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성 경 / 요한계시록 22:16-21
 
어느듯 한 해가 저물어가고 오늘로 대강절(Advent)을 맞게 되었습니다. 대강절이란 이 땅 위에 우리 인간을 찾아오시는 그리스도의 강림을 대망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직전 후기 유대교(Post-biblical Judaism)시대에는 유대인들이 회당(Synagogue)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18번의 축복기도가 진행되는 가운데 15번째 축복기도를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는 기도로 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월절 만찬 때에는 엘리야가 메시야 앞에 예비자로 오신다는 전설에 따라서 폐회기도가 끝나기 직전에 엘리야의 잔을 포도주로 채우고 난 뒤에 문을 열고 전 가족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는 메시야의 오심을 확실히 믿는다.”라는 찬미를 불렀다고 합니다.
 

이 대강절은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지난 해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스칸디나비아(Scandinavia)에선 대강절이 되면 소나무로 둥근 화환을 만들고 거기에다 네개의 초를 꽃아놓고 한 주일에 한 초씩 켜면서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립니다. 마침내 대강절 네 주일이 다 지나면 성탄절 예배 때는 가운데에 보라색 초를 켜고 왕중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지난 해에 이어 네 개의 초를 준비하고 한 주일에 한 초씩 켜면서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는 경건한 절기를 보내고자 합니다.
 
사실 그리스도는 이미 2천년 전에 이 땅 위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신다는 말씀과 함께 이 땅을 떠나셨고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단순히 종말에 일어날 사건만이 아니라 유대민족이 그랬듯이 우리 인류가 메시야가 오지 않고서는 도저히 스스로 헤쳐나갈 수 없는 어려운 시험에 빠질 때 우리는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립니다.
 
성경의 제일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맨 마지막 부분은 마라나타 (Maranatha), 즉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란 말로 끝나고 있습니다. 이 “마라나타”란 말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비밀리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성찬식을 가졌을 때 바로 이 “마라나타”(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란 말로 그 성찬식을 마친 기도입니다. 그들에게 무서운 박해가 찾아올 때 속히 메시야가 오셔서 이 고통이 끝나고 평화가 오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인류는 절망적 상황에 처할 때마다 이 기도를 드려왔습니다. 카타콤에서 모인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일평생 한번도 햇빛을 보지 못하고 그 지하무덤에서만 일생을 마치면서 언젠가 그리스도가 오면 이 지하무덤에서 해방될 날이 있겠지 대망하면서 “아멘!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끌려간 흑인노예들이 하루종일 백인들의 채찍과 욕설속에 시달리다가 저녁에 통나무집 희미한 남포불 밑에 둘러앉아 성경을 읽고 이 기도를 하면서 그 고통스러운 노예생활이 끝나기를 대망했습니다. 때때로 흑인들은 이 고통에서 차라리 우리를 하늘나라로 데려가 달라고 이렇게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귀하신 주여, 내 손을 잡고 날 인도하소서.
날 굳게 서게 하소서.
나는 곤고하고 연약하고 슬프옵니다.
이 폭풍을 뚫고 이 밤을 지나
날 빛으로 인도하소서.
귀하신 주여, 내 손 잡고 날 인도하소서.
날 고향으로 인도하소서.
 
이 기도는 나치수용소 속에서도 드려졌습니다. 나치 독재의 희생제물로 잡힌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은 까스실이나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이 인간의 죄를 심판하고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고귀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속히 주님이 오셔야 한다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는 우리 한국에서도 드려졌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실패하고 인간의 힘으로는 민족독립이 찾아옴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을 때에 길선주 목사가 인도하던 부흥회에서 열렬하게 불리워지던 찬송이 있습니다.
 
주 예수의 강림이 불원하니
저 천당복 얻을자 회개하게
주 성신도 너희를 부르시고
뭇 천사도 나와서 영접하네
 
이 찬송은 일제의 학정이 극도의 기승을 부릴 때 유일한 희망을 하나님께 두고 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던 교우들이 설교가 끝난 후 눈을 감고 두 손을 높이 든 채 몇번이고 반복하여 부르던 찬송입니다. 이 고난과 고통의 세상은 끝나고 이제 더 이상 눈물과 고통이 없는 세상이 와야 한다고 소망하며 부르던 찬송입니다. 그들은 이같이 눈물과 고통이 없는 세상을 가져올 메시야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안고 그 참혹한 민족적 역사적 암흑시대를 이겨나가려고 했습니다.
 
이처럼 인류는 인간이 홀로 풀어낼 수 없는 정말 어려운 위기를 만났을 때 간절히 메시야를 대망한 역사적 기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요한계시록의 상황도 예외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은 로마제국의 잔인한 박해아래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기록된 비밀문서입니다.
 
