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을 채워라

성 경 / 마태복음 25:1-13
  
오늘 우리는 대강절 둘째 주일 촛불을 밝혔습니다. 대강절은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기대 속에 기다리는 절기란 말씀을 지난 주일에 드렸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주님을 기다리는 이 둘째 주일에 우리가 잘 아는 열처녀의 비유를 통해 주님이 오신다는 의미와 주님을 맞이하는 우리의 관계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이번 대강절과 성탄절을 여인이 아기를 가지고 낳고 기르는 일에 비유하여 연속적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탄생 이야기 자체가 성경 여러 곳에서 여인이 아기를 가지는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고 예언했던 이사야 6:14은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말씀은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예언인데 여기에 보면 주님께서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징조(Sign)로 택한 것이 바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징조였습니다.또 메시야가 실제 오셨을 때 그 메시야는 마리아란 여성의 태 속에서 잉태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여성의 태를 통해서 메시야가 오셨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그가 우리와 같은 육체를 가진 인간(人間)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의미가 있겠지만 좀 더 깊은 의미에서 본다면 메시야를 우리가 모시게 되는 것이 바로 여인이 생명을 잉태하는 일에 비유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잉태에 관한 이야기는 상당수가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가운데 이루어지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하나님께서 아기를 낳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라는 백세가 되어 이삭이란 아들을 잉태하게 되었는데 이 이삭은 곧 하나님의 약속의 징표인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메시야를 우리가운데 모신다는 것은 곧 여인이 생명을 잉태하는 일과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오늘은 여인이 아기를 갖게 되는 필연적인 과정인 신랑과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메시야를 맞을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우리는 주로 세상 마지막날에 심판주로 오시는 주님에 관한 말씀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하는 일과 같다고 서두에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란 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한 축복의 약속같은 것입니다. 즉 미래가 없는 사람에게 미래를 주시고 구원이 필요한 자에게 구원을 주시고 해방이 필요한 자에게 해방을 주시고 눈물이 흐르는 자에게 눈물을 닦아 주시는 위로가 되십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의 삶에는 아무 상관이 없고 단순히 종말에 있을 심판 때만을 준비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언제든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현재 준비하는 것이고 그 준비는 미래를 위한 준비가 아니라 바로 현재를 위한 준비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언제든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늘 준비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보면 열처녀가 등장하는데 그 중에 다섯은 등불을 준비하고 항상 기름을 그 속에 채워두고 있었고 나머지 다섯처녀는 등불을 준비했으나 현재 기름을 준비해두지 않았습니다. 첫번째 다섯 처녀의 슬기로움은 등불과 기름, 즉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준비한 것이었고 두번째 다섯처녀의 어리석음은 등불만 즉 미래만을 준비하고 있었지 지금 불을 켤 수 있는 기름, 즉 현재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 처럼 하나님은 죽어서 언제인가 만나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지금 현재 여기에서부터 만나야 할 대상입니다. 내일 만날 대상이 아니라 오늘, 이 시간, 지금의 나의 삶 한가운데 만나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을 맞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합니까? 즉 하나님의 구원이 지금 나에게 오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총이 지금 나에게 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위로가 지금 나의 슬픔속에 찾아오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서두에서 이야기한대로 여성이 아기를 잉태하게 되는 과정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고 내가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의 은총을 잉태하게 되는 이야기로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신부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는 신랑입니다. 신랑이 없는 결혼은 성립되지 않으며 신랑이 없는 신부가 아기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기를 가지려고 하는 신부가 반드시 신랑을 만나야 하듯이 우리 인간의 삶속에 하나님의 희망과 생명과 구원과 영생을 가지려고 하면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렇게 상상할 수 있겠습니다. 결혼식날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신랑이 나타나지 않는다거나 신부가 나타나지 않을 때 그 상황이 어떻겠습니까? 소설아니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그런 이야기지만 실제상황이면 엄청난 당혹과 좌절이 있을 것입니다. 아마 생애 최고로 기분나쁜 날이 되고 불행한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신랑을 기다리던 열 처녀중에 다섯처녀는 기름을 평소에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고 결국 신랑을 맞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는데 바로 신랑이 오시는 그 순간에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다섯 처녀는 결혼식장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주님이 오셔서 문을 두드리는데 내가 열어주지 않아서 못들어오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는 주님은 찾아오셨으나 바로 그 순간에 자리를 비운 나머지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 두 경우가 모두 우리 인간에게 책임이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은총을 주시기 위해서 나의 삶의 문밖에 찾아오셨는데 내가 마음을 열고 그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만나지 못하고 또 한 경우는 지금까지 기다리다가 내가 잠깐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신랑을 만나지 못한 셈입니다. 우리의 하나님과의 만남은 마치 우주선의 랑데뷰와도 같습니다. 넓고 넓은 우주의 한 지점에서 정확한 시간에 두 우주선이 결정적으로 만나듯이 그래서 자선이 모선으로부터 모든 것을 부여받듯이 우리가 인생이란 우주를 여행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과 만나게 되어 있는데 내가 만나기를 거부하거나 그가 오셨는데 내가 그 자리에 있지 않거나 해서 하나님과의 만남이 불발이 되면 우리에게도 하나님에게도 큰 불행이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렇게 권면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이 말씀은 우리가 어려운 고통속에 있을 때 하나님의 평화가 필요하고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하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 그 때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때이고 그 때가 되었을 때, 즉 그가 가까이 계실 때 그를 부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2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여러분은 혹시 지금 하나님을 만나야 할 때입니까? 바로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할 때가 아닙니까? 하나님을 찾으십시요.여러분, 바로 지금 하나님이 여러분 가까이 계셔야 되지 않습니까? 지금 하나님이 여러분을 도우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를 부르십시요. 그 분은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이제 구체적인 만남을 위한 준비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본문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불과 기름을 같이 준비하고 있었고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등불은 준비하고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등불은 열 처녀 모두가 다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기름을 준비하는데 차이가 났습니다. 여기에서 등불은 무엇을 의미하며 기름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이것은 하나의 상징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먼저 형식과 내용의 대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등불은 외형적 틀이고 기름은 내용물이라고 볼 때 형식은 준비되었으나 실제 내용이 없으면 그것은 준비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등불을 켤 수 있는 등(燈)도 중요합니다. 등이란 기구가 없이는 등불을 켜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말은 형식도 중요한 것입니다. 형식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주일을 성수하고 계명을 지키고 정한 시간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외형적으로 내가 신앙인이라는 형식을 갗추는 것은 마땅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형적인 것이 갗추어졌다 하더라도 불을 켤 수 있는 기름이 없이는 결코 불은 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름은 불을 켜는데는 하나의 필수적 요소입니다.
 
