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을 선포하라

레위기 25:8-13

성경에는 7이란 숫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먼저 6일 동안은 일하고 제7일에는 안식일이라고 하여 모든 노동을 멈추고 하루를 안식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말하는 한 주일이란 단위가 되었습니다. 

두번째는 이렇게 일주일 마다 하루를 쉬면서 7년을 지낸 후에는 일년을 완전히 쉬는 소위 안식년이 다가 옵니다. 안식일에는 주로 노동하던 사람과 가축이 쉬었는데 안식년이 되면 농사를 짓던 농토를 쉬게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땅을 쉬게 하고 땅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세번째로 등장하는 7이란 숫자와 관련있는 제도는 “희년”이란 것입니다. 이 희년은 7년을 7번을 지나고 50년째가 되는 해를 거룩한 해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레위기 25:8에는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나고 그 다음 해 즉 50년이 되는 해 속죄일에 뿔나팔을 크게 불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서 50년이 시작되는 이 해를 거룩한 해로 정하라고 했습니다.이 50년에 시작되는 거룩한 해가 바로 희년입니다. 여기 레위기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라고 했는데 이 뿔나팔이란 히브리말로 요벨(Yobel)입니다. 이 말이 희년이란 히브리말인데 그 이유는 바로 이 해가 시작될 때 뿔나팔을 불어서 이 해가 시작됨을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이 희년이 선포되면 세 가지가 달라집니다.

1) 전국의 모든 거민에게 자유가 선포됩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어떤 연유로 해서 자유를 구속당한 자에게 이 해에는 사면령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종되었던 자는 종에서 놓임받고 죄인되었던 자는 죄인으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뿔나팔을 불 때는 속죄일에 불도록 되어 있습니다. 모든 거민에게 자유가 선포되는 이것이 희년의 첫번째 의미입니다.

2) 모든 이산가족이 상봉하게 됩니다.

자의든 타이든 가족을 떠나 살게 되던 사람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은총이 주어진 해입니다. 특별히 종되었던 사람들, 노예로 팔려갔던 사람들은 그 노예값을 치르지 않고 무조건 놓임을 받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3) 자기가 최초로 분배받은 땅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이후 가나안 땅을 얻게 되었을 때에 모든 땅이 레위지파를 제외한 각 지파에게 분배되었고, 각 지파에게 분배된 땅은 또 개인에게 분배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가족간의 경제에 우열이 생기고 또 가족 중에 결손이 생긴다든가 하는 이유로 제 땅을 자기가 지킬 수 없어서 팔게 되는 사태가 생깁니다. 할 수 없이 땅을 빼앗기게 되고 그리하여 종살이로 전락하면 영원히 다시 땅을 차지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50년째가 되면 분배받은 땅을 잃어버리고 자기 힘으로 도저히 도로 찾을 수 없는 형편에 처한 사람에게 다시 그 모든 잃었던 땅을 도로 찾을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곧 희년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7이란 숫자와 연관된 안식일, 안식년, 희년 모두는 다 “묶인 것이 다시 풀리는 해방”과 쉼과 자유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특별히 희년에는 모든 거민에게 자유가 선포되고 이산가족이 다시 상봉하게 되고 그리고 잃었던 땅을 다시 찾는 실지회복의 구체적 사항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올해는 한국해방 50주년이자 분단 50주년입니다. 그러므로 한국분단 50주년은 한국교회 앞에는 희년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지금으로부터 8년전인 1987년 2월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한국기독교인의 선언”을 하면서 민족해방 50주년 민족분단 50주년이 되는 1995년을 한국의 희년으로 선포했었습니다. 모든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이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개인의 자유, 민족적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헤어진 이산가족이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잃었던 땅을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희년의 의미가 우리 민족 분단속에 그대로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한국교회는 1995년을 한국의 희년이 되게 해 달라고 염원하면서 희년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올해를 전도의 해로 규정했기 때문에 년초부터 모든 관심이 전도에 집중되었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우리 한국교회가 특별히 기억하고 기도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사항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이 민족의 완전한 해방인 희년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국교회가 민족통일을 위해 그동안 무슨 일을 해 왔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한번 생각하고자 합니다.

