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워지는 선교

아모스 8:11 / 마태복음 28:18-20

우리 부산진교회가 100주년을 기념하고 선교 2세기를 열던 1992년에 내건 목표는 “역사적 책임을 다하는 교회”였습니다. 이것은 선교 2세기를 여는 중대한 싯점에 영남의 모교회로서 미래지향적인 교회의 모습과 새로운 선교 비젼을 제시하고 2세기의 복음전파의 사명을 선도적으로 책임있게 감당하자는 그런 의미였습니다. 이 선교 2세기를 여는 표어아래 우리는 3년을 지내왔습니다.

역사적 책임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먼저 새로워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93년에는 “새로워지는 교회”란 표어아래 우리 교회의 여러 부분을 새롭게 하는데 주력을 다했습니다. 먼저 마음과 의식이 새로워지기 위해 예배를 새롭게 하는데 주력했습니다. 장로교 고유전통에 따라 말씀의 깊이 있게 선포하고 성찬식을 더욱 자주 하며 헌신예배는 문자그대로 회원들이 오랫동안 스스로 준비하여 제대로 헌신하는 예배를 드렸고 절기 때마다 그 의미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93년에 주력한 것은 의식의 전환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는 성경말씀대로 새로운 사고(思考)가 가능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94년도를 맞이하였을 때 우리는 신앙이 새로워져야 하겠다는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새로워지는 신앙”이란 표어아래 성서적 신앙을 확립하고 개혁적 신앙, 그리고 실천적 신앙을 세우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예배를 새롭게 하는 일을 계속하는 동시에 신앙교육원과 수요강해를 통해 성서에 바탕을 둔 신앙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금요일마다 수요일에 강해되는 말씀으로 다시 한번 묵상하는 구역예배도 드렸습니다. 학습자와 세례자, 새 신자와 심지어 새로 임직받는 이들까지도 그냥 형식적인 공부가 아닌 실질적 공부를 시켰고 학습 세례 문답시에는 자신이 스스로 신앙고백문을 책임있게 쓰고 고백하게 했습니다. 이 세례문답의 때는 정말 순수한 신앙의 모습을 나누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95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계획에 의하면 올해는 “새로워지는 생활”이란 주제아래 주로 기독교윤리에 주력하는 목회계획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근 2년동안 목회를 하면서 이 보다 더 시급한 일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전도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내년도 우리 교회의 표어를 “새로워지는 선교”로 세웠습니다. 이 표어 아래 세 가지 실천목표를 세웠습니다.
1) 복음 선교
2) 에큐메니칼 선교
3) 생활 선교
이 세 가지 실천목표에 관해서는 다음 주일에 자세히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총 주제가 되는 “전도”에 대해 집중적으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왜 전도가 중요하냐? 전도는 교회가 존재하는 한 항상 해야 할 일이고 본질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제기하는 전도의 과제는 그냥 원론적인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급박하고 중대한 실존적인 차원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한국교회의 성장이 90년대에 들어와서 둔화되기 시작하고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서서히 감소의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 이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는 사실 이것은 아주 무서운 신호인데 그것은 바로 세속화(Secularlization)가 시작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구라파교회를 방분해 본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구라파교회는 죽었다고 합니다. 정말 구라파에 가 보면 주일날 엄청나게 큰 교회건물 안에 30- 50여명의 나이많은 분들만 예배를 드립니다. 젊은이들은 눈을 닦고 찾아볼래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세속화”란 병의 심각성을 한국에 있는 분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 트로얀 목사님이 오셔서 말씀하실 때도 한국사람들은 아직 세속화의 무서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속화는 신앙을 잡아먹는 세균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세속화의 초기 증세가 지금 우리 한국교회에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속화가 한국교회 안에 나타나는 현상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 째는 위에서 이미 말씀드린대로 전체적으로 한국교회의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두드러지게 숫자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경우를 보면 어린이와 학생이 대부분 교인의 자녀인 경우가 많고 그 부모님이 신자가 아닌 학생만이 자발적으로 교회에 오는 경우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서울의 어떤 교회는 주일학교 학생수가 10분의 1로 준 곳도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는 곳에 있는 기존교회는 부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 믿는 분들이 늘어나서 부흥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신자가 아파트로 이사를 해 오기 때문에 불어나는 소위 신자의 수평이동현상입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성장이 둔화하고 특히 우리 교회처럼 도심에 위치한 교회는 현상유지마저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런 현상을 감안할 때 그래도 우리 교회는 많지는 않더라도 상대적으로 어려운 조건을 감안할 때 이만큼 자라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도심의 주거지역이 자꾸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도시공동화현상이 가속되면 될수록 도심의 교회들은 아주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경제발전과 함께 향락산업이 번창하고 여가산업이 발달하고 생활양식이 달라져서 주말 레저가 일반화되고 모든 삶의 틀이 경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감으로 신앙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즉 돈이 충분히 있고 다른데서도 인생을 즐길 수 있고 그리고 피곤에 지친 심신을 휴가를 통해서 쉬려고 하는 그런 삶의 양식은 점점 신앙과 같은 궁극적 문제, 생각해야 하고 자기 행동을 제한해야 하는 그런 영적인 문제는 되도록이면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하게 됩니다. 요즈음 교회 안에서도 교인들의 문제제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이런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는 그런 신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행복의 가치도 경제에서 찾습니다. 돈이 풍부하고 생활에 지장이 없는데 왜 골치아픈 신앙을 가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결국 약간의 불행만 당해도 금방 하나님 앞에 찾아오지 않고는 못 베기는 약한 존재이면서도 인간은 조금만 배부르면 가치있는 것을 소홀히 하게 됩니다. 이것이 세속화 증상의 시초입니다.
 
