Conference on Human Environment가 조직되는 등 사회는 서서히 이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WCC도 이 흐름을 중시하고 있었고 WCC 5차 총회(나이로비, 1975)정의롭고, 참여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Just, Participatory and Sustainable Society란 프로그램을 시작하도록 결정하면서 생태문제를 중요한 에큐메니칼 과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JPSS란 약자로 알려진 이 프로그램이 WCC가 지금까지 진행해 온 프로그램 중 가장 알찬 것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뱅쿠버 총회의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의 헌신

WCC가 생태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제6차 총회(뱅쿠버, 1983)에서였다. 뱅쿠버 총회는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 Justice, Peace and the Integrity of Creation; JPIC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세계교회가 이 문제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하고 정의,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을 위한 상호헌신을 하도록 촉구하였다.

뱅쿠버총회보다 1년 앞선 1982, 오타와 Ottawa에서 열린 세계개혁교회연맹 WCRC(당시는 WARC) 21차 총회는 정의와 평화를 이 시대에 교회가 감당해야 할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설정하고 이를 WCC에 제안한 바 있다. 1980년대는 전 세계가 인종차별, 빈부격차, 소외, 착취, 인권유린, 전쟁과 군비경쟁, 핵 경쟁 등의 격동적인 소용돌이 속에 있었고 특히 남아공의 인종분리정책 Apartheid이 에큐메니칼 공동체의 중심적 관심으로 올라와 있었던 관계로 세계개혁교회연맹은 정의와 평화보다 최대로 절실한 시대적 과제라고 보았다.

WCC 뱅쿠버 총회는 이 권고에 응답하면서 여기에 창조의 보전 문제를 덧붙임으로써 생태문제가 정의, 평화와 나란히 1980년대 이후 에큐메니칼 중심과제로 자리잡게 되었다. 총회가 끝나자 WCC는 곧 JPIC프로세스를 전개하며 각 나라별, 혹은 각 대륙 별로 협의회를 개최하면서 세계 교회의 헌신을 묶어나갔다.

JPIC 프로세스와 관련하여 세 가지 중요한 쟁점이 있었다.

첫째는 신학적 쟁점이었다. 캔베라총회의 결정은 세계교회협의회가 회원교회로 하여금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에 상호 헌신, mutual commitment을 하는 계약 covenant맺기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프로세스를 진행하면서 계속 신앙고백적 행동의 일환으로 계약 covenant를 맺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여기에 대해 정교회 쪽은 계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시어 맺는 것이지 인간은 계약창시자가 될 수 없으며, 또한 계약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맺으신 새 계약으로 완성된 것이므로 인간이 주도하는 또 하나의 계약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약이란 신학적 개념에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다.

둘째는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을 위한 교회일치과정에 대한 문제였다. 교회일치는 여러 가지 차원에서 전개될 수 있는데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과 같은 공동증언의 과제를 놓고 교회가 일치의 과정 conciliar process를 전개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추진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아직도 정식으로 WCC 회원교회가 아니긴 하지만 신앙과 직제위원회에는 정식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JPIC 문제에 대해서는 교회적 일치를 이루며 헌신하는 방안이 가능하지 않는지를 줄 곳 모색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는 포괄적 차원에서 교회적 일치를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비록 부분적 이슈에 대한 것이라 할지라도 아직 교회일치적 접근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WCC JPIC 대회에 로마 카톨릭 교회가 교회적 차원에서 참여해 상호헌신을 하리라는 기대를 하고 노력했으나 그 꿈은 실현될 수 없었다. 이로써 WCC 창설 당시부터 꾸준히 시도되어 온 로마 카톨릭 교회와의 일치운동 조차도 당분간 소강상태가 되고 말았고 이 후로는 WCC가 카톨릭교회와의 일치문제는 더 깊이 있게 추진해 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번째 문제는 정의와 평화의 문제, 그리고 창조의 보전 사이에 우선순위의 문제 question of priority였다. 정의와 평화가 절대 절명의 과제인 남반구 교회들은 JPIC의 핵심은 정의와 평화 문제에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 반면 서구교회는 창조의 보전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서구교회의 입장에 대한 남반구 교회의 저항이 심했다. 남반구는 아직도 식민주의, 제국주의, 정치적 억압, 독재정권의 전횡, 사회불의, 인종차별, 계급착취, 자원탈취, 외채, 난민문제 등 수많은 불의와 구조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정의와 평화가 급선무인데 서구사회는 이제 먹고 살만하니까 남반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건너뛰어 생태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려 한다고 비판했다. 당시는 세계교회가 2000년을 앞두고 희년운동 Jubilee Movement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면서 외채탕감캠페인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서구교회가 환경문제를 들고나와 이를 희석시키려 하고 있다는 의심도 하고 있었다.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 세계대회 (서울, 1991)

