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직이란?

사도행전 6:1-6

문경동성교회는 1903년 의병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전승달 교우가 세운 교회여서 역사적 뿌리가 자랑스럽습니다. 또 최근에는 특별히 어르신들을 극진히 섬기는 복지교회로 열심히 봉사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교회의 제직 수련회에 와서 말씀을 같이 나누게 되어 기쁩니다. 오늘 하나님의 교회에서 직분자로서 봉사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이 직분을 잘 수행하는지, 성경에 나와 있는 여러 직분자의 이미지에 비추어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경에 보면 직분자를 여러 이미지에 비유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제일 많이 나오는 것이 종입니다. 우리 마태복음 25:21을 같이 읽어 보실까요?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이 비유는 잘 아시대는대로 어떤 주인이 먼 외국출장을 가면서 집안 일꾼들에게 각 각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맡겼는데 그것을 쓰지 않고 땅을 파고 묻어두었던 종은 야단을 맡고 그것을 가지고 활용을 해서 늘인 종은 칭찬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물론 중요한 점은 적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맡은 자가 해야 할 자세라는 것입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적은 일에 충실하는 것, 이것은 생활에서도 기본적으로 중요한 자세가 아닙니까?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종입니다. 종인 주인이 시키는 것을 충실히 하는 것입니다. 적은 일이든, 큰 일이든 주인이 시키고 원하는 대로 충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달란트 받은 종과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을 보면 그냥 시키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용해서 배로 남겨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종의 특성은 일을 하되 기쁘고 자발적으로 내 일처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비유는 이 억지로 하는 일, 마지못해 하는 일, 시키는 것만 하는 일의 경지를 넘어서는 차원입니다. 꼭 투자를 해서 이문을 남겨서 좋다는 것이 아니라 이 종은 시키는 것만 기계적으로 하지 않고 주인의 마음과 기대를 헤아려서 진심으로 정성을 다 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기계적으로 마지못해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헤아려서 그것을 정성으로 하는 종이 되면 하나님께 칭찬받는 종이 될 뿐만 아니라 배로 이윤을 남긴 종처럼 봉사의 성과도 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 문경동성교회 제직들은 올해 모두 이런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둘째로 하나님의 일꾼들을 비유하는 예는 일꾼입니다. 성경 한 곳 같이 읽어보실까요? 고린도전서 4:1입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여기에서 일꾼은 종의 신분 보다는 약간 차원을 달리합니다. 오늘의 개념으로 말하면 여기 일꾼은 스탶Staff을 말합니다. 직원입니다. 스탶의 신분이 무엇일까요? 성경에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부연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탶은 그 직급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이 속한 회사나 직장을 마치 자신이 대표하는 것같이 생각하고 맡은 일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정성을 다할 때 좋은 스탶이 되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미국에 어떤 가난한 청년이 어느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그는 후에 그 회사의 사장이 되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첫날부터 마치 사장처럼 행동했습니다. 제일 먼저 출근하고, 맡은 일을 정말 정성을 다해서 하고, 퇴근도 제일 늦게 했습니다. 다른 동료들이 “너 꼭 사장 같다.”는 소리를 자주 했습니다. 꽤 세월이 지난 뒤에 그 회사 사장이 그만 두게 되고 후임 사장을 구하게 되었을 때 그 회사는 바로 이 사람을 사장으로 추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정말 그 회사를 자기 회사처럼 생각하고 봉사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스탶입니다. 이것이 비밀을 맡은 자란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제직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시듯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만났을 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났을 때, 비록 죄를 지은 사람을 만났을 때도 하나님이 그들을 대하듯이, 하나님이 가난한 자를 대하듯이, 하나님이 도움이 필요한 자를 대하듯이, 하나님이 죄인을 대하듯이 그렇게 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의 자세입니다. 우리 문경문성교회 제직들은 그런 하나님의 나라의 스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 등장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을 가리키는 개념은 군인입니다. 또 성경을 한번 보십시다. 디모데후서 2:3-4입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병사의 개념이 직분자의 입장을 설명하는 가장 선명한 개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병사에게 필요한 것은 “충성”이라는 것, 병사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는 것, 집 생각하지 않아야 하는 것, 명령권자의 명령에 절대 충성해야 한다는 것, 한국 남자라면 군인의 충성심은 어떤 것이라는 점을 잘 알 것입니다. 