세속화의 위력은 교회를 황폐하게 하고 교회가 황폐하게 되면 인간의 정신적 건강상태가 황폐해 집니다. 제가 구라파에서 살고 있을 때 구라파교회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붙들고 묻는 말이 이 세속화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겠느냐, 그리고 한국교회는 미리 준비해서 그 세속화에 밀리지 말라는 부탁을 수 없이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마치 암과 같은 치명적인 병에 걸린 사람이 건강한 사람을 붙들고 암에 걸리지 않기 위해 이것 저것을 철저히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 세속화가 무서우냐? 세속화란 하나의 막연한 개념같지만 그것은 뚜렷한 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현상을 포착하기가 결코 쉽지 않지만 나름대로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겠습니다.
 
세속화는 첫째 인간의 비인간화를 가져옵니다. 요즈음 가만히 보면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고 살지 않습니다. 회사에 가보면 모든 사람이 컴퓨터와 마주 앉아 있고 많은 사람의 일을 기계가 대신합니다. 병원에 가면 요즈음은 칼을 대지 않고 레이저로 수술을 합니다. 의사가 환자와 마주앉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는 환자대로 있고 의사는 기계와 마주 앉아 있습니다. 의사가 환자와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통해 환자와 상대합니다. 기계를 사용하여 고친다는 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는 사이 어느새 인간의 영혼과 감정은 삭막해져가고 사고(思考)마저도 기계화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경제란 틀속에 살면서 모든 삶이 돈을 중심으로 운용됩니다. 돈이 삶의 가치를 좌우하게 되어 있습니다. 경제가 사회의 절대적 가치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오늘의 시대는 사람이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돈과 결혼하는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필요로 하겠습니까?
 
또 세속화의 시대는 극도의 이기주의, 자기주의가 판을 치는 시대입니다. 남을 생각하고 남을 의식하면서 사는 생활이 아니라 철저히 자기를 중심하여 사는 시대입니다. 산업화 이후에는 핵가족제도가 그렇게 만들어 왔습니다만 요즘 신세대들은 완전히 자기개성의 시대이고 남을 의식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인간이 보이는 이웃도 의식하지 않고 자기만을 의식하면서 사는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겠습니까?
그러므로 자연히 섬김과 나눔의 삶은 없습니다. 자기의 것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고 그 이상은 생각지 않습니다. 세속화는 마음보다 제도가 앞서고 꿈보다 현실이 앞서며 희생보다 실리가 앞서는 지극히 이기적인 사회가 됩니다.
 
세속화된 사회는 공통된 가치가 없어지는 사회가 됩니다. 다양성의 사회임으로 다양한 의견이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존재하기 때문에 소위 사회의 공통된 통념, 합의된 가치가 없습니다. 제각기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일관된 가치를 심으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면 이 세속화는 과연 바람직한 것이냐 아니면 아주 위험하고 곤란한 것이냐? 저는 한 마디로 말해서 아주 위험하고 곤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세속화에 대한 비유를 들라고 하면 “세속화는 무중력의 상태”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무중력의 상태란 쉽게 말하면 우주선을 타고 공기가 없는 대기권밖으로 가면 중력이 없어지고 따라서 사람이 거꾸로 서 있어도 그냥 서 있게 됩니다. 물건이 거꾸로 있어도 떨어지거나 하지 않습니다. 모든 물건이 제각기 방향을 잡고 어지럽게 있는 것입니다. 중력이 있는 지상에서 처럼 질서있고 체계적으로 위치하지 않습니다.
 