마침내 WCC 7차 총회(캔베라, 1991) 1년 앞둔 1990년 서울에서 JPIC 세계대회 World Convocation on Justice, Peace and the Integrity of Creation가 열렸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Convocation 이란 용어인데 이 말은 통상 회의로 번역되지만 함께 헌신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이 용어사용에는 상호 계약을 하기가 힘듦으로 대신 함께 헌신한다는 의미를 대회명칭에서 살리자는 의도가 내포되었던 것 같다.

홍수와 무지게 사이 Between the Flood and the Rainbow”란 주제로 열린 JPIC 세계대회는 1989년 세계개혁교회연맹 제22차 총회에 이어 한국교회가 유치한 대형 에큐메니칼 회의였다. JPIC 대회는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을 향한 세계교회의 상호헌신의 결의로 대회말미에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에 대한 열 가지 확언 Ten Affirmation on Justice, Peace and the Integrity of Creation을 선언했다:

확언 1: 우리는 모든 권력의 행사는 하나님의 책임하에 있다고 확언한다.
                    We affirm that all exercise of power is accountable to God.
확언 2: 우리는 가난한 자를 위한 하나님의 편향적 선택을 확언한다.
                    We affirm God’s option for the poor
확언 3: 우리는 모든 인종과 인류의 동등한 가치를 확언한다.
                    We affirm the equal value of all races and peoples
확언 4: 우리는 남성과 여성이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확언한다.
                    We affirm that male and female are created in the image of God.
확언 5: 우리는 진리는 자유로운 인간의 공동체에 기초함을 확언한다.
                    We affirm that truth is at the foundation of a community of free people.
확언 6: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를 확언한다.
                    We affirm the peace of Jesus Christ.
확언 7: 우리는 창조세계도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피조물임을 확언한다.
                    We affirm the creation as beloved of God
확언 8: 우리는 생태는 하나님의 것임을 확언한다.
                    We affirm that the earth is the Lord’s
확언 9: 우리는 젊은이들의 존엄과 헌신을 확언한다.
                    We affirm the dignity and commitment of the younger generation.
확언 10: 우리는 인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확언한다.
                    We affirm that human rights are given by God.

이 확언에서 보듯이 이 확언에는 권력, 빈곤, 인종차별, 남녀평등, 균등기회, 평화, 생태의 존엄성,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젊은 세대의 가치, 인권 등 당대의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에 관련된 열 개의 주제가 다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에 대한 편향적 선택 God’s preferential option of the poor라는 유명한 에큐메니칼 신조와도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이 선언이 에큐메니칼 운동의 신앙고백적 헌신에 자주 사용되는 형식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       우리는 확언한다, We affirm that…
-       우리는 거부한다, We will resist
-       우리는 헌신한다, We commit ourselves to…

우리의 신앙적 입장은 이것이다. 따라서 이에 반하는 구조와 행위에 대해 우리는 (단호히) 거부한다. 그리고 이의 변혁을 위해 우리는 이렇게 하기로 헌신한다는 에큐메니칼 헌신의 양식이 여기에 사용되었다. 바르멘 Barmen선언도 이와 비슷한 형식을 사용했으며 2004년 세계개혁교회연맹이 채택한 아크라 신앙고백 The Accra Confession은 정확하게 이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이 에큐메니칼 신앙선언 양식은 우리의 신앙의 내용이 무엇이며, 신앙적 입장이 그렇다면 그와 모순된 체제와 현실에 대해 단호히 거부하고, 거부함으로써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한 행동까지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JPIC 대회에서는 몇몇 교회들이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을 위해 상호 헌신하는 계약을 맺기도 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한 상세한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JPIC대회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 헌신은 곧 따라온 후 냉전체제의 소용돌이로 인해 후속작업으로 상세히 연결되지 못하였다. 정의와 평화, 그리고 창조의 보전의 과제는 교회와 에큐메니칼 운동의 지속적인 과제로 남게 되었다.