우리 문경동성교회 모든 제직들, 이 점을 명심하면 좋겠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개념이 있는데 한 개념을 더 보십시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은 포도나무요 하나님은 농부란 이야기를 하신 부분이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를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로 비유했습니다.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물론 이것은 신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지만 제직에게는 더욱 더 그렇지 않겠습니까? 제직은 어떤 의미에서 가지 중에서 중가지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뿌리와 잎사귀들을 중간에서 연결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사도행전 6:1-6에 나타나는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저는 여기에서의 이미지는 각료의 이미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통령이 당선되면 제일먼저 가장 고심하면서 하는 일이 각료를 선정하는 일입니다. 그 이유는 나라를 경영하는 일을 혼자서 할 수 없고 팀을 이루어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일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이 팀이 되어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한 첫 번째 본보기입니다. 예수님과 12제자도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한 팀이 되어서 일한 좋은 본보기입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성경말씀에서 말하듯이 초대교회가 7집사를 세우고 사도들과 함께 복음을 전파한 것도 같은 본보기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나 초대교회의 7집사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의 각료였습니다. 교회에 제직을 세우는 것은 교회를 통해 복음을 전파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각료들을 세우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나라에도 각료로 선임되는 분들의 자질을 점검하는 인사청문회를 합니다만 하나님의 나라의 각료로 부름 받는데도 까다로운 기준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부터 5장까지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의 각료가 될 개개인의 자질과 그 임무와 임무를 수행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자세히 제시되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선 기본이라고 보고 / 오늘 강조해 보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각료로써 함께 일하는 팀 정신에 대한 부분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초대교회가 7 사람을 택하여 집사로 세우는 이야기인데 집사를 세우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집사가 뽑히기 전까지는 사도들이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중요한 두 가지 일은 복음을 전하는 일과 구제하는 일이었는데 이 두 가지 일을 사도들이 북 치고 장구 치듯이 모두 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사도들이 아무리 좋은 복음이 선포하여도 현실적 일에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이 매번 구제에서 빠지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때 사도들은 모두 유대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이 구제대상에서 빠지니 위화감이 조성되었고 이것이 문제화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땅 위에서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팀을 구성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하늘의 복음이 선포되어도 땅에서 구체적인 현실로 제대로 나타나지 않으면 복음은 헛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 기도문의 중요한 대목이 무엇입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 바로 복음이고 선교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각료가 해야 할 중요한 임무는 땅의 일을 하늘에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늘의 뜻, 즉 하나님의 뜻을 땅에 구체적으로 이루는 일입니다. 제직들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현실화하는 일을 하도록 부름 받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의 제직은 대한민국 정부의 각료보다도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이 땅위의 정부의 각료는 한 정당의 정치이념을 정치적 삶에 이루는 것이 목표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각료는 하늘의 뜻을 땅에 이루는 것이 그 사명이고 목표입니다. 이 때문에 이 직분이 거룩한 직분인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이어 이런 일이 역사 속에서 벌어진 것이 바로 장로교회가 최초로 시작된 제네바 종교개혁이었습니다. 우리 장로교회의 직분은 바로 이 모델을 따라서 하고 있는데 종교개혁 당시에 칼빈은 교회가 하는 일을 크게 네 가지로 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복음을 가르치는 일인데 이 일을 주된 일로 맡아서 하는 일을 목사에게 맡겼습니다.