한국교회는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민족통일을 위해 교회가 기도하고 준비하며 기여해야 하겠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민족통일의 일차적인 의미는 정치적 과제이고 민족적 과제이나 우리 교회에는 남달리 중요한 선교적 과제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기본적 사명이 화해의 사명이고 평화의 사명이기 때문에 민족이 서로 총칼을 겨누며 사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988년 스위스 글리온(Glion)에서 열린 제2차 남북 그리스도인 협의회에 참석했던 북한 조선기독교연맹 서기장이었던 - 지금은 작고하신 - 고기준 목사님이 제네바한인교회 10주년기념예배에 초청을 받고 와서 인사를 하면서 “민족분단은 남한의 뜻도 아니고 북한의 뜻도 아니고 더우기 하나님의 뜻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민족통일은 그리스도인들로서는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전적으로 옳은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현실적인 의미가 있었는데 그것은 한국교회가 70년대를 지나오면서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인권보호운동에 참여해 오면서 8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 우리 나라의 모든 문제가 결국은 민족분단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아무도 통일을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 통일문제를 논의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통일 통일”합니다만 1987년 이전까지만 해도 함부로 통일이야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불과 몇년 전 민족통일을 국시로 삼아야 한다고 유성환이란 국회의원이 주장했다가 보안법위반으로 구속된 일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과거에는 통일이야기를 하면 바로 반공법이나 보안법에 걸릴 정도였습니다. 특별히 1987년 어간은 아주 억압적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해에 한국교회는 민족통일이 대단히 중요한 선교적 과제로 인식하고 그 해 2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향한 한국교회의 선언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 선언문은 그 후 두 달 뒤인 4월달에 인천 올림푸스 호텔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 기독교인들의 협의회에서 세계교회의 지지를 받고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세계교회가 함께 기도한다는 각오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후 세계교회는 계속해서 8월 15일을 전후에서 한반도 통일을 위해 기도합니다. 1990년 8월에는 세계개혁교회연맹(WARC) 실행위원회가 제네바에서 열렸습니다. 그 회의기간이 마침 8월 15일 전후여서 그 중 하루를 정해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제가 그 때 그 기도회를 준비했는데 제네바에 있는 남한과 북한 대표부와 교섭하여 양 대표부 대표들이 이 기도회에 참여시키도록 교섭하였고 마침내 양쪽 대표부가 두 명씩을 보내 기도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아마 남북한 관리들이 민족분단이후 교회의 기도회에 나란히 참석한 최초의 일로 기록될 것입니다.

사실 말하면 오늘 한국교회가 민족통일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된 이면에는 세계교회의 공로가 상당히 큽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 북한은 세계속에서 나름대로 민주국가로 인정받으려고 상당히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세계는 한 국가의 존재에 자유와 인권보장을 중요한 조건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자유 중에는 신앙의 자유가 모든 자유의 척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자유, 신앙의 자유는 곧 모든 자유의 시작임을 아는 서방세계가 북한으로 하여금 신앙의 자유가 있음을 나타내라고 요구하였고, 이에 대해 북한은 1983년에 신앙의 자유가 있다는 증거로 그동안 사라졌던 신구약성경과 찬송가를 조선 평양인쇄소에서 찍어내어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서는 헌법을 고쳤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헌법상 공식적으로는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었습니다. 이 정도의 발전은 지금 생각하면 미흡할 지 모르지만 그동안의 얼어붙은 상황을 고려할 때는 획기적이고 괄목할 만한 발전이었습니다.

이런 발전을 본 세계교회는 남북한 그리스도인들이 통일의 물꼬를 터주는 일을 하도록 여러모로 애를 썼습니다.세계교회협의회는 일본 도산소에서 동북아의 평화를 다루는 협의회를 가졌고 이 협의회에서 동북아의 평화에는 납북한의 평화와 통일이 아주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분단역사상 최초로 세계교회협의회(WCC) 대표단들이 평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 방문은 두 가지 의미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방문이었습니다.