JPIC 대회와 켄베라 총회 이후 생명신학 Theology of Life WCC의 중요한 신학운동 과제로 등장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생태신학 Eco-Theology에 대한 긴급성과 필요성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WCC는 이 과제에 대해 이렇다 할 만한 연구와 성찰의 결과물들을 내지 못했다. 이후 WCC는 물 Water 문제를 중시하고 에큐메니칼 물 네트워크 Ecumenical Water Network를 결성하고 사순절을 이용해 물에 대한 신학적, 영성적 성찰을 하는 등 시도해 나왔으나 이 문제도 충분히 집중적으로 다루지 못했다.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에 대한 세계개혁교회연맹 WCRC의 신앙고백과정

JPIC 대회 이후 경제과 생태문제에 대한 에큐메니칼 헌신과 증언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것은 세계개혁교회연맹 WCRC이었다. 세계개혁교회연맹은 동서냉전이 끝나던 20세기 말 향후 세계의 갈등은 경제 불의를 축으로 하여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1997년 항가리 데브레첸에서 개최된 23차 총회에서 “경제 불의와 생태계 파괴에 대한 신앙고백 과정 A Committed Process of Recognition, Education, and Confession (processus confessionis) regarding Economic Injustice and Ecological Destruction”을 시작했다.

세계개혁교회연맹이 경제와 생태위기에 대해 신앙 고백적 접근을 하게 된 이유는 급박한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다. 1990년대에 동구권이 무너지자 세계의 갈등구조가 정치적, 이념적 차원에서 경제적 차원으로 바뀌었다. 사회주의권의 붕괴는 레이건-대처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무장한 자본주의 체제의 집요한 공격에 의해 이루어졌다. 계획경제 planned economy체제가 붕괴되자 자유시장 free market economy체제의 세계 시장 지배가 가속화되었고 이로 인한 사회적 폐해가 국내, 국제적 차원에서 심각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빈부의 격차가 점점 심화되고 환경이 파괴되고 투기경제가 난무하게 되고 민주주의가 붕괴되고 소비주의가 만연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가치관이 붕괴되고 공동체가 파괴되고 심지어 엄청나게 자본을 축적한 개인의 재산이 국가의 재산보다도 더 많아지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세계인구중 1%의 년간 수입이 지구촌인구 57%의 년간 수입과 맞먹는 지구경제불의가 가속화되고 있었다.

신학적 입장에서 무엇보다도 심각한 현상은 맘모니즘이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돈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에 의해 삶의 주권자가 하나님에게서 돈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기지 못한다.”는 예수의 말씀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신앙의 본질을 흔드는 상황이 세계개혁교회연맹으로 하여금 경제 불의와 생태계 파괴를 조장하는 현실에 대해 신앙 고백적으로 접근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WCRC는 신앙과 경제의 문제를 심도 있게 성찰하기 위해 1993년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 지역협의회를 시작으로 아프리카, 유럽, 남미 등에서 지역의 경제현실을 분석하고 신학적 진단을 하기 위한 대륙별 신학협의회를 개최했다. 그 중에서 1995년 잠비아 키트웨 Kitwe에서 열린 협의회는 하나님의 가족 중 다수의 삶의 권리를 배제하는 것은 바로 인종분리정책과 같은 것이므로 세계개혁교회연맹이 세계경제불의에 대해 고백신앙 status confessionis 을 선언하도록 건의하였다.

WCRC 23차 총회는 이러한 지역협의회의 결과, 특히 키트회협의회의 건의사항을 심각히 받아들여 경제 불의와 생태계 파괴에 대한 신앙고백 과정 processus confessionis 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세계개혁교회연맹은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가 지구적 차원의 경제아파르타이트 economic apartheid on global scale로 인식하고 자본이 있는 자가 자본이 없는 자를 배제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의 신학 Theology of God's Grace에 위배된다고 보았다.