두 번째는 목사가 복음을 선포하면 성도들이 사회생활속에서 그 복음을 제대로 실천하면서 살고 있는지 확인하고 계도하는 일이 필요했는데 이 일을 장로에게 맡겼습니다. 칼빈이 지향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개인적 도덕성에서부터 국가행정에까지 실현되는 신정정치이니까 장로들의 주된 임무는 복음이 사회속에서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를 감독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총회 헌법에는 장로를 ‘치리하는 장로’로 규정하고 있는데 제네바의 모델을 따르면 이 치리는 교회안의 치리가 아니라 세상이 복음대로 살도록 다스리는 일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미래 세대가 계속 복음대로 살도록 가르쳐야 하니까 교육이 필요했고 이 일을 교사에게 맡겼습니다. 그러니까 종교개혁당시의 교사는 주일학교 교사의 개념이 아니라 공교육의 교사개념이었습니다. 모든 사회가 복음대로 살도록 가르치는 일을 한 것이 교사입니다.

네 번째는 당시 제네바는 피난민들이 몰려오는 난민의 도시였으므로 병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이 중요했는데 이 일을 위해서 집사를 세운 것입니다.

오늘 장로 교사 집사라는 직책이 종교개혁 당시에 만들어졌을 때는 교회 안에서 선포되는 복음을 사회 속에 실현하기 위해서 이 직책을 세운 것입니다. 목사가 교회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면 장로를 사회가 그 복음대로 살도록 지도하는 일을 했고 교사는 이 복음이 미래세대에 전수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일을 했고 집사는 복음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실현되는 일을 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팀워크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간직할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거룩한 직분의 방향성입니다. 첫째는 이 직분은 하늘의 뜻을 땅에 이루는 직분이고 둘째는 이 직분은 교회 안에서 선포되는 복음을 사회 속에 이루는 직분입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교회 안에서 사회 속으로, 이 두 방향성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 직분이 이 방향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자꾸 교회직분을 교회의 일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우리의 직분은 그 스케일이 이렇게 거대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물론 오늘의 사회는 훨씬 다양화해지고 복잡해져서 종교개혁 당시의 틀로서는 생각할 수 없겠지만 최소한 그 정신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궁극적 방향은 복음을 하늘에서 땅으로, 교회 안에서 사회 속으로 실현시키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땅의 이념을 땅에 실현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목표이며 사명인 것입니다.

자, 이 목표와 사명을 어떤 방식으로 감당할 것이냐? 저는 아시아의 지혜에서 얻은 세 가지의 중요한 교훈을 생각해 봅니다.

첫째는 한 마음을 가지는 일입니다. 다산(茶山) 정약용은 강진에서 18년 유배생활을 하면서 목민심서 등 공직자의 윤리서인 목민심서등 위대한 정치이론을 세웠습니다. 정약용은 유배생활동안 차를 아주 즐겨 마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호가 다산(茶山)이 된 것입니다. 그는 이 다도(茶道)에서 다음과 같은 귀한 지혜를 얻었습니다.

신화공주(身和共住) - 몸을 붙여서 함께 사는 것
구화무쟁(口和無爭) - 입을 화해해서 싸움을 없이 하는 것
의화동사(義和同事) - 뜻을 함께 해서 같은 일을 하는 것
계화동수(戒和同修) - 같은 법을 만들고 서로 지키는 것
견화동해(見和同解) - 견해를 같이 하고 해석을 같이 하는 것
이화동균(利和同均) - 이익을 골고루 평등하게 나누는 것

이 지혜가 우리의 일상적 삶을 사는데도 중요하지만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의 일을 하는데는 더 없이 중요한 교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믿음’의 반대말은 ‘의심’인데 의심이란 희랍어는 ‘두 방향을 동시에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한 마음, 한 믿음, 한 뜻, 한 행동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도 사도들과 뽑힌 일곱 집사들이 복음의 선포라는 한 목표를 한 마음으로 세우고 일해 나갔습니다.우리 교회도 하나님의 나라의 선포라는 이 거룩한 목표를 위해 목회자를 중심으로 모든 직분자 성도들이 마음을 같이하고 뜻을 같이해서 행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봉사의 방법입니다. 노자의 도덕경 17장에 보면 네 가지 유형의 지도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제일 좋지 못한 지도자는‘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는 지도자’라 했습니다. 그 다음에‘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가 있는데 그렇게 좋은 지도자가 못됩니다. 대체로 좋은 지도자는‘사람들이 가까이 하고 칭찬하는 지도자’이고 제일 훌륭한 지도자는‘사람들에게 그 존재 정도만 알려진 지도자’라고 했습니다.

