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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대적 도전: 아름다운 생명물결을 찾아서

태초에 생명이 있었다.
그 생명은 살아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생명들의 삶은
평화로웠고
정의로웠다.

생명들의 삶은
조화로웠고
기쁨이 넘쳤다.

충만했고
부족함이 없었다.

우주는 그렇게 하나님이
아름답게 창조하신 생명물결로 넘쳤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생명 죽이는 일을 했다.
살린다고 하면서 죽였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기술이란 이름으로
번영이란 이름으로
이념이란 이름으로
심지어 종교란 이름으로

힘 있는 생명이 힘없는 생명들을
한 색깔의 생명이 다른 색깔의 생명들을
한 문명의 생명이 다른 문명의 생명들을
못살게 굴었다.

21세기 역사도 더욱 더 생명파괴의 역사로 치닫고 있다.
신자유주의로
지구제국의 무자비한 헤게모니로
생명공학의 조작으로
생명의 생존과 아름다움이 초토화되고 있다.

죽음의 물결이 우주를 덮고 있다.

아름다운 생명물결은
죽음의 물결 속에서 생명의 물결을 찾아
샘솟게 하려는 생각이고 몸짓이다.

성서가 그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의 꿈! (이사야 65:17-25)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그 꿈을

— 죽음의 시대의 징조를 예리하게 읽음으로써
— 하나님의 생명숨결로 성서를 새롭게 읽음으로써
— 새로운 신학지평을 연구함으로써
— 생명의 기쁨이 넘치는 예배를 드림으로써
— 생명의 기초인 농업을 생명화 함으로써
— 차(茶) 한잔의 여유로운 영성으로써
— 경쟁이 아닌 오이큐메네의 삶으로써
— 인공이 아닌 자연의 예술과 치유로써

우리의 현실 속에 그리고자 한다.

아름다운 생명물결은
우리의 작은 물결이지만
큰 생명의 푸른 대양이 될 것을
소망하고 믿는다.


2. 배경과 목표: 왜 물결이고 생명이고 아름다움인가?

아름다운 생명물결은 오늘의 생명위기를 직시하며 새로운 신학적 성찰을 하고 응답하기 위한 신학실천운동이다.

왜 생명인가?

생명은 죽음의 반대말이 아니다. 죽음의 반대말은 탄생이다. 생명은 훨씬 포괄적 개념이다. 생명은 존재의 근원이다. 생명은 존재의 연속이다. 그리고 존재의 가치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곧 생명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생명창조로 시작하였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의 생명만이 생명이 아니다. 궁창도 생명이고 달도 별도 태양도 생명이다. 시간도 생명이고 낮도 생명이며 밤도 생명이다.

창세기 3장 이후의 비극은 이 생명이 파괴된 사실이다. 생명파괴는 관계의 파괴로부터 왔다. 생명파괴를 자행하게 하는 마음의 도모인 지배욕은 모든 관계를 파괴했다. 성서는 생명파괴의 가장 잔혹한 목록인 형제의 살인부터 고발한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비인간적 생명파괴의 한 유형에 대한 고발일 뿐 이후 전개되는 인간의 역사는 많은 부분 생명파괴의 역사로 이어졌다. 오늘 생태계의 파괴, 지구공동체의 파괴 현실도 이 모순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생명죽임의 역사를 생명살림의 역사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 문제는 그리스도의 생명살림을 이원론적인 영적 구원으로만 한정해서 이해한 사실이다. 이제는 하나님의 생명과 그리스도의 생명살림의 구원을 통전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영적인 구원만이 아닌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세계 전체의 구원이 신학의 포괄적 관심이 되어야 한다.