이 계시록은 이름이 계시라고 되어 있으나 사실은 사도요한이 꾼 꿈과 같습니다. 사도요한은 영어의 몸이 되어 밧모섬에 갇혔을 때 이제 모든 희망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로서는 다시 그 섬을 빠져나올 수 없고 이 세상은 어두움이 지배하는 무서운 세상이 될 것이라는 예감속에 그 밧모섬 해변가에서 며칠이고 기도하였습니다. 마침내 지친 사도요한은 잠에 빠져들어갔는데 그 잠속에서 그는 꿈을 꾸었고 그 꿈에서 엄청나게 신비한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제국주의 나라들이 짐승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멸하려는데 이들이 보좌에 앉은 어린 양과 성도들에 의해 철저히 타파되고 드디어 이 어두운 세상에 새 하늘과 새 땅이 건설된다는 비젼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에서는 힘없고 억눌린 사람들이 하나님의 권능과 그의 개입으로 이 땅위의 억울한 한을 풀고 하나님의 승리를 안는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희망의 소리입니다. 사도요한의 꿈이 거의 이런 해피엔딩이 되어갈 때 그는 꿈을 깨게 되었습니다. 사도요한은 지금까지 자기가 본 환상이 너무나 감격적이었기 때문에 놓치고 싶지 않아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고 노래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로 주님이 어서 오셔서 속히 그런 세상을 만들어 주시옵소서”라고 사도요한은 즉시 엎드려서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여기에서 봅니다. 사도요한이 살던 어두운 시대는 바로 기독교에게 엄청난 박해를 가하던 로마제국의 폭군 도미치안(Domitianus: AD 81-96))시대입니다. 네로(Nero)의 화신이라고 불리우던 도미치안은 자기를 부를 때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도미치안”(Deus et Dominus Noster Domitianus)라고 부르라고 강요하던 폭군입니다. 실제 이 짐승같은 폭군에게 충성하던 마샬(Martial)이란 어용궁정시인은 이런 시를 지어 그에게 바쳤습니다.
 
당신은 빛나는 새벽별,
밝은 낮을 가져 오소서.
오소서, 우리의 두려움을 쫓아내소서.
로마는 황제가 속히 오기를 기다리나이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기도를 계시록 22:16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사도요한은 예수를 가리켜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며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칭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가리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이 인간폭군에게 어용시인 마샬이 드리던 기도와 대조해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만찬을 하고 난 뒤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기도했던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대강절은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이 기다림이 그냥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하나님이 개입하시지 않고는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때 바로 인간의 한계를 철저히 절감하고서 하나님의 개입을 간절히 바라는 그 바램을 의미합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의 주권을 월권하여 불의의 통치를 하는 이 세상에 주님이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지금도 오셔야 할 자리가 우리 역사현실과 삶의 현실에 너무나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 인간이 실존적으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상황이 되었을 때 주님의 임재를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생활에 실패할 때, 치명적인 질병에 걸렸을 때 모든 기도는 주님의 뜻대로 하시도록 드릴 수 있지만 한 가지 더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님이 임하셔서 이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시옵소서” 기도드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야 할 자리는 비단 개인적 실존의 자리만이 아닙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주님이 임재하셔야 할 자리가 너무나 많습니다. 보스니아에도 주님이 오셔야 하고 저 아프리카 르완다에도 주님이 오셔야 합니다. 기아와 질병과 억압에 시달리는 이 지구상의 수많은 민중들은 어서 속히 메시야가 오셔서 그들을 그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기를 기다립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아직도 충분히 밝아지지 않았고 지구 곳곳에, 우리의 삶 곳곳에 어둠이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인간이 아담과 하와 이후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사악해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불의와 권무술수, 미움과 거짖이 지배하는 이 세상은 우리의 영원한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신다고 하는 소문이 들리는 이 계절에 우리 모두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십시다. 우리의 삶에서 눈물과 고통과 염려가 끝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인간의 억압이 끝나고 억울한 희생이 더 이상 없게 하기 위하여 기도하십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의 어린 아이가 자기의 명을 다 채우고 살며 노인이 수한을 다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의 마음에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물러가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평화가 깃들기 위하여 기도하십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대강절에 무엇인가 목마른 자, 생명수가 필요한 자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특별히 돈이 없어서 생명수를 사 먹지 못하는 모든 가난한 자, 그들은 함께 기도합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박성원 목사, 부산진교회 주일설교 1994. 11. 27. 대강절 첫째주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