스위스 사람들은 자기 나라 대통령이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7 명의 연방의회 의원이 있는데 이 분들이 1년씩 돌아가면서 대통령을 합니다. 1년에 한 번씩 바뀌니까 누가 지금 대통령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스위스 정치는 기가 막히게 돌아갑니다. 지도자는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 그 공동체가 잘 돌아가는 것이 좋은 지도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각료는 있는 듯 없는 듯, 정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자신을 낮추고 봉사하는 직책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사도들은 기도하고 말씀 전하는 일에 집사들은 구제하는 일에 각각 충실함으로 복음 전파를 효과적으로 전파했듯이 서로 서로의 맡은 바 일에 충실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났지 섬기는 자의 영광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부분은 주도적 지도력보다도 지원적 지도력입니다. 도덕경 60장에 보면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이란 말이 나오는데 그 뜻은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조리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부들은 잘 아시겠습니다만 작은 생선을 구울 때는 배를 따서 내장을 뺀다든가 뼈를 추린다든가 하지 않고 통째로 굽습니다. 그리고 구울 때도 쓸데없이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들쑤시지 않고 한쪽이 다 익기 전에는 이리저리 뒤집어서도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작은 생선이 다 망가져 버립니다. 작은 생선을 잘 굽는 것은 한쪽이 잘 익도록 지켜보면서 불을 잘 조절해 주는 것입니다.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비유하자면 중앙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지방정부가 충분히 잘 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 하나님의 나라의 일도 잘 하려면 이래라 저래라 하기 보다는 무르익도록 분위기를 잘 조절하는 일입니다. 교회의 일은 큰 물줄기의 목표가 정해지면 모든 성도들과 교회 전체가 잘 그 목표대로 가도록 분위기를 잡는 일입니다. 저는 이 분위기를 사랑의 분위기라고 잘라 말하고 싶습니다. 심지어 허물까지도 덮어주는 사랑의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그 사랑의 불이 다 이루어갑니다.

생선 굽는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생각해 보고 말씀을 마칠까 합니다. 앞에서 하나님의 일꾼들은 종, 일꾼, 병사, 나뭇가지, 각료 등 여러 가지로 비유해 왔는데 최근에 드는 생각은 제직은 가정의 주부와 같은 역할, 살림을 사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희랍어에서는 가정을 오이코스 Oikos라고 하는데 이 세상은 하나님의 가정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가장이라면 교회는 세상이라는 가정의 주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주부는 가정의 살림살이를 꾸려가기 위해 종합적으로 모든 것을 살피며 필요한 구석구석의 일을 다 현실적으로 감당해 나가는 역할을 합니다. 밥을 해서 집안식구들을 먹이기도 해야 하지만 / 아이들 교육도 시켜야 하고 / 아픈 식구들이 생겨나면 간호도 해야 하고 / 빨래도 해야 하고 / 가정 경제도 꾸려가야 하고 / 모든 식구들이 세상의 삶에서 지칠 때 집에 와서 쉽도 얻고, 새 힘도 없고, 집에서만큼은 좀 널부러져 있기도 하고, 긴장을 풀기도 할 수 있는 그런 쉼과 위로와 사랑과 치유가 있는 공간이 아닙니까? 교회도 결국 이 세상에서 가정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고 그 가정의 살림살이를 사는 가장 중요한 구성원이 바로 주부라고 생각했을 때 이 주부의 역할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 많은 분들이 주부들이시니까 더 이상 많은 설명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올해 한 해 우리가 하나님의 한 가정인 문경동성교회를 섬길 때 주부의 마음으로 이 교회를 섬기고 이 교회 안에서 그런 생명이 있고, 먹임이 있고, 심지어 세상에서 피곤했던 삶이 여기에서는 마음 놓고 널부러지고 치유 받고 쉼을 얻는 그런 하나님의 아름다운 집을 꾸려가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아멘.

<박성원 목사, 문경동성교회 제직수련회 설교, 2014.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