WCRC는 데브레첸 총회이후 신앙고백과정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경제학자, 사회학자, 정치학자, 신학자, 행동가 등으로 구성된 특임팀 Task Force을 구성하고 WCC와 루터교세계연맹, 지역협의회 등과 함께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에 대한 에큐메니칼 대응 과정을 진행하면서 회원교회들을 신앙고백과정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과정을 계속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북반구 교회와 남반구 교회 사이에 뚜렷한 입장차이가 나타났다. 북반구 교회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그 응답의 형태를 꼭 신앙고백의 형식을 띠어야 하는가, 선언적 차원에서 하면 충분하지 않는가라는 입장이었고 남반구 교회는 이것은 경제적 아파르타이트이기 때문에 신앙 고백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계개혁교회연맹은 2003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남반구 교회들이 모여 총체적 위기에 대한 신앙적 입장을 천명하는 한편 2004년 초에 런던코니에서 남반구와 북반구의 교회가 모두 참여하는 최종 준비협의회를 통해 아크라 총회가 경제생태정의를 위한 신앙고백을 채택하도록 권고하는 결의를 하였다. 여기에서도 합의한 사항을 서구교회가 계속 거부하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마침내 2004년 가나 아크라에서 열린 WCRC 24차 총회는 오늘의 지구경제불의의 씨앗과도 같은 노예무역이 행해지던 엘 미나 Elmina노예성을 방문하면서 역사적으로도 그랬지만 오늘의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가 인간의 경제 생태계의 생명에 치명적 불의를 조장하며 이러한 불의로 그리스도의 몸이 찟겨 지며 돈을 우상으로 삼으라는 맘몬사상의 강요 앞에 신앙과 구원이 불가능함을 인식하고 이런 이념과 실행을 신앙고백으로 거부하는 아크라 신앙고백(Accra Confession)을 채택하게 되었다. 이 고백서는 지금까지 나온 에큐메니칼 문서 중에 가장 예언적 문서로 기록되고 있다.

아크라 신앙고백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는 복음의 가르침과 결코 양립할 수 없다는 점과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우리의 신앙은 지금 온 세계를 그 휘하에 종속시키려는 지구적 제국 global empire 에 저항하도록 부른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WCC를 비롯한 에큐메니칼 공동체의 여정

1998년 하라레에서 열린 WCC 8차 총회도 세계화의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의 신앙을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WCC와 회원교회가 응답하도록 결의하였다. WCC와 회원교회가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에 대한 예언적 입장을 취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WCC 하라레 총회는 WCRC의 고백신앙과정을 환영하고 회원교회에게 이 신앙고백의 여정에도 참여하도록 독려하였다.

총회가 끝난 직후 세계개혁교회연맹, 세계교회협의회, 루터교세계연맹 Lutheran World Federation의 실무책임자들이 모여 JPIC 프로세스 때도 그렇게 갈망하던 정의, 평화, 생명의 문제에 대한 에큐메니칼 공동 대응 여정을 전개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의 일환으로 WCC, WCRC, LWF 등 세계 에큐메니칼 기구들은 아시아교회협의회, 유럽교회협의회, 라틴아메리카 교회협의회, 태평양교회협의회, 아프리카교회협의회 등 지역 에큐메니칼 기구들과 협력하면서 서울/방콕(1999), 부다페스트(2001), 피지(2001), 소스테르베르그(2002), 부에노스 아이레스(2003), 스토니 포인트(2004) 등지에서 지역협의회를 개최하는 경제생태정의를 위한 에큐메니칼 여정 ecumenical journey을 진행하였다.

WCC는 하라레 총회의 결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를 비판, 분석한 소책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말게 하소서Lead Us Not Into Temptation를 발간했는데 이를 우연히 읽게 된 IMF와 세계은행 측에서 자신들이 세계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추진하는 경제세계화에 대해 교회가 정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 WCC에 대화를 제안했다. 이후 WCC와 세계은행/IMF는 수 차례의 대화를 가졌다. 그러나 결국 대화는 세계은행/IMF등 국제금융기구들과 WCC가 추구하는 목표가 원천적으로 다름을 확인하고 헤어지는 결과만 남겼다.