첫번째는 이 방문을 통해 세계는 처음오로 북한에 아주 작은 신앙공동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공식적인 교회는 없지만 소위 가정교회라는 형태로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이 교회는 전시용교회로 긴급으로 만든 것이라고 하였지만 후일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런 형태의 가정 교회가 북한에 약 500여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어쨌든 귀중한 것은 북한에 작지만 신앙공동체가 존재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이 방문으로 북한 교회가 남한 교회와 만나게 되는 인연이 여기에서부터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 첫번째 모임은 1986년 9월에 스위스 글리온에서 이루어 지게 되었습니다. 이 해에 남북한 그리스도인들이 분단 40여년만에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같이 성찬을 나눌 때는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정치적 문제를 토의할 때는 서로 날카롭게 대결하다가도 기도하고 성찬을 나누고 예배 드리는 시간에는 마음이 뜨거워지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글리온에서 모이는 남북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은 그 후에도 3차례나 계속해서 열리고 교회는 열기속에서 점점 통일과 민족화해에 기여하는 일을 가속화시켜 나갔습니다.

그 동안에 획기적으로 변화한 것은 북한땅에서 교회건물이 사라진지 거의 40여년만에 교회가 세워지게 된 사실입니다. 이미 이름을 들어서 잘 아시는대로 평양에 봉수교회란 개신교회가 세워졌고 카톨릭 교회가 하나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김일성의 모친이면서 독실한 신자였던 강반석을 기념하여 칠곡교회라는 이름으로 개신교회가 하나 더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도합 3개의 공식교회가 존재하게 되었고 이 교회에 주일마다 수 백명씩 모여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평양 봉수교회에는 이성봉 목사님이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계시는데 이 목사님은 현존하는 이북의 목사님중에 유일하게 해방전부터 기독교신자였습니다. 이 목사님은 감리교신자로서 지금도 해방전에 유명하던 감리교 교계인사들의 이름을 다 기억할 정도로 옛날 교회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분입니다. 그 분이 1988년 2차 글리온 남북한 기독교인 모임에 참석차 왔을 때 당시에 제네바한인교회가 이 분들을 초청해서 해외에서지만 남북한 일반 교회의 모임이 최초로 이루어 졌습니다. 그 분들이 예배에 참석한 것은 회의시작전이었는데 나중에 1주일간의 회의가 끝나고 평양으로 돌아가면서 제네바공항에서 이 목사님이 저의 손을 붙들고 하시던 이야기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사님, 이번에 와서 회의도 잘 되었고 제네바한인교회에서 남한의 평신도들과 함께 예배드릴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그 때 교회에서 남조선 성도들과 함께 찬송가를 실컷 못 부르고 가는 것이 후회스럽습니다.”라고 아쉬움을 표현했습니다. 그 분의 가슴에는 찬송과 신앙의 소망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북한에는 그 후에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계속되었습니다. 그것은 공산주의 이론만을 신앙처럼 학습시키던 김일성대학에 종교학과가 생기게 되었고 거기에서 기독교신학을 강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신학강좌에는 많은 김일성대학의 교수들도 참석해 종교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40여년 이상 한번도 공식적인 종교교육이나 선교를 해오지 않던 곳에서 신학강연과 교회의 존재는 특이한 존재였습니다. 3번째 스위스 글리온에서 남북 그리스도인들이 만났을 때는 평양신학원 학생 한 사람도 데리고 왔는데 그는 신학교육을 받으면서 과거에는 이런 영적인 세계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면서 아주 신기하고 한없이 마음이 평안해 진다고 했습니다.

이 통일을 향한 상황은 90년대 초에 들어와서까지도 상당히 낙관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북한의 경제적 사정이 점점 악화되고 이윽고 북한 핵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최근 2,3년동안은 약간 주춤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권력승계작업이 끝나고 제네바 북미회담의 결과로 경제협력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남북한의 건설적 대화가 열리면 이 상황은 곧 풀리리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변화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세계교회가 하는 일에 대해 주의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지만, 세계교회는 한국의 통일을 위해 일하게 되었고 여러가지 오해와 외로움 속에서 이만한 변화와 진전된 상황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것은 형제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세계교회의 노력이었습니다.