예를 들면 자동차가 있다고 합시다. 아무리 빠른 자동차, 성능이 좋은 자동차가 있다 하더라도 기름이 없으면 그 차는 무용지물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프랑스말에서는 주유소의 기름을 에쏭스(Essence)라고 말합니다. 즉 기름이 자동차의 필수라는 것입니다.
 
다시 여성의 잉태이야기로 돌아가 보십시다. 여성이 잉태하게 될 때는 신체적인 조건이 필요합니다. 수태할 수 있는 생물학적 조건이 구비되지 않았을 때 잉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조건은 피조물에 따라 다르지만 사람도 항상 잉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는 수태의 때를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자신도 하나님을 만날 때가 있는 것이고 여성이 수태를 하기 위해 생물학적 조건을 갗추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은총을 잉태하기 위해 영적인 조건을 갗추어야 합니다. 그 조건이 무엇이겠습니까? 처녀들이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기름을 준비한다고 했는데 우리의 신앙에서 그 기름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영적으로 그 기름은 메시야에 대한 기다림이 될 것입니다. 그 분이 반드시 나에게로 오실 것이라는 확신과 간절한 대망이 바로 준비해야할 기름이 될 것입니다. 이 대망을 좀 더 구체적인 개념으로 설명하면 “믿음”이 될 것입니다.
 
믿음!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그가 우리의 구원자가 될 것이라는 믿음, 그 간절한 열망은 곧 하나님과의 만남을 제촉하는 기름이 될 것입니다. 욥은 자기 생애가 거의 파멸되어 갈 때 그는 이렇게 절규했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밖에서 하나님을 누리라.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급하구나. (욥기 19:25)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지금 현재, 지금 이시간 나의 삶속에 오셔야 한다는 필요를 느끼는 분은 그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가 창조주이며 그가 이 역사의 주인이며 나의 생명과 삶을 주장하시는 분임을 고백하며 그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이지러지면 이지러질수록, 우리 사회와 세상이 불의하고 불안하면 불안할수록 그를 우리의 역사속으로 초대하십시다. 그리하여 그의 구원을 맛보고 그의 해방의 은총을 누립시다. 그는 우리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우리의 가까이에 계실 것입니다. 아멘.
 
<박성원 목사, 부산진교회 주일설교, 1994. 12. 4 대강절 둘째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