WCC는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에 대한 에큐메니칼 대응이란 WCC 고유의 과정을 진행하고 2006년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열릴 WCC 9차 총회에 건의한 경제생태정의 권고안을 준비하기 위한 첫 번째 회의를 2004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하였다. 필자도 주제강사로 참여한 바 있는 이 회의는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에 대응하는 에큐메니칼 대응으로 인간과 생태를 중시하는 대안적 지구화 Alternative Globalization Addressing People and Earth: AGAPE”를 제안키로 했다.

이렇게 시작된 아가페 AGAPE프로세스도 순탄치 않았다. 북반구 교회와 남반구 교회간에 선명한 입장차이가 있었다. 북반구 교회들은 경제적 불의의 현실에 대해서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세계화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세계화에는 좋은 면도 있으므로 나쁜 부분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수정주의적 입장이었다. 그러나 남반구 교회들은 IMF와 세계은행이 1980년대부터 추진해 온 구조조정 structural adjustment정책 등 지금 세계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는 빈부격차를 가속화시키고 신식민지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소비주의조장, 생태계 피폐화 등으로 이어지고 있으므로 전면적 거부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북반구 교회들은 WCRC 총회가 아크라고백을 채택하지 못하도록 온갖 노력을 다 했지만 끝내 아크라고백을 저지하지 못하자 포르토 알레그레 총회를 위해서는 “Never Again Accra”란 생각을 가지고 준비했다. 따라서 WCC 실무진은 이 문제로 교회간 대립이 심화될 것을 우려해 총회에서 토론을 하지 않고 교회가 인간과 생태를 중시하는 대안적 지구화에 참여하도록 부르는 아가페부름 AGAPE Call을 부드럽게 선언하는 선에서 이 정책을 채택하려고 하였다. 총회에서 토론프로그램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자 북반구 교회 대표들은 점심시간에 따로 시간을 할애해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막상 따로 시간이 마련되어 토론하였으나 전체의 참여가 어려웠고 토론은 준비된 북반구 교회의 발언만 이어지는 일방통행식 토론이 되었다. 문제는 남반구 교회에도 있었다. 남반구 교회는 전혀 준비되지 않았으며 대립적 논쟁에 익숙하지 않는 남반구 특유의 문화적 이유 때문에 이런 논쟁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고 연합된 힘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북반부 교회 대표들은 집요했다. 심지어 WCC 경제문제를 담당하는 실무책임자를 찾아와 WCC에서 쫓아내 버리겠다고 협박하기까지 했다. 정의의 길은 에큐메니칼 세계에서도 어렵고 험난한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WCC가 이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는 방법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첨예한 논쟁을 했어야 했다. 혼돈을 통한 창조를 도모했어야 했다.

WCC 포르토 알레그레 총회 이후의 빈곤--생태프로그램

WCC는 제9차 총회에 보고된 아가페 부름 AGAPE Call으로 마무리된 “인간과 생태를 중시하는 대안적 지구화Alternative Globalization Addressing People and Earth , 아가페 과정의 후속으로 가난과 부의 축적과 생태파괴가 서로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하에 빈곤을 극복하고 부의 축재에 도전하여 생태적 온전성을 지키는데 초점을 둔 빈곤, 부 그리고 생태 Poverty, Wealth and Ecology: PWE’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빈곤, , 생태 프로그램은 종교, 경제, 정치 지도자들 및 관계 기관과 지속적인 대화를 추진해 왔다. 또한 에큐메니칼 지도자들, 교회 대표와 지도자들, 그리고 이웃종교 지도자들, 정부지도자들, 사회단체 등 세계의 여러 대륙과 나라들의 대표들이 참여한 대륙별 연구모임과 협의회가 연이어 열렸다. 2007년에는 다르 에 살람에서 아프리카 협의회가, 2008년에는 과테말라시에서 남미와 카리브해 협의회가, 2009년에는 치앙마이에서 아시아 태평양 협의회가, 2010년에는 부다페스트에서 유럽협의회가, 2011년에는 칼가리에서 북미협의회가 열렸다. 그리고 2012년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글로벌 포럼을 개최하고 부산총회의 토론을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빈곤과 부, 그리고 생태의 연결고리에 대해 교회를 향한 만물의 생명, 정의, 평화를 위한 경제: 행동촉구의 부름 Economy for Life, Justice, and Peace for All: A Call to Action를 발표하였다.

