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세계교회를 향한 희망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고 어떤 철학자가 말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사람은 그 역사는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소극으로 끝난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동일한 역사가 두 번 반복되는 것 같지는 않으나 명확한 것은 같은 유형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최소한 그것이 인간의 역사인 한에서는 그렇다.


1948년 암스텔담에서 모인 세계교회협의회(WCC) 창립총회는 그 주제를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계획”(Man's Disorder and God's Design)이라고 정했다. 이것은 당시 세계, 특히 소위 기독교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던 유럽이 두 번째의 세계대전을 일으킴으로 완전히 초토화되었을 때 세계교회는 인간이 역사에서 저지르는 무질서의 세계를 하나님께서 새롭게 디자인하여 질서를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구하는 의미의 주제였다. 마치 태초의 혼돈(Chaos)을 질서(Cosmos)로 디자인하여 창조하셨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역사는 다시 무질서로 돌입했다. 인간의 이념갈등에서부터 시작하여 세계 곳곳에서의 폭압적 군사독재정권의 출현, 사회적 소외와 착취, 정치적 억압, 군비경쟁 등으로 세계의 역사는 인간의 손에 의해 또 다시 무질서화된다. 인간은 같은 유형의 역사를 반복한 것이다.

세계교회는 사사시대의 역사처럼 이런 역사적 경험을 통과하면서 다시 깨닫는다. 그 신앙적 반성이 냉전체제가 끝난 1998년 짐비브웨, 하라레에서 모인 세계교회협의회 제8차 총회의 주제, “하나님께 돌아오라 - 소망 중에 기뻐하라”(Turn to God - Rejoice in Hope)에 잘 나타나 있다. 인간의 역사는 세계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양분하여 수십 년 이끌어 왔지만 이 인간에 의한 역사주도의 실험은 인류공동체에게 엄청난 정치적 사회적 채무만 남긴 채 끝났다. 세계교회는 이에 대해 인간의 손으로 역사를 만들려고 하던 일을 그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인간의 과오 혹은 착오의 역사는 또 다시 반복한다. 냉전체제 후에 강대국은 신 세계질서(New World Order)란 이름으로 세계를 재편하기 시작했다. 그 신 세계 질서의 프로젝트는 과거에 사회주의권과 자본주의권의 시장으로 양분화 되었던 세계시장을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고 세계경제를 자유시장경제가 주도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는 극심한 사회양극화를 낳고 소위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명목으로 자유시장 무한 경쟁체제를 도입하여 교육, 의료, 철도, 전기, 수도 등 공공기업까지 민영화와 사유화를 추진함으로 사회적 공공성을 파괴하고 인간의 삶을 보장해야 하는 경제를 부의 축제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돈을 삶의 궁극적 가치로 인식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세계의 경제적 양극화는 극에 달하고 무한성장으로 질주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 쓰나미 앞에 생태계의 무한파괴가 이루어졌고 인간의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인간의 영혼까지도 재물의 재단 앞에 엎드리게 하는 가치의 전도가 일어났다.

이런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란 인간의 힘의 의한 역사의 변혁에 대해 세계교회협의회는 다시 한 번 인간주도의 역사변혁에 대한 참회적 몸짓으로 역사변혁의 주체는 하나님이셔야 한다는 고백을 한다. 이 참회적 고백이 2006년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열린 WCC 제9차 총회의 주제, “하나님, 당신의 은혜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소서”(God, in Your Grace, Transform the World".에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간 역사의 반복은 다시 일어났다. 인간은 21세기를 맞이하고 새 천년에 진입했는데도 역사의 새로운 출발을 이루지 못했다. 아시아, 러시아, 남미 등에서 나타나던 세계경제위기는 미국과 유럽까지 나타났으며 이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몰락을 몰고 왔고 더 나아가서 자본주의의 몰락의 미리보기 정도로 그 위기는 심각함이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생태위기는 이제 경고의 수준이 아닌 일상에서 맞는 재난의 수준으로 다가왔다. 세계 전체에 이상기후현상이 계속되고 있고 2011년 일본에 밀어닥친 쓰나미란 자연재해, 그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위기는 인간의 역사를 하나님이 내리시는 것이 아닌 인간이 스스로 자초하는 노아의 홍수와 같은 총체적 심판으로 치닫게 하지 않을까 하는 깊은 두려움을 우리에게 심어 주었다. 인간의 기술이 하나님의 생명코드까지도 복사해 낼 수 있을 정도로 발달하지만 바벨탑이 끝내 무너졌던 것처럼 인간의 멸망이 그 기술에 의해 올 것만 같은 의구심이 마음속에 자리한다.

지난해 부산에서 열렸던 WCC 제10차 총회는 이런 세계적으로 계속 심화되고 있는 경제적 양극화, 생태 위기, 등 인류문명의 총체적 위기속에 열렸다.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 이 주제는 무엇을 말하는가? 세계는 거듭 반복되는 경제위기속에서 경제의 신조로 믿고 있는 신자유주의, 나아가서는 자본주의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데도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세계는 자본주의에 색깔만 칠해 녹색자본주의로 눈가림하려고 꼼수를 부리고 있고 기후변화 등 생태위기가 이미 위험수위를 훨씬 넘었는데도 국제사회는 아직도 생태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 문명의 행진을 중단할 결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 세계는 지금 생명이 아닌 죽음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교회는 이 시점에서 결국 생명의 창조자이시며 정의의 기준이시며 평화의 원천이신 하나님에게 이 세상과 역사를 이끌어 달라는 탄원을 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현재 이끌고 있는 역사가 결코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생명, 정의, 평화로 이끌고 가지 못한다는 신앙적 분별을 하기 때문이다. 부산총회 주제는 생명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평화로 세계와 인류문명을 이끌어 주셔야 이 세상에 생명이 있고 희망이 있다는 간구이며 신앙고백인 셈이다.

이 총체적 위기의 시대에 생명의 복음을 선포해야 할 사명을 가진 교회가 이 기도를 드리는 의미는 교회는 지금 세상이 걷는 길과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뜻이다. 세계교회협의회 제10차 부산총회는 이런 신앙고백적 의미를 담아 전 세계교회가 “정의와 평화의 순례”를 떠나도록 결의하였다. 이 정의와 평화의 순례는 지금 인류가 이끌고 있는 죽음과 죽임의 문명을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생명을 향상시키는 문명” (Life-enhancing civilization)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교회가 앞장서겠다는 헌신을 의미한다.

요즈음 세계의 교회는 새로 취임한 프란시스코 교황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있다. 취임 첫 방문지를 아프리카 집단난민촌을 택하고 자신의 생일에 노숙자를 불러 조촐한 생일잔치를 하고 “나는 카톨릭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교단적 편협성을 넘어가고 겸손과 섬김의 모습을 몸소 실천하면서 많은 사람들에 마음에 신선한 영적 가르침을 주고 있는 프란시스코 교황의 말,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혁명적이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A Christian who is not revolutionary in this time is not a Christian.)라고 한 말과 같은 신앙고백과 신학적 의식이 2014년 세계교회의 정의와 평화의 순례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제 불의의 역사의 반복이 약화되고 변혁의 역사가 더 많이 반복되면 좋겠다. 넬슨 만델라가 수백년의 아파르타이트를 뒤엎고 남아공에 이룬 해방의 역사처럼, 이 땅의 젊은이들과 민중이 무서운 독재를 뒤엎고 이루어 온 민주주의의 역사처럼....

<박성원, 2013. 12. 26. 기독교신문 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