왜 아름다움인가?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다”고 평가하셨다. “보기에 좋다”란 히브리어는 “아름답다”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아름다움(美)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서양의 개념이 인간중심주의라면, 동양의 개념은 자연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 문화(culture)는 ‘경작하다, 만들다’의 뜻에서 비롯되었고, 따라서 인공적인 의미가 많다. 서양에서는 예술(art)이라는 말도 ‘만드는 기술’이라는 뜻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동양의 문화는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함께 주인공으로 연출한 문화였다. 동양인의 미는 더 자연에 귀의하고, 모든 척도를 자연 그 자체에 두고 있다. 서양인의 자연은 사람이 놀고 이용하기 위한 존재였지만, 동양인의 자연은 인간이 경탄하고 놀고 배우는 것이었다. 동양의 문화는 자연주의와 함께 종교적 신비주의 철학이 깊이 스며 있었다. 예술과 조형관 또한 이 같은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연상과 관련하여 개인의 실제적 경험과 주관적 요소가 강조됨으로서 서양과 구별된다. 더 나아가 동양은 사물에 정신적 의미와 생명력을 부여하고 사물과 인간과의 동질적 관계를 모색하고자 한다.

불교에서는 미(美)를 추(醜)의 대립적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 미(美)와 추(醜)가 이미 충돌하기 시작한 영역에는 진정한 미(美)가 있을 수 없다. 추함이 없는 오로지 아름다움으로서만의 존재를 뜻한다. 불교의 아름다움은 이원론적이거나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유교에서도 도(道)와 중용을 아름다움의 중심개념으로 본다. 이렇듯 종교적 영성에서 보는 아름다움은 상대적이거나 이원론적이거나 대립적 개념이 아닌 합일과 완전의 개념이다. 둘이 아닌 하나로의 조화의 개념이다.

아름다움은 완전한 오이쿠메네(Oikoumene)의 완성의 경지이다. 성서에서 하나님의 “좋다”는 개념은 이렇듯 선과 악의 구분, 죄악과 구원이란 인위적인 분열의 현상이 있기 전의 완전개념이었고 모든 것이 각기 존재하지만 서로 조화롭게 존재해서 완전한 기쁨이 도출되는 감동의 모습이다. 아름다움은 인위적인 조형미가 아닌 원래의 생명이 물결처럼 흐르는 지극히 자연스러움이고 진실한 존재의 본연이다. 이런 아름다움이 온갖 인간의 소욕과 분리와 구분과 대립의 개념 속에서 상업적 목적을 위해 말초적 쾌락을 위해 인위적으로 조장되고 있다. 아름다운 생명물결은 창조주 하나님이 원래 만드셨던 그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운동이다.

왜 물결인가?

기본적으로 신학연구를 하는 연구소이면서 그것을 운동으로 펼쳐내는 실천적 목표를 가진다. 그래서 연구소의 이름을 연구만 하고 실천을 하지는 않는 인상을 줄 것 같은 ‘연구소’, ‘연구원’이라 칭하지 않고 ‘물결’이라 한다. 도덕경 8장에서는 물의 덕(德)을 인간이 따라야 할 지고한 도덕적 지혜로 언급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란 보편적 가치 외에 모든 존재에게 차별 없이 찾아가는 것이라든지 서로 경쟁하는 법이 없음이라든지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해 흐르며 낮은 곳을 먼저 채우고 난 뒤에야 위를 채운다든지 항상 평형을 유지한다든지 다 채워지면 반드시 넘쳐버린다든지 하는 수많은 물의 속성은 오늘날 인간 사회의 무수한 인위적 조작에 의한 문명체계가 당면하는 모순성과 부자유함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언자 아모스는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암 5:24)하면서 물결흐름의 모습을 들어 사회에 공의와 정의가 존재해야 함을 역설했다. 오늘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문화나 심지어 예술까지도 물결 같은 자연스러움과 순리성이 있다면 세상의 불의와 어색함과 불편함이 이처럼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생명이 하나님의 물결로 흐르게 하는 것이 아름다운 생명물결의 지향성이다.


3. 신학적 관점: 아름다운 물결은 무엇을 지향하는가?

오늘의 생명문제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신학적 관점에 한계가 있음을 인지한다. 전통적 신학은 나름대로의 시대적 사고에 응답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생명문제의 더욱 넓은 범위를 대하면서 전통적 신학의 시각이 다소 좁았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아름다운 생명물결은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신학적 관점을 가지고 신학을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한다.