이 행동촉구를 위한 부름은 지금이 이 부름을 선포해야 할 절박한 때라고 말함으로 시작한다. 부름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넓은 생명 망의 일부분으로창조하셨다는 고백과 그 생명 망이 남미의 키추아 Kichua어로 좋은 삶이란 뜻인 수막 카우사이 Sumak Kawsay’, 서파푸아어의 와니암비 아 토바티 엥그로스 Waniambi a Tobati Engro, 아프리카의 우분투 Ubuntu, 아시아의 상생 Sangsaeng 등의 개념에서 보듯이 모든 생명은 동반자정신, 호혜성을 가지고 있다는 신학적 영적 근거에서 출발한다.

부름은 오늘 세계의 경제생태위기를 중첩되고 긴박한 위기로 규정하고 당장 변혁적 행동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는 정도로 긴박한 상황임을 경고하고 있다. 세계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제위기, 기후변화와 창조세계의 보전에 대한 위협, 번영한 시대 속에 극심한 불평등, 탐욕으로 얼룩진 영적 위기, 사회적 도덕적 철학의 문제들과 사회공동체뿐만 아니라 가족, 심지어 내면까지 파괴하는 시장근본주의의 폐해, 생태채무 등의 구체적인 위기상황 들을 제시되고 있다.

부름은 교회와 교인들이 지속 가능하지 않는 삶의 양식과 소비적 삶에 참여하고 탐욕의 경제에 얽히게 되면 결국 불의한 구조에 관련된 공범자가 된다고 고백하고 세계 도처에는 이 총체적 위기에 맟서 변혁이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일관되게 행동하는 교회들과 단체와 개인들이 많음을 상기시키고, 부활신앙의 힘이 새로운 생명세계의 건설에 큰 믿음의 뿌리가 됨을 확신하고, 같은 가치를 향해 함께 일하는 종교간의 협력, 사회운동과의 협력, 특히 생명운동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여성들의 헌신 등에 용기를 가지며 응답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부름은 “WCC 10차 총회가 하나님의 전 창조세계의 역동적 생명력이 부의 창조를 위한 인간의 수단에 의해 소멸될 수도 있는 때에 열리므로 우리에게 철저한 변혁을 하도록 부르신다고 전제하고 하나님의 온 창조에 대한 인간의 책임감을 증진시키며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일들을 향후 우선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    신 국제 금융경제기구 창설 (정의로운 금융과 생명을 위한 경제에 관한 WCC 성명서 참조)
-    부의 축적과 조직적 탐욕에 대한 도전 (탐욕선 greed line 연구회 보고서 참조)
-    생태정의의 수립 (생태정의와 생태채무에 관한 WCC 성명서 참고)

부름은 특히 10차 부산총회가 10차 총회부터 차기 총회까지의 기간을 따로 정하여 교회가 “<만물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창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의 삶을 사는 생명경제 Economy of Life Living for Gods Justice in Creation”에 신앙적 헌신을 하는데 집중하도록 독려하기를 요청하고 있다. 이 과정은 교회들로 하여금 서로 서로에게서 용기와 희망을 끌어내게 하고 일치를 강화하고 우리의 믿음의 바로 핵심에 놓여있는 아주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공동증언을 하게 하기 위함이다.

뒷 이야기로 PWE 프로세스에 참여한 실무자들은 WCC 부산총회가 생태정의실현 10년 행동 선언 Decade for Eco-Justice을 하기를 기대하며 준비해 왔다. 그러나 WCC 지도부는 이 문제에 그리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현재는 총회부터 총회까지 8년 동안, 헌신의 초점도 생태정의 Eco-Justice 란 구체적인 목표보다는 창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의 삶을 사는 생명경제란 포괄적 개념으로 설정하여 토론하기로 한 상태이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잊지 않고 포괄적 행동 속에 생태정의를 최우선과제로 뚜렷이 설정하여 이 주제가 미끄러져 나가지 않도록 잘 붙드는 것이다.