이런 노력에 남한 교회는 결코 가만히 있거나 기다리지만은 않았습니다. 이미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도저히 통일을 논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 한국교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중심으로 통일논의의 물꼬를 텄고 그 이후에는 정치권도 이 논의를 상당히 따라갔습니다. 지금은 국무총리가 되어있는 이홍구 총리가 당시에는 통일원 장관으로 재직했었는데 그 때까지 통일원은 내각서열중에 최하위의 서열에 위치했었습니다. 그러다가 교회가 통일문제를 제기하고 한국사회가 이 문제에 민감하게 매어달리면서 통일원은 일약 그 위상을 높여 경제기획원과 함께 나란히 그 장관이 부총리중의 하나가 되는 위상에까지 올라오게 된 것입니다. 이 배후에는 교회가 통일논의의 물꼬를 튼 역할이 상당히 작용했습니다.

한국교회는 1995년을 희년으로 선포했는데 이것을 북한당국이 환영하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1995년을 민족통일의 해로 내다보기에 이르렀습니다. 감사한 것은 이 희년이란 개념은 순전히 성서적인 개념인데 이 개념을 북한이 환영하고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어쨌든 이 희년의 개념은 이제 남북한 교회나 당국으로 하여금 우리의 통일을 어떤 막연한 꿈이 아닌 구체적으로 이루어야 할 현실적 과제로 인식하게 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한 셈입니다. 자, 지금껏 교회가 이 정도의 일을 해 왔는데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첫째로, 한국교회는 통일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통일은 인간이 이루는 일이 아닙니다. 구 사회주의권의 변화를 보듯이 통일도 하나님이 역사를 인도하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마음에 준비를 하고 구체적인 준비를 해 가면서 하나님의 은혜의 해가 선포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화해를 위한 훈련을 해야 합니다. 스위스 제네바 근교에 가면 보세이란 곳에 에큐메니칼 연구소가 있는데 이 연구소는 바로 제2차 대전 이후에 서로 원수가 된 유럽민족들을 기독교정신으로 화해하게 하는 훈련소로 쓰일 목적으로 지은 것입니다. 서로 물고 뜯고 싸우던 유럽인과 유럽교회에겐 화해의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우리 민족과 교회도 이제 화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해하고 관용하고 북돋우어 주는 격려가 필요합니다.

셋째는 세계의 대세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금 세계는 평화를 위해 나아갑니다. 전쟁과 점령과 약탈과 파괴는 분명 역사를 역행하는 행위입니다. 한국과 한국교회는 바로 이 시대속에서 평화를 실천해 보이는 의지를 세계에 증거해야 합니다.

넷째로 통일은 화해의 복음을 이 땅위에 증거하는 노력입니다. 이 일을 이룰 수 있다면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앞에 가장 훌륭한 공헌을 하는 셈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은총의 해가 우리 민족 앞과 세계 앞에 오도록 우리 교회가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하십시다. 아멘.

* 참회의 기도
하나님, 주 앞에 나아와 우리의 죄를 고백합니다.
우리는 범죄하였고 길잃은 양처럼 빗나갔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욕망만을 쫓아왔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병들어 갈라지고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주여, 이 모든 것을 용서하시사
희년을 선포하시니 감사와 찬양을 드리옵니다.
죄악의 올무를 끊어 참 자유를 누리게 하시고,
서로의 벽을 헐어 진정한 만남을 알게 하시며,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갈 희망을 갖게 하시니
마음을 다하여 감사와 찬양을 드리옵나이다.
이제는 주의 선포하시는 이 기쁜 화해의 복음을
저희가 앞장서 증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부터는 온전히 주님 안에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시금 침묵속에서 참회하오니 자비를 베푸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박성원 목사, 부산진교회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