  1. 지금까지의 신학은 서구의 이원론적, 축소주의적, 힘의 논리에 의한 복음의 이해와 해석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하나님의 세계, 그 자체를 그대로 보려고 하는 노력이 결여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세계를 인간의 이성의 이해속에 맟추어 정리하려고 했다. 따라서 아름다운 생명물결 신학은 하나님의 통전적 사고속에서 신학적 사고를 하게 한다.
  2. 지금까지의 서구신학은 신조적 복음이해였다. 신학적 신조는 하나님의 우주적 진리를 인간의 법적 태두리속에 제한하는 우려가 있다. 아름다운 생명물결 신학은 하나님의 우주적 스케일의 진리를 인간의 신조적 법태두리속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진리의 리듬속에 들어감으로 지향한다.
  3. 서구신학은 인간의 이성과 합리 그리고 이해의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리나 아름다운 생명물결 신학은 신비와 느낌, 직관과 다가옴, 그리고 흐름을 중시한다.
  4. 서구신학은 죄-타락-구속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근본적인 죄성에 대한 응답의 차원에서는 이 패러다임이 필요하며 중요하다. 그러나 이 패러다임으로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전 스케일을 담아낼 수 없다. 하나님의 창조적 생명력을 담아내려면 더 큰 신학적 틀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생명물결 신학은 그 파라다임을 찾아내는 일을 할 것이다.
  5. 지금까지 “목회”하면 교인목회, 즉 사람목회, 교회란 조직 목회를 머리에 떠올렸다. 이제는 이런 좁은 의미의 목회학을 넘어서야 한다. 목회자로 부름받는 그 자리의 모든 창조세계, 즉 인간을 포함한 바람, 물, 땅, 사회, 경제, 문화, 예술 등 모든 피조물이 목회의 대상이며 그 피조물들이 풍성한 생명을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도록 주어진 창조세계를 기획하는 신학적 기획자(Theological Coordinator)이다. 모든 피조물, 하나님의 창조세계 전체를 목회하는 우주적 목회학(Cosmic Ministry)이 필요다.
  6. 인간중심주의적인 서구적 사고에서 자연중심주의적 동양적 사고로 신학한다.
  7.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의 도전아래 현대인이 가장 목말라하는 영성을 회복하기 위한 신학적 틀을 모색한다. 산업화, 근대화, 도시화로 잃어버린 하나님과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삶을 재건하기 위한 신학적, 영성적 틀을 모색한다.
  8. 서구적 영성을 넘어 아시아적 영성을 추구한다.
  9. 새로운 신학이 학문적 영역이나 사유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일상적 삶에서 목회적 현장에까지 구체적으로 이어지는 일상적 삶의 신학을 지향한다.


4. 연구분야: 생명의 큰 물결을 만들기 위한 잔물결들

아름다운 생명물결은 이런 과정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첫째, 시대의 징조가 무엇인지 파악한다. 지금 이 시대가 당면하고 있는, 특별히 생명 정의 평화를 일궈야 하는 상황을 찾아내고 이를 신학적 눈으로 읽어내고 분석한다.

둘째, 그 시대의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성서를 현실의 도전속에서 하나님의 지침을 갈망하는 심정으로 읽는다. 이 때 도전받는 주제를 가지고 성서를 꿰뚫어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통전적 뜻을 밝혀낸다.

셋째, 이 시대의 현실속에서 오는 도전에 비추어 새로운 신학연구를 전개한다. 그리고 전통적 신학개념에 대해 다시 조명하여 전통에 대한 통전적 해석을 도모한다.

넷째, 시대의 징조와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들음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신학적 고백을 내용으로 한 역동적 감성적 예배를 구성한다.

다섯째, 지금 이 시대에 생명물결을 일으키기 위한 신학실천을 우선적으로 도모한다. 특별히 생명농업, 다도영성, 생명예술을 실천주제로 하여 대안적 삶의 양식이 어떤 것이며 이를 이루기 위한 목회적 실천, 그리고 선교적 방법론등을 찾아낸다.

이를 위하여 아름다운 생명물결은 다음과 같은 8개의 주된 물결(총 주제)아래 여러 가지의 잔 물결(소 주제)를 시대의 도전에 따라서 선택하고 연구하여 실천하는 운동을 전개한다.