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탄생

누가복음 2:8-14

어둠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이 세상에 희망을 안고 오신 메시야의 탄생이 여러분의 삶 속에 모든 어두움을 밝혀주시길 기원합니다.

대강절을 지내는 동안 말씀드린대로 유태인들은 유월절 만찬 제일 마지막 부분에 엘리야를 기념하는 포도주잔을 들고 자기들의 집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메시야의 오심을 기원했었습니다. 이 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기다림은 그들로 하여금 어떤 절망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일어서게 하는 절대불굴의 원천적 힘이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는 우리 교회밖에 드리워진 성탄 현수막에 새겨진 선언처럼 이 땅에 희망의 선물을 안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희망이란 선물과 관련하여 오늘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이 희망이 그냥 단순한 희망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냥 우리가 절망적 상황을 만나고 거기에서 위로받기 위해 용기를 북돋우어주는 그런 알맹이없는 인사치레의 희망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이 희망에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한 가지는 하나님의 개입이고 다른 한 가지는 아기 탄생의 사실입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우리가 매 주일 예배에서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잘 정리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바로 이것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여기에 보면 첫째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외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탄생에는 하나님의 직접 개입의 사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 아기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고 했습니다. 이는 잉태와 탄생이란 과정을 통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기 저 두 촛불이 의미하는대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라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교리적으로 표현하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그러나 이 속에는 아주 극적인 사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개입과 아기의 탄생이란 이 두 사실이 예수께서 이 땅위에 오시는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먼저 하나님과 아기 탄생과 희망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들을 보십시다.
 
첫째로 아브라함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고향에서 추방당하였습니다. 종족의 대물림이 고대세계에서는 생명보다 더 중요한 그 때에 아브라함이 부족공동체에서 추방당했다는 것은 치명적인 불행입니다. 거기다가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마저도 아기를 생산할 수 없는 몸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에게는 미래의 희망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상태였습니다. 과거로부터도 단절되고 미래로부터도 단절된 완전 절망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족공동체에서 쫓겨나고 임신불가능한 상황속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장차 아기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축복이었습니다.
 
이 믿을 수 없는 약속을 하나님은 여러번 확인하여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의심할 때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늘의 뭇별들을 보여주시면서 네 자손이 저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불어날 것이며 마침내 큰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인간적으로는 그 약속이 성취되기까지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리는 시련도 있었지만 그 약속은 마침내 하나님께서 이삭이란 아들을 잉태케 해 주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삭의 탄생은 아브라함에게는 천하를 얻는 기쁨이고 은총이었습니다. 이삭과 그 뒤를 잇는 야곱을 통해 끊어질 것 같았던 아브라함의 대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늘의 별처럼 번져갔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기의 잉태와 탄생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총의 선물의 상징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는 모세의 경우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430년동안 종살이하고 있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노예생활이 너무 고달파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구원에 대한 약속을 모세란 아기의 탄생을 통해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바로왕이 히브리 족속에게서 나는 모든 사내아이를 나는대로 다 죽이라고 명령했을 때 두 히브리산파는 목숨을 걸고 아기 모세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그의 목숨은 어머니 요게벳이 수개월동안 숨겨서 지켰고 이제 더 이상 지킬 수 없었을 때 모세의 어머니와 누나 미리암과 심지어 애굽왕의 공주의 손을 빌려서까지 하나님은 그의 목숨을 지켰습니다. 마침내 성년이 되었을 때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게 소원한대로, 하나님의 섭리대로 노예해방의 민족지도자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모세란 아기의 탄생이 곧 하나님의 약속, 막연한 약속이 아닌 히브리노예들의 해방이라는 역사를 일으키는 구원의 현실이란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세례요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요한의 탄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비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하나님의 신호였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마리아란 처녀가 이제 겨우 정혼하고 철부지처럼 지내고 있을 때 그에게 천사가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야 너는 하나님의 은혜을 입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는 위대하게 되고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하고 아기의 탄생을 예고했습니다. 이 예고는 바로 이사야를 통해 이미 오래전에 예언한 하나님의 약속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리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란 약속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은 아기의 탄생이란 징조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 약속이 바로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으로 알고 또 거역할 수 없는 대세인줄 알고 “저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 지소서.”하고 응답했습니다. 그리고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께서 자비를 기억하셔서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토록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부터 해 주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시고 마침대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고 찬송합니다. 이는 아기 예수의 탄생이 하나님의 약속이 이 땅위에 실현되는 것임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절망에 처하고 흑암에 처한 우리에게 희망과 빛을 주시기 위해 아기 예수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아기의 탄생은 하나님의 희망의 잉태인 셈입니다. 아기의 탄생은 인간 사회에서도 희망의 탄생입니다. 한 집안에서 아기의 탄생은 대물림을 예고하고 가정의 번영을 약속합니다. 인간은 그 후에 여러 길을 걷지만 최소한 그가 아기로 태어날 그 때는 모든 긍정적인 희망을 가지고 탄생하는 것입니다. 아시아교회협의회(CCA)가 펴낸 아시아의 아이들(Children of Asia)란 책에 시토 시투모랑(Sitor Situmorang)이란 시인이 이런 시를 읊었습니다.
 
모든 탄생은 하나의 혁명이다.
그 탄생이 수천년전에 일어났든지
오늘에 일어났든지
모든 탄생으로 세계는 새로워진다.
 
어떤 아기는 움막에서 나고 어떤 아기는 들판에서 난다.
그러나 아기가 어디에서 태어나든지
그의 눈에는 세계가 비쳐지고
그의 울음속에는 그리스도가 임재한다.
 
인간의 아들 그리스도는
세계를 새롭게 하기 위해 탄생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잉태한 모든 아기들처럼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그가 필요할 바로 그 때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위에 하나님의 희망의 선물로 오셨습니다. 그 희망은 이 땅 위에서 많은 시련을 받게 됩니다. 마치 모세의 탄생이 히브리 민족의 희망의 불씨가 되기 때문에 그 희망의 새순을 잘라버리려고 바로왕이 죽이라고 명령했지만 그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그 희망의 씨앗은 잘 지켜져서 마침내 히브리민족의 해방을 가져왔듯이 예수의 생애도 그와 꼭 같습니다. 아기 예수는 탄생된지 불과 며칠이 못되어 베들레헴 근교에 내려진 2살 이하의 아기학살령을 피해 애굽까지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그는 돌아와서 30여년 동안을 소리없이 지내야 했습니다. 그가 마침내 30세가 되었을 때 마침내 때가 되었을 때 그는 노도질풍처럼 하나님의 나라의 주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는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죽음의 위협까지 마침내 죽임을 당하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이런 도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죽음에서 살려내심으로 하나님이 펼치는 희망의 불씨는 세상의 어떤 광풍도 끄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희망의 징조로 항상 살아계십니다. 그는 우리앞에 하나님의 구원으로 우뚝 서 계십니다. 이 희망의 선물이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여러분의 가정속에 우리의 사회와 온 인류에게 모두 배달되기를 바랍니다. 감옥에도 전장에도 절망의 질곡에서 외로움의 뒤안길에도 전해져서 흑암에 처한 이 피조세계에 하나님의 은총의 광명이 환하게 비취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박성원 목사, 부산진교회, 1994. 12. 25. 성탄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