세속화가 무중력의 상태라는 말은 이 지구상에 인간이 살아가지만 모든 것의 힘을 한군데로 모아 서로 연결되게 하는 중심되는 힘이 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 힘은 바로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가치입니다. 이 가치가 모든 사물을 질서있게 붙들어 매는 것입니다. 이 가치를 집약시키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게 되면 결국 이 세상은 혼란되고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아모스의 말씀이 뭐라고 하고 있습니까? 다시 한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저는 이 말씀이 세속화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하게 들려지는 말씀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보면 그 날이 이르리라고 먼저 예언하고 있습니다. 세속화의 날이 이르리라는 말씀으로 생각해 보십시다. 그 때 하나님께서 기근을 땅에 보내는데 그 기근은 양식이 없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기근은 배가 고픈 상황인데 양식이 있음에도 배가 고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질적인 풍요가 있음에도 인간은 기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기갈은 물질적인 풍요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채워질 수 밖에 없는 기갈이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미국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사회현상이 하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극도의 세속화를 경험한 후 미국에서 다시 영적인 각성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번에 선거에서 압승한 공화당은 케네디 대통령 시절에 없앴던 공립학교 수업시작 전에 기도하는 제도를 다시 도입하자고 하고 이를 클린턴 대통령도 동의했다고 합니다. 보수적 세력의 등장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단지 그것만이 아닙니다. 미국사회전체가 뭔가 영적 갈증을 느끼고 있는 현상의 반증입니다. 이 영적 각성은 19세기처럼 전도를 통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고 물질적 풍요를 만끽한 인간이 이제 영적인 문제에 기갈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아모스의 예언 그대로입니다. 양식이 없어서의 기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의 기근이란 것입니다. 오랫동안 세속화 속에서 방황하던 인간은 결국 영적인 양식을 찾아 나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너무 오랫동안 교회에서 떠났고 지금 교회는 이들에게 영적인 만족을 줄 수 없는 다시 말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곳이 되어 버렸으므로 새로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무슨 미신같은 것을 찾아다니는 현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 아직 세속화를 경험하지 않았지만 이제 막 시작하려고 하는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서 여기에 대해 지혜롭게 대처하면, 우리는 이런 방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교회가 한국교회에 기대하는 점이기도 합니다. 병들고 난 뒤의 회복은 훨씬 힘들고 회복된다 해도 제대로 회복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가장 지혜로운 것은 병들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입니다. 의료계에서도 예방의학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사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일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앞서가는 교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미리 자각하고 여기에 대처하려는 지혜를 올 해 우리 교회가 강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 최상의 방어는 공격입니다. 그러므로 올해는 적극적으로 전도함으로서 이 세속화의 물결과 맞서자는 것입니다. 세속화의 풍랑으로부터 신앙과 교회를 지키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모한 싸움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과거의 전통적인 방법으로 무조건 “예수 천당”해서 전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속화의 허구와 그 헛된 꿈을 폭로하고 세속화의 논리를 복음의 논리로 격파해야 합니다. 도치된 가치가 진리처럼 행세하는 것을 지적하고 바른 진리를 선포해야 합니다. 기독교가 실망을 준 것을 반성하고 기독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중력화되어가는 우리 자신과 우리 가정과 우리 사회에 중력을 다시 회복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모든 현상을 직시하고 복음으로 세속화의 물결을 막고, 복음의 승리를 확보하기 위해 우리는 올해 선한 영적 싸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상황에서 올해를 총력 전도의 해로 선포하고 한 해 동안 꾸준히 노력하기를 우리 모든 부산진교회 교우들에게 호소합니다. 이번 한 주간은 이를 위해 준비하고 기도하는 주간으로 정하고 오늘 오후에는 전도에 대한 사명감을 일깨우고자 강사 목사님을 모시고 특별집회를 합니다. 그리고 이번 주간 수요일(11일)과 목요일(12일)에는 전도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사례를 통해 훈련받습니다. 이 훈련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전도할 용기와 자신감을 갗춘 다음에, 다음 주일 우리 교회 창립주일에는 전도할 방향에 대해 상세히 설교하고 내가 누구를 올해 전도할 것인가를 작정하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아주 조직적으로 지속적으로 전도해서 올해 추수감사절 때는 물질적 수확에 대한 감사만이 아니라 영혼의 수확에 대한 감사를 함께 드릴 수 있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이 전도할 때요 영혼을 구원할 때입니다. 다같이 이 세속화의 물결에서 교회와 신앙을 지키는 선한 싸움에 물러서지 말고 참여하여 영적 승리를 이룩하는 부산진교회가 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아멘.

* 참회의 기도
하나님 저희들의 진실한 참회를 받아주시옵소서.
물신숭배에 빠져 주님을 잊고 살아왔습니다.
서로 섬기고 나누며 사는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나만이 배부르고 편하다면 무엇이라도 좋아하며
서로 돕고 함게 사는 법을 외면하였습니다.
오, 주여 저희들은 너무나도 부유하게 되었지만
고독에 지치고 외로움에 떨며 하늘을 바라봅니다.
거친 세상물결에 속절없이 넘어지느느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이제는 일어나 생명의 소식을 전하여
ㅎ사나님의 승리를 온 세상에 선포하게 하옵소서.
이제 침묵 속에서 저의 참회를 드리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박성원 목사, 부산진교회 주일설교, 199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