WCC부산총회와 이후의 과제

생태는 성경과 기독교신앙의 중심개념이었다. 성경은 최초에 하나님과 세계의 그림을 창조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창조 직후, 인간의 타락, 갈등 등 인간의 모순이 주요문제로 등장하면서 이 주제는 잠시 옆으로 밀린다. 그렇지만 생태는 홍수 뒤에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자손들과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땅 위의 모든 생명체와 계약을 맺는 데서 다시 중심개념으로 등장한다( 9:10-11). 그 후 성경의 이야기는 또 다시 인간의 멸망과 모순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러다가 요한계시록 말미에 묘사된 우주의 회복에 가서 다시 중심개념으로 등장한다. 성경의 주된 관심이 인간의 모순과 그에 대한 극복이지만 하나님의 역사의 최초는 생명공동체의 조화와 정의, 그리고 평화였으며 역사의 종말도 결국 생태정의, 생태평화, 생태생명의 총체적 회복을 지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태는 기독교 역사 속에서 줄 곳 기독교신학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었다. 리용의 주교 이레네우스 (대략130-200), 빙엔의 힐데가르드 (1098-1183), 아씨시의 성 프란시스 (1181-1225)와 같은 우주 생명세계 전체에 대한 통전적 신학적 성찰을 한 초기 영성지도자들이 있었으나 생태는 죄-영혼구원이라는 기독교교리의 패러다임에 밀려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가 생태위기가 위협적으로 다가오자 이 주제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조직신학의 한 분야 내지는 기독교윤리의 문제 내지는 교회의 사회적 관심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지 신앙고백의 중심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생태에 대한 관심과 관련하여 최근 독일에서는 조용하지만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독일지구변화자문위원회 German Advisory Council on Global Change / WBGU 2011년에 420쪽짜리의 긴 보고서를 내었는데 과도기에 있는 세계: 지속가능성을 위한 사회계약, World in Transition. A Social Contract for Sustainability (Berlin, 2011)의 요약본에 보면 지식사회를 향한 혁명적 권고가 제안되어 있다. 현재의 지식체계로는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해 전혀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현 지식체계를 완전히 넘어서는 변혁적 지식체계를 세워나가야 한다는 권고이다. 물론 이 권고도 충분히 변혁적이지 않다. 서구적 인식론을 벗어나려는 의도는 아직도 없고 또한 현재 지구의 자원을 좀 더 오래 우려먹으려는 꼼수의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움직임은 주목할 반한 시도이다.

지금까지의 기독교신학체계는 죄-구원 영성패러다임에는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으나 오늘의 총체적 생태위기에 직면한 세계에는 그 기독교적 응답과 증언에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의 생태위기에 대해 응답할 수 있는 새로운 변혁적 생명신학체계가 필요하며 이를 위한 변혁적 신학담론과 영성을 중심으로 예배, 선교, 봉사, 기독교교육 등 기독교 증언행위의 일체가 재편되는 새로운 변혁적 시도가 필요한 상황이다. 삼위일체 담론에서도 이천년 교회신학이 성자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근자에 와서 성령에 대한 조명이 이루이지고 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 자체에 대해선 아직도 통전적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제 기독론, 성령론 일변도의 신학에서 포괄적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런 신학적 성찰이 생태, 타종교와의 대화 등 더 넓은 신학 주제에 대해 넓게 이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구공동체의 파괴의 중심에는 늘 인간이 있었다. 인간이 변하지 않고 인간의 변혁적 참회와 결단 없이는 하나밖에 주어지지 않는 지구 생태공동체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생태를 기독교신학의 중심에 가져오고 모든 기독교 담론과 인류문명발전 자체를 생태를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시도가 기독교 교회 안에 있어야 하며 따라서 21세기 에큐메니칼 공동체의 첫 번째 도전적 과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부산총회의 주제를 볼 때 정의, 평화, 생명이란 중심개념의 차원에서는 JPIC의 주제를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느냐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JPIC의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이 인간중심적인 사고이라면 부산총회의 생명, 정의, 평화는 온 생태계의 생명, 정의, 평화를 다룬다는 차원에서 확연히 다르다.

부산총회는 생태정의, 생태평화, 생태생명의 총회로 가야 할 것이며 이에 대한 인식과 고백과 응답을 제대로 하는 것이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한 부르심에 대한 적절한 응답이 될 것이다. 이것을 놓지면 부산총회는 시대적 사명의 핵심을 놓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